소설리스트

고황 (572)화 (572/1,004)

572화 맞아요, 상인은 간사하죠

"왜 이렇게 복잡해? 왜 돈이나 은표를 주지 않고?"

장군왕 세자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세자 나리, 당신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네요. 사람들이 모두 나리처럼 무엇이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대범하게 돈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세가 태반의 사람들은 모두 말과 마음이 달라요.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으면서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또 따로 있고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맑고 말투는 가벼웠다. 마치 한담을 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직접적으로 돈을 주면 얼마나 촌스러워요? 만약 거절당한다면 변명할 여지도 없잖아요. 그리고 문관들은 청아하고 고상하니 돈을 통속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아무리 좋아해도 돈을 쉽게 받지 않겠죠. 소문이라도 난다면 명성을 어지럽히니까요. 만약 누군가 세자 나리께 도움을 청하는데 바로 돈 한 상자를 내놓는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장군왕 세자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난 그자가 날 낮잡아본다고 생각할 것 같아. 돈으로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다니!"

"나리도 기분이 나쁘신데 하물며 고상한 문인들은요?"

월령안은 농을 하듯 한마디 했다. 장군왕 세자가 약이 올라 불만이 가득해 보여도 월령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난초는 달라요. 난초는 깊은 골짜기에서 자라고 고상하고 우아하며 지조가 변하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서, 난초를 받으면 한결 더 우아해 보이지요. 적어도 저는 부유한 상인과 외지의 관리들이 경중의 관리들에게 난초를 선물해 거절당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또 사적으로 그들은 서로 난초를 선물하기도 좋아했어요. 지금 일품 난 가게에서는 비록 난초를 거두어들이지는 않지만 줄곧 판매는 하고 있지요. 그래도 종종 사 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전에 팔았던 난초의 일부는 아직 돈으로 바꾸러 오지도 않았어요. 사람들은 바로 그 난초를 마음에 들어 한 거죠. 저만 중간에서 쉽게 큰돈을 벌었죠."

장군왕 세자는 잠깐 멍해졌다가 정신이 들어 월령안을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 이 상인들, 너무 간사해!"

"맞아요, 상인은 간사하죠."

월령안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상인들은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돈으로 길을 열려고 하고, 조정의 제도와 규칙을 파괴하려고 하지요. 군왕께서 싫어하시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어떨 때는 저도 그런 저 자신이 싫은걸요. 그런데 우리 상인들은 또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월령안은 눈을 감고 시선에 드리운 씁쓸함을 지우려고 일부러 홀가분하게 말했다.

"만약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누가 온몸에 가시가 돋치고 마음 가득 꿍꿍이가 들어찬 채로 살고 싶겠어요. 우리가 돈으로 길을 열지 않았다면 그 고관들에게 의탁한 부유한 상인들에게 전부 먹혀 버렸을 거예요. 가족을 부양하고 수하들을 부양하기 위해 우리들도 갖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틈을 파고들 수밖에 없어요."

그녀도 장군왕 세자처럼 무슨 일이든지 그녀를 위해 계획해 주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장군왕 세자는 뒤늦게야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해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집사가 월령안이 요구했던 자료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월령안도 장군왕 세자와 계속해서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집사가 가져온 책자를 펼치고 명단을 대조하면서 자세하게 찾아보았다.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월령안 손에 든 책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쉽게 알릴 수 없는 상업 기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그를 믿고 숨기지 않은 것이기에 그는 물어보거나 보려고 하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는 또 마음속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스스로 영리하다고 자부하며 월녕안이 볼 수 없는 줄 알고 가끔씩 두어 번 훔쳐보았다.

월령안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본 장군왕 세자는 참지 못하고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간도 더욱 커져 고개를 내밀고 훔쳐보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의 꼼수들을 진작부터 보고 있었다. 다만 그와 따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군왕 세자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것도 보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월령안이 기록할 때 특수한 수법을 쓴 것이 아니라 월령안이 책을 펼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장군왕 세자는 따라갈 수 없었다.

월령안 손에 든 자료는 그녀가 자주 펼쳐 본 탓에 손에 익어 달달 외울 정도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한 장 펼치고 그 윗줄의 내용만 보아도 월령안은 이 한 장의 내용을 전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월령안이 자료를 볼 때, 정말 한 장, 한 장씩 펼쳤다. 장군왕 세자가 훔쳐보기는커녕 바로 그녀 뒤에 서 있어도 가치가 있는 것을 보아 내기 힘들었다.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월령안은 삼 년 동안의 자료를 전부 읽었다. 또 반 시진 넘게 시간을 들여 다시 손님 명단을 작성했다. 매 손님의 취향도 모두 적어 두었다.

장군왕 세자는 깊은 생각 후에 행동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또 각각의 손님마다 뒤에 한 줄씩 더 적어 주었다. 그녀가 제안하는 장군왕 세자가 준비해야 할 선물 이름이었다.

다 적은 월령안은 두터운 명단을 장군왕 세자에게 던졌다.

"북요의 황녀는 줄곧 중시를 받지 못했어요. 적출인 황녀는 그나마 괜찮은데 이 오황녀는 생모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요. 또 그녀의 취향도 알 수 없고요. 이 분에 대한 것은 제안을 드릴 수가 없겠네요. 아무 선물이나 준비하세요. 결국 한낱 패전국의 공주이니까 안중에 둘 필요가 없어요."

"이러면 됐어?"

