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화 내가 여기 있소
"별일 없겠죠?"
월령안은 몰래 손을 꼭 잡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마비산 한 그릇의 약효만 따져도 오늘 깨어나기 어려운 상태였다.
손불사는 얼굴을 돌리고 월령안을 외면했다.
조계안은 코웃음을 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은 무슨 월! 육장봉, 얼른 월령안의 손을 놓아 줘. 너 계속 잡고 있다간 월령안이 네 손에잡힌 상태로 죽을 거다."
'이 짐승 같은 자식은 계속 월령안 앞에서 가련하게 보이려고 야단이군. 정말 철면피야!'
육장봉의 눈에는 조계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긴장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또 손깍지를 낀 두 사람의 손을 보더니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괜찮소."
그러고 나서 육장봉은 천천히 월령안의 손을 놓아 주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쉬운 듯, 무기력한 듯 손깍지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월령안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월령안은 보통 복손이라고 부르는 손을 가졌다. 손가락이 짧지는 않았지만 토실토실해서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 손깍지를 풀면서 육장봉의 손가락은 불가피하게 월령안의 손가락을 스치게 되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바라보면서 손가락 사이의 촉감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며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구부렸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 지금 뭐 하는 거야? 좀 빨리 하면 안 되나? 이러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내가 여기 있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몸이 떨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힘겹게 입을 열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막 깨어난 대장군은 정신이 아직 혼미하여 평소의 명석함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의 도도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마음 깊은 곳의 진실한 갈망에 따라 행동했다. 몰래 힘을 더해 마지막 순간에 월령안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으며 소리 없이 그녀를 위로했다.
월령안의 손은 희고 부드러우며 손가락과 손바닥 모두 토실토실했다. 손에 잡고 있으면 마치 최고의 백옥을 잡은 듯 촉감이 좋았다.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육장봉은 이 점을 알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손가락을 스치며 손바닥에 닿았을 때, 그의 손가락에는 따뜻하고 섬세한 촉감이 전해졌다. 육장봉은 그제야 월령안의 손만 잡고 있어도 기쁨으로 벅찰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월령안의 손을 잡고 놓기 싫었다. 미련이 남은 듯이 그녀의 손바닥을 쓰다듬었다. 가슴은 만족감으로 차 넘쳤다.
육장봉은 만족했다. 하지만 그에게 손바닥을 맡긴 월령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귀 끝은 저도 모르게 빨갛게 달아올랐고 마음속에는 말 못 할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녀는 당장 육장봉의 손을 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육장봉에게 잡힌 손은 마치 그녀의 손이 아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전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처음으로 육장봉에게 손을 잡힌 게 아니었다. 그녀는 전에도 육장봉과 반나절 가까이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왜 전에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북하고 불편해진 것일까.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에는 잠깐의 망연함이 스쳐 지나갔다.
육장봉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렸다. 두 눈은 옅은 온기를 띠고 있어서 평소의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월령안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조계안은 한쪽에 서서 육장봉과 월령안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보면서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 두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손을 놓기가 이렇게 어려운 건가?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잡고 있지? 좋아, 손을 놓지 않은 것까지는 괜찮다 치자. 근데 이건 뭐야. 서로를 바라보기까지 해?!'
월령안에게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눈빛이 흩어지고 초점이 없는 것이 분명 무척 피곤한 모양이었다. 반응이 늦고 좀 멍청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정말 너무했다.
두 눈에 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육장봉이 중상을 입은 게 아니라 최음제에 당한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조계안은 화가 나서 눈알이 새빨개졌다. 크게 헛기침을 하고 육장봉을 무섭게 노려봤다.
"육장봉, 적당히 하자. 황성사에 아직 할 일이 태산이야. 난 너하고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조계안의 기침은 마치 최면을 깨는 신호와도 같았다. 월령안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 자신의 반응을 떠올리자 괴로운 나머지 화들짝 한 걸음 물러섰다.
육장봉은 비록 월령안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힘을 주지 않았다. 월령안이 뒤로 물러서면서 두 사람이 서로 잡고 있던 손은 갑자기 떨어졌다.
아무 조짐도 없었기에 육장봉은 손바닥이 텅 비고 온기마저도 갑자기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 같은 공허함은 마치 모든 것을 잃은 후 어찌할 방법이 없는 느낌이었다. 이는 육장봉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망쳐 버리고만 싶었다.
하필이면 그는 지금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눈 속의 따뜻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너는 이제 꺼져라."
"네가 가라고 하면 내가 가야 해? 네가 뭔데!"
육장봉이 불쾌해하는 것을 보자 조계안은 더욱 언짢아졌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그만두고 육장봉과 더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육장봉에게 어깃장을 놓아도 별문제가 없었다.
'육장봉, 그럴 수 있으면 일어나서 날 한 대 쳐 보든지.'
"내가 뭔지는 곧 알게 해 주마."
육장봉은 목소리가 매우 약했지만 말 속의 살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 그것참 기대되네!"
조계안은 거만하게 육장봉을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하고 월령안에게 말했다.
