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화 나에게는 흥미를 가져도 되오
월령안은 원래 별생각이 없었지만 육장봉이 분명 뭔가 양심에 가책을 받은 듯이 행동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발목의 붉은 흔적이 생각났다. 그녀의 얼굴도 썩 부자연스러워졌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잘못한 게 없는데 이상하게 어색하네. 이건 어찌 된 일이지?'
월령안은 몰래 숨을 들이쉬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혔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장군께서 좋으시면 됐어요."
그녀는 더 이상 육장봉을 신경 쓰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육장봉이 느끼던 불편함은 바로 사라졌다.
그는 낮게 웃고 따라서 마차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월령안이 퉁명스럽게 마차를 모는 육이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뭘 하고 계세요? 얼른 가지 않고요!"
육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이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불쌍하게 육장봉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대장군?"
"갑시다."
월령안은 화가 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누가 자기의 겉옷을 벗기고 신발과 양말을 벗겼는지 눈치챘다는 걸 알게 됐다.
어쨌든 월령안은 이미 알게 되었으니 그도 불편하거나 켕길 것이 없었다.
정도껏 하는 육 대장군은 사람을 압박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자기와 같은 마차에 타는 것을 거부한 것을 눈치채고 말 한 필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는 마침 육일의 말이 있었고, 육장봉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말에 탑승했다.
육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나지?'
말을 빼앗긴 육일은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한순간 그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육이가 형제의 정으로 육일에게 자리를 내줘 육일은 그와 함께 마차를 몰게 됐다. 그래서 육일이 두 다리로 도관까지 뛰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육삼은 맨 앞에서 가고 있는 육 대장군을 바라보고 또 중간에서 보호받는 마차를 보면서 속으로 몰래 자기의 순위가 삼 위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이 생기면 육일과 육이가 있으니 그는 뒤에서 묵묵히 노만 저으면 되었다.
마차 안에서 월령안은 육장봉과 친위대가 하는 꼴을 보고 속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육장봉과 육씨 가문 친위대가 길을 트니 길을 가는 내내 월령안 일행을 해치려는 눈먼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육장봉에 대한 월령안의 불만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육장봉의 명성은 정말 쓸 데가 많았다. 육장봉을 내세우기만 해도 주나라 안에서 감히 손을 쓸 사람이 없었다.
월령안 일행은 순조롭게 서 선생이 말한 도관에 도착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월령안은 그 손을 무시하고 바로 내려섰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월령안은 피비린내를 맡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서 선생은 괜찮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육장봉은 뻗은 손을 묵묵히 거두어들였다.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대장군, 감사해요."
월령안은 보았지만 육장봉이 말하지 않자 자기도 못 본 척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관으로 걸어갔다.
육장봉은 묵묵히 월령안 뒤를 따르며 친위대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손짓을 했다.
월령안과 육장봉이 들어가자 서 선생이 앞으로 다가와 맞이했다. 그는 육장봉을 완전히 무시했다.
"아가씨."
"서 아저씨,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월령안은 도관 안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를 보고 의외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밖에서 맡을 정도로 강한 피비린내를 풍기는데 사람이 죽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독왕 아포가 진왕 세자와 진왕비에게 독을 썼습니다. 그들은 대전에 있는데 월 삼낭이 아가씨더러 혼자서 들어오라고 합니다."
서 선생이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툭하면 독을 쓰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그도 머리가 아팠다.
결국 진왕이 어리석은 것이었다. 조운충의 말을 믿고 독을 쓸 줄 아는 사람이 고자가 된 그의 아들의 양물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왕이 황실에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멍청하니 진작에 여러 번 죽었을 것이다.
"그럼 가죠."
이미 온 이상, 월령안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장서서 대전으로 걸어갔다.
육장봉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계단을 올랐다. 대전 앞의 평상에 도착하자마자 월 삼낭이 나타났다.
"월령안, 너 혼자 와."
"월 삼낭, 정도껏 하지!"
서 선생이 엄격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월 삼낭은 전의 나약함 대신 미간에 날카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독을 담은 것 같았다
"내가 정도껏 하지 않는 거야 아니면 너희들이 사람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거야?"
"왜? 언니만 내 친구에게 독을 쓸 수 있고 나는 복수하면 안 돼?"
월령안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육장봉과 서 선생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서 선생과 육장봉은 비록 걱정이 되었으나 막지 않았다.
월 삼낭은 처음부터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독을 쓸 줄 아는 독왕 아포뿐이었다.
"월령안, 월씨 가문의 규칙을 잊은 거냐?"
월 삼낭은 갈라진 목소리를 하고 죽일 듯이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시뻘건 것이 핏발이 선 듯했다.
월령안은 월 삼낭과 삼 보 거리에서 멈춰 섰다.
"형제끼리 서로 싸우는 것 말이야?"
"기억하고 있었네! 난 비록 네가 죽기를 아주 바라지만 난 항상 월씨 가문의 규칙을 기억하고 있어. 난 한 번도 너를 죽이려고 한 적이 없어!"
월 삼낭은 뻔뻔스럽게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월령안, 네 어미를 따라 소씨 가문으로 들어갔다고 네 성이 월씨인 걸 잊지 마!"
"난 항상 내 성씨를 기억하고 있었어. 자기 성씨를 잊어 버린 사람은 셋째 언니 너지."
월령안은 방긋 웃으며 월 삼낭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언니를 죽이려고 한 적이 없어. 왜 당황해?"
