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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24)화 (524/1,004)

524화 저에게 설명 좀 해 줄래요?

조계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이 정신을 잃었는 데도 옆에서 지키지 않고 한쪽에 가서 물을 부어 마시는 것을 보자 그의 온몸의 음울한 기운이 삽시에 사라졌다. 그느 부잣집 도련님처럼 손불사를 흘겨보고는 말했다.

"됐다. 보겠으면 봐. 내가 또 대범하거든. 당신 같은 늙은이하고는 따지지 않지."

"너……!"

손불사는 화가 난 나머지 웃고 말았다.

"내가 전생에는 돌팔이 의사였던 게 분명해. 아마 사람도 죽였을 거야!"

'그러니 이번 생에는 신의가 되어 울화통이 터져 죽지.'

조계안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손 돌팔이, 여기서 육장봉을 잘 지키고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조계안은 손불사를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갑자기 떠나는 것을 보자 그가 옷과 물을 가져다준다던 일을 잊은 건 아닌지 한번 귀띔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누구도 난각으로 들이지 말라던 황제의 명령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마음속으로 조계안이 자신이 했던 말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도 조계안은 월령안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반 시진이 지난 뒤 이반반이 그녀에게 깨끗한 옷과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었다.

"월 낭자, 이건 조왕 전하께서 소인에게 명하여 보낸 것입니다. 음식은 수라방 사람들이 아직 만들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이반반은 월령안에게 예를 올리며 비위를 맞췄다.

"월 낭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옷과 음식을 가져다드려야 한다는 것을 그만 잊어서 힘들게 했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소인이 꼭 제때 더운 물과 옷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절대 배를 곯거나 갈증을 느끼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 외에 월 낭자께서 무슨 분부가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꼭 요구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이반반의 얼굴에는 눈에 확 띄는 따귀 자국이 나 있었다. 새빨갛고 부기가 채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방금 맞은 것이 분명했다.

황궁에서 감히 이반반의 따귀를 칠 사람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었다. 월령안은 손바닥 자국의 크기로 이반반의 얼굴에 난 따귀 자국은 조계안이 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조계안은 그녀 대신 화풀이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에게 원한을 불러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녀는 조계안에게 감사했다.

조계안의 못된 성격이 어쩌다 제대로 쓰인 것이다.

월령안은 이반반의 얼굴에 난 따귀 자국을 못 본 척하고 예의를 차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월령안이 목욕하게 되자 이반반과 손불사는 모두 피해 밖으로 나갔다. 정신을 잃은 육장봉만 난각에 남겨졌다.

월령안은 깨끗한 옷을 챙겨 들고 난각의 내실로 들어갔다. 대충 목욕을 해 몸을 깨끗이 했다.

그녀도 그렇게 빨리 씻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피곤함을 씻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문밖에 누워 있는 육장봉을 떠올리자 몹시 불편해 그럴 수가 없었다.

목욕을 마친 월령안은 이반반이 가져온 보자기를 열었다. 보자기 속의 옷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그녀의 옷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 번도 내력이 불분명한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괜히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 옷감에 허튼짓을 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녀는 미인방을 경영하면서 수백 가지 옷감을 자세히 연구했었다. 어떤 옷감은 보기만 하고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 황제에게 진언하여 상의국의 설 상궁을 잡아들이게 했다. 거기에 이 옷은 이반반이 직접 가져왔으니 그동안 다른 누군가가 무슨 짓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 상궁은 상의국을 수십 년간 관리했다. 상의국에는 틀림없이 그녀의 심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이반반이 그녀가 전혀 보지 못했던 옷을 가져왔다. 그녀는 이 옷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옷을 내려놓고 본래의 피가 묻은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보따리를 들고 나갔다.

월령안은 나가서 우선 먼저 육장봉이 혹시 깨지 않았나 살펴보았다. 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이 목욕하는 동안 그가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었음을 확인하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가벼운 헛기침을 했다. 마음속 약간의 불편함을 억누르고 탁자 위에 종을 흔들었다.

손불사와 이반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왔다. 두 사람은 월령안이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을 보고 모두 의아해했다.

"꼬마 령안, 넌 왜 아직도 이 옷을 입고 있어. 더럽지도 않느냐?"

"월 낭자, 옷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반반은 금방 조계안에게 얻어맞아 감히 월령안 앞에서 방자하게 굴지 못했다. 허리를 구부린 채 예의를 갖춰 물었다.

"보자기 안의 옷은 누가 준 건가요?"

월령안은 탁자 위에 버려진 보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반반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옥죽 낭자가 준 것입니다."

"옥죽이라고요?"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제 옷이 아니에요. 전 이 옷들을 본 적이 없어요. 옥죽이 어떻게 내게 없던 옷들을 당신한테 줄 수 있나요? 이 옷은 어디서 난 거예요?"

이반반은 말문이 막혔다.

'끝장났구나!'

그는 월령안 몰래 영복궁으로 가서 옷 바꿔치기를 하며 함정을 팠다. 그런데 이 함정에 영복궁 사람이 빠진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빠진 것이다.

