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나는 내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이반반은 다리를 떨면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와 간신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대장군!"
"잘 처리해라. 누가 공주를 꼬드겼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
육장봉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그에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생사를 알 수 없는 등요 공주를 가리키며 냉담하게 명령했다.
이반반은 흠칫 떨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군의 뜻은……."
육장봉은 이반반을 흘겨보았다.
'이 늙은이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장군, 그러니까…… 이렇게 처리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반반은 목을 베는 동작을 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군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이반반은 보통 사람, 설령 황제의 마음이나 생각까지도 팔구 할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황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혹은 황제가 불편해할 때 그가 만족할 수 있도록 일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에게는 그의 재주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대장군은 한 번도 이치에 맞게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대장군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염 황숙을 떠보는 것과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이반반은 두어 마디 더 묻기로 했다.
밉보이는 게 머리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육장봉은 이반반의 동작을 보고 그에게 눈총을 쏘았다.
"어쨌든 공주이다!"
이반반은 표정이 굳어졌다.
'대장군께서 등요 공주가 공주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군. 사정없이 등요 공주를 차 던지는 걸 보고 그녀의 신분을 잊은 줄 알았지.'
하지만 다음 순간 이반반은 자신이 육 대장군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나라의 백성이 공주인 그녀를 십 년 넘게 길렀다. 당연히 제 가치를 발휘하게 해야지. 비록 어리석긴 해도 공주라는 신분이 있잖나. 그런대로 주나라 백성을 위해 조금이라도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장봉의 목소리는 차갑고 도도했다. 아무 표정도 띠지 않은 것을 보아 분명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반반은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등요 공주가 설마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해지는 건 아니겠지? 대장군은 갈수록 흉포해지는 것 같군. 최근 내가 대장군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던가?'
이반반은 묵묵히 자기반성을 하고 나서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없군! 이 한미한 목숨을 잠시 건졌어.'
육장봉은 냉담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어의를 찾아 보이거라.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이반반은 흠칫 떨고 얼른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육장봉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선의궁(宣儀宮)에 계십니다."
이반반은 재빨리 대답했다.
"음. 사람을 파견하여 난각을 잘 지키거라. 어느 누구도 난각에 드나들지 못하게 해라. 어느 공주나 황비가 난각에 쳐들어가려고 하면 바로 내던지거라.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다."
육장봉은 뒷부분의 말에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금군들이 모두 듣게 했다.
"네, 대장군."
금군은 육장봉의 말을 듣고 몹시 흥분하여 고함을 질렀다.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책임져 준다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흥분한 지 일 초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육 대장군이 어두운 얼굴로 하는 경고를 듣게 되었다.
"소리를 내지 말거라! 내 부인을 깨웠다가는 너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금군은 어안이 벙벙했다.
'장군 부인? 누구? 어느 분이지? 어디에 있지? 왜 육 대장군이 또 결혼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한 무리의 금군은 서로를 마주 보며 모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반반은 반응이 빠르게 아부하며 말했다.
"대장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저들을 잘 보겠습니다. 절대 누구도 장군 부인께서 쉬시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는 육 대장군의 부인이 예전에도, 앞으로도 월령안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
육장봉이 이반반을 보는 눈빛이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이 죽을 놈의 내관은 간사하고 교활하지만, 말 하나는 잘하는군.'
"저건 무엇이냐?"
육장봉은 이반반의 뒤에 있는 궁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좀 전부터 알아차렸으나 그 궁녀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묻지 않았다.
이반반이 데려온 사람이니 어쨌든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궁녀가 어느 순간 허락도 없이 그에게 다가오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반반은 어찌 감히 이런 본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난각으로, 월령안의 곁으로 보낸단 말인가.
'죽고 싶은 것인가?'
궁녀는 이반반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다가서서 아름다운 옆얼굴을 들고 부드럽게 말했다.
"대장군에게 알려드립니다. 소인은……."
이반반은 안색이 변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빼어난 반응 능력을 선보이며 재빨리 말했다.
"대장군 용서해 주십시오. 이 궁녀는 제가 영취궁으로 보내려던 하인입니다. 누군가 난각에 쳐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일시에 마음이 급해서 곧장 달려왔습니다."
"조용히!"
육장봉은 어두운 얼굴로 질책했다.
육장봉은 물론 이반반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육장봉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됐다. 데리고 가거라."
"대장군, 그런 게 아닙니다. 소인은 명을 받고 대장군을……."
궁녀는 육장봉의 시첩이 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이반반에게 밉보일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나섰다.
그녀는 아주 예쁘게 생겼다. 후궁의 비들도 그녀보다는 못했다. 그녀는 육 대장군이 자신의 얼굴만 보면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믿었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이러한 기회일 뿐이었다.
