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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32)화 (532/1,004)

532화 등요 공주를 시집보내야 합니다

'이게 내 생각이라고?'

조계안은 육장봉을 한껏 노려보았다.

분명히 함께 꺼냈던 이야기였는데 육장봉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갑자기 조계안 혼자 주장했던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육장봉 이 밉상이 또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는군.'

황제는 여전히 거부하는 태도였다.

"유씨 가문 여식을 꼭 비로 들여야 하는 것이냐?"

육장봉은 황제에게 읍하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조정의 안정을 위해 희생하신다면 주나라 백성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하지만 조계안은 그렇게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황형은 웬 투정이세요? 황형이 뭐 지조가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후궁의 그렇게 많은 여인들과 다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이제 와서 하나 더 보태면 어때서요? 유씨 가문 여식이 못난 것도 아닌데. 또 못나면 어때요?

여인일 뿐이에요. 촛불을 끄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좋아하면 좀 오래 지켜보고 몇 번 더 잠자리를 같이하세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충 한 번 잠자리를 같이하고 횟수를 줄이면 되잖아요. 사람을 궁에 들인 다음 누가 황형이 몇 번 하고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상관이나 하나요."

"입 닥쳐!"

황제는 수치와 분노로 뒤덮인 얼굴로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쉼 없이 되뇌었다.

'이건 내 친동생이다. 한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온 친동생이다. 때려죽여서는 안 된다.'

조계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목적을 달성하고 태후를 내보내서 태후가 월령안에게 보복할 기회가 없게 된다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중요하지 않아!'

육장봉이 또 한 번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 해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도 아니고 그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육장봉은 목적을 달성하자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을 돌려 등요 공주가 난각에서 소란을 피운 일에 대해 말했다.

"등요?"

황제는 등요 공주의 이름을 듣자 머리가 아팠다.

"짐이 나다니지 못하게 명령했는데 어떻게 나온 것이냐? 감시자들은 모두 죽은 것이냐?"

'후궁에 월령안이 없으면 안 되는 건가. 월령안이 단 하루만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웬 귀신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거야.'

"폐하, 등요는 공주입니다. 폐하의 친누이 동생이기도 합니다. 궁중의 하인들이 누가 감히 말릴 수 있겠습니까?"

육장봉은 '친누이 동생'을 강조하며 황제에게 등요 공주는 다르다는 것을 귀띔했다.

황제와 한 어머니라는 후광만으로도 등요 공주는 황제의 호감을 얻지 못한다 해도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며 누군가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려 할 것이다.

등요 공주는 신분이 특별한 데다가 어리석고 독해 쉽게 남에게 이용당했다. 이런 사람도 멀리 보내 버려야 했다.

'누구한테 등요 공주를 보내 골머리를 앓게 할까.'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육장봉의 말을 반박할 방법이 없게 되자 씩씩거리며 말했다.

"짐이 코를 막고 참으면 될 거 아니냐!"

육장봉은 더는 황제를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건의했다.

"폐하, 등요 공주는 나이가 찼습니다. 혼기가 찬 여식은 시집보내야 합니다. 괜히 오래 남겼다가는 원수가 될 수 있죠. 등요 공주를 시집보내십시오."

육장봉은 아무 표정도 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등요 공주를 어디에 시집보내야 그녀의 가치를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지 궁리했다.

"짐은 늘 등요를 시집보내려고 하지. 하지만 그녀 자신이 거부하고 죽느니 사느니 하는 거 아니냐!"

황제는 말하면서 육장봉을 몰래 바라봤다. 육장봉이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등요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황제는 그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등요 같은 성격은 시집보내도 그 집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짐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만약 육장봉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등요 공주는 육씨 가문에 시집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황제의 체면을 구긴다 해도 다 한집안이니 괜찮았다. 하지만 육장봉이 원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좀 멀리 시집보내서 보지 않는 게 제일 좋죠."

육장봉의 목소리에는 뼛속같이 스며드는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황제는 왠지 잘못된 거 같아 경계하며 말했다.

"등요 공주를 타국에 화친의 볼모로 보낼 생각은 아니지? 장봉, 짐이 말하는데 주나라의 공주가 비록……."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육장봉은 냉랭하게 황제의 말을 중단시켰다.

"신은 주나라의 장군으로 신이 살아 있는 한, 주나라의 공주는 절대로 화친을 위해 타국으로 보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장봉이는 기개가 있구나."

황제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흥분하여 탁자를 탁 치며 일어섰다.

"짐도 주나라의 공주가 화친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결단코 없기를 바란다."

조계안은 옆에 앉아 화가 나서 황제를 힐끗 흘겨보았다.

'아직까지 육장봉이 월령안을 위해 분풀이하며 그녀를 위해 적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다니. 황형은 이 어리석은 모습으로 등요를 멍청하다고 할 수 있나?'

황제의 저 용기가 어디서 생긴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한편 육장봉은 황제와 함께 호방하고 웅장한 맹세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화제를 되돌렸다.

"폐하께서는 등요 공주를 어찌 안배할지 생각하셨습니까?"

잠깐 흥분했던 황제는 육장봉의 차가운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일시에 어색해져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등요는 좀 어리석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단다. 그래도 공주잖니. 지금은 화친할 필요도 없고 짐은 등요가 좋은 곳에 시집갔으면 싶구나."

주나라의 공주들은 청희 장공주를 제외하고 시집을 잘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선황이 가장 좋아했던 여동생 현음 공주도 결국 화친을 위해 북요로 시집가게 되었다.

