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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49)화 (549/1,004)

549화 이 두 사람은 참 잘 숨는군

월령안은 비록 깨어났지만 몸 전체가 축 늘어져 기운이 없이 시녀가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가씨께 아룁니다. 서쪽 뜰에서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시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소식이 없어?"

월령안은 순식간에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사람을 시켜 지켜보라고 하거라. 그 어떤 소식이라도 알아내면 바로 알리거라."

"네, 아가씨."

시녀는 계속하여 월령안의 머리를 빗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시중을 들었다.

신발과 양말을 신을 때, 월령안은 자기의 발목 부근에 빨간 자국이 생긴 것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

"내 신발과 양말은 누가 벗긴 것이냐?"

"네? 아가씨께서 직접 벗으신 게 아닌가요?"

시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소인이 왔을 때, 아가씨께서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어요."

"내가 너무 졸려서 기억을 못 하는가 보구나."

월령안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노여움을 감추었다.

'육장봉! 틈을 타서 자기 잇속을 채우는 소인배 같으니라고! 전에 황궁의 난각에서 육장봉 그 나쁜 자식은 내가 반항하지 못하는 틈을 타 억지로 입을 맞췄지. 지금은…….'

발의 붉은 흔적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여 바로 신발을 차 버렸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을 준비하거라. 목욕을 하겠다."

'육장봉 그 나쁜 놈이 내가 자고 있을 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떻게 알겠어. 나도 참 멍청해! 육장봉이 무슨 행동거지가 올바른 현인 군자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앞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잠들다니.'

월령안은 아주 후회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그녀는 졸려 죽더라도 육장봉 앞에서는 자지 않았을 것이다.

명월 산장의 하인은 일을 아주 효율적으로 했다. 금방 월령안에게 뜨거운 물을 떠 왔다.

월령안은 목욕을 하고 세게 때를 밀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편안함을 느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손불사 쪽에서 소식이 전해 오지 않자 월령안도 식사를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시녀를 데리고 바로 약방으로 가서 손불사를 찾았다.

하지만 손불사를 보지 못했다. 최 대학사만 초조하게 약방의 밖을 왔다 갔다 했다.

"령안아, 네가 왔구나."

최 대학사는 월령안을 보고 간신히 기운을 차려 월령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 아저씨, 손 신의가 약을 만들어 냈나요?"

월령안이 추측했다.

"그래. 자도가 방금 전에 약을 먹었어. 하지만 효과가 어떨지 모르겠구나."

자도는 최일의 자였다. 최 대학사는 손불사를 믿고 있었지만 최일이 무사한 것을 직접 보지 못해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월령안은 시름을 놓으며 위로했다.

"최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손 신의가 내놓은 해독약은 절대 문제가 없을……."

"역시 령안이가 날 아는구먼!"

약방의 문이 삐꺽, 하고 열렸다. 피곤한 얼굴의 손불사가 약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

"최일의 독이 풀렸어요?"

"제 아들이 괜찮습니까?"

최 대학사와 월령안은 동시에 앞으로 다가가 손불사와 물어보았다. 손불사가 대답하기 전에 또 고개를 내밀어 약방을 바라보았다. 최일이 약방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기 바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실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최일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손불사도 말을 돌리지 않고 설명했다.

"해독되었어. 이제 상태는 괜찮다! 보지 마. 해독되어도 해독되기 전에는 환각 상태가 잠깐 강해지니 아직 좀 기다려야 깰 거야."

"우리가 들어가서 볼 수 있나요?"

최 대학사와 월령안은 동시에 물어봤다.

손불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과 최 대학사의 기대에 찬 얼굴을 보자 한참 생각한 뒤 억지로 응했다. 다만 입으로 잊지 않고 투덜거렸다.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뭐가 볼 게 있다고? 봐서 꽃이라도 피워 낼 것도 아니고 말이야."

기절한 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최일이 얼굴에 홍조를 띤 채, 편안한 자세로 평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최 대학사와 월령안은 아주 기뻐했다.

'그래, 최일이 괜찮으면 됐어!'

두 사람은 최일의 상태를 확인한 후 약방 안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바로 나왔다.

최 대학사는 최일을 지키고 싶어해서 최일의 옆방에 묵었다. 월령안도 최일이 깨어날 때까지 지키고 싶었으나…….

그녀가 금방 하인더러 의자를 옮겨오라고 했을 때, 집사가 급히 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서 선생의 편지입니다."

월령안은 편지를 들고 날 듯한 속도로 훑어보았다. 순간,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월령안은 편지를 읽고 안색이 변했다.

최 대학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월령안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고 그녀가 난감하지 않게 먼저 말을 꺼냈다.

"령안아, 일이 있으면 어서 일을 보거라. 자도 이쪽은 이미 괜찮아졌다. 내가 지키고 있으면 된단다."

"최 아저씨, 서 아저씨가 월 삼낭과 독왕 아포를 찾았대요. 하지만 그들은 진왕비와 진왕 세자를 인질로 삼았다는군요. 제가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월령안은 몰래 숨을 들이쉬었다. 안색이 살짝 풀리자 손에 든 편지를 최 대학사에게 건네주었다.

최 대학사와 최일은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최일에게 독을 쓴 사람을 찾았으니 당연히 최 대학사에게 말을 해야 했다.

"그들이 도관(道觀 - 도교의 사원)에 숨었었어?"

