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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40)화 (540/1,004)

540화 령안에게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서 선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가씨께서는 명월 산장을 지키셔야 하니 최씨 가문의 일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월령안이 동의하지 않자 서 선생은 담담하게 말했다.

"저와 최 대인은 과거에 교분이 좀 있었습니다. 저에게 옛 친구를 만날 기회를 주십시오."

서 선생이 말하는 '최 대인'은 분명 최일이 아니라 최일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놀란 얼굴로 서 선생을 바라보았다.

'최일의 아버지를 옛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서 아저씨의 출신이 아주 높은가 보네.'

하지만 이건 모두 서 선생의 사적인 일이었다. 서 선생이 말하지 않는다면 월령안도 묻지 않을 것이다. 서 선생의 굳은 결심을 보고 월령안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최 대인께서 불만을 표하시면 서 아저씨는 바로 돌아오세요. 서러움을 겪지 마시고요."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최언소 그 녀석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니 저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월령안을 안심시키기 위해 서 선생은 그와 최일의 아버지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그 말을 듣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건 서 선생의 비밀이었다.

서 선생은 명월 산장에서 나간 뒤, 먼저 궁에 소식을 전하고 다시 성으로 들어갔다.

성에 들어간 뒤, 서 선생은 바로 최씨 저택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는 대장군부에 들러 육이를 찾았다. 그리고 육이더러 친위대를 데리고 명월 산장에 가서 대장군을 데려가라고 일렀다. 그리고 나서야 최씨 저택으로 갔다.

월 삼낭과 독왕 아포는 육장봉의 사람이 풀어 준 것이었다. 이 일은 당연히 육장봉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육장봉 몸의 상처는?

이렇게 큰 사단이 났으니 그는 주인님이 뭐라고 말할지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주인은 절대 육장봉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기어서라도 독왕 아포와 월 삼낭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육장봉이 고생할 것이다.

대장군부에서 나온 서 선생은 바로 최씨 저택이 있는 박간 골목(博間巷)으로 갔다.

마침 석양이 지고 있었다. 석양의 빛이 최씨 가문의 대저택을 비추고 있어 이 고요하고 숙연한 대저택은 평소의 장엄함 보다는 고즈넉한 부드러움이 감돌았다.

서 선생은 급히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 골목 입구에 서서 조용히 최씨 대저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리움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더욱 들어차 있었다.

삼십 년 만이었다!

그는 드디어 또다시 박간 골목으로 왔다.

하지만 박간 골목에는 더 이상 서 원수 저택이 없었다.

서 선생은 박간 골목을 보며 예전에 최언소와 의기양양하게 말을 타고 박간 골목에서 달리던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세 살배기 여동생을 포함한 모든 서씨 가문 사람들이 무거운 가쇄를 목에 걸고 박간 골목에서 죄수 호송차에 끌려 서북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 서 선생의 얼굴은 눈물로 뒤덮였다.

정신을 차린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의 눈물을 훔치고 평소의 무표정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는 박간 골목을 뛰어넘어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최 대인의 서재에 들어갔다.

서 원수 저택이 없는 박간 골목은 그가 발걸음을 내디딜 가치가 없었다.

옛 친구와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원래였다면 끝없는 수다가 펼쳐져야 했고 가라앉힐 수 없는 흥이 생겨야 했다.

하지만 최일의 생사가 불확실하니 서 선생과 최일의 아버지는 모두 옛이야기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만났으니 나중에 다시 만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 선생은 자조치종을 다 말한 뒤,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떠났다.

서 선생이 떠나고 최일의 아버지는 하인더러 온수를 들이라고 했다. 그는 세수를 마친 뒤에야 서재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방금 그의 눈시울이 빨개진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인은 두말없이 머리를 숙인 채 물을 들고 떠나갔다.

"가마를 준비하거라. 내가 궁에 들어가야겠다.“

최일의 아버지 최언소는 이품 관리까지 올랐었다. 최일이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오른 뒤, 그는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사양했다. 황제는 그가 직무를 내려놓는 것을 허락하고 천장각(天章閣) 대학사로 봉했다.

최 대학사가 입궁한 것은 공개적으로는 최일을 위해 휴가를 받으려는 것이었지만 실은 황제에게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물론 황제에게 최씨 가문이 크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최일이 최씨 가문의 후계자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최일이 단지 최씨 가문 방계 자제라고 해도 이런 일을 당한 이상, 최씨 가문은 좋게 끝내지 않을 것이다.

최씨 가문은 선비 가문이었다. 가족 중의 자제는 가문의 영예를 위해 노력했고 최씨 가문도 자제를 보호하여 사람들의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했다.

물론, 나쁜 짓을 한 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최씨 가문 자제가 장 부승상 장남처럼 횡령하고 뇌물을 받았다면 조정이 율법으로 처리할 필요도 없이 최씨 가문이 먼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최 대학사는 황제에게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저 최일이 중독되었고 목숨이 위태로우니 순천부의 일을 돌볼 겨를이 없을 것 같아, 황제께 용서를 구한다고만 했다.

황제는 깜짝 놀라 다급히 말했다.

"순천부의 일은 중요하지 않다. 유칙이 아직 경성을 떠나지 않았으니 짐이 그더러 잠깐 순천부윤의 자리를 대신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최일이다. 갑자기 왜 중독된 것이냐? 어떤 자가 독을 써서 해친 것이냐? 의원이 뭐라고 하던가? 뭘 준비하라고 하던가?"