이반반은 월령안의 질문을 듣자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저도 모르게 연탑에 누워 있는 육장봉을 힐끗 보았다.

그는 육 대장군과 원진살(元嗔煞)이 틀림없었다. 육 대장군과 관련된 일이라면 재수 없게 당하는 것은 항상 그였다.

이반반은 육장봉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방금 전에 따귀를 맞은 것을 봐서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를 빌어야 할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 수 있는 데까지 끄는 게 좋을까.

먼저 잘못을 인정하면 곤장이 부러지고,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면 포상이 끊이지 않는 법.

이반반은 정말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

육 대장군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떠들썩하게 십여 대의 마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입궁했다. 이반반은 시간을 아무리 끌어도 내일 날이 저물 때까지 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적이 너무 강한 것은 아니고 우리 편이 너무 방자했기 때문이었다.

육 대장군은 그 일을 너무 양심 없게 처리함으로써 적지 않은 사람을 함정에 빠뜨렸다.

그를 함정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황제도 함정에 빠뜨렸다.

육 대장군이 물건을 가지고 입궁한 그날, 밖에서는 황제가 가난해 신하의 구제를 받아 살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튿날, 관리가 황제에게 상주서를 올려 완곡하게 황제를 탄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략적인 뜻은 다음과 같았다.

폐하, 저희는 폐하께서 가난하시고 돈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모자란다고 해도 신하에게 돈을 요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남의 것을 가지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수 없고 할 말도 못하게 됩니다. 신하의 돈을 가졌으니 그 신하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주겠습니까 안 주겠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는 국고가 있습니다. 먹고 마실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신데 돈은 어디에 쓰시렵니까?

별원을 지을 겁니까 아니면 황궁을 수리할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느 비빈이 폐하의 환심을 사서 그 비에게 후한 상을 내리시려는 겁니까?

폐하, 폐하께서는 제왕이시고 모든 백성의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근검절약하셔야 합니다. 사치하고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일부러 빈 책자를 찾아 그 관리의 이름을 적어 놓고 기회를 찾아 화풀이하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튿날 또 비슷한 상주서가 열몇 부나 올라왔다.

황제는 더 이상 화를 낼 기운이 없었다. 그냥 그들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가 한 권 가득 채우면 태워 버리려고 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많으면 처벌받지 않고 언관(言官)이 황제를 탄핵하는 것은 모두 조상이 만든 규칙이었다. 그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반반은 그때 당시 황제의 얼굴빛을 떠올리고 다시 지금 자신의 처지까지 떠올리자 육장봉을 보는 눈빛이 더욱 애처로웠다.

'대장군은 정말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하시는군.'

월령안은 이반반의 눈빛이 흔들리고 수시로 육장봉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곧 알아차렸다.

그녀는 옥죽이 잘못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보자기를 들어 이반반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었으나 눈빛은 몹시 차가웠다.

"이반반, 저에게 설명 좀 해 줄래요?"

이반반은 잠깐 멍하게 있다가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끝장이야!'

그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더는 속일 수가 없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이반반은 무릎을 꿇었다. 육장봉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울며불며 하소연했다.

"월 낭자, 이 일은…… 소인이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명에 빠라 일을 한 것뿐입니다. 대장군께서 소인에게 명했습니다. 소인은 다만 대장군의 명령대로 한 것뿐입니다!"

이반반은 더없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육 대장군은 정신을 잃은 상태라 그의 말을 끊어 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변명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되었다.

"이반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일어나서 얘기하세요."

월령안은 보자기를 내버려 두고 다가가서 이반반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쨌든 황제의 가장 가까운 자리를 지키는 내시 총관 이반반이었다. 육장봉은 발로 찰 수 있고 조계안은 때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이반반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되었다.

"월 낭자, 일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이반반은 감히 월령안더러 부축해 달라고 하지 못했다. 월령안이 부축하는 척하자 그는 곧 일어섰다.

지금 월령안의 신분으로는 그를 무릎 꿇게 할 자격이 없었다. 그가 방금 무릎을 꿇은 것은 다만 육 대장군이 깨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사정을 좀 해 주기를 바라서였다. 육 대장군이 그에게 앙심을 품지 못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그는 조왕을 원망하지 않았다. 조왕이 그를 자기 편으로 생각하기에 직접 손을 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한마디 분부해도 그는 거의 반죽음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조왕이 다음에는 얼굴 아닌 다른 곳을 때려 주기를 바랐다. 어쨌든 그는 황제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시는 내시 총관이었다. 그 역시 체면이란 게 있었다.

이반반은 무릎까지 꿇은 마당에 가련한 척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모습으로 대장군이 어떻게 황제와 이야기하고 또 어떻게 그를 위협했는가를 모두 월령안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그가 월령안을 따돌리고 기회를 틈타 옷을 바꾼 일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그가 대장군의 위협을 받고 감히 대장군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얘기했다.

이반반은 말을 마친 다음 한마디 덧붙였다.

"월 낭자, 이 일은 폐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소인은 정말로 대장군의 명령대로 한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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