최 대학사는 그들이 숨은 곳을 보고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이 두 사람은 참 잘 숨는군."

"그러게요. 모두들 독왕 아포가 여장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또 위화감도 전혀 없었다고 하고요. 게다가 독왕 아포와 월 삼낭이 대장군에게서 도망치기 전에 진왕비와 진왕 세자가 도관에 들어간 터라 누구도 그들 쪽으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조계안이 진왕을 잡지 못했더라면 서 선생도 이렇게 빨리 독왕 아포와 월 삼낭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월 삼낭이 꼭 너를 만나야겠다고 한 거냐? 내가 가면 안 될까?"

월 삼낭 손에는 인질이 있었다. 이런 시기에 만나러 가는 것은 자칫 골칫거리를 떠안을 수 있었다.

진왕비와 진왕 세자가 죽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월령안 때문에 죽는 건 안 되었다.

황실의 사람들은 줄곧 포악했다. 진왕도 결국 황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진왕이 화를 자초하면 황제는 그를 가두거나 심지어 그의 가족 전체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 다른 사람들이 황제의 명령이 없이 종실에게 손을 쓰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황제가 영명하여 이 일로 월령안 탓을 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소인배가 이 일로 황제와 그녀를 이간질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저 월령안이 오늘 월 삼낭을 위해 진왕비와 진왕 세자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폐하께서도 위험에 닥치시면 이 월령안을 똑같이 무시하시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친왕(親王)비와 친왕 세자의 목숨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이 돼요.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고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까요? 진정 폐하께서 진심으로 믿고 쓸 수 있을까요?"

사람 마음은 가장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두 번은 황제도 어쩌면 월령안을 믿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말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또 나중에 월령안이 무슨 엉뚱한 짓이라도 한다면 황제는 이번 일을 떠올리고 월령안에게 의심을 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최 대학사는 서 선생의 편지를 잃고서 서 선생이 왜 직접 움직이지 않고 월 삼낭의 협박대로 월령안에게 편지를 썼는지 알게 되었다.

알기 때문에 최 대학사는 월 삼낭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마지막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월령안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 아저씨, 월 삼낭이 만나려는 사람은 저예요. 아마 아저씨도 그녀가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는 걸 눈치채셨을 거예요. 일부러 저에게 난감하게 굴어 폐하의 앞에 제 함정을 판 것이에요."

'월 삼낭이 어찌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가는 것을 보고 있겠어?'

"그 여인은 참……."

악독하다는 말을 하려던 최 대학사는 문득, 월 삼낭이 월령안의 언니라는 사실이 떠올라 바로 말을 바꿨다.

"령안아, 마음 아파하지 말아라. 이런 사람은 네가 마음 아파할 가치도 없단다."

"최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전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저와 그녀는 어머니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어울린 적이 없어요. 정이라고 할 것도 없죠. 그리고 나중에는 각자 다른 주인을 따랐어요. 그녀는 청주를 위해 저한테 자꾸 손을 썼어요. 그녀는 저한테 남과 다름이 없어요."

최 대학사가 진심으로 그녀를 대하자 그녀도 진심으로 보답했다.

월령안은 월 삼낭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알려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셋째 언니가 자꾸 그녀를 사지로 모는데 그녀가 자기의 선량함을 보여 주기 위해 매번 자비롭게 군다면 그녀 자신도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령안은 미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최 아저씨, 저는 가 봐야겠네요. 자도에게는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말씀해 주세요."

최 대학사와 함께 최일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하고는 결국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떠나니 그녀는 정말 민망했다.

특히 최일이 중독된 뒤에도 그녀는 최일을 두어 번도 보지 못했다. 친구로서 그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감이 들었다.

"중요한 일이 먼저지. 얼른 가거라. 자도도 이해할 것이다."

최 대학사는 개의치 않고 손을 저으며 월령안더러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월령안은 다급히 예를 올리고 시녀와 함께 본채로 돌아왔다. 집사에게 마차와 사람을 준비하라고 시키고는 움직이기 편한 경장으로 갈아입었다. 또 공숙 무에게 가서 정교한 호신용 암기를 챙겼다.

하는 수 없었다. 그녀는 죽음이 두려웠다.

월령안이 나왔을 때, 집사는 이미 차와 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다만 따라가는 '호위'가 좀 특별했다.

"대장군?"

월령안은 경장을 입은 채, 불빛 아래에 서 있는 육장봉을 보고 머리가 아팠다.

'육장봉은 상처도 완쾌되지 못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란이지?'

"음."

불빛 아래에서, 육장봉의 준수한 얼굴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는 도도하게 대답하게 차가운 시선을 했다. 하지만 월령안을 보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차마 보지 못했다.

월령안도 더는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의 짜증을 억지로 누른 채, 설득했다.

"대장군, 상처도 채 낫지 못했잖아요. 손 신의가 대장군께 잘 휴식하고 더 이상 무술을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지 않았어요?"

육장봉이 그녀 때문에 또 부상을 당한다면 황제는 그녀를 찢어 죽일 것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난 손을 쓰지 않겠소. 친위대가 따라올 거요."

육장봉은 여전히 월령안을 보지 않았다. 가끔씩 시선이 마주쳐도 가장 빨리 시선을 돌렸다. 전혀 예전처럼 긴장되게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은 불빛에 붉게 비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귀 끝도 빨개졌고 말투도 평소보다 퍽 온화해졌다.

마치 무언가 찔리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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