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장 부승상은 정말 독하군
"아주 좋다! 다섯째야, 넌 이 할아비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장 부승상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확고하게 말했다.
"장 집사, 다섯째가 말한 대로 하거라!"
"네, 승상 나리."
장씨 집사는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듯이 평온한 얼굴로 물러갔다.
뒤에서 오공자의 처량한 통곡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겁먹지 마라! 할아비가 있단다!"
"할아버지, 전…… 괴로워요."
다섯째는 장 부승상의 다리에 엎드린 채, 통곡했다.
"할아비가 안다! 할아비도 너와 똑같이 괴롭단다."
장 부승상은 오공자의 등을 다독이며 흐느끼지만 굳세게 말했다.
"다섯째야, 기억하거라! 너는 장씨 가문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장씨 가문의 후계자다. 장씨 가문의 식솔들은 모두 너를 바라본단다. 너의 결정 하나하나에 모두 장씨 가문의 천 명 이상 되는 사람들의 생존이 걸려 있어. 이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알겠느냐?"
"할아버지, 그래도 제 아버지세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오공자는 울음소리를 억눌렀다. 마치 상처 입은 야수 같았다.
"그래서 이 할아비는 네가 할아비 앞에서 우는 것을 허락한단다."
장 부승상은 눈을 감고 곧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감췄다.
장씨 가문의 가주는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 * *
장씨 가문의 큰아들 장원산, 황성사가 잡으려던 범인은 이미 죽어 있었다.
황성사가 준 일각이 거의 지날 무렵, 장씨 집사와 장씨 대공자 장소산이 비통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그들 큰 나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황성사에서 사람이 오자 하인이 보고하러 들어갔다. 하지만 낌새가 이상하여 살펴보니 숨을 쉬지 않았고, 보아하니 어젯밤에 죽은 것 같다 이야기했다.
이것은 그저 세 살 된 어린애나 속일 수 있는 말이었다. 황성사의 사람은 당연히 믿지 않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장원산이 죽었다고?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장씨 가문은 우리를 멍청이로 아는 것인가? 이렇게 우리를 놀리다니. 우리가 안면을 바꿀까 걱정이 되지 않는 건가?'
"나리께서 만약 믿기지 않으신다면 직접 검사하셔도 됩니다."
장씨 가문의 집사는 진정으로 슬펐다. 얼굴의 울먹임은 연기가 아니었다.
장소산의 고통과 슬픔도 연기가 아니었다.
"제 아버지께서는 황성사로 가실 수 없게 되셨습니다. 아비의 책임을 자식이 대신 진다고, 잡아가시려거든 저를 잡아가십시오."
어떻게 죽었든 장씨 가문의 큰아들 장원산은 정말로 죽었다. 아무리 황성사라고 해도 죽은 사람은 놔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정말 내가……."
장씨 가문에게 호되게 당한 사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칼을 뽑고서 정말로 장소산을 잡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조계안이 탁자를 탁, 치며 일어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호통쳤다.
"됐다!"
"대인!"
사위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는 칼을 거두고 허리를 숙인 채, 조계안의 뒤로 물러섰다.
조계안은 그를 보지 않고 장소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음산한 얼굴로 장소산을 바라보았다.
"전, 전하……."
장소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두 다리는 덜덜, 떨면서 눈에는 온통 두려움뿐이었다. 조계안이 정말 자기를 황성사로 데려갈까 두려웠다.
"장 대공자!"
조계안은 음산한 얼굴로 장소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분명 힘을 별로 쓰지 않았지만 조계안이 두드릴 때마다 장소산의 몸은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았다.
조계안의 시선에는 하찮게 여기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장소산이 놀라 기절할 것 같자 그제서야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조계안은 또 장소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아주 세게 두드렸고 장소산의 어깨를 꾹 눌렀다. 장소산은 깜짝 놀라 두 다리를 덜덜 떨며 식은땀을 가득흘렸다. 그제서야 조계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대신해 장 부승상께 문안을 전하거라."
말을 마친 조계안은 사위를 데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떠나갔다.
"털썩!"
조계안이 손을 놓자 장소산은 땅에 주저앉아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조계안은 그가 주저앉는 소리를 들었지만 냉소하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게 다 뭐라고! 주나라에서 월령안을 제외하면 아직 나 조계안을 놀리고도 무사히 몸을 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장씨 가문, 기다리거라!'
조계안이 사위를 거느리고 장씨 가문에 사람을 잡으려 왔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조계안과 사위가 어두운 얼굴로 장씨 가문에서 나온 것을 보고 이 일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석에서 조계안을 비웃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조왕이 젊은 세대들 중에서는 뛰어나나 장 부승상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좀 어리지."
"황성사도 그저 그렇군. 난 또 황성사가 못 하는 일이 없는 줄 알았네."
"황성사의 이번 실패는 꽤나 아플걸!"
…….
그러다가 장씨 가문의 집 앞에 백번(白幡 - 부고를 알리기 위해 거는 하얀 천)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장씨 가문이 어떻게 화를 면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경악한 가운데, 감탄스럽고 놀랍기만 했다!
장 부승상의 단호함에 감탄하고, 냉정함에 감탄하고, 매정함에 감탄했다!
