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기다려라, 곧 너희들의 차례니!
황제는 어의들이 증세를 과장해 일 할이면 삼 할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태후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내관의 말에는 무척 놀랐다.
"가자. 송 원정을 불러 짐과 함께 가자고 하거라."
황제가 상주서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발걸음이 크고 빠른 것이 정말로 태후를 걱정하는 게 틀림없었다.
황제 곁의 작은 내관이 급히 난각으로 가서 문설주에 기대 잠든 송 원정을 간절히 깨웠다.
"송 원정, 태후 마마께서 쓰러지셨습니다. 폐하께서 어서 오시라고 합니다."
"태후 마마? 태후 마마는 나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 태후 마마는 주 어의만 부른다고."
송 원정은 한창 달게 자고 있었다. 몸은 깨었으나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폐하께서 직접 분부하셨습니다. 어서 빨리 다녀오시죠."
어린 내관은 급한 나머지 송 원정을 잡아끌었다.
"송 원정, 어서 서둘러 주세요. 만약 태후 마마께서 정말 일이 생기면 저나 원정이나 모두 끝장이라고요."
"급하게 굴지 말아라……. 곧 따라가겠다."
태후의 건강에 관련된 일이라 송 원정도 차마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발치에 놓인 의료함을 들고 내관을 따라 태후의 궁전으로 날 듯이 달려갔다.
난각 밖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금군이 지키며 불필요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금군은 다른 사람을 막을 수 있어도 난각을 제집 뒷문 나들듯이 제멋대로 나드는 조계안을 막을 수는 없었다.
* * *
조계안은 오늘 온종일 황성사에 있었다. 드디어 황성사 범인을 절반이나 정리했다.
그중에는 월령안을 고소하고 뇌물수수죄를 진 정서 장군도 있었다.
조계안은 진작에 정서를 심문하고 그의 자백을 받아 내었다. 다만 정서가 몹시 지독해 자신이 저지른 죄를 거리낌 없이 자백하는 한편 모든 죄를 혼자 끌어안았다. 한사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장부를 내놓아도 정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장부가 가짜라고 단언하며 참가한 사람이 없고 모든 돈은 혼자서 횡령하고 혼자서 모두 써 버렸다고 했다.
물론 조계안은 정서의 허튼소리를 믿지 않았다. 정서의 입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장부에 이름이 있는 관리를 심문했다.
그 장부에 기록된 이는 모두 사품, 오품, 육품의 하급 관리들이고 유일한 삼품 관리마저 아무 실권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계안은 정서의 이 육부와 결탁한 횡령 사건에 관직이 더 높고 권력이 더 큰 사람이 참가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도로 육부의 관리를 연합하여 함께 횡령할 수 없었다.
조계안은 장부에 기록된 관리들을 모두 황성사에 잡아들였다.
그 관리들은 정서처럼 강경하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는 것이 별반 없었다. 그들은 정서만 알고 정서 위에 더 큰 인물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큰 인물이 누구인지, 한 명인지 아니면 두 명인지조차 몰랐다.
기타 참가자들은 모르고, 내막을 아는 정서는 알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모든 일을 자기가 떠안았다. 새로운 증거를 찾지 못하면 이 사건은 정서를 심리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정서 사건은 황성사가 재가동되는 신호이자 황성사가 다시 백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다음 첫 번째 사건이었다. 조계안은 이 사건을 졸속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위에게 정서를 계속해서 심문하라고 명한 후, 정서 가문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
며칠 동안 조사했지만 여전히 아무 진전이 없었다. 조계안도 이제는 조금 귀찮아졌다.
그의 수중에는 정서 사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서 사건에 드는 시간과 정력이 많아지다 보니 다른 사건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예부 시랑이 조회에서 자신의 아들이 불구가 된 일을 가지고 월령안에게 구정물을 뒤집어씌우면서 알게 모르게 그와 연관 지었다 한다.
또한 영녕후는 차남과 하인을 포박해 스스로 황궁에 찾아 들어가 황제에게 죄를 청하는 등 대공무사(大公無私 - 공적인 일에 개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음을 뜻함)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황제에게 아들을 불구로 만든 사람의 신분이 고귀한 것을 알고 있으며 감히 자기 아들을 위해 나서지는 못하지만 충성스러운 자신을 굽어보아 영녕후부를 놓아 달라고 사정하는 짓이었다.
모든 이들이 부잣집 도련님들을 불구로 만든 사람이 조계안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비록 그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화가 났다.
육장봉이 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영녕후, 예부 시랑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들은 이 조계안이 호락호락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구리파의 첩자 몇 명이 죽고 자백서가 망가졌다고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기다려라. 정서 사건을 마무리하면 곧 너희들을 처리할 테니!'
조계안은 즉시 사위를 거느리고 가서 정서의 재산을 몰수했다. 정서 가문 모든 사람들, 시집간 여식과 갓 걸음마를 뗀 막내아들까지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황성사로 끌고 갔다.
황성사는 잘못을 저지른 관리들만 처리하고 잡아들였다. 그들의 가족을 잡아들이지는 않았다.
