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화 난 네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
월령안은 팔을 살짝 굽히고 육장봉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그를 물러서게 했다.
"이 손 놓으세요. 기회를 틈 타 저를 만지려고 하지 마시고요."
"내가 당신 때문에 놀라서 죽지 않아도 당신한테 맞아 죽을 것이오!"
육장봉은 과장되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월령안의 말대로 그녀를 풀어 주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하는 수 없었다.
월 삼낭은 아포가 마지막 순간에 은뱀을 거두어들여 월령안을 놓아주는 것을 보고 속으로 화가 났다. 그녀는 일을 그르친 아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월 삼낭의 눈에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월령안은 죽지 않았고 아포는 이미 망가졌다. 그녀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그녀는 반드시 도망쳐야 했다.
대전 안에 중독된 진왕비와 진왕 세자가 있는 것을 떠올린 월 삼낭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매섭게 아포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대전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이때 서 선생의 몸이 번쩍하더니 '슉' 하고 앞으로 다가가 월 삼낭의 앞을 가로막았다.
"넌 오늘 어디도 못 간다!"
월 삼낭의 안색이 변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넌 내가 죽이는 게……."
"서 아저씨, 그녀와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월령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월 삼낭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월 삼낭은 몸을 떨면서 돌아서서는 서글픈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애절한 표정이 떠올랐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령안, 넌 언니가……."
하지만 월 삼낭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서 선생은 그녀에게 일격을 가해 쓰러뜨렸다.
아포가 손을 뻗어 구하려고 했지만 서 선생이 월 삼낭을 죽이려고 손을 댄 것이 아님을 보고는 또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월령안을 노기에 차 벌건 눈으로 노려보았다.
"내가 어찌하기를 바라는 거야?"
"먼저 진왕비와 진왕 세자를 해독하고 그 뒤의 일들은…… 급하게 굴지 마. 천천히 얘기하자고요."
월령안은 아포의 증오에 찬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분부했다.
"된다!"
아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또 네 친구를 해독할 수도 있다. 네가 거래를 회수하고 우리 집안과 종문에 손을 쓰지 않는다면 말이야."
"지금 나와 조건을 논하는 건가?"
월령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이상한 생물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넌 참 순진하군."
월령안은 한바탕 비웃고 또 비꼬았다.
"독왕 아포, 아직 현실을 똑똑히 보지 못하고 있군. 지금 너는 나와 조건을 논할 자격이 없어. 지금, 내가 너한테 뭘 하라고 하면 넌 순순히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넌 내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너희 모두를 독살할까 두렵지는 않나?"
아포는 화가 나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 두 눈은 이제 너무 붉어져서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아 보였다.
"너의 독에는 한계가 있지. 앞으로 기껏해야 몇 명이나 더 독살시킬 수 있겠어?"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가 오만하고 방자하게 아포와 대치했다.
"난 달라. 내가 아무리 무능해도 네 가족과 가문 전체를 멸할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야."
말을 마친 월령안은 아포가 화가 났든, 불만이 있든 상관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
"서 아저씨, 여기는 아저씨께 맡길게요. 전 월 삼낭이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네요!"
"월령안!"
아포가 몸을 흠칫, 떨더니 갑자기 앞으로 쫓아왔다. 한 걸음만 떼었는데도 육장봉은 그의 어깨를 꽉, 누르며 경고했다.
"알고 지낸 정을 봐서 경고를 해 주마. 순순히 월령안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월령안과 주변의 사람에게 독을 쓸 생각을 말고. 그게 아니면 월령안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내가 직접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포리를 멸하고 그곳에 발 붙였던 모든 생명들을 전부 살지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난 네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
아포의 벌건 눈에 눈물이 반짝거렸다.
아포의 어깨를 누르던 육장봉의 손이 잠깐 멈칫, 하더니 안색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나도 네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계단을 내려가던 월령안은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다.
'육장봉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 아포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자란 거지? 멍청함을 먹고 자랐나?'
육장봉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월령안의 뒤를 느긋하게 따랐다.
둘은 도관 밖에까지 걸어갔다. 육일을 비롯한 친위대원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육장봉은 육일에게 남아서 서 선생을 도와 마무리를 하라고 분부했다.
월령안은 그 말을 듣고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마차로 걸어갔다.
그녀가 마차에 앉자마자 갑자기 마차가 휘청였다. 마차 문을 바라보니 육장봉이 바로 따라서 마차에 기어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리고 마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육장봉이 입구에 앉아 차가운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육이, 가자!"
"네, 대장군."
마차 밖에서, 육이는 잠깐 멍해졌다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정말 너무나도 비참했다.
'이렇게 큰소리로 날 부르실 건 없잖아. 월 낭자가 밖에서 마차를 모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모를까 봐 걱정하는 건가? 대장군께서는 월 낭자가 날 충분히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육이는 부러운 시선으로 남아서 뒤처리를 하는 육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맨 앞에서 가고 있지만 조용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은 육삼을 바라보았다.
육이는 비분에 찬 얼굴로 채찍을 들고 말을 몰았다.
'내가 누구를 건드렸던가?'
마차 안은 소리가 없이 고요했다.
월령안은 마차 안에 앉은 육장봉을 바라보지 않고 조용히 차에 기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진왕비와 진왕 세자는 종실이었다. 그들을 처리하는 일은 황제가 결정할 일이었고 두 사람의 독을 해독하여 성 안으로 보내면 그녀의 일은 끝난 것이었다.
