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인
"군왕 나리, 대단하십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장군왕과 폐하의 관계가 그렇게 멀고 손에 실권도 없으면서 장군왕 세자가 어떻게 경중에서 도박장을 여는가 했네.
이 통달함으로 장군왕은 어디에서든지 잘 살 수 있을 거야.'
장군왕 세자의 이 말을 듣자 월령안도 더 만류하지 않고 않고 바로 장군왕 세자가 건네준 명단을 펼쳤다.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첫 번째 줄에 그녀는 멍해졌다.
"북요의 오공주 야율아한? 그녀도 설개연에 참가한다고요? 무슨 생각일까요?"
최씨 가문의 설개연은 맞선을 보는 자리였다.
"임시로 참가하겠다고 한 거래.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이 오공주는 최일에게 시집가고 싶어 한대. 설개연에 참가하는 것은 최일에게 암시를 하는 거지."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에게 추파를 던지며 말했다.
"너 조심해. 이 오공주는 널 눈엣가시로 보는데. 만약 자기가 최일에게 시집을 가지 못하면 네가 자기 일을 또 망쳤다고 복수할 거야."
"또 그녀의 일을 망쳤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몰랐어?"
장군왕 세자는 눈을 크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육 대장군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어?"
"육장봉과 무슨 상관인데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문득, 생각이 났다.
"이 오공주가 혹시 그 육장봉에게 시집가고 싶은데 거절당한 그 공주인가요? 그것도 제 이름으로 거절당한?"
"정말 몰랐어? 이 일은…… 변경에서 소문이 파다해. 이 소식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일연이나 추일연을 열어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부인 것을 증명하려고 절박하게 기다리는 중인데?"
장군왕 세자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는 월령안이 조금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의 눈썹은 더욱 찡그려졌다.
"어떻게 된 거죠?"
그녀는 육장봉이 그녀에게 또 무슨 골칫거리를 만들어 줬는지 더 알고 싶었다.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이 진짜로 모르는 것을 보고 그녀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육 대장군과 북요 황태자가 성문 입구에서 비무하던 날 말이야. 북요의 오공주는 북요 황태자가 전패하여 거시기가 잘린 뒤, 갑자기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육 대장군은 영웅이라서 자기와 어울린다는 거야. 그러면서 육 대장군이 자기에게 구혼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했어."
말을 마친 장군왕 세자는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힐끗 훑어보았다.
"이 일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본데다가 꽤 오래 지났으니 난 네가 진작에 알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에게 말해 줄 생각도 못 한 거고 말이야."
"전 그때 궁에 있어서 소식이 빠르지 못했어요."
월령안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제서야 장군왕 세자가 말한 비무를 한 날이 육장봉이 난각에서 끊임없이 피를 토했던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그날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녀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장군왕 세자는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참 아쉽네. 넌 육 대장군께서 그 오공주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못 들었겠군."
"묻지 않아도 알겠네요. 그 오공주는 말투가 오만하니 대장군께서도 예의를 지키지 않으시고 오공주가 자기에게 시집오기엔 어울리지 않겠다는 말을 했겠지요."
'육장봉이 무슨 인물이야? 절대 여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사람이지. 북요의 그 오공주가 육장봉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도도하고 고고한 척했겠지.
그녀는 자기가 그러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인가? 육장봉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박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 정말 멍청해.'
"정확하지는 않으나 크게 다르지는 않아."
장군왕 세자는 교활한 얼굴로 말했다.
"육 대장군은 북요 오공주가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셨어. 다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셨지."
월령안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은근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 곧이어 장군왕 세자가 고소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북요의 그 오공주가 대장군과 어떤 낭자가 세상에서 제일 좋냐고 물어보니 육 대장군이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
"알고 싶지 않아요."
월령안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 경고하는 시선으로 장군왕 세자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하기는……. 육 대장군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바로 가셨어. 넌 걱정하지 마. 육 대장군께서 네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육장봉, 대답하지 않았어!'
월령안의 마음속은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몰래 쓴웃음을 짓고 다시 물었다.
"육장봉이 대답하지 않았는데 북요의 오공주가 왜 절 눈엣가시로 여기는 건데요?"
"대장군의 대답이 소문나면서 귀족 여인들은 짐작을 한 거지. 과거 혼사가 어떻게 된 일이든 대장군이 널 맞이하셨던 건 사실이니까. 대장군께서 널 맞이하신 그 해는 마침 네가 춘일연에서 화신 칭호를 받았던 해였어. 그 귀족 여인들은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낭자는 분명 춘일연에서 연속 두 번이나 화신 칭호를 받은 너라고 추측한 거야.
지금 밖에서는 대장군께서 널 위해 북요의 오공주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그 오공주는 너한테 도전하겠다고 말까지 했다니까. 그러나 그들 북요가 전패하면서 오공주도 감히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대장군보다, 북요는 오공주가 문관과 혼인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고. 최 대학사가 승상으로 임명되면서 북요에서는 최일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거야.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최일이 절대 오공주를 맞이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
말을 마친 장군왕 세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월령안을 힐끔 훑어보았다.
