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화 오늘 조계안이 좀 이상한데
"맞아요!"
월령안은 뜸을 다 들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에는 폐하께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폐하께서 권력을 좀 나눠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요. 만약 태후 마마께서 안목을 전조에 돌리고 장 부승상 일파에 대해 찬탄을 보낸다면요. 맞혀 보세요…… 폐하께서는 어찌할 것 같으신가요?"
"폐하께서는……."
이반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을 폐하께 미리 말씀드려야 하는 건가? 만약 말했다가 폐하께서 자초지종을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월령안은 이반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을 뒤로 뻗어 탁자 위에 지탱하고서 창호지의 그림자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이제 나타나야 할 건데?'
과연 월령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싼 조계안이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그는 난각의 대문을 열더니 하늘을 찌르는 피 냄새를 안고 들어왔다.
"그렇게 된다면 태후 마마와 장 부승상은 협심하여 조상의 가법과 효도로 폐하를 짓누를 것이다. 결국 폐하를 이기지는 못한다고 해도 폐하께서 충분히 번거롭고 신경을 많이 쓰도록 할 것이다. 때가 되면 폐하는 집중 공격을 받게 되고 곳곳에서 제약을 받게 될 거야. 십중팔구 처음 등극했을 때의 상태로 되돌아가 권신들에게 제압당할 것이다."
딸각, 딸각, 딸각……!
조계안은 승마화를 신고 있었다. 벽돌을 디디자 무게감 있는 묵직한 소리가 났다.
"전, 전하!"
이반반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땅에 닿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 이반반은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 준비도 없이 바로 무릎을 꿇었다.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황제 몰래 한 일을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조계안은 이반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촛불 아래에서 긴 생머리를 풀어 헤친 월령안이 그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자 그의 눈에는 오직 월령안만 들어왔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사냥감을 만난 사냥꾼처럼 초조함을 안고서 급히 월령안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서 세 걸음가량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눈빛이 살짝 어둡고 표정이 음울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아직 범인을 심문할 때 남은 피 냄새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결코 좋은 냄새가 아니었다.
그가 더 나아가면 틀림없이 월령안이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는 원래 월령안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난각을 지나가며 그녀가 무사한지만 잠깐 들여다보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그는 오자마자 월령안의 방자한 말들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태후라면 어떻게 설 상궁을 처리할 것인가를 떠들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자리를 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인을 뵙습니다.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큰 예를 올렸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조 대인의 변덕스러움에 습관이 되었다.
월령안이 허리를 굽히자 등 뒤로 늘어뜨린 긴 머리가 흘러내렸다. 조계안은 손을 뒤로 하여 뒷짐을 져서 그녀의 긴 머리를 넘겨 주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그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냥 월령안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의 손은 범인의 목을 조이고 말채찍을 잡았으며……. 그의 손은 너무 더러웠다. 그는 월령안의 머리카락에 더러운 냄새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 오늘은 말이 좀 많구나."
"특별히 대인께서 들으시라고 한 말이었어요."
온 사람은 조계안이지 황제가 아니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계안은 그녀의 의중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입을 빌려 황제에게 말씀을 올리려 한다고 대범하게 털어놓았다. 황제가 나서서 태후를 제압하고 태후에게 기사회생할 기회를 주지 못하게 말이다.
월령안은 조금도 내외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녀의 말은 마치 한 갈래의 빛처럼 조계안의 마음속에 비쳐들었다. 그의 속에 있던 음침함과 포악함을 밀어내고 순식간에 그를 치유해 주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월령안, 난 너의 성실함이 너무 좋아."
조계안은 피식 웃었다. 가면 아래 얇은 입술은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 기분이 좋다 해도 조계안의 웃음은 여전히 음침하고 차가우며 거만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그가 과연 정말로 좋아하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척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한쪽에 꿇어앉아 있던 이반반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후회했다. 호기심이 너무 많아 결국 다시 한번 함정을 파 자신을 빠뜨린 것이다.
"저는 대인을 위해 일을 합니다. 물론 대인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려야죠."
조계안이 그녀를 보는 눈빛은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에 흥미를 가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자신을 보는 눈길이 싫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의 눈길을 피했다.
"네 말을 기억하거라! 나에게 너의 날개를 꺾을 기회를 주지 마!"
촛불 아래 드러난 아름다운 옆모습과 그에 따라 늘어뜨린 긴 생머리를 보던 조계안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었다.
조계안의 동작을 알아차린 월령안은 몸이 굳어졌다.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양쪽에 늘어뜨린 손을 가만히 주먹 쥐었다. 손을 들어 조계안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조계안, 정말 괘씸하군!'
월령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조계안의 손이 곧 그녀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고 돌아섰다.
"대인, 혹시……."
