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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36)화 (536/1,004)

536화 죄를 저지른 자손은 있을 수 없다

육 대장군의 그 기세는 아주 무서웠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도 궁에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챘다.

한동안 궁은 두려움에 잠겨 있었고 모든 사람이 불안을 느꼈다. 궁녀와 내관들 모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워 감히 반걸음도 함부로 내디디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육장봉과 월령안 둘과는 상관이 없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황궁 입구까지 갔다. 아직 나가지 못했는데 회색 옷의 하인이 말을 타고 궁문 입구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회색 옷의 하인은 말에서 뛰어내려 월령안을 받으려고 했다.

"대장군, 소인이 아가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이때, 육장봉은 이미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회색 옷 하인의 뻗은 손을 피했다.

그는 입을 벌려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벌리자 왈칵, 피가 흘러나왔다. 아예 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대장군, 궁의 일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머지는 주인님께서 처리하실 겁니다. 아가씨를 저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회색 옷의 하인이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육장봉은 또다시 정확하게 피했다.

육장봉은 이미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발을 약간 구부렸지만 두 손은 안정적이었다. 품에 안긴 월령안은 편한하게 잠든 채로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뒤, 허리를 곧추세우고 월령안을 안은 채, 마차로 걸어갔다.

회색 옷을 입은 하인을 돌아서 지나가며 육장봉은 입을 벌리고 피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내 사람은! 내가 스스로, 지킨다!"

회색 옷의 하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육장봉은 망가진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월령안을 안고 힘겹게 마차로 기어올랐다.

회색 옷의 하인은 옆에 서서 돕지는 않았지만 저지하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시선에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우리 주인님은 역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군. 공주마마의 아드님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겠어.'

회색 옷을 입은 하인 서씨는 마차를 몰고 황궁을 떠나 성을 떠났다. 육 대장군이 월령안을 위해 황제와 난동을 부린 일도 순식간에 퍼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작든 크든 그 소식을 들었다. 각자 받은 소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었으나 대체로 비슷했다.

월령안이 갑자기 쓰러지자 황제는 월령안을 위해 공무를 보는 난각을 비워 요양하게 했다.

육 대장군은 줄곧 난각에서 월령안과 함께 있었다. 황제는 굳은 얼굴로 떠나갔다.

이튿날 아침, 육 대장군은 굳은 얼굴로 월령안을 안고 궁을 나갔다. 심지어 바로 대장군부에 돌아가지 않고 성을 나가 명월 산장으로 갔다.

"그 월씨는 역시 요물이었어. 사람을 매혹시키는!"

"한 여인을 위해 군신 사이가 틀어지니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일이다!"

"일개 여 상인이 황제의 난각을 드나들다니. 황제가 정말 어리석어. 이런 군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여우 같은 여인은 절대 남겨 두어서는 안 돼!"

특히 그 어사들은 이 소식을 받고 마치 설을 맞이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상세한 정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하면 월령안과 육 대장군을 비판했다. 그것을 핑계로 삼아서 황제를 비판했다.

황제가 한 여 상인을 난각에 드나들게 하고 그녀를 위해 난각을 비운 일 하나로 황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했을지, 내린 명령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종묘사직에 얼마나 큰 위해가 있을지 추측해댔다.

다른 건 몰라도 최근 황제가 독단적으로 다시 기용한 황성사만 봐도 그랬다.

고종 황제가 한 손으로 황성사를 세우고 한 손으로 황성사를 버린 것을 보면, 이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써 황성사가 크게 쓸모없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선황은 아주 훌륭했고 무척이나 영명했다. 줄곧 황성사를 쓰지 않았다. 황제가 황성사를 쓰는 것은 역사의 후퇴이며 그때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당연히 황제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분명 월령안의 잘못이었다. 황성사를 움직이려고 한 것은 이 나라와 정치를 어지럽히는, 근시안적이고 이해타산에 눈이 먼 여 상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폐하께 월씨 이 요망한 여인을 참수……."

한 사람이 오기와 정의로 가득 찬 상주서를 쓰는 중이었다. 화려하게 문장을 써 내려가던 그때 하인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었다.

"나리, 나리,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팍!"

붓을 든 사람은 깜짝 놀라 손을 떨었다. 붓끝의 먹물이 튀어 나가 다 쓴 문장을 어지럽혔다.

그가 화를 내기도 전에 하인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리, 조왕 전하가 사위를 데리고 부승상 저택을 봉했습니다. 부승상 나리를 끌고 가려 한다고 합니다!"

탄핵하려던 어사는 이미 상주서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는 당황하여 추궁했다.

"뭐라고? 부승상 저택? 내가 아는 그 부승상 저택이냐? 장 부승상?"

확답을 들은 그는 삽시간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 이럴 수가? 폐하께서…… 어찌?"

줄곧 장 부승상의 발걸음을 따라 툭하면 황제에게 상주서를 올려 호통을 치고 황제의 흠을 잡던 행위를 떠올리자 어사는 자기가 끝장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계안이 황성사를 거느리고 장 부승상의 저택으로 사람을 잡아들이러 갔다는 소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장씨 가문은 아주 의연했다.