정서 가문은 첫 사례였다. 하지만 일단 선례가 생겼으니 이제 정서 가문의 일은 마지막 사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계안은 정서 가문의 구성원을 모두 수감하게 되면 어사와 문관 들이 반발할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날이 밝기 전에, 그들이 입궁해 황제를 만나기 전에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 사건은 대충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정서를 심리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조계안은 결사의 각오로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정서 저택을 조사하여 몰수했다.
그가 정씨 가문 사람들을 가두자마자 부하들이 와서 보고했다. 북요인들이 성문 앞에서 사단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육 대장군이 말을 타고 출성했다고 했다.
조계안은 육장봉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를 알고 있었다.
육장봉이 지금 성문 입구에 가면 기필코 북요인들과 맞붙게 될 것이다.
조계안은 육장봉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금방 정서 저택을 압수했기에 오후와 저녁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사람을 보내 육장봉의 행적을 지켜보게 했다.
저녁 무렵에도 조계안은 정서 가문을 수색하고 있었다. 부하가 와서 육장봉이 성문 입구에서 야율융진을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만들었다고 보고하자 한동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육장봉은 여전히 육장봉이었다. 그 정도로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방자하여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야율융진을 불구로 만든 다음 황궁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조계안은 이 일을 접어 두기로 했다.
손불사가 황궁에 있었다. 육장봉이 황궁으로 돌아가면 설령 상처를 더 크게 입었어도 목숨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조계안은 사람을 거느리고 정서 저택의 작은 틈새마저도 놓치지 않고 모두 한번 뒤졌다. 그러고도 결국 정서의 후처가 서방질하다 남겨 놓은 배두렁이만 찾아내고 말았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온 조계안은 화가 치민 나머지 정서 가문의 사람들을 심문하기로 했다.
정서 저택에서 금방 나온 조계안이 마음속의 울적함을 토해내기도 전에 부하가 와서 보고했다. 황궁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월령안이 갑자기 난각에서 쓰러졌으며 생명의 위험이 있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황제는 그녀를 위해 난각을 비우게 했다고 했다. 육 대장군은 더구나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줄곧 난각에서 월령안이 갑자기 죽을까 지켜본다고 했다.
조계안은 이 소식을 접하자 당황하면서도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월령안은 멀쩡했는데 갑자기 쓰러지다니. 그것도 생명이 위험하다고.'
월령안과 육장봉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생명에 위험이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 자신이 중상을 입은 줄 알면서도 우쭐대며 성문 앞에 가서 북요인들과 싸운 육장봉이지 월령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가 두려웠다.
월령안은 입궁하는 첫날, 황제의 암살 시도를 맞닥뜨렸다. 그녀가 또 재수 없게 황형이 암살당하는 상황에 부딪혀 봉변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조계안은 정서 가문 사람을 심문하러 갈 겨를도 없이 즉시 말 머리를 돌려 황궁으로 갔다.
황궁에 도착한 후 조계안은 말이 멈추기도 전에 몸을 날려 뛰어내리더니 곧장 난각으로 달려갔다.
도중 금군이 앞으로 나아가 막으려 했다. 하지만 금군이 접근하기도 전에 조계안은 한발 앞서 초조하게 금군을 꺼지라고 길을 막지 말라고 사납게 소리쳤다.
그 말투와 기세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했다. 금군은 놀라 벌벌 떨며 멀리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뒤쪽의 동료들에게 조왕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귀띔해 주었다.
전전(前殿)의 금군은 조계안을 감히 막을 수도 없고, 막지도 못했다. 난각 밖을 지키는 금군도 온몸으로 음침한 기운을 뿜어내는 조왕 전하를 감히 막지 못했다. 눈을 뻔히 뜨고 조계안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난각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탕!
그런 소리와 함께 조계안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월령안은 손이 육장봉에게 꽉 잡혀 그의 곁에만 앉아 있을 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송 원정이 떠나간 후 그녀는 땅바닥에 앉아 연탑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피곤했다. 연탑에 기대어 흐리멍덩하게 잠이 들었다.
갑자기 굉음이 들리자 그녀는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뛰쳐 일어날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뛰쳐 일어나기 전에 가면을 쓰고 온몸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기운을 뿜어내는 조계안이 그녀 앞에 달려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월령안, 너 괜……."
월령안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소리를 내면서 조계안을 재빨리 제지했다.
조계안은 워낙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었다. 좀 전에는 월령안을 걱정하다 보니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 월령안이 무사한 것을 보자 곧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게 되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스로 소리를 죽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
조계안은 두 사람의 손깍지를 낀 손을 발견하고 순간 음울해졌다.
'육장봉 이 얍삽한 놈은 아픈 상태에서도 월령안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잊지 않다니.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다. 이건 완전 짐승이잖아. 피 냄새를 맡으면 물고 늘어지는! 화 나네!
난 왜 그때 상처가 심했을 때 그걸 기회로 삼아 월령안에게 엉겨 붙지 않았지? 한 걸음도 떨어지지 말고 지켜 달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월령안은 일어서서 가벼운 목소리로 해명했다.
"대장군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손 신의는 대장군께서 크게 다치셔서 생명에 위험이 있다고 했어요. 오늘 밤은 정말 중요하다고요. 대장군께서 오늘 밤을 넘기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가 아니었다. 손불사의 서투른 말과 과장된 표정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