월령안은 조계안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손이 닿으려는 찰나 재빨리 손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치 나쁜 일을 저지르고 어른한테 잡힌 아이처럼 손을 등 뒤로 가져가더니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조계안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월령안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조계안은 손을 등 뒤로 하고 몸이 굳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며 감히 월령안을 보지도 못했다.
'그녀가 방금 뭐라고 말했지?'
월령안도 방금 전 조계안의 접촉을 피하려고 아무렇게나 찾았던 구실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잊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핑계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떠보듯이 물었다.
"대인, 태후의 일은……."
조계안의 눈에는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월령안이 그에게 공적인 사무밖에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계안은 가까스로 화를 참고 불쾌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네 뜻대로 될 거다."
"대인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예를 올릴 때도 말투나 몸짓이 홀가분하고 유쾌했다.
조계안의 갑갑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보아하니 월령안은 방금 전 내 행동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군.'
다행히 그는 제때 손을 거두어 월령안의 머리카락을 만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 월령안의 머리카락에 무슨 이상한 냄새라도 묻혔다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 것이다.
조계안은 뒷짐을 진 손을 어색하게 움켜쥐었다가 다시 풀었다.
그는 더 머물렀다가 또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게 될까 두려워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잘 쉬거라. 다른 일은 내게 맡기면 된다."
조계안은 되돌아서 이반반에게 발길질을 했다.
"왜 아직도 꿇고 있느냐. 어서 빨리 가지 못해!"
"네, 네, 네, 전하."
이반반은 재빨리 일어나 탁자 위에 놓인 음식 함을 잊지 않고 들었다. 조계안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그는 급히 월령안과 인사했다.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월령안은 제자리에서 두 사람을 배웅하면서 양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오늘 조계안이 좀 이상한데.'
하지만 조계안은 늘 이상했다. 오늘은 좀 더 이상했지만 별로 그 이유를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잠깐 궁리하다가 곧 내려놓았다.
몸을 돌려 연탑에 누워 있는 육장봉을 바라보며 이반반의 말을 떠올렸다. 손불사가 오늘 밤에는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갈라지고 피가 나는 입술이 생각나 잠깐 망설이다가 그래도 걸어가서 물 한 잔을 따랐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육장봉의 입술을 적시려 했다.
어쩌면 좀 전에 흘렸던 그 눈물이 그녀로 하여금 평온을 되찾게 한 듯싶었다. 아니면 혹시 배가 불러서인가. 그녀는 더는 헛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손가락이 또다시 육장봉의 입술을 스쳐도 이제는 평온하기만 했다.
육장봉의 입술이 촉촉해지자 월령안은 그에게 물을 더 먹이지는 않았다. 손을 내밀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월령안은 이불 깃을 여며 주고 육장봉의 냉담하고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장봉, 여생 동안 우리 각자 잘 지내고 서로 보지 맙시다. 안 되겠어요?"
잠깐 기다렸다가 월령안은 일어나서 일부러 홀가분하게 말했다.
"당신이 거부하지 않으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할게요."
말을 끝내고 월령안은 몸을 돌려 떠나갔다.
등 뒤로 육장봉의 입술이 약간 움직이고 밖에 드러난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월령안은 멀리 가 버려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 *
조계안은 이반반을 데리고 난각에서 나와 한참 동안 걸은 다음에야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이반반을 끌고 가면 월령안과 육장봉은 단둘이 함께 한 공간에 있게 된다.
"어리석었군!"
조계안은 이를 갈며 고개를 돌리고 이반반을 노려봤다.
"쓸모없는 놈."
"전, 전하……!"
이반반은 음식 함을 들고 가슴을 졸이며 조계안을 따라가고 있었다. 조계안이 갑자기 몸을 돌리자 놀라서 하마터면 음식 함을 들고 자빠질 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억울해!'
"육장봉의 친위대에 즉시 전갈을 보내라. 친위대가 입궁해서 육장봉을 직접 돌보라고 해."
조계안은 말을 끝내고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난 정말 닭대가리야!'
육장봉이 심하게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누설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월령안만이 육장봉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육장봉의 친위대가 아니더라도 황궁에서 믿음직한 의원 혹은 내관을 파견하면 되었다.
'아니지. 내관도 역시 남자잖아. 내관이 있으면 월령안이 불편할 거야.'
"믿을 만한 궁녀를 난각에 보내거라. 그 궁녀더러 육장봉을 돌보게 해!"
조계안은 말을 끝내고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능글맞게 웃었다.
"몰래 그 궁녀한테 말해 주거라. 만약 육장봉의 호감을 얻을 수 있으면 그를 따라 황궁에서 나가는 걸 내가 허락한다고!"
"전하, 이, 이래도……. 됩니까?"
이반반은 들고 있던 음식 함을 땅에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