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화 잘 계시던가요?
"이, 이래도 되나? 우리가 이렇게 한 것이 사기가 아니야? 최 대학사가 안다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
장군왕 세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척이나 놀란 모습이었다.
월령안이 반문했다.
"왜 안 되죠? 그리고 제가 누구를 속였나요? 뭘 속였나요? 세자와 대장군부의 계약서가 거짓인가요 아니면 위에서 초대한 사람이 온다는 말이 거짓인가요? 또 우대를 하겠다는 게 가짜인가요?"
"그러네……."
장군왕 세자는 잠깐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사실이네."
"다 사실인데 사기라는 말은 무슨 소리예요?"
월령안이 또 물었다.
장군왕 세자는 한참 생각해 보았지만 문제점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 되자 나지막하게 물었다.
"만약, 만약 최 대학사가 우리 술이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우리는 그 세가 공자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초대한 사람들이 그 세가 공자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세자께서 앞의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는 술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설개연에 제공한 술이 물보다 더 연하거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게 아닌 이상요."
월령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장군왕 세자는 바로 반박했다.
"그럴 리가! 네가 제공한 술이 어떻게 문제가 생기겠어!"
그가 안 된다고 하면 하는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월령안이 납품한 술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가장 빨리 나서서 반박할 것이다.
월령안은 장사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그 인품과 신용은 그래도 보증된 셈이었다.
"그래서 또 걱정할 게 뭐가 있는데요?"
월령안이 또 물었다.
장군왕 세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렇게 대장군부를 이용한다면 대장군께서 기분이 나쁘시지 않겠어?"
"우리가 대장군부를 어떻게 이용했는데요?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월령안은 싸늘한 얼굴로 사정없이 말했다.
"애초에 술 주문도 대장군부가 먼저 찾아와서 한 거잖아요. 우리는 그를 핍박한 적도 없어요. 물건을 넘기는 날짜도 그들이 동의한 것인데 우리가 핍박했나요? 우리는 상업적인 방식으로 상업적인 문제를 해결할 뿐이에요. 상업계의 규정대로 제때에 물건을 넘기는 것이고요. 대장군께서 만약 이용당했다고 여기셔서 기분이 나쁘셔도 전 다른 수가 없어요. 그분이 기쁘라고 개업을 안할 수 있겠어요? 장사를 안할 수 있겠어요?"
"그런 것 같아……."
장군왕 세자는 자꾸 뭔가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월령안의 말이 이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문 밖에서 월령안이 어떻게 자기의 대장군을 이용하고 장군왕과 최씨 가문을 '사기 치'는지 들은 육일과 육이는 묵묵히 육 대장군을 바라보다가 또 묵묵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정말이라고!'
육장봉은 경고의 시선으로 육일과 육이를 바라보고 또 일부러 소리를 내어 화청 안에 있는 월령안과 장군왕 세자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을 많이 주지 않고 육 대장군은 소리를 내자마자 육일과 육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밖에서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대, 대, 대장군……."
육 대장군은 들어오자마자 시선을 장군왕 세자에게로 돌렸다.
육 대장군에게서 살벌한 시선을 느낀 장군왕 세자는 가장 빨리 겁을 먹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고 당황스러웠다. 얼굴 가득 켕김과 불안함을 드러내고 몰래 월령안에게 도움을 눈길을 보냈다.
'끝났어, 끝났어. 우리가 방금 전에 한 말을 육 대장군은 분명 들었을 거야. 우리는 끝났어.'
마주치기만 했을 뿐인데 육장봉이 심문할 필요도 없이 초조함을 얼굴 가득 써 놓은 장군왕 세자와 달리, 월령안은 아주 침착했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느긋하게 일어나 예를 올렸다.
"대장군을 뵙습니다."
육장봉은 대답하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장군왕 세자의 앞으로 와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술을 넘기는 날짜를 정해야 한다지 않았나요? 세자 나리, 육일, 육이와 함께 얘기하시죠."
"네, 대장군, 지금 갈게요."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에게 '알아서 해, 난 널 지킬 수 없어'라는 눈빛을 보내고 날 듯한 속도로 밖을 향해 뛰어갔다.
육일과 육이는 포권하는 방식으로 월령안에게 소리 없이 예를 올린 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육장봉은 장군왕 세자가 앉았던 의자를 언짢은 얼굴로 힐끗 보고 또 그의 앞에 서 있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자리에 앉았다. 또 월령안에게도 앉으라는 눈치를 줬다.
월령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감사를 표한 뒤 앉았다. 그녀는 조용히 육장봉이 따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육장봉은 전의 일을 조금도 꺼내지 않고 서신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그녀의 앞에 건네주었다.
"난 어젯밤에 궁에 들어갔었소."
월령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묻지 않고 탁자 위의 서신을 집어 편지를 꺼냈다.
한 눈에 월령안은 동공이 수축하더니 온몸이 긴장되었다.
편지를 든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이건……."
"음."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어젯밤에 연복궁에 갔었소."
"영감님…… 황숙…… 잘 계시던가요?"
