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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29)화 (529/1,004)

529화 내 기일이 바로 오늘이었군!

이반반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면 자기가 끝장날 것만 같았다.

육 대장군이 깨어나는 날이 바로 이반반이 죽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황제를 평생 시중들 수도, 함께 묻힐 기회도 없게 된다.

'그건 너무 비참해!'

"내가 된다고 하면 되는 거지. 왜? 의견 있어?"

조계안은 이반반을 독살스럽게 노려보았다.

"의견이 있어도 참고 있어."

"소인이 어찌 감히."

이반반은 거듭 고개를 저었다. 목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됐다. 가서 처리하거라!"

조계안은 육장봉 몰래 함정을 파 놓자 기분이 확 좋아졌다. 자비를 베풀어 이반반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기만 했다.

이반반이 특별히 뽑은 궁녀를 데리고 난각에 도착한 때였다.

그는 혼미 상태에 있어야 할 육 대장군이 난각 밖에 서서 등요 공주를 발로 걷어차 날려 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끝장이야! 내 기일이 바로 오늘이었군!'

그는 황제와 작별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육장봉, 여생 동안 우리 각자 잘 지내고 서로 보지 맙시다. 안 되겠어요?"

물론 안 된다!

"당신이 거부하지 않으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할게요."

'허!'

그는 분명 수락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지금 말을 못 하는 그를 괴롭히는 게 분명했다.

'월령안 기다려!'

월령안이 그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대신 결정을 내린 다음, 의식 불명 상태이던 육장봉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월령안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의식을 차렸지만 즉시 눈을 뜨지 않았다. 괴로운 신음 소리를 가볍게 내며 낮은 목소리로 월령안의 이름을 불렀다.

월령안은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어 혼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열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멀지 않은 작은 연탑에 앉았다. 잠시 쉬면서 내일의 일에 대처할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눈을 붙이자마자 바로 육장봉의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괴로워서 그러는 줄 알고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이 신체의 피로를 이겨 내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연탑 옆에 걸어갔다. 주저앉아 육장봉의 상황을 살펴보려는 순간 연탑에 누워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던 육장봉이 갑자기 눈을 떴다.

월령안이 그가 어떻게 깨었는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육장봉은 벌떡 뛰어 일어섰다. 그녀의 허리를 껴안으며 가볍게 점혈했다.

"월령안……!"

'무슨 일이 생겼지?'

육장봉의 동작은 너무 빨랐다. 월령안은 미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육장봉을 바라보며 그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물으려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말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요?'

월령안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질문했다. 마음속으로는 괜히 불안했다.

그녀는 왠지 일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의혹을 풀어 주지 않고 대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월령안, 청주의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 결혼합시다. 염 황숙을 주례로 세우면 어떻소? 안 되겠소?"

월령안의 귓가에 거칠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도 애틋하며 화려함까지 띤 말투에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귀담아듣게 되었다.

뜨겁고도 강압적인 그만의 열기가 마치 뜨거운 파도처럼 그녀의 목덜미를 덮쳤다. 월령안은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육장봉의 말을 알아듣는 순간, 그녀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지나치게 친밀한 자세는 그녀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려 육장봉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 나!'

월령안은 사납게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육장봉이 자신이 좀 전에 한 말을 들었다고 확신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그녀가 한 말과 의미가 정반대이지만 말투는 똑같았다.

특히 마지막의 '안 되겠소'는 특별히 그녀의 말투를 따라해서 일부러 말끝을 올림으로써 듣건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 분명 육장봉을 조롱한 것인데 왜 육장봉이 흉내 내니 애교로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진짜 화가 나!'

화가 나서 복어가 될 정도였다. 화가 나서 온몸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육장봉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거부하지 않으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할 거요."

역시나 똑같은 말, 똑같은 말투, 똑같은 속도였다.

이 말이 나오자 월령안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육장봉은 좀 전에 그녀가 한 말을 모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같은 수단으로 그녀에게 반격하고 있었다.

'이건 나를 비웃는 건가?'

월령안은 화가 났다. 시간을 되돌려 그녀가 그 말들을 하기 직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육장봉이 정신이 혼미해져도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녀는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육장봉의 수락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그때 틀림없이 육장봉이라는 요염한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런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아악!'

월령안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과거에 한 일이 엄청나게 후회되었다.

특히 육장봉의 눈동자 속에 숨어 있는 웃음기를 보자 월령안은 더욱 분노했다.

