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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39)화 (539/1,004)

539화 미인향

그녀는 옥패를 거두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화청으로 갔다.

최일은 월령안이 깨어나면 반드시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빨리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구에서 기척이 들리기만 하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들고 보았지만 그리워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는 이러는 것이 매우 실례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가장 먼저 월령안을 보고 싶었다.

또 한 번,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수도 없이 실망한 최일은 여전히 처음처럼 희망에 차서, 긴장되고 기대로 가득한 얼굴로 문밖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분홍색 옷을 입고, 햇살 속에서 그를 향해 예쁘게 웃고 있었다. 홀로 빛을 내뿜고 빛을 밟으며 선녀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최일은 갑자기 실소를 하였다.

'내가 그리움이 너무 깊은 나머지 환각이라도 나타난 건가? 환각이 아니라면 월령안이 어떻게 계속 빛이 날 수 있지? 월령안이 신도 아니고 사람인데 말이야.'

이 점을 그는 그래도 알고 있었다.

"최일? 최자도?"

월령안은 화청에 들어서서 최일이 그녀를 바라보며 헛웃음 짓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연속 몇 번이나 불렀지만 최일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만 깜짝 놀랐다.

'최일이 좀 이상한데!'

팍!

손불사가 전에 가위에 눌리고 갑자기 멍해진 사람을 보면 힘껏 내리치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월령안은 최일의 얼굴을 보았지만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최일, 괜찮아요?"

"령, 령안?"

최일은 얼떨떨했다. 그리고 또 멍하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방금 전에 본 것이 환각이 아니었나?'

"최일, 괜찮아요?"

최일의 연이은 이상한 반응에 월령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최일의 안색을 꼼꼼히 살피려는 듯 가까이 다가갔다.

"저……."

최일은 자기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빛이 몽롱해졌다. 그는 멍하니 손을 내밀어 월령안을 안고는 얼굴을 월령안의 가슴팍에 묻고 취한 듯 문질렀다.

"좋아…… 향긋해……."

월령안은 최일이 갑자기 자기를 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최일에게 와락, 안겼다.

"최일, 이 손을 풀어요……."

월령안은 최일을 밀쳤으나 도저히 밀 수가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최일을 바라보았다. 최일은 얼굴이 빨갛고 눈빛이 몽롱했다. 또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헤벌쭉 웃는 것을 보고 그녀는 최일이 술수에 당했다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더 이상 최일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가 안도록 내버려 두고 소리만 크게 질렀다.

"여봐라, 얼른 이리 오너라!"

"아가씨!"

문을 지키던 하인은 월령안의 고함을 듣고 달려왔다. 월령안이 최일에게 안긴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최일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에게 저지당했다.

"건드리지 말거라. 너희들은 얼른 손불사를 불러오너라."

최일의 이 반응은 마치 사람을 미혹시키는 독극물에 당한 것 같았다.

그녀가 밖에서 장사하며 돌아다닐 때 만난 사람도 중독된 후에 최일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네, 네."

하인은 월령안의 서슬 푸른 얼굴을 보고 감히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는 다급히 손불사를 찾으러 뛰어갔다.

손불사와 서 선생은 동시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최일이 월령안을 안고 있는 것을 보자 하인처럼 들어오자마자 최일을 떼어 내려고 하지 않았다.

서 선생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최일이 왜 저러는 겁니까?"

손불사는 앞으로 다가와 힐끗 보고 말했다.

"중독됐어."

"무슨 독에 당했는지 알 수 있어요? 위험한가요?"

월령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몰라. 일단 눕혀 놓고 자세히 보지."

손불사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헝겊 가방을 열어 은침을 꺼내 최일의 뒤통수에 꽂았다.

은침을 놓자 최일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는 월령안의 몸에 엎드려졌다.

손불사는 은침을 들고 최일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최일이 쓰러진 것을 보자 손불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정상인을 진료하게 돼서 다행이야. 이 녀석은 내 명성을 떨어뜨리지는 않겠어."

"아가씨, 제가 최 공자를 서쪽 뜰로 모시겠습니다."

서 선생은 최일을 들어 올려서 업었다.

"같이 가죠."

이런 일이 벌어지자 월령안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불사와 서 선생을 따라서 함께 최일을 육장봉의 바로 옆인 서쪽 객원으로 데려갔다.

육장봉의 병실을 지나면서 월령안은 피비린내를 맡았다. 그녀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서 아저씨가 육장봉이 하루 이틀이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했으니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니겠지.'

월령안은 억지로 시선을 거두고 손불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최일을 먼저 살폈다.

서 선생이 최일을 침대에 반듯하게 눕혔다. 손불사가 다가와 최일을 자세히 검사했다. 한참 뒤, 손불사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미인향이야."

"미인향이라고요?"

월령안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독인데요? 치명적이에요?"

손불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인향은 무색무취고 잠복 기간이 길어. 독이 유인되어 나오지 않으면 미인향은 계속 사람 몸에 잠복하고 있지.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도 발견되지 못해. 하지만 일단 유인되어 나오면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유인이라는 게 뭔가요?"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서 선생이 전에 최일을 접대할 때, 최일에게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서 선생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일의 몸에 있던 미인향을 유인해 나온 것은 그녀와 연관이 있다는 말이 된다!

