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66)화 (566/1,004)

566화 내가 뿌린 씨야

'그의 찬란한 미래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고요. 최일을 보면 전 아직 세상에 아름답고 좋고, 밝은 면이 있다는 것을 믿게 돼요. 최일은 제가 부러워하는 모습대로 살고 있어요. 제가 꿈을 꾸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이런 최일을 제가 어찌 심연 속으로 끌어들여 저와 함께 심연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치게 할 수 있겠어요?'

월령안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폐하께 저 월령안은 이번 생에 절대 최일에게 시집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앞으로는 만약 저에게 불만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고, 염 황숙을 찾아가셔도 소용없다고도 전해 주세요. 염 황숙은 절 만나지 않아요. 그는 저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는 황제의 손에 든 칼이었다. 황제가 청주를 상대하는 칼이었다. 최일이 그녀에게 청혼한 것은 황제의 권위에 대한 도발이었고 황제의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약 최일에게 시집간다면 황제가 재위하는 이상, 황제의 자손 핏줄이 재위하는 이상, 최일, 현재의 최씨 가문, 또 미래 최씨 가문의 대대손손은 영원히 출세하지 못하고 평범하고 무능력하게 살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멍청하지 않은 이상, 어찌 최일에게 시집갈 수 있으랴!

"최일은 당신이 이토록 지켜 줄 가치가 있소?"

육장봉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으며 차가운 살기를 띠었다.

화청 안의 공기는 마치 잠깐 멈춘 듯했다.

월령안은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금방이라도 그녀를 삼켜 버릴 것 같은 음침한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투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있어요!"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진짜 나무로 만든 의자의 팔걸이가 육장봉에 의해 부서졌다.

월령안은 여전히 무시했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

"그의 인생은 저의 모든 환상을 만족시켰어요. 고귀하게 태어나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부모님 모두 계시고 사랑하며 화목하고, 자유분방하고 앞날도 환하고요. 전 꿈에서도 그런 인생을 살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밝고 찬란하고 조금의 어두움도 없고요. 큰길만 가고 광명정대하고 거짓이 없으며 음침한 계략 따위도, 신중을 가해야 하는 속셈도 없는 인생 말이죠."

월령안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 그녀의 얼굴에는 몽혼적인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곧 그 미소는 사라졌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전 제가 본 것이 최일의 빛나는 일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 그가 뒤에서 한 노력을 보지 못했겠죠. 그러나 전 볼 필요도 없어요. 전 최일이 제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아 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육장봉의 시선에 드리운 분노는 순식간에 물러갔다. 그는 그윽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창피한 기색도 있었고 가슴 아픈 기색도 있었다.

월령안은 원래 그녀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월령안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만약 그가 아내를 내치지 않았다면 월령안은 아직 대장군 부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고귀하게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고귀한 데로 시집가 자유분방하고 광명정대하게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육장봉의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나무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박혀 빨간 선혈이 손의 나무 부스러기를 물들이고 옷자락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손바닥의 아픔은 그의 마음속의 아픔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육장봉은 몰래 숨을 들이쉬고 과거의 자기에게 검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눌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 말을 전하겠소."

"대장군, 감사해요."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긴 속눈썹이 드리우면서 시선에 깃든 조롱과 자조를 덮었다.

가졌을 때는 아끼지 않고 잃었을 때에야 후회한다.

남자의 열악한 근성은 육장봉 같은 대영웅도 빗겨가지 못했다.

그러나 잃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생명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누구도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러고 싶어도 운명이 허락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일부러 어젯밤에 오지 않고 오늘 아침 일찍 명월산장에 왔다. 명월산장에서 몇 시진이라도 더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한 '최일은 제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육장봉은 일각도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생글생글 웃고, 아무런 불만도, 우울한 기색도 없던 월령안을 보면서 육장봉은 그제서야 하늘거리는 이혼장 한 장이 월령안이 가지고 싶은 가정과 사랑뿐만 아니라 그녀의 유일한 희망마저 망가뜨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령안은 마땅히 그를 원망하고 미워해야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덤덤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마차에 앉아 육장봉은 월령안의 자조적이기만 할 뿐, 조금의 원망도 없는 표정을 떠올리며 마음 아픈 동시에 또 월령안이 자랑스러웠다.

'나의 령안은 인간의 부귀를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세간의 풍파도 감당할 수 있구나.'

마차를 탄 육장봉의 머릿속에는 온통 월령안의 표정들뿐이었다. 특히 그가 전에 최일의 얘기를 꺼내면서 지었던 부러운 시선이었다.

"나도 절대 마음이 약해지지 않겠소. 당신을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하기 위해."

육장봉은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시선은 순식간에 굳세고 냉혹해졌다. 그는 높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멈추거라!"

마차가 서자마자 육장봉은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육일더러 그의 말을 끌고 오라고 했다.

육일은 대장군의 상황이 말을 탈 것이 못 된다고 뀌띔하려고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차가운 얼굴을 보자 육일은 묵묵히 눈을 질끈, 감고 새하얀 조야옥사자를 끌고 왔다.

