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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27)화 (527/1,004)

527화 어떤 대책이 있으신 겁니까?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절하지도 않았다.

이반반은 이 모습을 보고 떠보듯이 한마디 물었다.

"월 낭자, 태후 마마 쪽에는…… 어떤 대책이 있으신 겁니까?"

월령안이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는데 그도 빙빙 돌려서 말해 미움을 살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을 따돌리고 영복궁에 가서 몰래 옷을 바꿔치기 하는 것 같은 잘못은 평생 한 번이면 족했다.

"무슨 대책이 필요한가요?"

월령안은 아무렇게나 손을 닦고 이반반을 흘겨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태후 마마께서는 이미 자승자박 상태가 아닙니까?"

"……!"

이반반은 눈썹을 찌푸리고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월령안은 손수건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이반반을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설 상궁을 죽여 태후 마마의 분을 풀어 드린다고 했는데 태후 마마께서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폐하께서는 태후 마마께서……."

이반반은 눈을 부릅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오직 큰 잘못을 저질러 감히 남에게 알리지 못하고 찝찝한 데가 있는 사람만이 내막을 아는 사람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 합니다. 태후 마마께서 그렇게 다급하게 설 상궁을 죽이려 하는 것은 폐하께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게 분명합니다. 태후 마마께서 급해 할수록 더욱 제 발이 저려 하는 거로 보이죠."

월령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이반반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기세와 패기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월령안이 위엄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자 이반반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몰려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혔다.

월령안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떠올리고 계속하여 말했다.

"반반은 폐하께서 설 상궁을 죽이겠다고 대답하신 게 진심이라고 생각하세요? 폐하께서 정말 설 상궁을 죽이고 싶고, 정말 아무것도 캐지 않고 싶으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녀와 곽씨 가문과의 관계도 덮어두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월령안은 이반반의 대답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한쪽으로 가서 절로 물을 한 잔 따르고는 느긋하게 말했다.

"설령 폐하께서 애초에는 태후 마마의 일을 알 생각이 없으셨다고 합시다. 하지만 태후 마마께서 급히 사람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한다면 폐하께서는 분명 호기심이 생기실 것입니다. 설 상궁이 도대체 태후 마마의 어떤 일들을 알고 있기에 태후 마마께서 화가 난 나머지 중풍에 걸렸는지 무척 궁금하실 겁니다.

태후 마마께서는 지금 병이 깊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폐하께서는 자책감이 들어 태후 마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설 상궁을 죽여 태후 마마의 화풀이를 해 주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내일, 모레, 명년, 후년에는요? 손불사가 태후 마마의 병을 치료해 태후 마마께서 빨리 회복된다면요?"

월령안은 말투가 경쾌한 것이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이반반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물었다.

"이반반, 말해 보세요. 그때가 되면 폐하께서는 설 상궁을 죽이신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요? 태후마마께서 도대체 사적으로 무슨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해서 그토록 당황해하고 급하게 설 상궁을 죽여 입을 막았을까 궁금해하시지 않을까요?

폐하께서는 혹시 태후 마마께서 숨기려는 일이 자신과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짐작하시지 않을까요? 좀 더 나아가면 혹시 폐하의 생모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월령안은 손에 물잔을 들고 몸을 돌려 탁자 언저리에 허리를 기대더니 탁자를 지지대로 삼았다. 두 발을 되는대로 가볍게 교차시켜 지탱하고 섰다.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것이 제멋대로이면서도 자연스러웠으며 여인 특유의 우아함과 고혹스러움까지 띠고 있었다.

이 자세는 조금도 단정하지 않고 차분하지 못했다. 명문가 귀족 아가씨들은 절대 취하지 않을 자세였다.

명문가 귀족 아가씨들은 서면 서는 것이고 앉으면 앉는 것이었다. 서건 앉건 그녀들은 어떤 물건에도 기대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교양이 없고 예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되었다.

평범한 가문의 아가씨도 감히 이처럼 제 마음대로 탁자에 기대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에게는 월령안이 지니고 있는 자신감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세를 취해도 월령안처럼 고혹스러운 분위기가 없을 것이다.

하루 저녁에 월령안이 드러내는 고혹스러운 분위기를 두 번이나 볼 수 있게 된 이반반은 자신이 행운인 건지 아니면 재수가 없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왠지 목덜미가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반반은 연탑에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대장군을 몰래 훔쳐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군이 깨어나지 않았으니 또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겠군.'

대장군은 깨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위세는 여전했다.

이반반은 월령안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조롱하듯 묻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태후 마마의 이 수는 좋지 못했군요."

하지만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수를 잘못 두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적어도 태후 마마께서는 설 상궁의 일을 빌려 폐하께서 여전히 그분을 존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잖습니까. 그리고 후궁들에게 자신은 여전히 주나라의 존귀하고 유일무이한 태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었죠. 폐하께서는 여전히 태후 마마를 존중하시고 여전히 그분의 말에 따를 것이니 하나같이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에요."

