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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34)화 (534/1,004)

534화 가서 사람을 잡아들이거라!

조계안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육장봉이 등요 공주를 기어코 서남으로 시집보내라고 하는 것은 등요 공주를 괴롭혀 월령안 대신 분풀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황형도 한번 가족이 헛되이 희생되는 분노와 무기력함을 느껴 보라는 의도였다.

제왕으로서 자기의 여동생을 보호하지 못하고 황실의 핏줄마저 보호하지 못한다.

'아픈가? 분한가? 원망스러운가?'

월령안이 희생되는 것을 보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태평성세에 백성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것은 모두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를 흘려 바꿔 온 것이다.

그, 염 황숙 그리고 월령안 그들은 모두 그늘에 숨어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태평성세를 위해 희생되고 피를 흘리는 것은 모두 그들이 기꺼이 원한 것이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육장봉의 말처럼 그들의 가족과 친구 들은 마음이 아플 것이다.

조계안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다시 눈길을 옮겨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검푸른 얼굴을 하고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황제를 바라보았다.

화가 나서 이를 악물면서도 억지로 참아야 하고 억울하고도 분하지만 물러설 길이 없어 부득불 버텨야 하는 황형을 지켜보며 갑자기 웃고 싶었다.

황형도 사실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어렵사리 지고무상의 자리에 앉았지만 천하의 권력을 장악하지도, 위세를 떨치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고종 황제가 남겨 놓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골칫덩어리를 수습해야 했다.

모처럼 주나라의 가장 존귀한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자기 뜻대로 인생을 누릴 겨를도 없이 일거수일투족을 만인이 지켜보았다. 조정의 대신들은 이리하라 저리하라 요구하면서 유독 황제 이전에 사람인 그 자신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저지했다.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조계안은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황실에서 태어난 것도 무의미하고 한눈에 끝이 보이는 인생은 더더욱 무의미했다.

조계안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어 육장봉과 황제 사이 대치 국면을 깨뜨렸다.

"황형, 정서 횡령 사건의 배후를 심문해서 알아냈습니다. 장 부승상의 큰아들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서 사람을 잡아들일까요, 아니면 증거를 갖고 장 부승상과 협상을 할까요?"

황제는 한창 육장봉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는 육장봉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육장봉이 한발 물러서서 그에게 물러날 길을 터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거의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도 육장봉은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손 신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육장봉은 태어나기를 남의 화를 돋우기 위해 태어난 모양이었다!

황제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육장봉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물러나야 할까 궁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계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황제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물러설 길이 생겼다. 비록 이 길이 좀 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길이니 가리지 않기로 했다!

"증거를 가지고……."

황제는 예나 다름없이 결정을 내리려고 했다. 말을 반쯤 잇다가 문득 화가 잔뜩 치밀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씨 저택에 가서 사람을 잡아들이거라!"

'오늘 내 기분이 엉망이니 장씨 가문이 봉변당한 셈 치자.'

"황형, 확실한 건가요?"

조계안은 황제의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황형이 자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줄 알고 일부러 주의를 주었다.

"제가 말하는 장씨 저택은 장 부승상 저택을 말합니다. 보통 가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조정 대신들을 너그럽게 대하던 그 황형 맞나? 장 부승상 저택에 가서 사람을 잡아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신 게 맞는 건가? 장씨 가문의 체면을 땅에 팽개친 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짓밟으려는 건가?'

"쓸데없는 소리가 왜이리 많느냐? 당장 잡아들이거라!"

죄를 지으면 관아에서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육장봉은 모든 이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모님이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황제에게도 특권이 없는데 장 부승상의 아들이 웬 특권이란 말인가.

"좋습니다. 황형."

'바라건대 냉정해진 뒤에 후회하지 마시기를.'

조계안은 손가락으로 한번 소리를 크게 내고 기분 좋게 육장봉의 어깨를 다독였다.

"장봉, 나 간다."

어쨌든 형제였다. 그가 지금 나서서 육장봉을 도와주지 않으면 육장봉의 고약한 성미에 쓰러질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다.

목석 같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그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분은 현음 공주와의 혼약을 물리기 위해 궁문 앞에서 기절할 때까지 무릎을 꿇었었다.

"신은 폐하께서 죄를 다스려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육장봉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아래쪽에는 이미 피로 된 못이 생겨났다.

탁자 뒤에 앉은 황제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조계안의 눈에는 훤히 보고 있었다.

조계안은 육장봉에게 눈을 부라리며 고의로 목소리를 높였다.

"다스리기는 뭘 다스려? 상처는 치료하려는 거야 말려는 거야? 상처가 벌어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는 걸 모르는 거야? 땅바닥의 피를 봐. 더 흘리면 네 몸에 피가 남아나겠어?"

'이 밉상은 월령안 앞에서 고육지책을 부릴 때는 자연스럽고 거침없더구먼. 어찌 황형 앞에서는 목석이 되었지.'

"피가 흐른다고? 장봉, 너의 상처……."