육장봉은 분명 그녀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움직일 수 없는 것만 아니었으면 당장 달려들어 육장봉을 콱 물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여인들이 얼마나 속이 좁은가를 알게 해 줬을 것이다. 당사자 앞에서 숙녀를 비웃는 행동이 얼마나 예의 없는 행동인가도 알려 줬을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육장봉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고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그동안 쉬지 못했으니 푹 잠이나 자시오. 모든 것이 잘될 테니."

월령안은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의식도 없어졌다.

'정말 화가 난다고!'

하지만 눈을 감기 바로 직전, 그녀는 육장봉의 입술이 자신의 미간에 닿는 것을 느낀 듯했다.

따듯하고 간질간질하며 살짝 찌르는 감도 있고, 무슨 느낌이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월령안의 머릿속에는 육장봉이 그녀의 미간에 남긴 입맞춤이 가득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부드러운 몸을 안고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바보녀석!"

하지만 그가 이 순간의 따듯함과 행복함을 미처 자세히 음미하기도 전에 난각 밖에서 귀청을 때리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장봉 오라버니를 만날 거다."

도도하고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난각 밖에서 울려 퍼지며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동시에 난각 안의 따뜻함도 깨뜨려 버렸다.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금군은 온 힘을 다해 저지했다.

"등요 공주. 폐하, 조왕 전하께서 명령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명령 없이 누구도 난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덤벼드는 자는 사살을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들어가지 않을 거다. 너희들이 들어가서 보고하거라. 나는 장봉 오라버니를 만나야겠다. 장봉 오라버니가 무사한 것을 보면 그냥 갈 것이다."

등요 공주의 목소리는 당황함과 두려움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그녀의 패악스러움에 감춰졌다.

금군은 등요 공주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대장군은 누구도 만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 월령안, 그 천박한 년은 바로 난각에 있잖아. 그 천박한 여 상인도 장봉 오라버니를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장봉 오라버니와 함께할 수도 있잖아. 공주인 내가 월령안보다도 못하단 말이냐."

등요 공주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너희들이 나를 막고 장봉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거. 혹시 장봉 오라버니가 부상을 당한 거 아니냐? 그것도 거의 죽어 가는 거 아니냐?"

난각 안, 육장봉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월령안을 안아 그가 좀 전에 누워 있던 연탑에 눕히고 친절하게 꽃신을 벗겨 주고는 조심스럽게 얇은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었다.

"마음 놓고 한잠 자시오. 좋은 꿈을 꾸고, 그 꿈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군."

이불 깃을 여며 준 후 육장봉은 월령안의 잠자는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다시 몸을 일으켜 한쪽에 있는 내실로 걸어갔다.

일어서는 순간 육장봉은 온몸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차갑고 서릿발이 내린 듯이 일말의 온기도 느낄 수 없이 싸늘하기만 했다. 방금 전 월령안을 위해 세심하고 친절하게 신발을 벗겨 주고 이불 깃을 여며 주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육장봉은 내실에서 옷 한 벌을 골라 바꿔 입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갔다.

"나는 오늘 꼭 들어갈 거야. 날 건드리지 마! 누가 나를 건드리면 황제 오라버니께 너희들이 나를 함부로 대했다고 알려드릴 거야!"

조계안은 금군에게 억지로 난각에 달려드는 사람은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등요 공주는 현재 조정의 공주이고 황제의 친누이 동생이었다. 금군은 도저히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심지어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육장봉은 난각에서 나왔다. 등요 공주가 신분을 등에 업고 금군을 연신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금군은 비록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최선을 다해 등요 공주가 난각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나섰다.

"장봉 오라버니. 저는 오라버니가 괜찮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제 목소리를 듣고 나오실 줄 알았어요."

등요 공주는 육장봉이 나오자마자 그를 보고는 기뻐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장군이 나오셨다고?'

금군은 잠깐 멍해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난각 문 앞에 서 있는 대장군을 보고 다시 멍해졌다.

등요 공주는 기회를 찾아 금군의 방어선을 밀쳤다. 꽃밭에 날아드는 나비처럼 치맛자락을 들고 육장봉에게 달려들었다.

"장봉 오라버니. 그들은 모두 오라버니가 큰 부상을 입었다고 했어요. 거의 죽어 간다고 했지만 전 하나도 믿지 않았어요. 장……."

"멍청한 것!"

하지만 그녀가 육장봉에게 거의 닿으려는 순간, 육장봉은 망설임 없이 발을 들어 그녀를 차 던졌다.

남들에게 이용당하고도 모르는 멍청한 것들은 살아도 백성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육장봉이 등요 공주를 발로 차 버리는 것을 보는 순간, 이반반은 바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육장봉의 불길한 목소리가 그의 위쪽에서 울렸다.

"이반반, 이리 오너라."

그는 자신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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