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또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대조례 날이 아니었다. 육장봉은 황성사에서 사건 조사를 지휘를 하고 있어 조례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연히 조례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었다.
황제가 찾는다는 소식을 받은 육장봉은 다른 사람처럼 황공해 하며 바로 입궁하지 않고 육일을 불러 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물었다.
육일은 친위대의 수령인 만큼 능력이 무척 뛰어난 인물이었다. 조례에서 지금까지 반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육일은 자세히 알아내어 보고했다.
심지어 어제 장씨 오공자와 월령안이 명월산장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월령안이 또 뭘 했는지까지 알아냈다.
그러나 육장봉은 육일을 치하하지 않고 탁자를 거세게 두드리며 차갑게 말했다.
"어제는 왜 보고하지 않았지?"
"우리가 명월산장에 심은 사람이 서 선생에게 당했다가 오늘 아침에야 깨어났습니다."
육일은 한쪽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대장군께서 벌하여 주십시오!"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더니 바로 일어났다.
'벌하지 않으리셔는 건가?'
육일은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대장군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정수리 위에서 울렸다.
"스스로 벌을 받으러 가거라."
육일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래, 그가 이렇게 운이 좋을 리가 없었다.
"네, 대장군!"
육이는 힘겹게 대답하고 꿋꿋하게 울음을 참았다.
대장군에게 쫓겨나 청주로 간 십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는 울면 안 되었다.
벌을 준 것만으로도 모자라는지 육 대장군은 떠나기 전에 또 명령을 내렸다.
"날이 저물기 전에 나는 구리파 범인들의 자백을 보아야겠다. 알겠느냐?"
"네, 대장군."
육일은 다시 자신을 향해 굳세자고, 울지 말자고 다짐했다.
'날이 저물기 전일 뿐이잖아. 난 할 수 있어!'
황성사의 일을 넘긴 육장봉은 황제의 명을 전하러 온 사람과 함께 난각으로 갔다.
역시나 조계안 또한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난각에 들어선 뒤, 황제에게만 예를 올리고 바로 옆에 앉았다. 조계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계안은 원래 육장봉과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싸늘한 얼굴을 보니 자기의 호의가 냉대로 돌아올 것이 뻔하게 예상되어서 도도하게 얼굴을 돌리고 그 역시도 육장봉을 쳐다보지 않았다.
황제는 둘의 유치한 행동을 보고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두 사람 앞에서는 위엄도, 체면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황제는 예전처럼 힘겹게 화해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황제는 못 본 것처럼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례의 일은 너도 알았을 거라 생각한다. 너희 둘은 어찌 보느냐?"
"황형이 좋은 쪽으로 생각하세요. 전 의견이 없어요."
조계안은 두 손으로 미는 시늉을 했다.
황제는 퉁명스럽게 조계안을 노려보고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또 상냥하게 물었다.
"장봉아, 너는?"
그러나 육장봉이 더욱 화를 돋우었다.
육장봉은 눈까풀을 들지도 않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신은 조왕 전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육장봉!"
황제는 화가 나 안색이 변했다.
육장봉은 여전히 안색을 바꾸지 않고 일어섰다.
"신 여기 있습니다! 폐하께서 신이 조왕 전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언짢으시다면 신은 폐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황제는 크게 화를 냈다. 그는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 반드시 짐을 화가 나 죽게 하겠다는 것이냐? 짐이 언제 너를 탓한 적이 있었느냐?"
"폐하, 화를 푸십시오! 신이 잘못했습니다. 폐하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육장봉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변명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평소의 침착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제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오늘 조례에서 한 방식이 잘못되었나? 장봉이는 바보인가?'
황제는 물론, 조계안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닥에 꿇어앉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육장봉이었다.
오만하기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어도 절대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육장봉이 먼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고 있었다.
'육장봉이 미친 게 아닐까?'
조계안은 평상에서 훌쩍 뛰어오르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육장봉의 주위를 두세 번 맴돌았다.
"너 혹시 무슨 귀신이 씌운 게 아니야? 또는 누구한테 협박받았어? 만약 그렇다면 눈을 깜빡여 봐. 내가 구해 줄게."
조계안은 그가 얼굴에 쓴 귀신 가면이 얼마나 무서운지 까맣게 잊고 바로 육장봉의 앞으로 들이댔다.
육장봉은 싫은 내색을 하며 조계안의 얼굴을 찰싹, 쳐서 비키게 하고 상대하지 않았다.
"육장봉 너……."
조계안은 화가 나 육장봉을 손가락질하며 욕하려고 했다. 그러나 욕을 하다 말고 조계안은 갑자기 멈추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알겠어, 알겠어! 하하하하…… 육장봉, 역시 네가 대단해. 난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는 걸."
육장봉은 여전히 말없이 곧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희들……."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고 대충 뭔가 잘못되었다고 눈치채고 있었다. 머리에 뭔가가 떠올라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조계안이 몸을 돌리더니 건들거리며 말했다.
"황형, 육장봉이 잘못을 인정까지 했는데 이 기회에 그를 벌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이런 기회는 아주 드물잖아요."
"너희 둘 무슨 짓들이냐?"
