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6화 돈은 돈일 뿐, 옥은 옥일 뿐
육장봉이 그들을 불구로 만든 것은 통쾌한 일이었지만 법으로 다시 한번 그들에게 벌을 내린다면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늦게나마 정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월령안은 몰래 손을 등 뒤로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육장봉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진실은…… 묻히지 말아야 하는 거니까요."
"진실은 또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소. 이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몸에 긴장이 들어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이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발견한 이상 그는 당연히 자기의 방식대로 월령안을 보호할 것이다.
월령안이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월령안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도 괜찮아요. 만약 사건 심사에 필요하다면 전 공당에 나서서 증언할 수도 있어요."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월령안의 머리를 문질렀다.
"당신이 나설 필요가 있겠소? 몇몇 소란이나 피우는 잡놈들일 뿐이오. 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그들을 눌러 죽일 수 있소. 당신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시오."
월령안은 재빠르게 물러선 뒤, 육장봉을 힐끗 흘겨보았다.
"대장군, 저한테 손을 대지 마세요! 전 어젯밤에 확실하게 말씀드렸어요!"
"나도 말했소. 당신의 남편은 괜찮소."
육장봉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월령안이 그의 손길을 피했는데도 그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뒷짐 지고 몰래 손을 움켜쥐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흘겨보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육장봉과 읍했다.
"대장군, 천천히 가세요. 배웅하지 않겠어요."
어젯밤 육장봉이 그녀를 호위해서 도관으로 갈 때,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해명했다.
"오후에…… 미안하오. 처음이라 내가 경험이 부족하여 당신을 다치게 했소. 아직도 아프오?"
그랬다. 육장봉은 그녀에게 이렇게 해명을 한 것이다. 그녀는 그때 하마터면 화가 나 죽을뻔했다!
'이게 해명이라고? 해명을 하는 것이라면 말을 똑바로 할 수는 없는 건가? 이렇게 얼렁뚱땅 말하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오후에 뭔가를 한 줄로 알 게 아냐!'
이것뿐만 아니라 육장봉은 그녀의 발이 너무 연약하여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붉어진다고 탓했다.
또 그는 그녀의 신발과 옷을 벗기는 것에 아주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몇 번만 더 벗기면 앞으로 점차 더 익숙해지고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 겨울이 되어도 그녀가 감기에 들지 않게 하겠노라 했다.
그녀는 어젯밤, 육장봉의 뻔뻔스러움에 정말로 화가 나 죽을뻔했다.
'염치없기로는 진짜 이 세상 제일이네!'
육장봉은 월령안이 잔뜩 토라진 것을 보고 적당히 하기로 했다. 또 그가 바삐 귀성하다 보니 월령안을 더 놀릴 시간이 없었다. 다만 떠나기 전에, 월령안이 방심한 틈을 타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소. 내가 있는 한,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오."
말을 마친 육장봉은 월령안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를 풀어 주고, 머뭇거림 없이 깨끗하게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정말 화가 나!'
당사자가 떠났으니 그녀는 화를 내고 싶어도 상대가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 일행이 명월산장을 떠나자 그제야 좀 화가 풀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추 된 것을 보고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세수와 빗질을 했다. 그제서야 함께 조식을 들러 최 대학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서쪽뜰에 도착한 월령안은 최일밖에 보지 못했다. 최 대학사는 날이 밝기 전에 조례에 참가하러 성으로 돌아갔다.
하는 수 없었다. 오늘은 대조례날이었다. 최일은 휴가를 보낼 이유가 있었지만 최 대학사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례로 돌아가야 했다.
"어젯밤, 당신은 최 숙부님이 절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었어요."
월령안은 자책에 잠긴 얼굴을 했다.
"최 숙부님께서 어젯밤 한숨도 못 주무셨죠?"
"그럴 리가요. 아버지는 미리 푹 쉬셔서 기운이 나신다고요. 걱정하지 말아요. 제 아버지는 줄곧 건강을 중시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갑시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가요."
최일은 살뜰하게 월령안을 위해 변명을 하고 그녀를 데리고 화청으로 갔다.
월령안의 처사 방식은 항상 깔끔했다. 사람을 거절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조식을 마친 둘은 화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옥패를 꺼내 최일에게 건네주었다.
"죄송해요. 전 전에 이게 이렇게 귀중한 것인 줄은 몰랐어요."
최일은 잠깐 멍해졌다. 비단 함 속에 잘 들어 있는 옥패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옥 하나일 뿐이에요. 아무리 귀중해도 당신이 십 년 벌 돈의 일 할보다는 못해요."
"달라요. 돈은 돈일 뿐이에요. 하지만 이 옥은 그냥 옥이 아니에요."
'이 옥이 귀중한 것은 옥 자체의 가격이 아니라 상징하는 의미지.'
"당신의 말이 맞소. 이 옥은 그냥 옥이 아니에요."
마음속으로 한 줄기 망설임이 있었던 최일은 결국 월녕안의 말에 마음을 굳혔다.
그는 비단 함의 옥을 손에 움켜쥐고 항상 웃든, 말든 정이 넘치던 눈은 이때는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했다.
"령안, 이 옥의 의미는 이제 당신도 알 거예요."