"아버지가 죽자마자 넌 네 어미를 따라 소씨 가문으로 들어갔지. 아버지가 예전에 널 얼마나 아꼈던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야. 넌 그러고도 뻔뻔하게 스스로 월씨라고 말할 낯짝이 있어?"
월 삼낭은 월령안이 신경 쓰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말을 꺼낸 것은 월령안을 화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월 삼낭의 오산이었다.
두 달 전이었더라면 월령안은 화가 났을 것이다. 어쩌면 월 삼낭이 자기의 화를 돋우려고 하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걸려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어머니와 소씨 가문은 연관이 없어졌다.
월 삼낭의 이런 말은 그녀를 아프게 하지 못했다.
월령안은 편하게 웃었다.
"하는 수 없지. 내 팔자가 좋은 것을 어떡해? 아버지가 날 아끼지, 어머니도 아끼지. 내가 조금이라도 서러움을 겪을까 봐 안타까워하셨거든. 셋째 언니와는 다르게 말이야.
아리땁던 셋째 언니가 지금처럼 나약한 모습이 되었지. 지난 십 년 동안, 셋째 언니는 잘 지내지 못했지?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은 널 어떻게 괴롭혔어?"
"월령안, 입 닥쳐!"
월령안의 말은 월 삼낭 마음속의 가장 난감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찔렀다. 그녀는 험상궂게 월령안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잘 못 지낸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살아온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월령안, 넌 왜 그들과 함께 죽어 버리지 않았어! 네가 죽었다면 내가 월씨 가문의 유일한 핏줄이라 쓸 데가 있었을 텐데. 바둑알이 될 자격조차 없진 않았을 텐데!"
월 삼낭은 월령안이 일부러 자기의 화를 돋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월령안이 평안하고 순조롭게 보냈던 십 년과 비교하면 그녀는 지난 십 년을 개보다 못하게 보냈다.
같은 월씨 가문 여식으로서 그녀는 한스러웠다!
"셋째 언니, 진정해! 언니가 이러면 우리는 유쾌하게 대화를 이을 수 없어."
월령안은 주객이 전도되어 주도권을 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월 삼낭을 격노시킬 생각도, 월 삼낭이 발광하게 할 생각도 없었다.
사람이 미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었다. 월 삼낭이 그래도 정신을 유지하고 두려움을 간직하는 쪽이 나았다.
월 삼낭의 생각을 흐트러뜨리고 주도권을 잡은 월령안은 적당히 하고 물러섰다. 그녀는 느긋하게 말했다.
"셋째 언니, 언니에게 속아 쩔쩔 매는 독왕 아포가 무슨 신분인지 알아?"
월 삼낭은 지금 분노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월령안의 말에 음모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녀가 침착해지기 전에 월령안이 말했다.
"염명경 귀시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나도 독왕 아포가 포리국의 작은 왕자인 줄 모를 뻔했어. 셋째 언니, 알고 있어? 언니는 청주의 손바닥을 벗어나 포리국의 왕비가 될 기회를 놓쳤어."
"염명경 귀시? 너 거기로 가서 뭘 했어?"
월 삼낭은 이미 아포가 포리 황실 출신으로서 그녀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을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염명경 귀시이라는 말을 듣자 월 삼낭은 당황했다.
"월령안, 잊지 마. 너도 월씨야. 넌 날 죽일 수 없어!"
"내가 언니를 죽여서 뭘 하겠어? 내 손이나 더럽히지."
월령안은 손뼉을 치면서 높은 소리로 말했다.
"포리 왕, 포리 황실과 네 사문(師門) 수백 명의 인두가 모두 얼마나 하겠어? 고작해야 황금 만 냥 정도 하겠지!"
월령안은 일부러 경멸조로 말했다.
"내가 황금당을 고용해 약재를 한번 나르는 데 든 돈으로 너희 포리 황실을 두 번이나 죽였겠어. 이렇게 싼데 내가 줍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아니겠어!"
"월령안! 입 닥쳐!"
월 삼낭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앞으로 와락, 덮쳐 월령안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너무 얕잡아 보았다.
월 삼낭이 손을 뻗기 전에, 월령안은 반지 안의 빙침을 쏘았다.
"셋째 언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 난 여인이 나한테 손찌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난 여인한테는 흥미가 없다고."
월 삼낭은 빠르게 피했다. 하지만 월령안을 잡을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육장봉과 서 선생은 그녀가 손을 쓰려는 순간 바로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 양옆을 지키며 경고하듯 월 삼낭을 바라봤다.
한편, 대전에서는 청초한 얼굴에 도포를 입고 완자 상투를 쓴 여관이 걸어 나왔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도관의 여관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특히 가느다란 허리는 월 삼낭의 것보다 더욱 가늘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여니 바로 신분이 노출되었다!
"육, 육장봉…….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관으로 분장한 독왕 아포는 청초했던 안색이 병색을 띨 정도로 창백해졌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이 두 눈만 벌건 것이 마치 사람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육장봉이 낮은 소리로 월령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독을 과량으로 시험한 탓에 얼굴이 굳고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게 되었소. 눈이 계속 빨간 것이지 화가 나서거나 몰살을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오. 저자를 두려워할 것 없소. 그리고 난 여인도 아니고 당신보다 예쁘지도 아니하니 나에게는 흥미를 가져도 되오. 내가 책임을 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