가족에게 가장 이득이라는 것을 안다 할지라도 이런 일은 모든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하의 소 승상도 가문이 무너지는걸 알고도 온갖 힘을 쏟아서 자기 아들딸의 목숨을 살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었다.
소 승상은 장 부승상과 경우가 다르긴 했다.
장씨 가문은 백 년간 지속되어 오면서 장씨 가문 전체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게 되었다. 장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은 희생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장 부승상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최일은 순천부에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잠깐 멈췄다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조 대인이 이번에는 실패를 좀 심하게 겪었는걸."
변경의 물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월령안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다들 장씨 가문과 황성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월령안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월씨 가문의 사건은 혼란한 틈을 타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봐라……."
여기까지 생각한 최일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월씨 가문의 사건 문서를 뽑았다.
"대인!"
관졸이 앞으로 다가왔다.
최일은 문건을 상대방에게 건네주려다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말을 바꿨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성을 나가겠다."
그는 월령안이 그리웠다.
그 전에는 월령안이 후궁 안에 있어 신하인 그는 만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립고 걱정되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리움이라는 것은 억누를수록 더 자라나는 것이었다.
그런 감정이 터지자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월령안을 떠올리자 최일은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다. 옷소매에 먹물이 묻은 채 관복도 갈아입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 월령안이 궁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그녀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공무에 몸이 묶여 있어 꿈 참고 마음속의 그리움을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마친 떳떳하게 내세울 이유가 생겼으니 최일은 더 이상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좋은 일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나쁜 일은 천 리 간다.
조계안이 장 부승상에게서 골탕을 먹은 소식은 날 듯한 속도로 퍼졌다.
궁의 황제, 태후 모두 소식을 받았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장 부승상이 입궁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 부승상의 아들이 적과 내통한 죄가 없어졌으니 그는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심지어 장 부승상을 위로해 주기까지 해야 한다.
'장 부승상은 정말 독하군. 계안이가 괜히 억울하게 당한 게 아니야!'
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잠깐 침묵했다가 눈을 감고 아쉬워했다.
'아쉽구나. 이 시기에 장 부승상의 아들이 죽었다니. 황제는 어쨌든 장 부승상을 위로해 줘야 하겠군. 장 부승상의 똑똑함으로는 이런 시기에 황제 앞에서 약한 척, 불쌍한 척만 할 것이다. 절대 황제의 앞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겠군.'
그녀는 원래 장 부승상의 손을 빌려 월령안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고 탄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황제를 압박하여 월령안을 죽이려고 했던 계획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한참 뒤, 잠이 든 것 같았던 태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 대인에게 먼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알리거라. 어서 그 조왕에 의해 다리가 잘리고 거세를 당했던 방계 일가를 성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거라. 그들이 변경에서 조왕의 눈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조왕의 그 성질머리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후는 잘 알고 있었다.
장 부승상에게 이처럼 크게 골탕을 먹었다. 장 부승상에게 당장 앙갚음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 조계안의 손에 걸려드는 사람이 재수 없는 것이었다.
"네, 마마."
내관을 명을 받고 몸을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태후는 그제서야 진정으로 잠이 들었다.
* * *
연복궁
노인은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먹이를 한 줌 쥐고 느긋하게 물고기에게 던져 주었다.
회색 옷의 하인 서씨가 떠난 뒤, 염 황숙 옆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내관이 함께했다.
늙은 내관은 머리가 백발로 뒤덮였고 얼굴은 온통 세월이 남긴 흔적이었다. 고뇌에 잠긴 얼굴은 그의 일생이 평탄치 못했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로 염 황숙의 옆에 서 있었다.
"주인님, 숙 태비가 이기를 내시 총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방금 전……."
"앞으로 궁의 소식은 더 얘기할 것 없다."
'령안이가 궁을 나갔는데 후궁의 그 인간들이나 형수가 죽든 살든 나와 상관이 없지.'
각자 길은 각자가 가는 것이고 그는 자기가 키운 아이만 신경 쓰면 되었다.
노인의 얼굴은 온화했지만 시선은 차가웠다.
"네, 주인님."
늙은 내관의 안색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말을 돌려 노인과 조계안이 장씨 가문에서 골탕을 먹은 일을 보고했다. 그리고 독왕 아포가 월 삼낭을 데리고 도망친 것도 얘기했다.
"쓸데없는 자식!"
노인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그는 손에 든 먹이를 모두 던져 버렸다.
"가서 손불사더러 바로 명월 산장으로 가라고 하거라. 그 육씨 녀석더러 얼른 자기 장군부로 꺼지라고 하거라. 강산도 이뤄내지 못했으면서 미인을 위해 강산도 저버리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 해!"
"네, 주인님."
늙은 내관은 마음속으로 묵묵히 육 대장군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육 대장군은 너무 비참해!'
최일과 손불사는 동시에 명월 산장에 도착했다.
"손 신의."
최일은 손불사와 월령안의 관계를 잘 알고 전혀 내외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하지만 손불사는 원래 귀족을 싫어했다. 황권과 주먹이 무서워 황제와 육 대장군에게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으나 다른 관리에게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 최일을 무시한 채, 먼저 명월 산장으로 향했다.
최일은 손불사의 냉담한 반응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는 손불사의 뒤를 따라 느긋하게 명월 산장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