이른 아침 장씨 가문 사람들이 한창 깊이 자고 있을 때, 조계안은 호위병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는 장씨 가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하인이 통보하기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로 쳐들어갔다.

그의 뒤에 있는 사위는 공문을 들고 장씨 저택 집사의 앞으로 건네줬다.

"황성사의 공무다! 장원산(張遠山)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아침 일찍 무슨 일이신지요? 우리 장 부승상 나리는 나이가 많으신 탓에 폐하의 배려를 받아 매일 점호를 면할 권리를 받으셨습니다. 이 시간이면 우리 부승상 나리께서는 아직 기상 전이실 겁니다. 접대를 제대로 못 하는 점에 대해 나리께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상댁 문지기도 칠품 벼슬은 한다고, 황성사는 비록 악명이 높았지만 장씨 집사는 황성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장씨 집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만하게 장씨 집 화청 상석에 앉아 발을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황성사 사위(司衛)는 그런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계안은 손을 들어 손짓으로 '일'자를 표시했다.

사위는 명령을 확인하자 장씨 집사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일각을 준다. 만약 일각 후까지 당신 댁 어르신 장원산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탓하지 말거라."

장씨 집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또 감히 더는 말하지 못하고 차갑게 한마디만 하고 물러섰다.

"기다려 주십시오."

황성사 사위들이 전에 압수하여 검사했던 그 몇몇 가문과 달리 그들은 떨지 않았다.

이른 본 사위는 속으로 은근히 불안해졌다. 그는 조계안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인, 이 장씨 가문이 일을 처리하는 게 뭔가 수상합니다. 지금 바로 사람을 잡아들이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이미 일각이라고 했으니 기다리거라. 장 부승상의 체면은 봐줘야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장 부승상 그 늙은 여우가 매섭고 단호한 것을 떠올리자 조계안의 마음속도 역시 불안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곧게 앉아 검을 잡은 손을 움켜쥐고 끊임없이 두드렸다.

"시간이 되면, 바로 움직인다."

"예, 대인!"

사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각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하지만 장씨 가문에게는 충분했다.

장 부승상은 장 집사가 말한 것처럼 아직 깨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든 사람은 항상 잠이 적다. 장 부승상은 진작에 일어나 오공자를 데리고 화원에서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

장씨 집사가 부랴부랴 다가와 장 부승상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장 부승상도 장 오공자더러 자리를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

집사의 보고를 들은 장 부승상이 휘두른 주먹은 잠시 멈칫했지만 단지 그 순간뿐이었다. 그는 곧 평소대로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태극권을 전부 마쳤다.

"할아버지!"

오공자는 장 부승상만 한 힘이 없었다. 장 부승상이 주먹을 거두자 오공자는 다급히 깨끗한 수건을 들고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 풋풋한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장 부승상은 수건을 받고 땀을 닦은 뒤, 오공자에게 돌려주었다.

"다섯째야, 겁을 먹은 것이냐?"''오공자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다섯째야, 네 아비가 일을 저질렀단다. 조왕 전하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고 사람을 데리고 쳐들어온 것은 폐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네 할아비가 승상은커녕, 왕이라고 하더라도 지킬 수 없단다."

장 부승상은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무거웠고 시선에는 무력감이 드리웠다.

"할아버지, 폐하께서 왜 할아버지를 이렇게 대하시나요? 할아버지께서는 여태까지 폐하께 충성을 다하셨고 조정의 정무에 심혈을 기울이시면서 조금도 잘못을 하지 않으셨지요. 할아버지께서는 공로가 없다 해도 노고가 있으시잖아요.

설사 아버지가 일을 저질렀어도 폐하께서는 할아버지께 먼저 물어보신 후 저희 집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셨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황성사를 보내셨는데 그럼 우리 장씨 가문의 체면은 어찌한다는 말인가요?"

오공자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아버지가 이대로 황성사에 잡혀가게 된다면 그에게는 죄를 저지른 아버지가 있는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평생 출세할 수가 없었다.

과거를 보려면 먼저 삼 대가 결백해야 한다. 죄인인 아버지가 있다면 그와 그의 손자까지도 과거를 볼 수가 없다.

"다섯째야, 네 안목은 우리 장씨 가문에 그치지 말고 또 전조(前朝)와 궁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폐하께서 나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시고 직접 황성사더러 네 아비를 잡아들이라고 한 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란다."

장 부승상은 씁쓸한 얼굴로 오공자를 옆으로 불렀다. 그리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런 말들은 모두 부질없구나. 제왕께서 신하더러 죽으라고 한다면 신은 죽지 않을 수 없다. 네 아비는…….".

장 부승상은 더 말할 수 없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다섯째야, 네가 만약 할아비라면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할 것이냐?"

"할아버지……."

오공자는 털썩, 무릎을 꿇고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말해 보아라!"

장 부승상의 얼굴빛이 돌변하더니 위엄이 넘쳤다.

오공자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할아버지…… 장씨, 장씨 가문에 죄를 저지른 자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저지른 자손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즉, 있어도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였다.

제 입으로 아비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내뱉은 오공자는 결국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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