"구체적인 상황은 신도 모릅니다. 명월 산장의 가주가 사람을 보내와 알렸습니다. 제 자식이 명월 산장에서 독이 발작했는데 다행히 손 신의가 옆에 있었답니다. 손 신의가 진찰한 바로는 그 아이가 당한 독은 서역의 괴이한 독인 미인향이랍니다.

이 독은 일단 발작하기만 하면 사흘밖에 살지 못한답니다. 손 신의는 제 아이에게 해독약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러려면 이틀 안에 서역의 모든 약재를 찾아 보여 줘야 합니다."

최 대학사는 슬픈 얼굴을 하고서, 황제 앞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으려고 애써 참았다.

최 대학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최일을 위해 약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로 황제에게 사죄하고 급히 떠나갔다.

어떤 일은 황제가 직접 가서 조사하고 스스로 보아야 했다. 사람은 늘 이런 식이었다.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가 직접 알아보고 본 것을 믿고 싶어 했다.

특히 제왕은 더 그러했다.

최 대학사는 최일이 중독된 일로 마음이 급해하여 황제는 그를 오래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이반반에게 잘 알아보라고 분부했다. 멀쩡하던 최일이 어떻게 중독되었고 또 어떻게 월령안과 연관이 되었는지.

'월령안은 오늘 아침에야 궁을 나가지 않았던가? 궁을 나가자마자 일을 저질렀으니 설마 월령안이 바로 화근이 아니겠는가?'

이반반은 월령안의 편에 서서 한마디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황제의 굳은 얼굴을 보자 이반반은 순간 말을 할 수 없었다.

황제는 오늘 이미 충분히 짜증이 나 있었다.

장 부승상의 일은 물론이고 어젯밤 난각에 데려간 그 궁녀만 해도 그랬다.

황제는 아침 일찍, 그 궁녀의 일을 물어봐서 그가 직접 심문했다.

그 궁녀는 태후가 황제의 취향대로 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궁녀는 대장군을 한 번 만나더니 대장군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가 어젯밤에 사람을 고르러 갔을 때, 그 궁녀는 작디작은 가능성 때문에 자신의 사명까지 잊었다.

그는 태후가 사람을 길들이는 수단이 약하다고 하면 좋을지 아니면 대장군의 매력이 크다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황제는 체면을 잃었다!

다행히도 이 일은 그와 황제만 알고 있었다. 아니었으면 황제는 민망하여 얼굴을 둘 데도 없을 것이다.

이반반은 월령안을 위해 말을 하지 못하고 바로 명월 산장의 일을 조사하러 떠났다.

월령안은 이미 최일이 중독된 일을 대외적으로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명월 산장은 황실 별장인데다 안에는 또 노인의 사람도 있었다. 노인만 원한다면 안에서 무슨 소식을 듣고 싶어 하든 이반반이 다 알아낼 수 있었다.

곧 이반반은 최일이 중독된 원인을 알아냈다. 그는 소식을 가지고 다급히 난각에 들어갔다. 황제에게 보고하려는 순간, 조계안은 난각의 문을 차고 들어왔다.

"최일에게 일이 생겼다면서! 왜 너는 나한테 보고하지 않았느냐!"

"이반반……."

황제는 이반반에게 다른 사람이 엿듣지 못하도록 밖에서 지키라고 눈치를 줬다.

"내가 있는 이상, 어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감히 엿듣겠어!"

조계안은 발로 이반반을 가로막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말해. 최일이 중독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살릴 수 있는 것이냐? 누구를 찾아야 해?"

이반반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황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황제의 수긍을 받고서야 알아낸 소식을 말했다.

말을 마친 이반반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짐은 몰라도 분명 월……."

하지만 황제가 말을 마치기 전에 조계안이 음산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월 삼낭이 왜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이냐? 육장봉은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월 삼낭은 독왕 아포의 신부다. 장봉이 그때 월 삼낭을 이용하여 독왕 아포의 손에서 너의 해독약을 바꾼 것이란다."

황제는 자신의 말이 조계안에게 잘리자 좀 언짢았지만 꾹 참고 조계안에게 설명해 주었다.

조계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최일이 중독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 나라는 말이에요?"

"이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최일에게 독을 쓴 사람이 너인 것도 아니고. 최일이 너를 위해 중독된 게 아니라 월령안을 위해……."

아까와 마찬가지로, 황제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조계안에게 가로막혔다.

"하지만 제가 중독되지 않았다면 육장봉도 월 삼낭으로 독왕 아포의 손에서 해독제를 바꾸지 않았을 테죠. 월 삼낭도 진작에 죽었을 것이고요. 독왕 아포와 최일이 아무 원한도 없으니 또 어찌 최일에게 독을 썼겠어요?"

"이건 너와 상관이 없다! 최일이 중독된 것은 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 아니냐. 너는 월령안을 감싸려고 무슨 일이든 다 자기가 뒤집어쓰지 말아라."

황제는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그는 조계안이 분명 월령안의 편에 서서 말을 할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조계안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월령안은 또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월령안이 먼저 월 삼낭을 건드린 거예요? 월령안이 먼저 최일을 찾아갔냐고요? 최일이 중독될 것이라고 월령안도 생각지 못했겠죠. 무슨 일이든 월령안에게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조계안은 마지막 말을 할 때, 황제의 말투를 흉내 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목소리도 따라 했다. 들어 보니 마치 황제가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것도 부족한지 조계안은 말을 마치고도 사양하지 않고 한마디 비꼬았다

"사실과 상관없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한다면 황형, 황형과 후궁의 그 앞뒤가 다르고 가식을 떠는 여인들이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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