그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침착하고 확고했다.
"제가 설개연에서 당신한테 이 옥을 그 의미와 함께 선물할 거예요. 어때요?"
'전 설개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 최일은 당신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와 함께 백년해로하지 않겠습니까?'
최일은 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일과 월령안은 모두 최일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구혼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면 그녀는 바로 최씨 가문의 종부(宗婦 - 종가의 맏며느리)가 되어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이건 설레는 제의였다. 하지만 월령안은 설레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는 최일을 바라보며 피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과감하게 거절했다.
"싫어요, 안 받을 거예요!"
일말의 여지도 없이, 또 한치의 애틋함과 아쉬움도 없이 시원스럽고 깔끔했다. 전혀 질척거리지도 않았다.
최일의 마음은 칼로 찌른 것처럼 아파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속으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옥패를 움켜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지만 얼굴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싫은 거예요? 아니면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싫기도 하고 그럴 수 없기도 해요."
거절을 말을 한 번 내뱉으니 다시 거절하기는 더 쉬워졌다.
"당신은 참…… 저한테 조금도 희망을 주지 않네요."
가슴팍에 꽂힌 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아프고 아팠지만 그는 자해하는 것처럼 이 아픔이 이처럼 끝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최일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조했다.
"아버지께서 아신다면 제가 변경에서 귀족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말을 허풍으로 여기시겠어요."
"최일 공자께서는 학문과 덕행이 훌륭하고 수양이 있으시지요. 최 대인, 자신한테 자신감을 가지세요."
월령안은 최일의 마음이 보기처럼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그녀와 최일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난감하고 슬프든지 영원히 사람들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기개를 잃지 않았다.
물론, 최일은 군자의 자부심이고 그녀는 단지 작은 인물의 고집스러움이었다.
"제 자신감은 방금 전, 당신 때문에 부서졌어요. 자신감을 가질 수 없어요."
최일의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걸린 웃음은 더욱 깊어졌다.
옥패를 움켜쥔 손이 묵묵히 늘어져 무릎 위에 놓인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단지 월령안이 아는 것이 싫어 애써 우울함을 억눌렀다.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반은 진지하게 반은 농담을 하듯 입을 열었다.
"령안, 정말로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어요? 전 모든 면에서 당신의 조건에 부합되는걸요. 전 비록 출신이 좋지만 우리 가문은 병권이 없고 실권도 별로 없어요. 저와 혼인하면 폐하께서도 걱정하시지 않을 거예요."
멈추면 다시 입을 열 용기를 잃을까 두려운 것처럼, 최일은 급하고 빨리 말했다.
"저한테 시집오면 당신은 최씨 가문의 종부예요. 최씨 가문은 주나라에서 어느 정도 명망이 있지요. 폐하께서는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 최씨 가문의 체면은 봐주세요. 청주도 월 삼낭이나 다른 아무나를 보낼 수 있고요. 절대 최씨 가문의 종부가 가게 하지 않을 거예요."
최일은 잠깐 멈췄다가 문득 뭔가가 떠오른 것처럼 일부러 무심한 듯 덧붙였다.
"물론, 단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도 괜찮아요. 우리 최씨 가문의 가정 교육은 아주 엄격해서 최씨 가문의 남자는 첩을 들이지 않아요. 통방(通房 - 잠자리 시중을 드는 시녀)도 없고요. 저와 혼인한다면 당신이 바로 제 아내예요. 우리, 우리에게는…… 평생의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령안, 정말……. 조금만 더 생각해 보지 않을래요? 제 생각에는 당신이 저한테 시집온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말한 최일의 목소리는 메마르고 쉬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온화한 웃음이 넘실거렸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장난인 것처럼.
하지만 월령안은 최일이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장난을 하는 자세로 마음속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최일은 진심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했다. 심지어 진지하게 미래도 생각해 보았다.
월령안은 그의 모든 진심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삼 년 전, 그녀는 노인에게 육장봉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말했었다. 노인에게 자기는 육장봉이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육장봉이 자기의 요구에 부합되기만 하면 된다고 했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시집가니 평생의 시간이 있을 것이고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삼 년 전과 삼 년 뒤, 그녀와 최일은 비슷했다.
월령안은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최일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최일은 한참 기다렸지만 월령안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더욱 심하게 떨었다.
그의 시선에는 당황스러움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바로 진정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같은 인재도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해야 한다니. 령안, 당신의 안목은 너무 높네요."
"최일."
월령안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청량하던 목소리가 살짝 잠겨 있었다.
최일은 잠깐 멍해지더니 더 이상 얼굴의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단 두 음절만으로 그의 모든 위장이 벗겨졌다. 최일은 후회하는 와중에 또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월령안이었다!
그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진 유일한 여인이었다. 두 음절뿐만 아니라 월령안의 눈빛 하나에도 그는 엎드려 투항할 수 있었다.
'원래……. 원래……, 한 사람을 짝사랑한다는 것은 이토록 비굴한 일이었구나.'
최일의 마음속은 아주 씁쓸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난감해하는 것이 안타까워 어떻게 눈앞의 어색함을 풀까 생각하던 중에 월령안이 입을 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