장군왕 세자는 처음에 믿지 않았었다. 그가 월령안이 다시 손님들 명단을 베껴 쓰는 것을 보자 순식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것 정말 너무 완벽한데. 각 인물의 가정 상황, 구매 습관, 취향, 준비할 선물 다 있어. 이 명단은 우리 어머니 손에 있는 것보다 더 완벽한데? 우리 어머니는 해마다 한 달 이상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각 부에게 보낼 축하 선물을 준비하시는데 넌 한 시진만에 이걸 다 했잖아?"

"각자 자기만의 장점이 있는 셈이죠. 전 삼 년이나 대장군의 부인으로 있었잖아요. 이런 작은 일을 어찌 잘 해내지 못하겠어요?"

월령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육장봉에게 시집간 삼 년 동안,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

육씨 가문에서 그녀는 어떻게 권위 있는 부인이 될 수 있는지 배웠고 어떻게 귀족 세가와 교류하는지 배웠고 또 많은 상인 집안이 가질 수 없는 정보를 알았다.

육씨 가문은 아주 좋은 배움터였다. 그녀는 육씨 가문에서 삼 년 동안 견문을 넓혔고, 시야를 넓혔으며 수준을 높였다.

육장봉은 그녀에게 빚지지 않았다.

그녀와 육장봉의 혼인은 서로 원하는 바를 얻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녀는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대단해!"

장군왕 세자는 진심으로 칭찬했다.

"너와 협력하는 거 정말 좋아. 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이 네 말대로만 하면 되니까."

장군왕 세자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얻으니 더 이상 수다를 떨지 않았다. 그는 비록 월령안이 가진 자료에 대해 아주 궁금했지만 선을 지키며 더는 묻지 않았다. 월령안이 준 자료를 받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갔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장군왕, 정말 자식을 잘 가르치는군."

표범의 반점을 보고도 그 전체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장군왕 세자의 이 성미 때문이라도 월령안은 그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책상 위의 자료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집사를 불러들였다. 그더러 자료를 봉하여 보관한 뒤, 장군왕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그녀는 단기간 안에 다시 성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면 경중이 어떤 상황일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정보들은 그녀의 손에 있어도 소용없었다. 인정을 파는 셈치고 장군왕에게 주는 게 더 나았다. 어쩌면 그녀가 다시 경성에 돌아왔을 때,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을 수 있었다.

그 자료를 처리한 뒤, 월령안은 머뭇거리다가 서 선생을 찾아갔다.

월령안이 왔을 때, 서 선생은 칼을 닦고 있었다.

서 선생의 칼은 몇 년 된 맥도(陌刀)였다.

그의 칼은 무슨 유명하고 진귀한 칼이 아니라 군에서 자주 사용하는 맥도였다. 심지어 칼날에 상처도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이 칼은 서 선생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그에게 남겨 준 칼이었다.

서 선생은 이 칼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월령안도 이를 알고 있었다.

서 선생이 칼을 닦는 것을 보고 월령안은 방해하지 않았다. 옆에 조용히 서서 서 선생이 칼을 다 닦은 뒤에서 서 선생에게 물을 한 잔 부어 주었다.

"서 아저씨."

"육장봉의 일로 온 거냐?"

서 선생은 하얀 붕대로 칼을 칭칭 감고 옆에 두었다.

"육장봉이 성문 입구에서 야율융진을 불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북요 오공주까지 건드렸다는 것을 저한테 안 알려 주셨어요."

장군왕 세자 앞에서의 가벼운 분위기와는 달리 서 선생 앞에서 월령안은 투덜거리고 있었다.

"대장군이 북요 오공주를 건드렸다고?"

서 선생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이어 확신하듯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대장군이 북요인을 증오하는 마음은 너와 비슷해. 그는 북요 오공주를 건드릴 가능성이 없다. 그래도 이 점은 내가 확신할 수 있어."

"서 아저씨도 모르셨군요. 아무리 성밖에 있었다지만 경중의 사람들은 다 아는 소식을 우리만 아무것도 몰랐네요."

월령안은 원망의 시선으로 서 선생을 바라보았다.

"서 아저씨, 이러면 안 돼요. 이러면…… 우리는 두 눈 뻔히 뜨고도 경중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서 선생은 조금 어색하게 변명했다.

"전에 경중이 혼란스러웠잖니. 조왕이 도처에 사람을 잡아들이고. 의심이 갈만한 첩자들은 전부 투옥되었지. 주인님께서는 우리가 연루되어 화를 당해 황제의 의심을 살까 걱정하셔서 나더러 사람을 다 철수시키라고 하셨어."

"하지만 성안의 소식을 조금 알아보는 정도는 괜찮겠죠?"

월령안은 서 선생이 조심스럽게 행동했는 게 옳은 대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만약 첩자를 성안에 풀어 움직이게 했다면 죽음뿐이었을 것이다.

"이건 내 잘못이다. 지금 바로 가서 안배할게."

서 선생은 자기의 잘못을 인지한 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일어서서 가려고 했다.

월령안은 서 선생에게 이렇게 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군왕 세자가 구리파의 일을 꺼낸 것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말리려던 것을 멈췄다.

'그래도 알아보는 게 좋아.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야 무슨 일이 있을지 대책을 세우기도 편하지.'

서 선생은 바로 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서 선생이 소식을 알아 오기 전에 월령안은 육장봉이 보낸 소식을 받았다.

육장봉은 편지에서 그녀에게 자기가 무척 바빠 그녀와 함께 설개연에 참가한다고 했던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말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약속을 못 지켜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기대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의 편지를 받은 날, 서 선생도 전갈을 보냈다. 그가 잠시 성을 나갔다 올 테니 그녀더러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육장봉과 서 아저씨가 연이어서 제때 돌아올 수 없다는 소식을 보낸 것이 정말 우연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