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살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겠어요
오시(午時 -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채시구(菜市口) 입구의 처형장.
백 명에 달하는 범인이 처형대에 압송되어 올라갔다. 그들의 두 손은 포박당한 채,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등에는 '참(斬)'자를 쓴 나무 패를 꼽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 꿇어앉은 사람이 바로 정서와 곽 황후의 아버지였다.
처형대 아래에는 욕설을 퍼부으며 구경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온통 백발로 뒤덮인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정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오열을 했다.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서 이 개자식이 죽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처형대 아래에서 구경하는 백성들 말고도 채시구에서 멀지 않은 곳의 다루에도 신비로운 고객 몇 명이 늘어났다.
곧,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되었다. 형을 집행한다!"
팍!
령첨(令簽 - 명령을 쓴 참대 판자. )이 떨어지고 회자수(劊子手 - 사형을 집행할 때, 목을 치는 사람)가 올라갔다. 회자수는 정서 등에 꼽은 나무패를 뽑고 칼을 휘둘렀다.
"으악!"
죽기 전, 정서는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강박적으로 저지당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서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두어 바퀴 구른 뒤, 처형대의 끝에 걸쳐졌다.
구경하던 백성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도 또 자세히 보고 싶어했다.
백발의 노부인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꿇어앉아 높이 '황제 폐하 만세'를 불렀다.
처형대 다른 사람들은 이미 겁을 먹어 벌벌 떨고 있었다. 간이 작은 사람은 겁을 먹은 나머지 오줌을 지리고 큰소리로 용서를 구하며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특히 정서와 함께 횡령한 관리들은 무섭고 후회도 되었다.
그들은 단지 은전 조금만 횡령했을 뿐인데 왜 목이 잘리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누가 앞장서서 고함을 쳤는지, 처형대의 여러 사형수들은 모두 따라서 고함을 질렀다. 이걸로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황제가 명을 거두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 형을 집행하는 관리들은 추밀원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장군의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
오늘, 처형대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했다.
쿵! 쿵! 쿵!
회자수가 손을 들어 칼을 내리 베자 억울함을 울부짖던 소리와 함께 머리가 하나, 둘씩 땅으로 떨어졌다. 새빨간 피가 솟구쳐 곧 형틀을 스며들었고 땅으로 흘렀다.
하지만 회자수의 손은 멈출 줄 몰랐다.
채시구의 맞은편에 있는 다루의 별실에서 장 부승상은 찻잔을 들고 두 눈을 슬며시 감았다. 나른하고 졸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잿빛 얼굴에 푹 꺼진 채, 기운을 잃은 두 눈을 가진 장씨 오공자가 앉아 있었다.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오공자는 너무 시달린 탓에 정기가 빠진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밖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장 부승상은 눈을 뜨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섯째야, 지금도 부끄럽고, 자책하고 후회하느냐?"
"할아버지, 이렇게 큰 사건이 어떻게 고작 이틀 만에 마무리가 될 수 있어요? 돈을 좀 횡령했다고 어찌 사람을 죽이나요? 조정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나요?"
오공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나약하고 무기력했다.
"우리의 폐하께서는 모두에게 경고를 주시려 하기 때문이란다."
장 부승상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공자는 멍해졌다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진작부터 정서의 사건이 좋게 마무리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황성사의 첫 사건은 앞으로 조정에서 가지게 될 발언권과 연관되었지. 아무리 작은 사건도 모두 큰 사건이 되고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이란다."
정서의 횡령 사건은 하나도 작지 않았다. 특히 그의 멍청한 아들이…….
횡령한 돈이 흘러간 마지막 행방을 생각하니 장 부승상은 자기의 마음이 모질지 못해 진작에 그 불효자식을 끝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오공자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그의 시선은 평온했다.
그는 일어나서 장 부승상 옆으로 갔다.
"할아버지, 우리 돌아가요."
"그래."
장 부승상은 눈을 뜨고 오공자의 변화를 알아챘다. 그는 오공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표했다.
한편, 다른 별실의 분위기는 이토록 평온하지 못했다.
진왕은 채시구에서 사람 머리가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찻잔을 든 손도 떨고 있었다.
"폐하, 폐하께서 정말 사람을 죽이셨어. 봐,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이셨어. 자신의 장인어른마저도 죽이셨어! 폐하께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면 내 목도 치지 않으실까?"
진왕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는 생김새도 나쁘지 않았고 분위기도 꽤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두 눈이 날카롭고 난폭한 것이 매처럼 매서웠다.
그는 손에 찻잔을 들고 얼핏 비웃음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맞은편의 진왕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
"전하, 걱정하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체면을 중히 여기셔서 황실의 추문이 밖으로 새게 하지 않으실 겁니다. 청희 장공주가 그렇게 큰일을 저질렀는데도 폐하께서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잖습니까.
전하께서는 반역을 하신 것도 아니고 황제가 될 생각은 더욱 없으셨죠. 전하께서는 조계안 때문에 불구가 된 아들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자책을 하셨으면 하셨지 어찌 전하의 목을 치시겠습니까?"
진왕은 그의 말에 위로를 받고 연거푸 차를 여러 잔 마셨다. 마음속의 두려움을 억지로 누른 뒤,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 너는 오늘 나를 여기로 불러서 뭘 하려는 것이냐? 목이 잘리는 것을 구경하라는 것이냐?"