"최씨 가문이 설개연의 초대장을 너에게 준 게 무슨 의미인지 눈이 달린 사람들은 다 알아. 북요 오공주는 자신의 혼사에 네가 계속 거슬리니 분명 너의 트집을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특히 구리파의 일은……."
장군왕 세자는 '구리파'까지 말하고 멈칫했다.
구리파의 사건이 너무 깊게 연루된 탓에 그의 아버지는 그더러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말 월령안이 걱정되었다.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가 애를 쓰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장군왕 세자를 난감하고 굴고 싶지 않아 먼저 입을 열었다.
"난감하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아요."
"난감해서가 아니야. 구리파의 일을 우리 아버지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거든. 특히 너하고."
장군왕 세자는 고개를 돌리고 감히 월령안을 바라보지 못한 채, 초조해서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더러 네 앞에서 구리파의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한순간 말실수를 해서……. 그 뭐야, 우리 아버지께는 말하지 마."
"말 안 해요. 그리고 구리파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상관없어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하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녀가 구리파에서 당한 일을 말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모든 비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정말 상관이 없어?"
장군왕 세자는 의심의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지하 투수장의 일도 상관이 없어?"
"보아하니, 아주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가 보셨어요?"
월령안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나약하고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한 꼬맹이로서 장군왕 세자의 생존 욕구는 아주 강했다. 그는 연신 손을 저으며 극구 부정했다.
"아니, 아니! 날 믿어. 난 절대 가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는 절대 내가 그런 곳에 가게 하지 않으셨어."
자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장군왕 세자는 급히 덧붙였다.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내가 미인을 좋아한다면 집에서는 날 위해 기루를 열 수 있고 내가 도박을 좋아한다면 집에서는 날 위해 도박장을 열 수 있대. 그러나 더러운 곳에 간다면 내 다리를 분지르겠다고 하셨어."
월령안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됐어요. 안 가 봤으면 안 간 거지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제가 황성사의 사람도 아니고 구리파의 일을 심사할 것도 아닌데요."
육장봉이 칠 년 전, 구리파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최근에 성안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많은 귀족 자제들이 연루될까 두려워 문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장군왕 세자도 두려워했다. 월령안은 조금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군왕 세자의 말이 퍽 재미있게 느껴졌다.
'장군왕은 역시 재미있는 분이시군.'
장군왕 세자는 웃음소리만 낸 뒤, 월령안이 손에 든 명단을 가리켰다.
"우리 계속 선물에 관한 일을 상의할까?"
"서재로 가죠. 자료를 좀 찾아야겠어요."
설개연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신분이 고귀했다. 장군왕 세자가 가져온 명단은 대부분 그녀가 교류를 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취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붓을 들자마자 그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일부분은 월령안도 교류를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자료를 찾아야 했다.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를 데리고 서재로 왔다. 또 집사더러 최근 삼 년간 그들이 수집한 각 고관 귀족들이 귀중품을 구매한 것에 대한 기록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너한테 이런 것도 있었어?"
장군왕 세자는 깜짝 놀랐다.
"그럼 어느 집에서 돈을 썼는지도 넌 알겠네?"
"이게 이상한가요?"
월령안이 가볍게 웃었다.
"제가 어찌 짧은 삼 년 안에 백만 냥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제가 왜 육장봉의 이혼장을 받자마자 바로 손에 있던 점포를 내놓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최근 삼 년, 경중의 모든 귀중품들, 옷과 장신구, 진귀한 골동품, 심지어 귀한 약재까지 모두 제 손에서 나간 것들이에요. 해마다 귀중품들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누가 사 갔는지, 결국에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제가 아는 게 당연한 것 아니에요?"
"그, 그, 그……."
장군왕 세자는 한참이나 말을 더듬다가 신비롭게 말했다.
"그럼 누가 횡령하고 누가 귀중품을 선물로 받았는지도 다 알아?"
"어느 한 해에 경중에서 난초가 유행해서 사람들마다 난꽃을 선물했었던 것을 기억하세요?"
장부가 금방 오지 않자 한가하던 차에 월령안도 장군왕 세자와 벼슬 자리에서의 어두운 일들을 말해 주었다.
장군왕 세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우리 아버지도 난초 화분 여러 통을 받으셨는데 이틀만 두고 안 보이더라고. 아버지는 죽었다고 하셨어."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죽은 게 아니라 돈으로 바꾼 거예요."
"돈으로 바꾼다고?"
장군왕 세자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맞아요. 돈으로 바꾸는 거죠!"
월령안은 가볍게 대답했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내려와 눈에 담긴 비웃음을 덮었다.
"일품 난 가게에서 내보낸 난초는 일품 난 가게에서 평생 회수가 가능해요. 그것도 현금으로요,"
"그래서 난초는 사실 돈이었다는 말이야?"
장군왕 세자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난초는 바로 돈이었어요. 매년 연말에 지방 관리들이 상경하여 업무를 설명하는 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 또한 부유한 상인들이 뇌물을 주는 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그 몇 년 동안 난초 화분들은 은표보다도 쓸모가 많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