방금 떠오른 생각이 조계안의 말 때문에 날아가자 황제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전 황형께 무슨 짓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요? 최 대학사와 월령안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 수상이 되면 월령안에게 치우칠까 두려우시잖아요. 지금 최 대학사가 먼저 사직 요청까지 하고 장 부승상을 추천하기까지 했는데 짜증 날 일이 뭐가 있어요? 이게 바로 황형이 원하던 것이잖아요? 아니면 혹시 저도 육장봉과 함께 사직하라는 건가요?"
조계안은 비꼬듯 코웃음을 치고 옆에 앉아 발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됐어요, 황형. 사람이란 너그러워야 해요. 이득을 취하고도 잘난 척하지 마시고요."
"너희 둘, 지금 일부러 이러는 것이지?"
황제는 드디어 알아차리고 화가 나 얼굴이 파래졌다.
"황형의 말을 듣는다는 데도 안 좋아요?"
조계안은 아주 얄밉게 웃었다.
"반드시 우리가 황형의 대립각에 서야만 속이 후련하신가요?"
육장봉도 일어섰다.
"네, 신은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짐이 너더러 일어나라고 했느냐?"
황제는 체면을 잃어서 육장봉을 매섭게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은 성전(盛典)이 아니면 폐하를 뵙고도 꿇지 않을 특권이 있습니다."
육장봉은 조계안 앞에 앉았다. 방금 전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던 순종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짐이 너를 너무 대우해 준 거 아니냐? 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잔머리를 굴리려고 해."
황제는 화가 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얻은 대우입니다."
육장봉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짐은 언제든지 거두어들일 수 있다."
황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육장봉은 시선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신은 언제든지 사직할 수 있습니다."
"넌 지금 짐을 협박하는 것이냐?"
황제의 시선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육장봉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진정 제가 협박하고 싶었다면 신은 언제든지 월령안을 데리고 멀리 도망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네가…… 감히!"
황제는 차가운 시선을 하고 탁자 위에 올려 둔 손은 꽉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제왕의 위압감이 끊임없이 밖으로 내뿜어져 난각 안의 분위기는 순간 딱딱해졌다.
"신……."
육장봉은 잠깐 말을 멈췄다.
난각 안의 분위기는 더 무거워진 듯했다. 마치 한계까지 잡아당긴 활의 시위가 언제든지 끊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끊어지면 다시는 복구될 수 없었다.
조계안의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그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려는 순간 육장봉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쿵!
난각 안의 팽팽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계안은 몰래 숨을 들이쉬고 퉁명스럽게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육장봉, 너무 오래 참아서 갑갑해 죽을 뻔했나 봐!"
육장봉은 조계안을 싸늘하게 흘겨보고 황제와 말했다.
"폐하께서는 장씨 오공자가 왜 특별히 명월산장으로 찾아가 월령안과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왜 최 대학사의 반응이 이리도 빠를까요?"
"그 말은……."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께서 잘 하시지 못하신 겁니다."
육장봉은 가볍게 비꼬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폐하께서는 한 번도 감추시지 않으셨고 또 감추려고도 하시지 않으셨지요. 월령안이 알면 뭐 어떻겠습니까? 그녀가 감히 폐하의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습니까?"
"넌 짐이 이용당했다고 말하는 것이냐?"
황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육장봉은 황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폐하, 만약에 폐하께서 신을 믿지 않으시고 신도 폐하를 믿지 않았더라면 신이 북요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황제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탁자 위에 놓인 주먹도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황제가 흔들렸다!
육장봉은 눈을 살짝 움직여 시선에 담긴 속셈을 감추고 나지막하게 한탄했다.
"폐하, 지금 이미 폐하께서 월령안을 믿으시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월령안이 폐하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폐하, 폐하를 믿지 못하는 월령안이 청주로 가서 가장 먼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황제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고 육장봉이 대답했다.
"월령안은 자기 보호를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폐하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돌격해 나설 때, 폐하께서 그녀의 발목을 잡으시고 심지어 그녀의 등에 칼을 꽂으실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짐은 그럴 리가 없다! 짐이 그녀를 믿지 못한다면 그녀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큰소리로 반박했다. 그 소리는 밖에 있는 금군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육장봉은 차갑게 웃었다.
"폐하, 믿음은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기에 달렸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그녀를 믿으시지 못하고 경계하시는 겁니다."
"짐은 그런 적이 없다!"
황제는 더 크게 외쳤지만 육장봉과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저력이 부족했다.
"늘 그러고 계십니다!"
육장봉은 더욱 강한 어조로 못을 박았다.
"최 대학사! 수상 자리! 폐하께서 오공자의 말을 듣고 최 대학사를 수상의 후보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아닙니까?"
"짐은……."
황제는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육장봉은 덤덤하게 반문했다.
"폐하께서 또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육장봉은 냉랭하고 굳은 표정이었다. 감정의 기복도 전혀 없고 목소리도 차분했지만 황제는 육장봉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는 비열한 자신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육장봉의 말은 황제가 도망칠 곳이 없게 만들었다.
"견고하던 성은 항상 내부로부터 와해되기 시작하죠. 청주 그 사람들의 목적은 이미 도달했습니다. 폐하와 월령안이 서로 믿지 못하니까요. 당신들은…… 반드시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