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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63)화 (563/1,004)

563화 이런 건 편지를 쓰면 되잖아요

황제는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조계안을 위로하지 않았다.

창피함을 겪는 일은 몇 번 당하고 나면 익숙해졌다. 마치 그처럼.

조계안은 한참이나 돌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다. 그는 황제가 탁자에 놓은 편지를 보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염 황숙이 뭐라고 쓰셨기에 황형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거예요?"

"황숙께서 등요를 강녕부로 보내 태후와 함께 있으면서 짐을 대신해 효도를 하게 하라고 하셨다."

황제는 편지를 조계안에게 건네주었다.

조계안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황숙께서 갑자기 왜 등요의 일을 꺼내셨을까요?"

"당연히 장봉이 황숙께 말씀을 드린 것이겠지."

황제의 기분이 퍽 좋아졌다.

"황숙께서 어찌 등요의 일에 신경을 쓰겠느냐? 이건 당연히 장봉이가 사정한 것이지. 장봉은 황숙의 손을 빌려 먼저 물러서고 짐과 화해를 하려는 것이다."

"육장봉은 언제부터 속셈이 이렇게 많아진 거죠?"

조계안은 투덜거리면서도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는 황형과 육장봉이 군신 사이가 틀어지고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등요의 일로 모순이 생긴 것이라면 조계안은 어찌 보아도 너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속셈이 많은 것이 아니라 섬세한 거지. 그날 등요의 일로 장봉과 짐은 썩 유쾌하지 못했지. 짐은 짐의 체면을 생각해야 했고 장봉도 그의 자부심을 지켜야 했으니.

우리는 서로 양보하지 못해 이 지경까지 왔단다. 짐과 장봉은 모두 더 이상 등요를 안배할 수 없었는데 황숙께서 나서시니 딱 좋구나."

말을 마친 황제는 마치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웃음을 지었다.

"속셈이 많긴 많구나. 특별히 내관더러 황제가 쓰는 물건을 찾아오게 했으니. 뭐든지 내 손바닥 안에 두었구나."

이 말을 들은 조계안은 이상하게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는 연복궁에 간 적이 있고 염 황숙을 뵌 적이 있었다. 그는 연복궁의 가구 배치를 잘 알고 있었다.

커다란 연복궁은 텅 비어 있었다. 탁자와 의자, 찻잔도 아주 적었다.

그리고 연복궁에는 종이와 먹이 없었다.

그리고 최일이 월령안에게 청혼한 일을 황형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보다도 먼저 소식을 입수한 사실을 떠올리자 조계안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황숙처럼 주변의 가족들의 경계를 받지 않을까?'

조계안은 생각이 얕은 사람이 아니지만, 황제는 조계안을 잘 알고 있었다.

조계안의 기분이 갑자기 저하되자 황제는 조계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는 조계안의 어깨를 감싸고 가볍게 다독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짐은 그렇게 속셈이 많지 않단다. 염 황숙의 뜻이야.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월령안을 위해서야. 철저하게 월령안과의 관계를 끊기 위한 것이란다. 짐이나 다른 사람들이 월령안을 힘들게 하는 것이 싫으신 거지."

조계안은 고개를 기울여 황제의 어깨에 기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형, 전 우리가 그 지경까지 이르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전 또 황숙처럼 평생 자기를 위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죽을 때가 되어서도 서러움을 겪고 싶지도 않아요."

"그럴 리 없다."

황제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조계안이 또 말했다.

"황형, 청주의 일이 마무리되면 월령안에게 자유를 돌려 주면 안 되나요?"

그 질문에 황제는 말이 없었다.

육장봉은 궁을 나간 뒤, 그가 말한 것처럼 심야에 명월산장으로 가지 않고 바로 장군부로 돌아왔다. 그는 날이 밝고 문이 열리고 나서야 호위병을 데리고 성을 나섰다.

조계안은 이튿날 일어나서 육장봉이 오늘 아침이 돼서야 성을 나간 일을 알고서 화가 나 육장봉을 염치없이 또 자기를 가지고 놀았다고 욕을 했다.

황제는 듣고서도 웃기만 할 뿐이었다.

육장봉이 조계안을 대놓고 놀리는데 그라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조계안이 분명 화가 났으면서 또 그들한테 손을 대지 못하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그도 가끔은 참지 못하고 조계안을 놀렸다.

자기도 그러는데 무슨 자격으로 장봉이가 틀렸다고 나무랄까?

육장봉은 성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가장 이른 시간에 성을 나가는 사람의 무리에 있었다. 그는 누구도 자기보다 먼저 명월산장에 도착하는 것이 싫었다.

장군왕부의 마차와 육씨 가문의 마차가 나란히 명월산장에 도착했다.

장군왕 세자는 말에서 내린 뒤, 들어가려는 순간, 육씨 가문의 마차가 그의 옆에 멈춰 선 것을 보았다.

"대, 대장군?"

장군왕 세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굳은 얼굴을 하고 온몸으로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육장봉이 마차에서 내린 것을 보고 놀라서 다리가 나른해져다. 길을 가기는커녕,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게 무슨 운이지? 특별히 가장 이른 시간을 골랐는데 여기서 육 대장군을 만나다니. 그것도 화가 나 있는 육 대장군을 말이야. 첫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은 게 아닌가? 내가 술 장사를 할 수나 있겠어?'

그는 좀 난감해졌다.

"음."

육장봉은 대답하고 돌아서서 산장으로 들어갔다. 그의 안하무인격인 자세는 정말 사람을 화낼 수 없게 했다.