편지를 든 월령안의 손이 벌벌 떨려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의 평온하던 눈에도 곧 안개가 한 층 드리웠다.
육장봉은 크게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아주 잘 지내시오."
홀로 한 궁전에서 지내며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으며 말할 사람 하나조차 없는데 잘 지낸들 얼마나 잘 지낼까?
그러나 월령안 앞에서 그는 잘 지낸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전 진실을 듣고 싶어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자기의 말투가 너무 급하고 날카로워 부탁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급히 말투를 바꾸고 낮은 소리로 애원했다.
"대장군, 제발요!"
육장봉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주 잘 지내시는 건 아니오."
다만 살아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답변을 들은 월령안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도 하네요."
'영감님은 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했는데 연복궁에서 지내는 게 어떻게 좋겠어? 서 아저씨는 매번 영감님이 궁에서 아주 잘 지내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고 했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육장봉의 잘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그녀를 안심시켰다.
속으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노인이 연복궁에서의 실제 처지를 알게 된 월령안은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급히 편지를 읽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편지의 면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원래의 흔적대로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노인의 편지는 그녀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천천히 읽고 싶었다. 육장봉이 이미 편지의 내용을 알고 있다 해도 그녀는 육장봉 앞에서 편지를 읽고 싶지 않았다.
편지를 넣은 뒤, 월령안은 조심스럽게 거두고 일어났다. 그리고 정중하게 육장봉에게 감사를 표하며 약속했다.
"대장군, 감사해요. 앞으로 대장군께서 무슨 요구가 있으시든지 입만 여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작은 일일 뿐이오."
육장봉은 습관적으로 탁자 위의 차를 들어 손에 쥐었다. 그제서야 그는 이 자리가 장군왕 세자가 앉았던 자리고 이 차도 장군왕 세자가 마셨던 차라는 것을 떠올렸다.
육장봉은 안색이 굳더니 손에 든 찻잔을 탁자에 던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의 차가 흘러넘쳐 탁자를 어지럽혔다.
월령안은 이를 힐끗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차를 들어 대장군 앞으로 가져갔다.
"대장군, 이 차는……."
'제가 아직 안 마셨어요.'
월령안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육장봉은 도도하고 덤덤하게 찻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음, 당신을 봐서 이 사례를 받아 주겠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장봉은 열이 나는 게 아니지? 이건 사례가 아닌 것이 뻔하잖아?'
그러나 육장봉은 월령안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찻잔을 손에 들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연속 들이켰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목이 아주 마른 줄로 알 것이다.
그는 아주 느리게, 그리고 아주 조금씩 마셨다.
월령안은 뭔가 짐작한 듯, 육장봉을 힐끗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 앉았다.
육장봉은 느긋하게 손에 든 차를 다 마시고 말했다.
"난 요즘 몸에 상처가 있어 차를 마시지 않는 게 좋소. 다음 번에 나에게는 물을 준비해 주시오."
월령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네, 대장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지?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차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차 한 잔을 다 마시다니. 육장봉, 병이 깊군!'
"황숙께서 최근에 왜 잘 지내지 못하시는지 묻지 않소?"
육장봉은 빈 찻잔을 옆에 내려 두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말투로 물었다.
"최근에요? 왜요?"
월령안은 예민하게 육장봉의 말 속에 새로운 단어를 잡아 냈다.
"당신 때문이오!"
육장봉의 안색이 굳어지며 목소리도 갑자기 차가워졌다.
"저요?"
월령안은 멍해졌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황숙께서는 제가 염명경 귀시에 간 일을 아셨어요?"
"아니요."
육장봉은 차갑게 부정했다.
"그럼……."
월령안은 잠깐 멈칫, 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변경을 떠날 거라서요?"
"최일 때문이오."
육장봉은 월령안이 계속해서 추측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최일이 당신한테 구혼한 일을 폐하께서 아셨소. 어제 오시에 폐하께서는 염 황숙을 찾아가셨소. 알겠소?"
"오시에요?"
월령안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알겠어요."
'명월산장에는 폐하의 사람이 있고 난 줄곧 폐하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는 것을 알겠어.'
월령안은 웃음으로 마음속의 비분을 감췄다.
"제가 이미 거절한 걸 폐하께서 모르시나요? 왜 또 황숙을 찾아가셨죠?"
'왜 영감님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어?'
"오늘에 최일이 있었다면 내일에는 왕일, 주일, 또는 육일이 있을 수 있소. 당신이 오늘 거절할 수 있다면 내일에는 허락할 수도 있소."
황제가 원하는 것은 영원이었다. 월령안이 영원히 그의 지배를 받기 바랐다. 황제는 월령안 이 바둑알이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청주의 일이 끝나도 황제는 월령안에게 자유를 돌려 주지 않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반드시 이것을 깨닫고 그 뒤의 일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폐하께서 생각이 지나치시네요. 저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요.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깊은 심연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고요. 전 제가 그 절망적인 심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 깨끗하고 결백한 최일을 진흙탕 속으로 잡아끌겠어요? 내일은커녕, 모레, 명년, 후년…… 십 년 뒤라도 전 최일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