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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42)화 (542/1,004)

542화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모든 조정 신하들은 주나라가 정성껏 키워 낸 인재였다. 그런 인재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했으며, 죽게 된다면 모두 오롯하게 주나라의 손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제도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해도 황숙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월 삼낭이 독왕 아포를 조종하여 최일에게 독을 쓰도록 한 것은 너무 독한 행위였다.

최씨 가문을 움직여 월령안에게 복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월령안 주변 사람들도 겁먹게 했다. 월령안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없이 알려 주고 있었다. 월령안과 가까이 지낸다면 최일처럼 될 거라고 말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월령안이 청주로 떠나기 전에 이 일을 완벽하게 반격하지 못한다면 홀로 청주로 가야 할 수도 있었다!

최일이 중독된 뒤, 모든 사람들이 독왕 아포와 월 삼낭을 찾고 있었다. 월령안도 찾고 있었지만 모든 정력을 사람을 찾는 데 두지 않았다.

월령안은 독왕 아포와 월 삼낭을 찾는 것보다 최일의 생사를 더욱 신경 썼다.

최일이 중독된 그날 밤, 월령안은 최일이 사흘 안에 죽지는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는 호위를 데리고 명월 산장을 떠났다.

"그들이 독왕 아포를 찾으러 간다면 저는 약을 찾으러 갈게요."

그녀는 모든 희망을 한 사람한테 걸지 않았다.

손불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반대했다.

"최씨 가문에서 이미 손을 썼어. 폐하도 돕기로 했고 말이야. 최씨 가문과 조정이 찾을 수 없는 약은 네가 나가도 소용없어."

"각자 제 길이 있는 법이죠. 어떤 방법은 최씨 가문과 폐하는 닿을 수 없을 수 있고 어떤 이익은 최씨 가문과 폐하가 내 줄 수 없을 수도 있죠."

월령안은 조용하게 불빛 아래에 서서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시선에 깃든 음산함을 감추려고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전 괜찮을 거예요. 서 아저씨가 돌아오시면 이걸 그한테 전해 주세요. 아저씨가 아실 거예요."

어떤 위엄은 스스로 내세워야 했다.

최씨 가문과 육장봉은 세력이 있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것이었고 월령안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월령안은 병사도, 권력도, 가족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홀몸에 돈 한 푼 없어도 만만하지 않았다.

월 삼낭은 항상 그녀에게 손을 썼다. 지금은 그녀 주변의 사람에게도 손을 뻗었다. 그녀가 만약 월 삼낭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정말 그녀가 만만하여 마음껏 주물러도 될 거라고 알 것이다.

월령안의 시선에는 살기가 드리웠다. 그녀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돌려 밤길을 떠났다.

서 선생이 돌아와서 월령안의 편지를 읽었다. 그는 비록 월령안의 안전이 걱정되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싸움은 스스로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날카로움을 보여 줘야 했다.

* * *

다음날 아침, 육장봉과 최일은 모두 깨어났다.

월령안이 최일을 위해 약을 찾으러 떠났다는 것을 알고 육장봉과 최일은 모두 마음 편히 요양을 할 수 없었다.

육장봉은 부상이 너무 심한 탓이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손불사에게 억지로 떠밀려 명월 산장에 붙박여 상처를 요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성 안에 없어도 성 안을 발칵 뒤집을 수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늘이 뒤집어진 줄 알았을 것이다.

최일은 깨어난 뒤, 자기가 독에 당하여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곧 손불사에게 자신이 중독된 일이 새 나가지 않게 비밀에 부쳐 달라고 했다.

그가 기이한 독이 당한 걸 모른다면 그의 죽음은 아무와도 연관이 없게 된다. 특히 월령안과 상관이 없게 된다.

하지만 최일이 입을 열자마자 손불사는 최씨 가문에서 이미 그가 중독된 일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제가 늦게 깨어났네요."

최일은 한숨을 내쉬고 하인을 시켜 아버지를 모셔오게 했다.

최 대학사는 와서 최일과 서재에서 무려 두 시진이나 얘기를 나눴다.

부자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최 대학사가 나올 때, 얼굴빛이 흐리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는 것만 다들 보았다. 하지만 그는 명월 산장의 사람들에게 별다른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최 대학사는 명월 산장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최일과 얘기를 마친 뒤, 부랴부랴 돌아갔다.

그는 최일을 위해 약을 찾아야 했다.

최일이 뒷일을 인계했고 그도 응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아들이 죽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 대학사는 아주 급히 떠나서 서 선생과 작별을 고하지도 못했다.

최 대학사가 돌아가고 나서 최일은 바둑판을 안고 옆방에 있는 육장봉을 찾아갔다.

"한 판 두지 않으실 텐가요?"

"죽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육장봉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윗몸은 헐벗은 채였다. 가슴팍을 감고 있는 붕대에서는 피가 스며 나왔다.

그는 장발을 등 뒤로 풀어헤치고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는데 은근히 사악한 기질이 엿보였다.

"두어 수 두지요."

미인향의 독은 최일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손불사가 신속하게 독을 눌러놨다. 그가 다시 배꽃향을 맡지 않는다면 환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기이한 독에 중독되어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일은 여전히 평소처럼 침착하고 덤덤했다.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자 특유의 불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옆에 있던 낮은 탁자를 들어 느긋하게 바둑판을 펼쳤다. 그리고 흰 바둑을 육장봉에게 건네주었다.

