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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55)화 (555/1,004)

555화 제 상대는 육장봉이 아니에요

"대장군……."

최 대학사는 그제서야 자기가 월령안에게만 초대장을 주느라 육장봉의 존재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민망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너희 같은 어린애들이 노는 연회지. 육 대장군께서 가셔서 뭘 하라고 초대하겠어."

육장봉은 최일을 힐끗 훑어보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대학사께서 겸손하셨습니다. 최씨 가문의 설개연은 천하에서 유명하잖습니까. 저도 평소에 최씨 가문의 설개연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대학사께서 저에게 안목을 넓힐 기회를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대장군께서 설개연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례했네요. 대장군께서 탓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일 제가 대장군께 초대장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을 더 초대하는 일이었다. 최 대학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월령안과 초대장을 같이 쓰면 됩니다."

육장봉은 말하면서 월령안의 손에 든 초대장을 빼앗아 간 뒤, 최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최 대인, 개의치 않겠지?"

최일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하였다.

"별말씀을요. 대장군께서 참가하시면 설개연은 더욱 이목을 끌겠는데 주최자로서 기쁠 뿐이지요. 어찌 기분이 나쁘겠나요. 초대장 한 장일 뿐이니 령안의 것을 빼앗지 마세요. 내일 대장군께 보내 드릴게요."

그는 육장봉이 설개연에 참가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방금 전에 그렇게 농담을 한 것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황을 수습한 것이었다. 육장봉의 기분이 언짢아 그의 아버지와 왜 자기를 초대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최씨 가문이 육장봉을 초대했는데 육장봉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육장봉의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초대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면, 게다가 육장봉이 묻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약에 묻는다면 결국 그들이 실례를 저지른 것이었다.

육장봉 이 인간은 한 번도 누구의 체면을 살핀 적이 없었다. 최일은 육장봉이 그의 아버지를 난감하게 굴까 두려워 일부러 농을 건넨 것이었다.

'육장봉은 너무 옹졸해!'

월령안은 잠깐 멍해졌을 뿐인데 손에 든 초대장이 사라졌다.

최일의 말을 들은 월령안도 뭐라고 말하기 난감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이토록 마음이 급하시니 이 초대장을 먼저 드리면 되겠네요. 제 초대장은 급하지 않으니 아무 때나 주시면 되겠습니다."

"괜찮소. 우리는 초대장 한 장을 같이 쓰면 되오."

육장봉은 가볍게 웃으면서 거절은 거절하는 식으로 초대장을 월령안의 손에 밀어 넣었다.

"가지고 있소. 그날에 내가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

"대장군께 폐를 끼칠 필요가 없습니다."

월령안은 억지로 손에 넣어진 초대장을 보면서 하마터면 예의를 잃고 육장봉의 얼굴에 던질 뻔했다.

'빼앗고 싶으면 빼앗고 다시 밀어 넣고 싶으면 밀어 넣고. 육장봉은 날 뭐로 보는 거지?'

몰래 육장봉을 노려본 뒤, 월령안은 그를 더 신경 쓰지 않고 최 대학사와 최일에게 입을 열었다.

"최 아저씨, 자도, 시간이 늦었으니 전 먼저 돌아가겠어요. 일찍 주무세요."

최 대학사는 생각에 잠긴 듯 육장봉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월령안과 말했다.

"날이 너무 어두우니 혼자 가지 말거라. 자도보고 널 데려다주라고 할 테니."

육장봉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최일과 월령안 사이를 막았다.

"최 대인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지요. 제가 월령안과 같은 길이니 제가 월령안을 바래다주면 됩니다. 최 대인은 최 대학사를 모셔다드리면 되고요."

월령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최일이 앞질러 말했다.

"대장군께서 령안을 바래다주시니 저도 안심입니다. 대장군께 폐를 끼쳐드리네요."

"최 대인이 말을 잘못했네. 월령안은 한 번도 민폐인 적이 없었지."

말을 마친 육장봉은 최일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돌아서서 월령안을 재촉했다.

"월령안, 갑시다."

육장봉은 월령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월령안이 가지 않는다면 절대 발걸음을 옮기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어찌할 수 없어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으로 마음속의 짜증을 눌렀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기울여 최 대학사와 최일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나갔다.

'가지 않고 최 아저찌 앞에서 육장봉과 다투기라도 해야 하나?'

육장봉은 염치가 없어도 그녀는 있었다.

육장봉과 월령안은 곧 저 멀리 떠나갔다.

"아버지, 우리도 돌아가요."

최일이 아까 월령안과 그녀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그녀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월령안이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자도, 육 대장군은 후회하는 것이지?"

최 대학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 마음에 든 며느릿감에게 이변이 생긴 건가?'

"네."

최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 대학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어쩔 생각이냐?"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령안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이지요."

그는 육장봉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이 즐겁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고 월령안이 조금이라도 서러움을 겪는 것이 안타까웠으며 월령안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가지는 것보다 그녀의 생각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드시…… 그녀여야 하는 것이냐?"

최 대학사가 또 물었다.

최일의 시선에 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또 굳셌다.