예외가 없다면 그녀는 틈을 내 성으로 돌아가 그녀와 소씨 가문의 재판을 마무리하고 청주로 떠나면 되었다.
그녀와 장씨 가문, 영녕후, 그리고 아들이 망가진 그 몇몇 관리와의 원수는…….
이것들은 급하지도 않았고 급하게 처리해도 소용이 없었다.
장씨 가문이든, 영녕후부든 모두 거물급이었다. 그녀가 쉽사리 무너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들을 상대할 용기가 없었다.
물론, 그녀가 황실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장씨 가문과 영녕후부도 드러내고 그녀를 대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몰래 그녀를 괴롭힐 뿐이었다.
이 두 가문을 제외한 다른 가문은, 유씨 가문이라고 해도 그녀는 모두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월령안은 변경에 이미 별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씨 가문의 재판을 처리하면 그녀는 미리 청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림맹에 가서 수 오라버니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수 오라버니의 상처가 심하지 않다면 그녀는 수 오라버니더러 자기를 한동안 배웅해 달라고도 할 생각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녀의 원수가 너무 많았고 또 천성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했다. 무공 고수가 함께한다면 그녀는 그나마 안전함을 느낄 것 같았다.
"청주에 가는 일을 생각하시오?"
월령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육장봉은 그녀의 얼굴에 가끔 드러나는 표정으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했다.
"맞아요, 대장군."
월령안은 육장봉을 싸늘하게 대하지 않았고 일부러 도도하게 육장봉의 말에 대꾸를 안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아주 협조적으로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청주로 가기 전에 그녀는 이 변덕쟁이 대장군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계획이 있소?"
육장봉은 한담을 하듯 물었다.
그는 월령안이 자기의 말에 대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월령안의 대답을 듣자 속으로 조금 기뻤다. 하지만 절대 이것을 월령안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소씨 가문의 재판을 마무리하고 전 떠날 거예요. 서 아저씨, 심 오라버니와 소육자가 저와 함께 떠날 거예요."
월령안은 공식적인 안배를 육장봉에게 알려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육장봉은 가볍게 대답하고 무심한 척하며 물었다.
"아포의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대장군께서 지시를 내려 주세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분명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시는 없소. 다만 한마디 귀띔하자면 포리국은 작으나 서역에는 이런 작은 나라가 서른 개가 넘소. 포리국 하나를 멸하는 것은 작은 일이나 이 일로 서역의 다른 나라들이 주나라를 적대시하거나 당신을 적대시하여 똘똘 뭉친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오."
월령안이 말한 전체 포리를 도살하겠다는 말은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포에게나 겁을 줄 수 있었다.
월령안이 못 해낸다는 말이 아니라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컸고 일으키는 결과가 너무 엄중했다. 월령안의 총명함으로는 일시적인 통쾌함을 위해 자기에게 골칫거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염명경 귀시의 임무는 이미 시작되었어요. 열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멈추게 할 수 있어요. 대장군, 말씀해 보세요. 아포에게는 제가 그를 위해 큰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를 가진 능력이 뭐가 있나요?"
월령안은 웃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한기와 불만만 있었고 온몸으로 경계를 하고 멀리했다.
"당신은 미리 생각해 두었잖소?"
월령안과 달리 육장봉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시선에는 옅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월령안은 결코 경솔하게 일을 처리한 적이 없었다. 한순간의 쾌락을 도모하여, 자신에게 끝도 없는 골칫거리를 안겨 주지도 않았다
그녀가 휘두른 주먹은 언제든지 거둘 수 있었다.
월령안이 기세 높게 염명경 귀시에서 포리 황실과 서역 독종의 가문을 도살한다는 임무를 내건 것은 정말 그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 크게는 아포를 위협하여 어두운 곳에서 호시탐탐 나쁜 짓을 하려는 멍청이에게 겁을 주려는 것뿐이었다.
마음속의 계산이 육장봉의 한마디로 폭로되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난처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약한 티를 냈다.
"전 그래도 왕자와 협상을 하는 게 더 좋아요."
"얼간이를 괴롭히는 게 무슨 재미가 있소?"
육장봉의 시선에 드리운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무슨 재미가 필요한가요? 충분한 이득만 있으면 되죠."
그녀가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 귀시에 간 것은 재미를 위한 게 아니었다. 아포한테서 충분한 이득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절대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이건 쉬운 일이오."
육장봉이 진지한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줄곧 잘못을 두둔하고 친한 사람을 도왔지. 이치에 따르지 않았소."
월령안은 못 들은 척했다.
"그렇게 말하면 전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겠네요."
"손해를 보는 건 외부인뿐이요. 나는 내 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원칙이 없었소."
육장봉은 '내 사람' 세 글자를 아주 가볍고 늦게 말했다. 은근히 애틋한 기운도 들어 있었다.
"흠흠……."
월령안은 부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기며 육장봉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녀는 조금 더운 느낌을 받았다.
이 마차는 너무 작았고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바람이 조금도 새지 않았다.
월령안은 몰래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전에 육장봉의 낮고 화려한 말투가 다시 들렸다.
"나는 의지가 아주 약하고 매수하기도 정말 쉽소.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