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최일이 희대의 요물인걸까?
"허!"
서 선생은 살수의 손에 든 계약서를 보고 또 품에서 잠든 월령안을 보다가 사람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계집애는 돈을 잘 벌기는 해. 하지만 얘가 돈을 버는 속도는 돈을 쓰는 속도에 한참 못 미치지.
얘는 자기가 이미 월씨 가문 역대 가주들이 몇 대에 걸쳐 모은 황금을 모조리 써 버렸다는 것을 잊어 버렸나? 우리는 지금 황금도, 은도 없다고. 우리는 지금 아주 가난하다고. 황금당에 물어줄 돈 같은 건 아예 없단 말이야.
이 망할 계집애,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귀시에 갈 수는 없었담? 그랬으면 적어도 황금 만 냥은 넘게 아꼈을 텐데.'
서 선생은 속으로 욕하고 있었지만 얼굴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월 가주는 무엇을 대가로 귀시에서 약재 세 마차를 가져온 것이냐?"
황금당의 살수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귀시의 규칙은 절대 거래에 대한 정보를 떠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서 선생은 시선에 협박의 뜻을 담았다.
"우리 주인님께서 귀시에 한번 다녀가실 수도 있다. 그 대가는 너희 황금당에서 감당해야 할 것이다."
황금당의 살수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동료를 힐끗 보고 말했다.
"월 가주는 앞으로 십 년 동안 수익의 일 할을 귀시에서 거래를 했습니다."
서 선생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앞으로 십 년 동안의 수익이라고? 현금뿐만 아니라? 사업도 포함된 것이냐?"
"그렇습니다."
이미 다 말한 일이니 황금당의 살수는 더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얘는 참…… 패기가 있군!"
비바람을 겪은 서 선생도 이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꼬마 령안은 자기가 내건 일 할의 수익이 뭘 대표하는지 모르는 건가?
그녀의 앞으로 십 년의 수익은 청주 범씨 가문 사람과 은상(隱商)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이었다. 이 일 할의 수익이 그녀의 생사에 연관될 가능성이 가능성이 아주 컸다.
이 일 할의 수익이 만약 황금당의 손에 떨어지거나 귀시의 다른 세력에 떨어진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만약…….
"이 일 할의 수익을 누구에게 주기로 한 것인지 알 수 있나?"
서 선생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꼬마 령안이 이미 일을 다 저질렀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청주 범씨 가문입니다."
황금당의 살수는 악랄한 웃음을 드러냈다.
"우리 당주께서는 월 가주의 박력과 재산을 흩뿌리는 능력을 아주 높이 사셨습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계약금을 받지 않고 이 거래를 한 것입니다."
"십 년 동안 수익의 일 할로 이 약재 세 마차를 얻은 것이라고?"
서 선생은 월령안을 두드려 깨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자기 자신한테 침착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월령안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최일이 희대의 요물인걸까? 령안은 육장봉을 위해서도 이런 미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정말 미쳤어!'
범씨 가문은 반드시 모든 힘을 동원하여 자제가 가주쟁탈전에서 이기도록 밀어줄 것이다. 월령안은 홀로 범씨 가문 전체를 상대해야 했다. 승산이 원래도 높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일 할의 수익까지 내놓아야 한다. 이건 너무나 불공평했다.
'령안아, 넌 앞으로 십 년 동안의 나날이 충분히 힘들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스스로 삶에 고난을 더한 것이냐?’'
"서 선생, 월 가주를 낮잡아 보셨네요. 월 가주가 어찌 손해 보는 장사를 했겠습니까. 이 약재 세 마차 말고도 월 가주는 독왕 아포의 가문 전체와 월 삼낭의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그 돈은 범씨 가문에서 냅니다.
귀시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거래를 하겠다고 하고 서역으로 사람을 죽이러 갔습니다. 서옹,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서역 독종과 포리 황실(蒲犁皇室)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황금당의 살수는 다시 한번 입을 벌려 헤벌쭉, 웃었다. 평소에 전혀 웃지 않던 터라 이 웃음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손에 든 계약서를 흔들었다.
"서 선생, 지금 돈을 물어 주시겠습니까? 우리 황금당은 외상은 받지 않습니다."
독왕 아포는 포리 황실의 작은 왕자였다.
서 선생의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를 이리 주거라. 내일 자시, 여기에 와서 금을 가져가거라."
그는 이 황금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꼬마 령안이 최일의 목숨을 살리느라 흩뿌린 황금으로 최일만 한 황금 인형을 백 개나 넘게 만들 수 있었다.
최일이 중독되었다지만 월령안이 독을 쓴 것은 아니었다. 이 황금은 반드시 최씨 가문에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서 선생은 계약서를 들고 월령안을 안았다. 그는 울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황금당의 살수더러 약재를 명월 산장에 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황금을 써서 산 물건인데 반드시 배송까지 해 줘야지!'
황금당의 살수는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서 선생은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거래를 수락한 거지 약재를 옮기는 거래를 수락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하지만 그들은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살수들도 겁을 먹을 때가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그들이 서 선생과 싸우면 금을 지불할 사람이 없어진다.
월 가주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능력으로 황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노동을 했다면 반드시 황금을 받아야 했다.
그게 아니면 손을 쓸 때마다 손해를 볼 것이다.
이럴 때 무른 척해야지 언제 무른 척하겠는가?
육장봉과 최일은 비록 바둑을 두고 있었지만 둘의 정신은 바둑판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줄곧 마당 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인이 와서 월령안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바둑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한 명은 중상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중독되었다. 몸의 영향을 받아 둘은 모두 빨리 걷지 못했다.