황제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급히 몸을 일으켜 걸어왔다.

땅바닥의 피를 본 황제는 육장봉에게 화를 낼 엄두도 못 내고 급히 다가와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해서 말했다.

'너 자신이 상처 입었다는 걸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모르는 것이냐? 이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도 계속 무릎을 꿇을 거야? 살기 싫은 거야 뭐야?"

육장봉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상태는 매우 나빴다.

그는 머리가 무겁고 눈앞이 아찔하며 사람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손발도 힘없고 무기력했지만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아직 버틸 만했다!

적어도 월령안을 데리고 황궁을 벗어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는 방금 전 황제를 노하게 했다. 황제는 그를 죽일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이럴 때 월령안을 궁중에 남겨 둘 수 없었다.

궁이 얼마나 위험한지 육장봉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늘 후궁의 정탐꾼, 첩자, 다른 속셈이 있는 사람을 척결하기만 하면 후궁이 평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싸움이 일어나고 이익이 있는 곳에는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한 무리 정탐꾼과 첩자들을 척결한 뒤에는 새로운 정탐꾼과 첩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황제의 후궁이 존재하는 한 후궁의 투쟁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예전에 월령안을 궁중에 남겨 둔 것은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 밖에 있어서 도시 안의 동향을 항상 주시할 수 없었다.

궁이 아무리 엉망이라 해도, 형부와 대리사에 비하면 안전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돌아왔다.

설사 그가 중상을 입어도, 검을 움켜쥘 힘조차 없어도, 그는 그의 령안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육장봉은 혀끝을 힘껏 깨물었다.

육장봉은 강렬한 아픔으로 의식을 회복하였다. 눈앞의 희미하던 화면도 점점 선명해졌다.

피비린내가 입안에 퍼졌다. 의식을 되찾은 육장봉은 묵묵히 입안의 피를 삼켰다.

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황제와 조계안의 부축을 사양했다. 그는 황제에게 읍했다.

"폐하께서 죄를 묻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신은 월령안을 데리고 궁을 나가고 싶습니다."

"네가 이 꼴로 어떻게 궁을 나가겠느냐!"

황제는 화가 나서 말했다.

"네가 짐과 고집을 부리는 것은 부리는 것이고 자기의 몸을 가지고 화풀이를 하지는 말아야지. 네가 궁을 나서면 눈이 달린 사람들은 전부 네가 부상당한 것을 알아볼 것이다. 네가 전에 한 모든 것은 전부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폐하, 신은 궁을 나가겠습니다."

육장봉은 꿋꿋하게 자신의 말을 되풀이했다.

황제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창백한 얼굴에 가슴팍에는 또 빨간 피가 있는 묻어 있는 것을 보고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지 못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서남의 일은 우리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꾸나. 넌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상처를 요양하거라. 모든 것은 네가 요양을 마치면 얘기하자. 어떠냐?"

"난각은 폐하께서 일을 보시는 곳입니다. 신이 계속 폐하의 난각을 차지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폐하께서 제가 궁을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육장봉은 황제의 건의를 전혀 듣지 않았다. 그의 굳센 의지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여 줬다.

황제는 손 신의의 갑갑한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는 환자는 정말 사람을 미치도록 화나게 했다.

황제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또 육장봉을 어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황제는 또 한걸음 물러섰다.

"가기 전에, 손 신의가 너를 살펴보게 하거라. 손 신의가 궁을 나가도 된다고 한다면 짐이 허락하겠노라."

황제는 계속해서 육장봉은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고, 친사촌 동생이라고, 또 현음 고모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참아야 했다!

"폐하, 궁에는 사람이 많고 말이 많아서, 손 신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런 시기에 손 신의를 태후 궁에서 나오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육장봉은 간신히 이 말을 끝내자 자신의 머리가 또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시 혀끝을 깨물었다. 그는 통증으로 자신이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자극했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반드시 빨리 궁을 나가야 했다.

육장봉은 다시 한번 못 박았다.

"폐하, 허락해 주십시오."

육장봉은 혀에 상처가 나서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황제가 눈치를 못 채게 하려고 그는 일부로 말하는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말을 적게 줄였다.

황제는 화가 나서 한숨만 쉬었다. 황제는 육장봉의 이마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넌 정말…… 짐을 홧병으로 죽게 해야 성이 차겠느냐?"

호통쳤는데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죽을 것 같은 육장봉의 모습을 보자 황제는 심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손을 뗐다. 그는 화가 나서 제자리에 맴돌기만 했다.

두 바퀴 돌자 황제의 노여움은 많이 가라앉았다.

육장봉이 치료를 받는 것에 동의하게 하려고 황제는 울적한 말투로 해명했다.

"장봉아, 짐이 등요를 서남에 시집보내지 않는 것은 등요가 짐의 친누이 동생이기 때문만은 아니란다. 중요한 것은 등요가 너무 멍청한 것이다. 등요가 월령안의 반만큼이라도 똑똑했다면 짐도 이렇게 많은 것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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