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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58)화 (558/1,004)

558화 선을 넘은 사람은 당신이지요

"모두 한 식구인데 이렇게 내외할 필요가 없지. 월 낭자를 뵙거든 내 얘기를 한 번 해 주기만 하면 되네. 나는 방(方)씨야. 추밀원의 낭중(郎中)이지. 예전에 우리 추밀원에서 월 낭자의 가게를 살 때 내가 가서 계산을 한 것이네. 월 낭자가 아직 날 기억해 줄지 모르겠군."

방 낭중은 상냥하게 웃었다. 미운 얼굴을 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일을 잘 처리하지 않는 조정 관원의 구린 자세 따위는 전혀 없었다.

호위는 방 낭중의 말을 듣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아들었다. 그는 반드시 월 가주의 앞에서 낭중의 말을 꺼내겠다고 약속했다.

쌍방은 각각 필요한 것을 취하였다. 호위는 정보를 듣고 바로 최일에게 보고했다.

"최 대인, 소인이 알아냈습니다. 저 관졸 무리는 추밀원 사람들의 명을 받고 유씨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추밀원의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아침 진왕비가 궁문 입구에서 머리를 부딪혀 죽었는데 그 전에 혈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조왕 전하가 충신을 해치고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며 사리사욕을 위해 진왕 세자를 학대했다고 고소했답니다.

진왕비가 부딪혀 죽을 때, 마침 조례 전이라서 본 사람이 아주 많아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답니다. 오늘 조례에서 모든 관리들이 조왕 전하를 대신해 불평을 했답니다.

진왕비가 죽음으로 협박하고 혈서를 남겨 조왕 전하를 고발한 것은 조왕 전하의 명성을 더럽혔다면서요. 관리들은 일제히 폐하께 진왕 세자가 불구로 된 일을 엄격하게 조사하고 정서의 사건을 다시 심사하여 조왕 전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청을 올렸답니다.

소인이 듣기로는 조례 때에 아주 험하게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폐하께서 우세를 차지하셨고 대신들의 청을 들어주셨답니다. 폐하께서는 형부와 대리시에 책임자 자리가 비어 있고 조왕 전하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아 일반 관리가 조왕 전하를 심사할 수 없다고 이 일을 추밀원에 맡겨 추밀원더러 이 사건을 심사하게 하셨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추밀원의 사람들은 관졸을 거느리고 진왕부, 이부시랑부, 유부…… 등 일곱 관리의 저택을 차압했습니다. 이 일곱 관리들은 전부 집에 불구가 된 공자가 있었고 모두 고발했습니다. 또 대장군은 사람을 거느리고 황성사에 주둔하여 다시 한번 정서가 횡령한 사건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호위는 아주 자세하게 말했다. 추밀원 관리의 말을 전부 되풀이하다시피 했다.

최일은 호위의 보고를 들은 뒤, 미간을 찌푸리고 잠깐 사색에 잠겼다가 말했다.

"황성사로 가자."

"네, 최 대인."

호위는 잠깐 멍해졌다가 바로 반응했다. 그는 마부더러 길을 바꿔 황성사로 가라고 했다.

최일이 황성사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하지만 황성사는 여전히 대낮처럼 환했다.

최일이 마차에서 내리자 육이가 맞이했다.

"최 대인, 귀성하셨습니까?"

"그래."

최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너희 장군이 이곳에 계시는가?"

"네, 저희 장군께서 안에 계십니다."

육이는 최일이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최일은 한마디 응수하고 고개를 돌려 호위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호위는 거절했다.

"최 대인, 저희가 받은 명령은 반드시 대인을 최씨 저택까지 무사히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인께서 최씨 저택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지 못한 이상 저희는 아직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희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대인께서는 일을 보십시오. 저희는 지금 가도 성을 나갈 수 없습니다."

말을 들은 최일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육이더러 월씨 가문의 호위를 잘 안배하라고 당부했다.

육이는 두말하지 않고 대답하며 반드시 호위들을 잘 돌볼 테니 최일더러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육삼을 불러와 자기는 월씨 가문의 호위들을 안배할 테니 육삼더러 최일을 데리고 대장군을 만나러 가라고 했다.

말을 마친 육이는 육삼이 동의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도망쳤다. 그 속도는 토끼보다도 더 빨랐다.

하는 수 없었다. 그들의 장군은 오늘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그가 뭘 하든 장군은 트집을 잡았다. 서 있기만 해도 장군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이 기개가 부족하여 자기의 체면을 깎는다고 했다.

그도 자신이 어디에서 대장군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맞설 수 없다면 피하라는 원칙으로 육이는 장군을 멀리할 수 있는 임무는 뭐든지 절대 그냥 놔두지 않았다.

육삼은 속으로 육이가 간사하다고 욕을 했지만 얼굴로는 티를 내지 않고 엄숙하게 최일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리고 최일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육사와 육오 몇몇이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키득거리고 있었다.

최일은 육삼을 보고 또 육사와 육오 몇몇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육장봉의 이 몇몇 호위병들은 정말 재미있군.'