하는 수 없었다. 육 대장군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안하무인이라도 당연하고,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이 조금도 화가 나지 않게 했다.

"세자 전하."

육이를 위시한 호위병은 육장봉처럼 도도하지 않았지만 그저 상대적인 것뿐이었다.

육이를 우두머리로 한 친위대는 장군왕 세자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또 장군왕 세자가 먼저 들어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온 사람의 순서 따위의 인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육 대장군이 들어간 뒤, 육이를 비롯한 친위대도 일일이 장군왕 세자를 지나쳐 들어갔다. 그들은 장군왕 세자를 입구에 덩그러니, 두고 앞에서 걸어 들어갔다.

다행히도 그들은 장군왕 세자의 옆을 지날 때, 그에게 예를 올리는 등 겉치레에 신경을 썼다.

장군왕 세자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했다.

어엿한 세자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화가 났지만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대장군부의 사람이 그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눈치채면 안 되었다.

그는 보복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진왕 세자, 영녕후 세자 등 사람들이 육 대장군의 심기를 건드려서 사지와 거시기가 잘렸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누가 손을 썼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육 대장군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만 알면 되었다.

"세자 전하, 안으로 드시지요."

명월산장의 집사는 웃으면서 아무것도 못 본 척, 장군왕 세자를 안으로 모셨다.

장군왕 세자도 애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집사를 따라 산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배려심 넘치게 말했다.

"난 한가한 사람이고 시간이 많으니 너희 아가씨가 만약 바쁘다면 나한테 다른 방을 한 칸 내다오. 내가 쉬고 있을 테니 아가씨가 일을 마치면 다시 찾아오겠다."

그는 대장군의 사람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육 대장군은 문조차 그에게 먼저 들어가게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육 대장군이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세자 전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리께서는 귀하신 손님이시지 않습니까. 우리 아가씨가 아무리 바쁘셔도 세자 전하를 접대하실 시간은 있습니다."

집사는 말을 아주 예쁘게 했다. 장군왕 세자가 대장군부 사람들에게 무시당해 상처 입은 마음이 순식간에 위로를 받았다.

집사는 말을 예쁘게 할 뿐만 아니라 일도 아주 잘했다. 일 각이 되지 않아 월령안이 왔다.

"세자 전하, 절 찾으셨어요?"

월령안은 여전히 그렇듯 시원스럽고 깔끔했다.

"최씨 가문의 설개연에 제공할 술 때문인가요?"

장군왕 세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네 편지를 받고도 나와 아버지는 모두 어리둥절했어. 최씨 가문이 설개연을 개최하는데 왜 우리 술을 생각한 거지? 그들은 줄곧 영녕후부와 협력했던 것이 아니었어?"

"최일이 중독되었고 제가 그를 위해 해독약을 찾아온 일을 모르시나요?"

월령안이 물었다.

"물론 알지. 이 일은 비록 비밀이지만 내가 누구냐고!"

장군왕 세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우쭐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셔서 어제 알았지."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제 최일은 해독까지 마쳤는데 그제서야 이 소식을 알았다니. 그러면서 우쭐거릴 것이 뭐가 있다고?'

장군왕 세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쭐거린 뒤, 간절하게 물었다.

"월령안, 이렇게 큰 인정 빚을 겨우 내가 최씨 가문의 설개연에 술을 공급하는 기회로 바꾸었다고 말하지 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장군왕 세자를 힐끗 흘겨보았다.

"그럼 그렇지. 너처럼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큰 인정 빚을 이까짓 작은 기회와 바꿨겠어?"

장군왕 세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네. 오기 전에 아버지가 거듭 말하셨거든. 나더러 너한테 절대 우리 집 때문에 최씨 가문의 인정을 허투루 써 버리지 말라고 말하라고 했어. 최씨 가문의 인정 빚은 아주 가치 있는 거야. 앞으로 네가 무슨 일이 있다면 이걸로 최씨 가문의 도움을 바꿀 수 있어."

"생각이 과하셨네요. 전 최일을 위해 약재를 구한 것은 저와 최일의 친분 때문이에요. 최일은 제 친구예요. 그가 중독되어서 제가 해독약을 찾아 준 것은 단지 친구 사이의 도움이지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또 인정 빚과도 상관이 없고요."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가 멍청하게 말끝마다 '우리 아버지가 말했는데'를 붙이자 저도 모르게 머리가 아팠다.

'이 협력자는 아무리 봐도 믿음이 안 가는군. 내가 애초에 너무 섣불리 결정한 것이 아닐까? 됐어, 생각을 말아야지.'

그때 그녀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장군왕부가 그때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해서 그녀와 협력한 것은 그녀를 존중한 것이었다. 사람이 이런 것을 너무 당연시하면 안 되었다.

장군왕 세자에게 장사는 장사고, 인정은 인정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월령안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아요. 전 단지 세자께 기회를 주는 것뿐이에요. 인정을 빚지는 지경까지 가지 않았어요. 상업계에서 서로 장사를 소개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에요. 이 세상의 장사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소개하는 것은 소개일 뿐이고 성사 여부는 전하의 능력에 달렸죠."

장군왕 세자는 알듯 말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떠보듯 물었다.

"그러니까 넌 이 일로 최씨 가문에게 인정을 빚지지 않았고 나도 너한테 빚지지 않았다는 말이지?"

"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장군왕 세자는 또 물었다.

"없어요."

월령안이 대답했다.

"그럼 난 가도 되지?"

장군왕 세자는 눈치가 빠르게 월령안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뒤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절 찾아온 이유가 고작 이 따위 작은 일 때문인 거예요? 이런 건 편지를 쓰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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