"전 다른 사람을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 없어요."

"그럼 넌 노력해야겠구나! 육 대장군은 아주 강한 상대야. 그의 손에서 사람을 빼앗고 싶다면 이렇게 느긋해서는 안 돼."

최 대학사는 최일의 어깨를 다독이며 묵묵히 최일을 격려했다.

아버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최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제 상대는 육장봉이었던 적이 없어요. 상대는…… 월령안의 마음이죠."

월령안의 마음속에 있어야 이기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그와 육장봉은 모두 패배자였다.

"그녀가 널 위해 염명경 귀시까지 갔잖느냐. 네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게 분명해."

최 대학사는 최일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다급히 격려했다.

하지만 최일 얼굴의 미소는 더욱 씁쓸해졌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월령안을 몰라요. 제가 아니라도 그녀와 가까운 사람의 목숨이 위험했다면 그게 누구라도 갔을 거예요."

그는 월령안의 마음속에서 기껏해야 가까운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성별 구분이 없는 친구 사이의 좋은 감정이었다. 남녀 사이의 좋아하는 감정과는 한참 멀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오래도록 그의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 * *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걱정이 있는 데다가 낮에 낮잠을 잔 탓에 밤새 잘 자지 못했다. 그녀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

이 시간에 시녀도 아직 깨지 않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는 시중을 들지 못했다. 그녀는 깨고서도 할 일이 없었다. 월령안은 생각해 보다가 계속하여 눈을 감고 억지로 한숨 더 자려고 했다.

겨우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귓가에 갑자기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아주 분주했다. 월령안은 순식간에 머리가 맑아져 졸음이 완전히 가셨다.

월령안은 시녀가 와서 시중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간밤에 쓰다 남은 찬물에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갔다.

그녀의 기척을 들었는지 이방(耳房 - 정방(正房)의 양 쪽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시녀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아가씨, 용서하세요. 소인이 늦게 깼습니다."

"네 탓이 아니다. 내가 일찍 일어난 것이다. 먼저 가서 일을 보거라. 주방에 가서 최 대학사와 함께 식사를 해야겠으니 내 조식을 서원으로 가져오라고 이르거나."

월령안은 손을 내저어 시녀더러 물러가라고 한 뒤, 마당 밖으로 나갔다.

나간 뒤에야 월령안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크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어떻게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급히 돌아가지도 않았다. 청석 오솔길로 느긋하게 걸을 뿐이었다.

두어 걸음 가지 않았는데 은색 평상복 차림의 육장봉이 성큼성큼, 낙원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차가운 얼굴을 한 육일이 따르고 있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을 보았으니 당연히 육장봉도 그녀를 보았다.

육장봉은 뒤에 있는 육일에게 한마디 하고 발걸음을 돌려 월령안을 향해 걸어왔다.

월령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자리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당신을 보지 못할 줄 알았소."

육장봉은 급히 걸어서 순식간에 월령안 앞에 섰다.

육장봉 특유의 기운이 확 다가왔다. 거칠고 뜨거운 느낌이라서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대장군께서는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일이 생…… 됐소. 바로 말하겠소. 진왕비가 어젯밤에 돌아가고 나서 폐하께서는 그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고 또 월삼낭에게 속은 것을 감안하셔서 그녀의 죄를 다스리지 않으셨소. 그녀더러 진왕부에 가서 반성하라고만 하셨소. 하지만 오늘 이른 아침, 그녀가 조례 전에 혈서를 들고 궁문 입구에서 부딪혀 죽었소."

육장봉의 차가운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드리웠다.

월령안은 경악한 얼굴로 한참이나 반응하지 못했다.

"죽었어요?"

"죽었소!"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무백관들 앞에서요?"

월령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육장봉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렇소!"

월령안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혈서는 누구를 고발하는 거였나요?"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물어보았다.

"조계안이오!"

그는 자기가 고소해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조왕 전하가 자기 아들을 불구로 만들었다고 고발한 건가요?"

월령안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부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렇소."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조왕 전하가 억울하겠네요."

월령안은 머릿속이 복잡해져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쌤통이오. 당신이 동정할 가치가 없소."

'정말 동정하려면 나도 동정해야 하오. 조계안이 큰 함정을 파서 내가 없을 때 당신이 쫓겨나도록 만들고 나에게 뒤집어씌웠잖소. 조계안 그 녀석은 지금 그저 작은 이자를 지불하는 것뿐이오. 이 정도는 별것 아니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는데 그들의 부모는 분명 언짢을 거예요. 지금 진왕비가 나서서 선두를 섰으니 이 일은 좋게 끝내지 못하겠죠?"

육장봉은 대답하지 않고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다시 칠 년 전, 구리파의 사건을 조사해도 괜찮겠소?"

'괜찮냐고? 물론 괜찮지 않지!'

그때의 일을 한 번씩 들추어낼 때마다, 한 번씩 꺼낼 때마다 그녀는 그때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그때의 일을 다시 조사하는 건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모두 수치를 다시 한번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안 괜찮아도 그때의 가해자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개 치며 다니게 놔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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