남자는 진왕의 말에 대답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일의 독이 해독되었다더군요. 정말 아쉽네요. 조계안이 저한테 부탁하러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해서."
"뭐라고?"
진왕은 두려운 눈으로 맞은편의 젊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왕 전하, 저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뵙시다."
젊은 남자는 사악하게 웃고는 진왕이 반응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창문을 뛰어넘어 떠나갔다.
"조운충(趙雲沖), 뭘 한 것이냐?!"
진왕은 몸을 일으켜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젊은 남자는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바로, 별실의 문이 누군가의 발에 차여 열렸다.
"조운충? 역시 그자였군. 황숙, 좋은 취미를 가지셨군요!"
조계안이 사위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조…… 조왕, 이 일은, 이 일은, 황숙…… 아니, 아, 나야, 해명할 수 있어."
진왕은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계안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별실에 들어서자마자 활짝 열린 창문 입구로 다가갔다. 사람을 보내 내려가 살펴보려고 하는 순간, 이미 사람들 무리에 섞여 들어간 조운충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그에게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 동작을 마친 조운충은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감쪽같이 사라졌다.
"조운충! 기억해 두겠다!"
조계안은 어두운 얼굴로 난폭한 시선을 내뿜었다.
조운충은 청주 자사(刺史) 조의박(趙義薄)의 장남이었다.
곽씨 가문에서 다른 마음을 품은 것, 장씨 가문의 장남이 횡령한 것, 구리파의 사건, 최일이 중독된 것……. 이 변경의 소란들 중에서 열에 아홉은 그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하필이면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했다.
눈을 멀쩡히 뜨고 조운충을 놓친 조계안은 더없이 갑갑해졌다.
고개를 돌려 돼지처럼 멍청하고, 이용당하고도 모르는 진왕을 보니 조계안은 분노에 차 명령을 내렸다.
"황성사는 가서 진왕부의 가산을 몰수해라!"
"조왕, 계안아……. 이건 오해야. 이건 모두 오해야. 황숙이 설명하는 것을 들으려무나. 황숙이……."
진왕은 두렵고 무서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변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사위에게 입이 막힌 채, 억지로 끌려갔다.
멀지 않은 한 골목, 눈에 띄지 않는 마차 안에서 장씨 오공자가 마차의 발을 걷고 힐끔 보더니 바로 발을 내렸다.
"할아버지, 진왕입니다."
"하늘이 저지른 죄는 살 수 있어도, 스스로 저지른 죄는 살 수 없는 법이지. 가자."
장 부승상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 *
명월 산장.
반나절 푹 자고 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린 월령안은 힘겹게 기어 일어났다.
서 선생에게서 채시구에서 일어난 일을 들은 월령안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월 삼낭이 혼자의 힘으로 최일에게 독을 쓴 뒤 감쪽같이 사라질 능력이 없을 줄 알고 있었어요. 청주의 그 노친네들이 후계자까지 보낸 걸로 봐서는 정말 급했나 봐요."
"그들이 급하다고 수단을 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서 선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운충은 난폭하고 살인을 즐겼다. 그는 행실이 악랄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안하무인이었다.
최일에게 손을 쓴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나대는지 알 수 있었다.
서 선생은 조운충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월령안에게 손을 쓸까 두려웠다.
십 년의 가주쟁탈전은 월령안과 범씨 가문 자제의 싸움이 아니라 월씨 가문과 범씨 가문의 싸움이었다.
령안이 죽는다면 월 삼낭이 올라갈 것이다.
조운충의 등장으로 월령안은 더욱 날카로이 경계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녀는 화초를 기르고, 구름이 뭉쳤다가 풀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는 부유하고 한가로운 생활을 좋아했으나 칼과 검의 매서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청주 조씨 가문이 싸우겠다면 싸우면 되지요. 저 월령안이 만약 겁을 먹으면 제 성씨 월 자를 거꾸로 쓰겠어요!"
월령안은 서 선생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걱정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보다 대응책을 생각해 두는 것이 현명했다.
"서 아저씨, 다른 일은 먼저 내버려 두시고 월 삼낭부터 찾으세요. 전 그녀가 더 이상 월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살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겠어요."
월령안의 시선이 차가워지며 살의를 내뿜었다.
서 선생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게 최저선입니까?"
'단지 월씨 가문 사람의 신분으로 살지 말라는 뜻이냐 아니면 철저히 월 삼낭의 존재를 지우라는 뜻이냐?'
월령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침묵하다가 유유히 말했다.
"아니에요! 이건 제 마지막 자비예요. 그녀가 제 자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서 아저씨께서 수고스러우신 대로…… 그녀를 보내 주세요."
월령안은 눈을 감고 눈 속의 슬픔과 눈물을 감췄다.
그녀는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그녀더러 가문의 오라버니와 언니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당부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버지가 하던 말도 어렴풋이 기억했다.
"어울리지 않고 감정을 가지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는단다."
'아버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미리 예상했던 걸까?'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도 월씨 가문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형제자매들의 싸움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겪은 모든 것들은 그녀의 아버지 또한 진작에 겪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