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내기해 보지 않을래요?
월령안은 그만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언제 내가 두려워했다고? 내가 언제 자기더러 책임을 지라 했다고 이러는 거야?'
월령안은 고개를 놀리고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육장봉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말하면서 월령안의 목덜미에 따뜻한 숨결을 내뿜어 그녀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만약 장소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정말 손바닥으로 육장봉의 머리를 세게 치고 싶었다.
그녀는 여인이 자기한테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지만 남자가 손을 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경고의 눈빛으로 육장봉을 노려보고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포리 왕자?"
육장봉에게 말이 잘린 월령안은 하마터면 절주를 찾지 못 할 뻔했다.
"그래!"
독왕 아포의 시뻘건 두 눈이 뚫어져라 월령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독왕 아포의 눈이 독극물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알게 돼도 월령안은 겁에 질렸다.
독왕 아포의 이 눈은 마치 귀신의 눈 같았다. 그가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쳤다.
월령안은 마음속의 불쾌함을 애써 누르고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듯 말했다.
"한 가족은 모여 살아야죠. 지금 서역으로 돌아가면 한 가족이 같이 모일 수도 있어요. 또는 가문 전체가 모일 수도 있어요. 제가 당신에게 길을 내 줄 테니 집에 가서 가족들과 뭉치지 않으시겠어요?"
주객이 전도되어 월 삼낭과 독왕 아포는 반격할 힘도 없게 억눌렸다. 마치 그녀야말로 손에 인질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육장봉, 저 여인의 말이 사실이냐?"
독왕 아포는 월령안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육장봉을 믿었다. 비록 육장봉이 모질고 또 독하지만 육장봉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육장봉처럼 강대한 사람은 계략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육장봉은 한마디 대답했다.
"내가 너희들을 독으로 죽일까 무섭지 않아?"
아포의 눈이 더욱 붉어졌다. 그의 치아도 맞물려 '딱딱' 소리를 냈다. 손목에 감긴 은뱀도 화가 난 듯 월령안에게 혀를 날름거렸다.
"전 정말 무섭지 않아요! 왕자, 아니면 우리 한번 겨루어 보겠어요? 당신이 먼저 날 독살시키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당신의 나라와 가문을 멸하는지!"
월령안은 이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어 전혀 살기를 띠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 상냥하게 귀띔까지 했다.
"만약 왕자께서 아직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시다면 더 큰 걸 걸어 볼까요? 당신이 먼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독살시키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포리국을 멸하고 포리국 백성들까지 깨끗하게 도살하는지 말이에요!"
"넌 그럴 배포가 없어!"
독왕 아포의 손이 살짝 떨렸다. 손목의 은뱀도 몸을 세우고 공격 상태로 월령안과 대치했다. 아포가 명령만 내리면 바로 월령안에게 날아갈 것이다.
월 삼낭의 눈에 미칠 듯한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힘껏 아포를 부채질했다.
"월령안, 넌 네가 누군 줄 아는 거야? 고작 너 따위가 한 나라를 멸한다고?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포, 월령안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그녀에게는 지금 돈도 없다고요! 황금 만 냥은커녕 황금 한 냥도 꺼낼 수 없으니 그녀의 말에 넘어가지 마세요."
아포의 은뱀은 극독을 가지고 있었다. 은뱀에게 한번 물리면 무조건 죽음이었다.
"서른 개가 넘는 서역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 포리는 수만 명밖에 없는 비좁은 땅에 불과하지. 그것도 가장 강한 것도 아니야. 포리를 멸하고 포리의 핏줄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겠어?"
월령안은 독왕 아포가 화났다는 것도 알고 그의 뱀이 언제든지 자기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왕자 전하, 우리 정말로 내기를 할까요? 내가 해낼지 못 해낼지? 지금 나를 죽인다면 우리는 겨룰 필요가 없지요. 포리 전체에 산 사람은커녕 살아 있는 생물조차 없게 될 거라고 장담할게요."
"너, 도대체 어쩔 생각이야?"
독왕 아포는 월령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를 삼켜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목에 감긴 뱀도 순간 늘어졌다.
월령안이 말을 너무 무섭게 하여 그는 감히 내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도 단순한 것뿐이지 멍청하지는 않았다. 월령안이 해내지 못해도 육장봉이 있었다.
포리의 모든 병사들을 합해도 만여 명밖에 되지 않으니 주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포, 그녀의 말을 믿지 마세요. 염명경 귀시에서 거래를 했다면 그 거래는 끝마쳐지기 전에는 절대 중지되지 않아요. 그녀가 임무를 의뢰했다면 당신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도 임무를 받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포리 황족과 당신의 독종(毒宗) 가문 전체를 죽일 거예요."
월 삼낭은 아포가 겁을 먹은 것을 보고 급해졌다.
아포가 없이는 월령안의 손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저 말이 사실이야?"
아포는 눈이 벌게져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월령안은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포의 손에 있는 은뱀도 다시 긴장하여 월령안에게 덮쳐들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은뱀이 움직이려는 순간, 월령안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열 배의 대가를 치른다면 다시 임무를 회수해 올 수도 있지. 왕자 전하, 전하는 정말 내가 열 배의 대가를 다시 치를 정도의 가치가 있나요?"
"내가 뭘 하면 되지?"
독왕 아포는 신속하게 뱀을 진정시켰다.