하지만 궁녀는 실망하고 말았다.
육 대장군은 눈길도 주지 않은데다가 심지어 그녀의 말도 채 듣지 않고 바로 멀리 가 버렸다.
"대장군……!"
궁녀는 당황하여 뒤쫓아 가려 했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디디자마자 이반반이 손등으로 그녀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반반은 온몸의 힘을 다해 세차고도 빠르게 따귀를 올려붙였다. 궁녀가 따귀를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반반은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난각을 흘끔 보고는 억지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하라는 사람은 안 하고 기어코 귀신이 되겠다는 거군.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마."
궁녀는 당황하여 대성통곡했다.
"총관 나리. 당신이 저더러 대장군을 모시라고 했습니다. 소인더러 최선을 다해 대장군의 호감을 얻으라고 하셨잖아요. 소인은 총관의 명을 따른 겁니다."
"입 닥쳐!"
이반반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반반은 한 글자만 외치고 즉시 정신을 차렸다. 극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너라."
그 목소리는 가볍고도 부드러웠다. 금군들은 그 목소리에 흠칫 떨고 말았다.
괜히 황제의 곁에 으뜸가는 행수가 아니었다. 이 앞잡이가 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반반은 온몸의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비천한 년을 난(蘭) 공공에게 보내거라."
"총관 나리……!"
궁녀는 이반반의 말을 듣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난 공공은 변태로 오로지 궁녀들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했다. 이 몇 해 동안 난 공공의 손에서 죽어 나간 궁녀가 얼마인지 몰랐다.
그녀의 비명 소리에 이반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재촉했다.
"빨리, 빨리, 빨리. 어서 저년의 입을 막지 못할까. 장군 부인을 깨우면 너희들이 책임질 것이냐?"
금군은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궁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발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사람을 끌어냈다.
어두운 곳에서 노인의 하인 서씨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 그의 눈길이 이반반에게 한번 닿았다.
'아주 좋아. 이반반은 이제 곧 주인님을 해코지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어둠 속에서 서씨는 음산하고 무섭게 웃었다.
이반반은 가만히 땀을 훔치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오는 한기를 느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회색 옷을 입은 하인, 서씨는 곧 연복궁으로 돌아와 노인에게 난각 밖에서 생긴 일을 보고했다.
"주인님께서 예상하신 대로였습니다. 이기가 살짝 소식을 흘렸더니 태후가 이반반 옆에 심어 놓았던 그 궁녀의 마음이 동했습니다. 이반반이 사람을 뽑을 때 눈에 띄게 행동해 그의 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색 옷을 입은 하인은 말을 담담하게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 주인에 대하여 감탄했다.
비록 십 년이 지났지만, 이 황궁의 모든 것은 아직도 주인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왜? 일이 잘못되었느냐?"
노인은 바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리에 담요를 덮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서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할아버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색 옷의 하인은 노인의 흐리멍덩하고 기운이 없는 모습을 보자 착잡하기만 했다.
월 낭자를 위해 그의 주인은 모든 날카로움을 거두었다. 마치 평범한 노인과 같이 월 낭자의 곁에 머물면서 평범한 집안의 할아버지처럼 월 낭자를 가르치고 키웠다.
심지어 월 낭자를 위해 두 손에 피도 묻히지 않고 지난날을 깨끗하게 끊어 버렸다. 월령안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월 낭자를 위해 주인은 다시 돌아왔다. 월 낭자를 위해 다시 칼을 들었다.
회색 옷의 하인은 그동안 노인이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월 낭자를 위해 모의한 것을 떠올렸다. 마음이 씁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 대장군이 깨어났습니다. 그 궁녀는 육 대장군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도 일개 궁녀가 육장봉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 궁녀는 황제에게 태후를 제압할 계기를 제공한 것뿐이야."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손으로 키운 아이가 황궁에서 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안 되지. 만약 황궁에서, 내 영역 안에서도 내가 키운 아이를 함부로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느냐."
그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그는 최선을 다해 월령안 신변의 위협을 제거하고 그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세상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설령 그 사람이 태후이고 일찍이 그가 존중하고 공경했던 형수님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형수님, 미안하네요. 형수님을 존경하긴 하지만 나는 내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노인은 마음속으로 묵묵히 태후에게 사과했다.
회색 옷의 하인은 노인의 곁에서 여러 해 동안 머물렀으므로 노인이 태후에게 가지고 있던 존경심을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회색 옷의 하인은 주인의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하인은 일부러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주인님, 월 낭자는 진작에 대비책이 있었습니다. 주인님의 안배가 한 걸음 늦었더라고요."
"어? 그 녀석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더냐?"
노인은 과연 흥미를 가지고 꼭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