"월령안, 잠깐 앉아서 쉬어. 내가 사람을 불러 뜨거운 물과 깨끗한 옷을 보내올게. 그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수라방에 말해 가져오라고 하마."
"감사합니다. 대인, 전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습니다."
월령안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겉으로는 좀 전의 난처함과 불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일부러 육장봉을 보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육장봉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너와 나 사이에 감사라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누군가와는 다르거든. 너를 착취하고 괴롭힐 줄만 알고 일을 시키면서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주지 않고 하지는 않지. 심지어 너의 생사마저도 관계치 않고 자기만 편하면 되고 자기 사리사욕만 채우고 그러지는 않아."
조계안은 이 말들을 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고 눈꼬리로 육장봉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육장봉이 화가 치밀어서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자 조계안은 고소해져서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육장봉이 불쾌해하는 게 그는 기뻤다.
그때 조계안은 기뻐했지만 손불사는 당황했다.
손불사는 육장봉의 이마에 꽂은 금침이 갑자기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을 보고 어쩔 바를 몰랐다.
그는 육장봉의 어깨를 한사코 눌렀다. 속세 밖 고수의 모습 같은 건 팽개치고 울며불며 애원했다.
"대장군! 이렇게 빌게. 제발 맘대로 움직이지 마. 화내지도 마! 자네가 죽는 건 괜찮아. 근데 죽을 땐 죽더라도 이 손불사의 명성을 떨어뜨려서는 안 되지."
하지만 소용없었다.
육장봉은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수리의 금침은 여전히 달달 떨리며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손불사는 급한 나머지 월령안에게 소리쳤다.
"월령안, 월령안…… 어서 와. 빨리 와서 달래. 화내지 말라고 해. 어이구, 내 금침이 당장 튕겨 나올 거 같다고! 월령안,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와……! 사고가 난다니까."
월령안은 잠깐 멍해 있다가 머리보다 발이 먼저 반응했다. 손불사의 재촉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육장봉의 어깨를 눌렀다.
"의원의 말을 들으세요. 움직이면 안 돼요!"
탁!
미친 듯이 떨리며 당장 튕겨 나올 것만 같던 금침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두 눈은 어쩔 수 없이 감겼다. 혈색이 전혀 없는 입술이 가볍게 움직였다.
"좋소. 네가 듣지. ……의 말을."
육장봉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가벼웠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묵음이 되었다. 월령안과 손불사는 그의 바로 곁에 있었다.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그가 말한 것이 의사의 말을 듣겠다는 건지 아니면 부인의 말을 듣겠다는 건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육장봉은 다시 한번 까무러쳤다.
난각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손불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모든 힘을 잃은 듯 어깨가 축 처지고 등이 구부러졌으며 기가 죽어 있었다.
하지만 기가 꺾인 지 삼 초도 안 돼, 손불사는 낑낑거리며 일어서더니 마뜩잖은 표정으로 육장봉 이마의 금침을 뽑았다.
"자네같이 골치 아픈 환자는 처음이야. 다음에 또 병을 봐주면 내가 성을 갈 테다."
조계안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월령안을 힐끗 보았다. 그녀가 피곤한 표정으로 연탑에 기대어 있자 눈길을 내려 눈 속의 불쾌감을 감추었다. 아무 눈치도 못 보아낸 것처럼 생각이 없는 듯이 우스개를 한마디 했다.
"손 신의, 지금부터 무슨 성씨로 고칠지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군."
손불사는 그에게 눈을 희번덕거려 보이고는 한마디 했다.
"너도 무슨 좋은 물건이 아니야. 꼬마 령안이한테 왜 하필이면 너희 같은 놈들이 들러붙었는지. 정말 재수가 없단 말이야!"
월령안은 아차 싶었다.
과연 조계안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더니 음침하게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했지? 내가 방금 전에 제대로 듣지 못했어. 다시 말해 봐."
손불사는 조계안처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농담을 하다가 일 초 만에 안색을 바꾸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놀란 나머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조계안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 무슨 조왕인지 뭔지 하는 놈 어디에 병이 있는 거 아니야?'
월령안은 걱정스레 손불사를 힐끗 보고는 일어서서 그를 위해 한마디 하려 했다. 하지만 조계안의 이도 저도 먹히지 않는 성격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릴수록 조계안이 더 날뛰고 기회를 틈타 그녀에게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할까 두려웠다.
손불사의 의술은 빼어났다. 그리고 육장봉은 아직 그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계안이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손불사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손불사에게 어깃장을 놓는 정도일 것이다.
손불사가 무슨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조금 놀라도 큰일은 없을 터였다.
월령안은 눈길을 거두고 한쪽으로 가서 스스로 마실 물을 따랐다.
그녀는 목이 말라 아플 정도였다.
"보긴 뭘 봐. 다시 보면 눈알을 파내 버릴 거다."
조계안은 사납게 눈을 후벼 파는 동작을 해 보였다. 손불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했다. 두 걸음 물러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창피함을 느꼈다.
천하제일 신의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손불사는 마음속의 두려움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다시 속세 밖 고수의 기세를 드러내며 도로 노려보았다.
"그래, 너를 봤다. 왜? 날 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