주나라를 위해 희생된 공주가 너무나 많았다. 황제는 등요 공주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잘 지내기를 바랐다. 고모나 고모할머니들처럼 공주로서의 운명이 기구하지 않기를 바랐다.

황제의 이유는 좋았다.

하지만 이는 육장봉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폐하, 등요 공주는 주나라의 공주입니다. 주나라의 백성들은 국고에서 세은(稅銀)을 한 푼도 쓰지 않지만 주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왕 전하는 신분이 고귀하지만 주나라의 안정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요 공주는 무슨 자격으로 그 의무에서 예외가 되겠습니까?"

육장봉은 황제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직접 제안했다.

"서남(西南)의 수서(水西) 나(羅)씨 가문에 아직 혼인하지 않은 아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등요 공주와 아주 잘 어울릴 듯합니다."

"너 지금 등요를 서남의 토사(土司 - 소수민족을 다스리는 관직)에게 시집보내라고 하는 것이냐?"

황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씨 가문은 청주의 그 노친네들과 한통속이다. 서남 그곳은…… 영리하지 못한 등요가 그곳으로 시집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유를 불문하고 등요는 공주다. 장봉, 짐도 체면을 소중히 여긴다! 등요가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해도 짐은 주나라의 체면, 그리고 주나라 황실의 체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또 육장봉이 선하다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자신이 단순한 것이었다.

등요 공주를 서남으로 시집보내는 것은 북요에 화친으로 보내는 것보다 더 악랄했다.

그들은 북요와의 전쟁에서 이겼기에 어쨌든 전승국이었다. 등요가 북요로 시집가면 북요인들은 예전처럼 감히 등요 이 화친 공주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남에 시집가면 달랐다.

황제는 어리석은 등요 공주가 서남에 시집가면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서남의 세력은 극히 복잡했다.

서남 일대는 통제권을 벗어난 소수민족이나 숨어 사는 화전민들이 많았다. 그곳의 백성들은 모두 조정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곳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네 개의 가문은 각각 파주(播州) 양(楊)씨, 수동(水東) 송(宋)씨, 수서 나씨, 사주(思州) 전(田)씨였다. 서남에서는 이 사대 가문의 가주, 즉 족장의 말 한마디가 조정의 성지보다 더 힘이 있었다.

소수민족들은 바깥 세상일도, 황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황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그들은 오직 그들 소수민족의 족장 가문인 사대 세가의 말만 들었다.

그 소수민족 사회에서는 그 족장들의 명령 한마디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남 일대는 주나라의 영토였지만 지배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조정은 줄곧 서남 지역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지 않았으나 그 힘이 미치지 못했다.

고종 황제가 재위할 때 지배권을 수복하기 위해 서남 일대에 많은 인력과 물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서남 일대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문제를 불러왔다.

바로 지금까지도 황조를 위협하고 있는 청주의 그 노친네들, 고종황제의 수양아들들이 그 일을 기회로 세력을 얻게 됐던 것이었다.

고종 황제의 제위 기간 중에 서남의 수서 나씨가 난을 일으켰다.

그때 고종 황제는 북요의 침범에 대응하고 있을 때였다. 고종 황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본인은 북요와 평화 담판을 진행하는 한편, 서남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대군을 딸려 보냈었다.

당시 군대를 통솔한 사람이 고종 황제의 세 수양아들이었다.

세 사람은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서남으로 가서 난을 평정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싸웠으나 결국 양쪽 모두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서남의 사대 세가는 조정에 귀순하고 토사(土司)로 봉해져 조정과 함께 서남을 다스리기로 했다.

말로는 조정과 함께 다스린다고 하지만 사실 서남의 지배권은 여전히 사대 세가의 수중에 있었다.

고종 황제는 서남 소수민족들의 재반란을 막기 위해 대군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그 오만 군대를 청주에 주둔시켜 서남 사대 세가를 제압하려 했다.

그때 고종 황제의 수양아들인 조의박(趙義薄)은 청주 자사로 임명되어 청주 군무를 주관했다.

황제도 옛날에는 서남 지방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부황이 즉위한 뒤 조의박은 고종 황제의 다른 두 수양아들 조운천(趙雲天), 조기충(趙氣沖)과 함께 청주에 눌러앉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부황이 성지를 내려 청주의 군대를 이동하려고만 하면 서남 현지의 백성들이 큰 폭동을 일으켰다.

부황이 장수를 바꾸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신임 관리들은 그나마 살아서 청주에 갈 수 있었다. 만약 그들과 한통속이 되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나 조정을 위해 일하면 서남에서 영문 없이 죽고 말았다.

부황이 장수를 바꾸려고 사람을 보내는 족족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문책하려면 모두 현지의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부황이 그의 세 형들을 불러들이려고 성지를 내리면 어김없이 서남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 세 사람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청주에 둥지를 튼 채 끊임없이 세력을 키워나갔다.

세력을 키우려면 돈이 없어서는 안 되었다. 당시 청주, 아니 주나라에서 제일 부자였던 가문은 청주 월씨 가문이었다.

조의박을 비롯한 세 사람은 고종 황제의 수양아들로서 월씨 가문의 은밀한 신분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월씨 가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

심지어 황제는 그들이 애당초 청주에 주둔한 것도 월씨 가문을 노린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의 돈주머니였던 월씨 가문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월씨 가문은 모든 가업을 모두 청주의 그 노친네들이 올려놓은 범씨 가문에 빼앗겼다.

따지고 보면 청주 월씨 가문도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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