최일은 보지 못한 척, 육삼과 함께 황성사로 들어갔다. 황성사에 들어가서 앉은 채,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육장봉을 본 최일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정서가 횡령한 사건은 다시 심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정서와 그에 연관된 방조범들이 전부 참수당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 사건만 하여도 그랬다. 황성사가 재가동된 뒤 처음 맡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확실한 사건이었다. 증거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아무 증거가 없다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황성사, 조왕 전하, 심지어 황제의 위엄은 어찌할 것인가?

육장봉도 최일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은 듯, 최일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맞은편의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점심에 육일이 보내온 소식을 보고 자네가 오늘 올 것을 예상했네."

최일이 앉고 나서 육장봉은 또 최일에게 차를 한 잔 부어 건네주었다.

최일은 찻잔에 손을 대지도 않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저는 감히 대장군의 차를 마시지 못하겠어요. 장군의 사람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는 걸 령안이는 알고 있나요?"

그는 육장봉의 말에 담긴 뜻을 알고 있었다.

"나와 령안의 일인데,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육장봉은 앞에 놓인 차를 들더니 가볍게 들이키고는 경고의 눈빛으로 최일을 힐끗 훑어보았다.

"최일, 친구라는 선을 잘 지키고 넘지 말게."

"선을 넘은 사람은 당신이지요."

최일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육장봉을 직시했다.

육장봉은 고개를 젓더니 여유롭게 자신 있게 말했다.

"나와 자네는 다르지. 난 뭘 해도 선을 넘는 게 아닐세."

"령안은 저를 거절했지만 마찬가지로 당신도 받아 주지 않았지요. 육 대장군, 자기를 너무 높이 보지 마세요. 저보다 당신의 희망이 더 작으니까요. 결국 깨진 거울은 다시 붙을 수 없습니다."

최일은 앞에 놓인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 호기로운 자세는 마치 술을 마시고 있는 듯했다.

"깨진 거울을 왜 다시 붙이겠나? 난 새 거울을 만들 시간이 충분히 있다네."

육장봉은 미소를 지으며 왼손을 탁자 위에 세우고 몸을 숙인 채, 강렬한 위압감을 과시하며 최일에 바짝 다가섰다.

"이것은 당신의 바람일뿐이지요. 령안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세요?"

최일은 육장봉의 위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처럼 차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월령안을 제외하고는 그가 추태를 부리게 할 사람이 없었다.

육장봉은 최일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최일, 난 자네가 아닐세. 자네는 퇴로를 생각할 것이고 전체 국면을 고려할 것이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멈춰서 손실을 막고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지. 하지만 나는……."

육장봉의 시선이 가라앉더니 최일을 보며 또박또박 느리고도 진지하게 말했다.

"최일, 난 한 번도 퇴로를 남긴 적이 없네. 또 절대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네. 내가 결정을 내리면 끝까지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지. 만약 신이 날 막는다면 난 신을 죽일 것이고 부처가 날 막는다면 부처를 죽일 것이네."

"신이 막는다면 신을 죽이고, 부처가 가로막는다면 부처를 죽인다! 하지만 만약 령안이 당신을 막는다면요?"

최일은 육장봉과 마주 보았다. 그는 조용히 육장봉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육장봉도 최일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그는 피식, 비웃고 다시 돌아가 앉은 뒤,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최일, 자네는 알고 싶지 않을 거네."

육장봉은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답은 직접 대답하는 것보다 더욱 최일을 놀라게 했다.

최일은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마음속의 놀라움을 억눌렀다.

"육장봉, 당신은 미치광이예요. 아시나요?"

육장봉은 미치광이였다. 극도로 냉정하고 이지적인 미치광이였다.

월령안이 그를 건드린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최일은 월령안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난 내가 뭘 하는지 똑똑히 인지하고 있네. 미치광이는 나만큼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네."

양쪽 팔걸이에 손을 얹은 육장봉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최일이 자기를 미치광이라고 말한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그는 확실히 미치광이 같기는 했다. 특히 전쟁터에서 살인에 눈이 벌게져 있을 때, 그는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령안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예요."

최일은 탁자 아래에 놓은 손을 살며시 움켜쥐고 또 펼쳤다. 이렇게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몰래 숨을 들이쉰 최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육장봉, 개국 초기에 월씨 가문이 배신한 것은 지금 폐하 일맥의 마음속에 박힌 비수예요. 그들은 영원히 월씨 가문 사람을 믿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병권을 움켜쥐고 있고 지위가 비범하니 폐하께서는 절대 당신과 령안이 혼인하게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당신이 만약 꼭 령안을 맞이하겠다면 결국 폐하께서 령안에게 손을 쓰도록 만드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최일은 냉정하게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사심 한 점 없이 맑았다.

적어도 이 말을 할 때의 그는 사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들 무엇 하나?"

육장봉은 냉소를 짓고 오만하고 경멸 어린 자세를 취했다.

"난 신이 막는다면 신을 죽이고, 부처가 막는다면 부처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었지! 월령안도 나를 막지 못하는데 폐하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최일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천하가 당신을 가로막는다면 천하를 뒤엎으실 건가요?"

육장봉은 최일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조롱조로 말했다.

"당신네 지식인들은 생각이 너무 많네. 걱정도 너무 많고."

최일이 또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육장봉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자네가 급히 황성사로 와서 날 찾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육장봉은 더 이상 이 화제로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최일이 어떻게 묻든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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