월령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이반반, 잊지 마세요. 태후 마마는 설 상궁의 배신으로 졸도하신 겁니다. 격노하여 자신을 배신한 하인을, 자신을 병나게 한 장본인을 죽이겠다고 하는데 누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어떻게 말해도 태후 마마는 올곧은 성격이시죠."

월령안은 손에 든 미적지근한 물을 한 번에 마시면서 동시에 눈 속의 비웃음을 숨겼다.

같은 일이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 하면 효과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황제가 어떻게 생각할지, 황제 곁의 사람이 그에게 어떻게 말하는지에 달렸다.

황제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반반이 하는 말은 반드시 믿을 것이다.

이반반이 나서서 유도하면 황제는 곧 태후를 의심할 것이다. 그러면 태후가 몸져누워 생겼던 황제의 약간의 죄책감마저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반반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잠깐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월 낭자, 당신이 태후 마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요?"

월령안은 똑바로 서서 빈 잔을 탁자 위에 놓고 뒤돌아서서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뭐……."

월령안은 순간 멈칫했다가 티가 나지 않게 창턱을 힐끗 스쳐보았다. 이윽고 크게 웃으며 우쭐거리는 듯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만약 태후 마마라면……."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숙연한 표정으로 이반반을 바라보다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죽었어요!"

월령안은 갑자기 안색이 바뀌고 온몸의 기세가 거세지더니 거만한 표정에 냉담하고 소원한 눈빛을 하였다.

이반반은 아무 경계도 하지 않다가 그녀의 강대한 기세에 놀라서 흠칫 떨었다.

"소인은……."

월령안은 못 들은 척하고 차갑고 도도하게 질책했다.

"너는 설 상궁이 내 사람이란 걸 알면서 아무 말도 없이 사람을 잡아들였어. 그것은 네가 내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는 뜻이지. 네가 내 체면을 봐주지 않은 건, 곧 폐하께서 내 체면을 봐주시지 않는 것이다. 난 모든 이들 앞에서 너를 때려죽여 후궁을 제압하고 폐하께도 경종을 울릴 것이다. 설령 나를 배신한 이라 하더라도 내 사람은 내가 처리할 것이다."

월령안은 표정이 엄숙하고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의 그녀에게는 존귀한 기품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반반은 일순간 월령안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태후의 신분에 대입해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말을 물어본 게 조금은 후회되었다. 기세가 강한 월령안 앞에서 더듬거리며 어떻게 말을 받아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망설이는 순간, 월령안은 갑자기 온몸의 기세를 거둬들였다. 일순간에 다시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굴었다. 방금 전 기세등등하고 거만하게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싶었다.

이반반이 그녀의 안면 바꾸는 재주를 미처 감탄하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애석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후 마마께서는 후궁에 너무 오래 계셨어요. 눈에는 오직 후궁밖에 없고 전조(前朝 - 전대의 왕조)가 없군요. 자신이 황후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태후요, 폐하의 어머니라는 것을 잊은 거예요. 그분의 권력과 지위는 폐하께서 부여하신 게 아니라 신분에 의해 부여된 거예요.

황위에 누가 앉든 그분께서는 여전히 태후이십니다. 그분이 나라를 배신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 아무도 그분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친정을 위해 폐하와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게 참을 필요도, 폐하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 볼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월령안은 원래 이반반의 물음에 대답할 의향이 없었다. 이반반은 이미 예전의 이반반이 아니었다.

이반반은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감히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설 상궁을 심문하여 태후의 약점을 그녀에게 알려 주려 했다. 그러니 지금 그녀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황제에게 이르지는 않을 터였다.

만약 이반반이 말을 전하면 황제는 반드시 월령안이 왜 갑자기 설 상궁의 일을 꺼냈는지를 물을 것이다.

황제가 물으면 이반반은 황제의 명령을 미리 누설하고 게다가 황제를 속이고 설 상궁을 심문한 일까지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반반같이 세상 물정에 훤한 사람이 어찌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겠는가.그녀가 말을 한다 해도 황제에게 말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당연히 그녀는 이반반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제삼자가 들으면 이반반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황제는 반드시 그녀가 한 말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과연 그녀가 일부러 뜸을 들이는 순간, 창호지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알고 싶은 게 분명하지만 참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뭔가요?"

이반반도 원래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이 조정의 일을 언급하자 월령안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이 알아채고 저도 모르게 엄숙해졌다.

"조정의 대인들과 관계가 있습니까?"

지금은 황제와 대신들이 서로 다투는 결정적인 시기였다.

정국을 돌보는 사람은 주의력을 중차대한 일에 돌리고 온통 조정의 큰일에만 정력을 쏟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일부 세세한 부분을 홀시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홀대하게 된다.

이를테면 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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