조야옥사자를 보자 육장봉의 날카로운 분위기도 사그라들었다. 그는 고삐를 받아 들고 말 등에 올라타 친위더러 빠른 속도로 앞을 가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변경에 돌아갈 것이다.

육일은 감히 이견을 제기하지 못하고 바로 채찍질하며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리를 달려 장군왕 세자 일행을 저 멀리 떨구어 놓았다.

장군왕 세자 일행은 입안 가득 먼지를 먹었다. 사람들이 멀리 가고 나서야 장군왕 세자는 정신을 차렸다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육 대장군은 이게 무슨 뜻이래? 성 밖이 위험하다고 굳이 날 끌고 함께 성으로 돌아가자더만, 길에 날 그냥 두고 떠나?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세자 전하, 우리가 뒤쫓을까요?"

장군왕부의 호위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쫓긴 뭘 쫓아? 따라잡을 수나 있겠어?"

장군왕 세자는 불쾌한 얼굴로 옆에 있는 호위를 흘겨보았다.

대장군이 바로 떠난다는 말을 하자마자 이 호위들은 묻지도 않고 바로 마차와 말을 준비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호위가 대장군부의 돈을 받는 줄로 여길 것이다.

장군왕 세자 일행은 느긋하게 성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입성했을 때는 이미 오시였다.

일행은 허기가 져서 배에서 소리가 났다. 장군왕 세자도 대범하게 호위를 데리고 변경에서 가장 좋은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절반이나 갔을까, 길이 봉쇄된 것을 발견했다. 길을 봉쇄한 자들은 군대였다.

"큰일이 생긴 건가?"

지난 번에 길을 봉쇄한 것은 황제가 병이 위중하고 곽씨 가문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때였다.

'혹시 폐하께 일이 생기셨나?'

장군왕 세자는 다급히 호위더러 알아보라고 했다.

잠시 후 장군왕 세자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져서 마차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세자 나리, 옥정헌(玉鼎軒)으로 갈까요?"

이를 본 호위는 낮은 목소리로 일깨웠다.

장군왕 세자는 몸을 흠칫, 떨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호위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기는 뭘 가? 저택으로 돌아가! 당장 저택으로 돌아간다!"

그는 하마터면 끝장날 뻔했는데 먹기는 뭘 먹는단 말인가!

장군왕 세자는 쉬지 않고 달려 저택으로 돌아왔다. 말에서 내릴 때, 그의 다리는 여전히 나른했다. 호위가 부축하지 않았다면 세자는 아마도 볼품없이 고꾸라졌을 것이다.

집사는 세자가 학대라도 당한 것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호위가 대답하려는 순간, 세자는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묻지 말거라. 물으면 내가 기분이 나쁘니까!"

놀라서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세자는 호위의 부축을 받으며 왕부로 들어갔다.

장군왕은 소식을 듣고 아들이 이 몰골인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너더러 명월산장에 가서 며칠 묵으면서 월 낭자와 감정을 잘 키우라고 했건만 왜 이 꼴이 되어서 온 것이냐?"

"아버지…… 아버지는 정녕 제 친아버지세요."

장군왕 세자는 장군왕을 보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했다.

그는 호위를 밀치고 앞으로 덮치며 장군왕의 허벅지를 덥석, 끌어안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저도 끝장났을 거예요! 엉엉엉…… 너무 무서워. 대장군은 너무 무서워요!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잡아들이기까지 해요. 너무 처참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냐? 누가 괴롭혔냐?"

장군왕은 감짝 놀라 자기의 다리를 안고 바보처럼 우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망신만 시키고 실없는 아들을 차 버리고 싶었지만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친자식이야! 내가 뿌린 씨야! 때릴 수 없어. 때려죽이면 안 돼!'

"엉엉엉, 아버지, 방금 전에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장군왕 세자는 울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군왕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자 호위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호위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장군왕보다 더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길에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장군왕은 하는 수 없이 호위를 내보내고 망신스러운 아들을 직접 부축해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바로 말해. 하늘이 무너져도 이 아비가 지탱해 줄 테니까!"

큰 충격을 받은 장군왕 세자는 장군왕의 말을 듣고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버지, 제가 금방 성에 들어섰을 때, 병사들이 길을 봉쇄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했어요. 대장군이 병사와 말을 거느리고 진왕 세자, 이부 시랑의 아들, 영녕후의 아들을 전부 잡아들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병사들이 그들의 저택을 포위하더라고요.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전부 가쇄를 하고 죄수 호송차에 오르고 있었어요. 아주 무서웠어요."

"대장군이 병사를 거느리고 길을 봉쇄한 채, 사람을 잡아들인다고?"

장군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대장군은 그들 셋만 잡아들이더냐?"

장군왕 세자는 불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대장군이 그들 셋만 잡아들이고 있었어요."

장군왕은 퉁명스럽게 멍청한 아들을 흘겨보았다.

"그럼 네가 무서워할 게 뭐가 있느냐? 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