"아포, 그녀는 당신을 속이고 있는 거예요!"
월 삼낭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쳤다.
"월령안 저년은 사람을 속이는 요물이에요. 그녀를 믿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많은 황금을 내놓을 수 없어요. 그녀는 전에 북요의 남원대왕을 죽이느라 모든 황금을 다 썼어요. 그녀는 임무를 다시 회수할 능력이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전에 최일에게 쓴 독도 시간을 계산해 보면 오늘이 바로 죽는 날이에요. 최일은 최씨 가문의 독자인데 최일이 죽었다면 월령안이 당신에게 어떻게 복수하겠다는 건지는 둘째치더라도 최씨 가문도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아포, 우리는 이미 돌아갈 길이 없어요. 월령안의 말에 넘어가지 마세요."
"그래, 왕자, 당신은 이미 돌아갈 자리가 없어. 넌 날 믿을 수밖에 없어. 아니면 넌 독종(毒宗)과 포리국의 죄인이 되는 수밖에 없지. 어때? 나와 협력하지 않을래?"
월령안은 아포와 아주 가깝게 있었다. 아포가 명령만 내리면 그의 손에 있는 은뱀이 월령안을 물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육장봉과 서 선생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월령안과 아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아포가 일시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거나 또는 실수하여 월령안을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
"아포, 월령안은 상인이에요. 상인은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사람을 속이는 말을 꾸며내는 것도 보통 일이에요. 그녀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지 말아요. 아포,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대장군부에서 도망치고 주나라를 벗어나 서역으로 간다면 전 당신에게 시집가서 당신의 신부가 될 거예요."
월 삼낭은 가까운 곳에 있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흥분되어 심장이 쿵쾅거렸다.
월령안 손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암기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손을 썼을 것이다.
월령안과 이렇게 가깝게 있을 기회는 드문 것이었다.
아포는 마음이 흔들린 듯했다. 은뱀도 '씁씁'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월령안을 보는 아포의 시선에는 위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월령안이 갑자기 손을 들고 아포의 따귀를 때렸다.
"이토록 멍청해서야, 독극물에 능하지 않았다면 네가 무슨 쓸모가 있었겠어?"
아포는 맞아서 멍해졌다. 손에 있던 은뱀도 주인을 보호했다.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월령안에게 달려들었다.
육장봉은 얼굴빛이 확 달라지며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월령안, 조심해!"
하지만 공격받는 당사자로서 월령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
"아포, 잘 생각해!"
월 삼낭은 미칠 듯이 기뻐했다.
"아포, 우리 가요, 우리 서역으로 가요. 우리 이 귀신 같은 곳을 떠나요."
그녀는 월령안이 끝장날 거라고 생각했다.
아포의 은뱀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었다. 은뱀이 월령안을 물기만 한다면 신선도 월령안을 구할 수 없었다.
월 삼낭은 은뱀이 월령안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두 눈으로 흥분의 빛을 내뿜었다. 마음속으로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물어! 월령안을 물기만 하면 월령안은 끝장날 거야!'
육장봉이 아무리 대단해도, 손불사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월령안을 살리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이 죽는다면 그녀는 청주의 그 노친네들을 벗어나 월씨 가문의 유일한 후대라는 명분으로 월령안을 대신해 앞으로의 가주쟁탈전에 참여할 것이다.
"월령안!"
아포의 은뱀이 월령안에게 덮치는 순간, 육장봉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월령안과 아포 사이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다. 육장봉의 동작이 아무리 빨라도 월령안에게 덮치는 은뱀을 가로막지 못할 정도로 짧았다. 그는 은뱀이 월령안의 얼굴을 덮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 선생은 월령안의 뒤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긴장으로 팽팽한 것이 마치 준비 태세를 갖춘 장창처럼 언제든지 허공을 가르며 나가서 적수를 죽일 것 같았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태연자약한 사람이 바로 월령안이었다.
은뱀이 이미 그녀의 얼굴을 덮쳐도, 뱀의 혀가 그녀의 코끝을 스쳐도 월령안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아포를 바라보았다. 마치 전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서 선생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월령안이 모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월령안의 판단을 믿었다.
십 년간, 월령안은 수많은 위기에 마주하면서 비슷한 상황도 여러 번 겪었다. 지금까지 월령안의 판단은 틀린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월령안은 서 선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은뱀이 입을 벌리고 월령안을 물려는 순간, 독왕 아포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마치 뱀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은뱀도 갑자기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뱀은 월령안의 코앞에서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은뱀은 마치 굳은 것처럼 무겁게 바닥에 떨어졌다. 월령안의 발 아래로 떨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돌아와!"
아포는 눈을 붉히고 소리를 질렀다. 은뱀이 순식간에 살아나 훌쩍, 뛰어오르더니 아포에게 날아갔다. 아포의 손목에 감겨 서러운 듯한 비명을 질렀다.
같은 시각, 육장봉은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와락, 품에 안았다. 마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보물을 안은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 날 놀래켜서 죽이고는 대장군부를 물려받으려는 것이오?"
"제가 당신을 죽여도 당신의 대장군부를 물려받지 못해요. 놀란 척하지 마세요. 전 속지 않을 거니까요. 육 대장군 당신이 보지 보지 못한 일이 뭐가 있겠어요? 겨우 이런 작은 일에 놀라시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