그들이 앞뜰까지 왔을 때, 서 선생은 이미 월령안을 묵는 곳으로 옮겼다. 앞뜰에는 손불사와 약재 세 마차만 있었다.
육장봉과 최일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고 또 동시에 물었다.
"월령안은?"
"령안은요?"
"엉?"
손불사는 약재를 검사하느라 바빴다. 그는 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힐끔 보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서 선생의 말이 떠오르자 손불사는 바로 손에 든 약재를 내려놓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은 괜찮아. 지쳐서 서 영감이 데리고 재우러 갔어. 서 영감이 너희 둘더러 할 일을 하라고 하더라. 월령안을 귀찮게 하지 말고."
"많이 피곤해하던가요?"
육장봉이 물었다.
손불사는 손사래를 치면서 개의치 않게 말했다.
"이틀 밤낮을 못 잤다나. 일단 보기에는 괜찮았어. 푹 자면 좋아질 거야."
"괜찮다면 됐어요."
최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준수한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드리웠다. 마치 갓 솟은 태양처럼 따스했다.
손불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요물이야. 그래서 령안이 홀딱 빠져서는 널 위해 황금 만 냥이나 내던졌지."
손불사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최일은 듣지 못했지만 육장봉은 똑똑히 들었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손불사를 노려보았다.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
손불사는 몸을 흠칫, 떨면서 연신 뒤로 물러섰다. 하마터면 마차에 부딪힐 뻔했는데 다행히 최일이 그를 잡아 주었다.
"아니, 난……."
손불사는 겨우 제대로 섰다. 그는 감히 육장봉을 다시 쳐다보지 못하고 최일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괜찮아. 하지만 넌 안 괜찮을 게다! 이 명세서는 서 영감이 너에게 가져다주라고 한 거야. 위의 가격대로 금을 지불하라고 했어. 기억해. 상대는 황금만 받아!"
"이게 계약서인가요? 황금을 얼마나 내야 하나요?"
최일은 손에 든 계약서를 자세히 살폈지만 뒤집으며 보아도 금액을 보아 낼 수 없었다.
"황금 만사천 냥이야! 서 영감이 말하기를 이건 널 구하기 위해 쓴 황금이라고 했어. 그의 아가씨, 그러니까 월령안이 힘을 썼는데 돈까지 쓸 수는 없다고 했어."
손불사는 서 선생의 어두운 얼굴을 떠올리자 갑자기 그가 말해 준 시간이 생각나 또 한마디 덧붙였다.
"내일 해가 지기 전에 황금을 명월 산장으로 가져와. 한 냥이라도 모자라면 안 돼."
"서 선생의 말이 맞아요. 이 황금은 제가 내야 하죠."
최일은 묵묵히 계약서를 거두었다.
황금 만사천 냥은 정말 하루 안에 구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구하기 힘들어도 그는 구해야 했다. 그를 살리려 쓴 돈이었다. 손 신의가 말한 것처럼 월령안더러 돈과 힘을 모두 쓰게 할 수는 없었다.
손불사는 최일이 조금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 가격에 놀라지도 않는 것을 보고 찬사의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 녀석 절대 이 돈이 많다고, 령안이 너한테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면 안 돼. 서 영감이 황금 만사천 냥은 운송비일 뿐이랬어. 이 약재는 가격이 어마어마해. 령안이가 이 약재를 위해 쓴 황금은 순금으로 널 여러 개 만들 수 있어."
육장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이게 운송비일 뿐이라면, 그 약재의 대가는 무엇이었나요?"
최일은 한마디 물었지만 그건 손불사도 몰랐다.
"서 영감이 말을 안 해. 굳은 얼굴로 월령안더러 집안을 말아먹을 거라고 욕을 하더군. 걔가 돈을 쓰는 속도는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이야."
최일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재신의 품에서 큰 자식은 역시 아무나 감당할 수가 없죠. 다행히 최씨 가문에 돈이 좀 있어 처자식을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너희 집에는 돈이 그렇게 많냐?"
손불사가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최일은 가문의 재산을 자세히 생각해 보고 보수적으로 말했다.
"괜찮은 편입니다."
손불사는 도도하게 웃고 마차 세 대에 실린 약재를 가리킨 채, 우쭐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너희 집에서는 이틀 안에 약재를 사 오지 못했을까?"
최일은 엷은 미소를 짓고, 눈에는 따뜻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 약재들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이건 월령안의 마음이었다.
이틀 안에, 주나라에서 한 번도 유통된 적이 없는 서역의 약재를 모두 모으는 데 월령안이 내건 대가는 절대 돈뿐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만약 돈이라면 폐하께서도 절대 부족하지 않으실 텐데 똑같이 못 찾으셨잖아. 난 너희 같은 사람들은 기댈 것이 못 될 줄 알았어. 결국에는 꼬마 령안이에게 기대야 하잖아."
그는 경멸조로 최일을 힐끔 보고 그를 무시한 채, 하인을 불러 약재를 약방으로 옮겼다.
최일도 화를 내지 않고 손불사에게 상냥하게 감사를 표했다.
손불사는 도도하게 코웃음을 치고 최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최일이 떠나간 뒤,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네 녀석은 그나마 예의를 차릴 줄 아는 놈이니 네 약에 황련을 넣지는 않을게."
손불사가 채 우쭐거리지 못했는데 하인 하나가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손에 든 약재가 흩뿌려지게 되었다. 손불사는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날 듯이 앞으로 다가가 그 하인을 부축했다.
"조심하라고 했잖아. 네가 이렇게 넘어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