육장봉은 바둑을 받아 들고 잠긴 목소리로 확신에 차서 말했다.

"월령안은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전 죽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요."

최일은 검은 바둑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제가 독에 당했고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요. 한순간 받아들일 수 없었죠. 죽음은 저와 아주 먼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니 별것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은 모두 죽기 마련인데 죽기 전에 여한만 없으면 되죠."

"그래서 날 찾아와 바둑을 두는 것은 여한을 없애려는 것인가?"

육장봉은 흰 바둑을 들고 내려놓았다.

"그래요."

최일은 바둑을 두면서 여우처럼 웃었다.

"제가 반 수 앞질러 대장군이 이길 기회를 없앤다면 제 평생의 여한이 하나 줄어들 거예요."

"자네에게 한 수 반을 양보해 주지."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하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최일은 전혀 민망해하지 않고 바로 육장봉의 바둑 함에서 흰 바둑을 꺼내 자기의 바둑 함에 넣었다.

육장봉은 최일이 이토록 뻔뻔스러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자네는 참……. 괜히 걱정했군."

"걱정하실 게 뭐가 있나요? 대장군께서 겪으신 생사가 어디 적은가요? 전장에서 생사는 한순간이죠. 제 생사도 그런 것일 뿐이에요. 만약 이번에 제가 버티지 못한다 해도 단지 당신들보다 한 걸음 앞서는 것이에요. 이것도 좋아요. 제가 먼저 당신들을 위해 길을 탐색했으니 당신들이 날 찾아올 때쯤에는 앉아서 그 성과를 누리면 되는 거죠."

최일의 표정은 예전과 같이 실망감과 서운함 대신 봄바람처럼 따스한 미소만 걸려 있었다.

"좋은 사람은 명이 길지 않고 화근은 천 년을 가는 법. 월령안이 직접 나섰으니 당신은 괜찮을 것이네!"

최일이 정말 죽는다면 그건 그야말로 큰 아쉬움이었다.

조정의 아쉬움이고 주나라 백성의 아쉬움이며 또 그의 아쉬움이기도 했다.

"제가 죽는 게 안타까우시면서도 좋은 소리 안 해 주시고. 당신은 참……. 삼 년 동안 밖에서 전쟁을 한 것은 운이 좋은 거예요. 그게 아니면 대장군께 어찌 아내를 내칠 기회가 있으셨겠어요? 진작에 령안에게 내쳐지셨겠지요."

최일은 육장봉을 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육장봉은 표정이 굳었고 최일은 싱글벙글 웃으며 바둑을 두었다.

갑자기 최일이 얼굴의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디로 간 것인지 아시는 거죠. 그렇죠?"

'령안이 직접 나섰으니 당신은 괜찮을 것이다!'

'육장봉이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했다는 것은…….'

"그래."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일이 또 물었다.

"염명경(閻冥京) 귀시(鬼市)인가요?"

육장봉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최일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그럼 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귀시 염명경은 열두 층짜리가 다섯 채 있었다.

빛을 볼 수 없는 곳이었고 조정, 대갓집, 강호가 손을 쓸 수 없는 곳이었으며 무질서하지만 자연스러운 규칙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염명경 귀시에는 우두머리가 없었다. 다섯 채, 열두 층 사람들이 번갈아 귀시의 질서를 지키며 거래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만약 염명경 귀시의 거래령(交易令 - 거래 명령)이 있다면 귀시로 가서 거래를 선포할 수도 있고 임무를 받을 수도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감당 못 할 대가는 있어도 염명경 귀시가 못 해낼 일은 없다고!

황금당의 살수도 바로 이 다섯 채 열두 층 세력 중 하나였다.

령안이 염명경 귀시로 간 것이라면 적어도 생명의 위험은 없었다.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최일이 중독된 이튿날, 곽씨 가문의 반역과 정서의 부정부패 사건은 매듭을 지어졌고 황제도 필을 들어 허락했다.

형부와 대리시의 사람들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형을 집행하는 날짜는 최일이 중독된 세 번째 날의 오후로 정해졌다.

미인향은 발작하기만 하며 중독된 자는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 만약 해독약을 구하지 못한다면 최일은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날이 되었지만 독왕 아포의 행적과 서역의 약재 둘 모두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최 대학사는 이틀간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줄곧 밖에서 분주히 보냈다. 도처로 사정을 하고 다녔고 또 소식을 알아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나라와 서역은 천 리가 떨어져 있었다. 서역의 많은 나라는 주나라와 줄곧 왕래를 하지 않고 상인도 다니지 않았다. 가끔 상인이 몰래 서역의 물건을 가져온다 해도 보석이나 향료에 그쳤다. 돈도 되지 않고 부피만 큰 약재를 가지고 올 리가 없었다.

서역에서 상인이 몰래 약재를 가져온다 해도 귀중한 몇 가지를 골라 올 뿐이지 아무 약재나 다 받는 것은 아니었다.

최 대학사가 어젯밤 일곱 가지의 약재를 보내왔지만 손불사는 보고 난 뒤, 전부 다 쓸모가 없다고 했다.

황제는 사람을 시켜 도처에서 찾아본 뒤, 역시 약재 하나를 보내왔지만 마찬가지로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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