"미인향을 유인하는 것은 당연히 미인 몸의 향기지. 최일 몸에 있던 미인향이 언제 들어갔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미인향이 발작된 건 네가 이유인 거 같구나."

손불사는 월령안을 가리켰다.

"네 몸의 배꽃향이야."

월령안은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반문했다.

"배꽃향이기만 하면 최일 몸의 미인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여인 몸에서 나는 향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미인향의 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야.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어떤 향에만 반응하는 미인향을 만들 수 있어. 최일이 그런 상황이지."

바로 이것이 손불사가 얼굴을 굳힌 이유였다.

월령안과 접촉해 본 사람은 누구나 월령안이 배꽃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향로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몸에 걸친 옷은 향을 쬤다.

최일과 월령안은 사이가 좋았다. 최일은 언젠가 월령안을 만날 것이다.

최일이 월령안을 만나기만 한다면 몸 안의 독은 발작하게 될 것이다.

일단 발작하면 최일은 사흘 안에 반드시 죽는다.

최일이 월령안 때문에 죽었으니 최씨 가문은 절대 월령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독을 사용한 사람은 그 마음이 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일이 언제 독에 당했는지는 알아낼 수 없지만 저를 만나고 발작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거네요. 지금부터 우리는 삼 일 안에 그를 구해야 하는 거고요. 맞나요?"

미인향이 발작되면 삼 일밖에 살 수 없다는 손불사의 말을 듣고 그녀는 불편해졌다.

삼 일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최일의 독이 발작했을 때, 손불사가 마침 있어 그들은 시간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미인향의 독은……."

손불사는 잠깐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어려워. 또 해독하기도 아주 힘들고."

"어려워도 괜찮아요. 구할 수만 있다면 됩니다. 저 월령안은 여태껏 어려운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어요!"

월령안은 양쪽에 늘어뜨린 손을 움켜쥐었다. 손등에 실핏줄이 튀어나왔다.

독을 쓴 사람이 최일을 죽이는 김에 그녀에게 덮어씌워서 최씨 가문이 그녀를 미워하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 때문에 최일을 고른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이 가능성을 생각하자 월령안은 절로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마음속의 불안감을 억지로 누르며 물었다.

"최일을 구하는 데 뭐가 필요한가요? 저한테 알려 주세요. 제가 구할게요!"

손불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인향은 서역의 기이한 독이야. 미인향을 해독할 약재는 서역에만 있어. 우리한테는 시간이 사흘밖에 없다고. 또 약을 시험할 시간이 하루 정도는 필요해. 그 말인즉 넌 이틀 안에 서역에서 이름을 댈 수 있는 모든 약재를 찾아야 해. 알겠어?"

서역과 주나라는 천 리가 떨어져 있는 데다가 두 곳은 상인이 다니지 않았다. 이틀 안에 서역에 있는 약재를 모두 찾아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손불사가 아주 어렵다고 한 것이었다.

"서역의 독이요? 그럼 혹시 독왕 아포와 상관있지 않을까요?"

월령안이 물었다.

손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걔밖에 없어."

"그를 찾으면 안 되나요? 그가 전에 조계안에게 독을 썼는데 육장봉이 그한테서 해독약을 얻었어요."

월령안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손불사는 고개를 저었다.

"최일이 당한 미인향은 특별히 제조한 것이야. 독왕 아포가 배꽃향을 만나면 발작하는 미인향을 만들어 낼 수 있어도 몸에 꼭 그 해독약이 있다고는 장담 못 해."

"하지만 가능성은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시간이 사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일말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불사는 생각을 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해야지 뭐.'

월령안의 눈에서 전의가 불타올랐다.

"서 아저씨, 독왕 아포는……."

"아가씨, 월 삼낭과 독왕 아포는 대장군부에서 도망쳤습니다."

서 선생은 고개를 숙이고 속으로 몰래 한탄했다.

'주인께서는 역시 귀신같이 알아맞히시는구나. 월 삼낭이 우리 아가씨를 놔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셨어.'

"전 또 독왕 아포가 왜 최일에게 손을 썼나 생각했는데 만약 월 삼낭이……."

월령안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에서 반짝였던 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최일은 그녀 때문에 연루된 것이었다. 월 삼낭이 해치려는 사람은 그녀였다.

만약 최일이 죽는다면 그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 선생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사람을 보내 찾도록 하겠습니다. 이틀 안에 월 삼낭과 독왕 아포를 반드시 찾아낼게요."

"좋아요. 서 아저씨, 부탁드릴게요."

월령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당황스러움을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말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죠. 시간이 아직 이르니 제가 최씨 가문에 다녀오겠어요."

최일은 명월 산장에서 일이 생겼다. 그녀는 어떻게든 직접 방문하여 최일의 부모에게 사죄해야 했다.

게다가 최씨 가문은 백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세가로 그 세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막강했다. 독왕 아포를 찾든, 서역의 약재를 찾든 최씨 가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최씨 가문의 질책과 불만에 대해서는?

최일이 그녀 때문에 연루된 것이니 모두 그녀가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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