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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19)화 (519/1,004)

519화 장봉이를 잘 보살피거라

이것은 설옥고보다 훨씬 더 좋은 물건이었다.

그녀는 노인이 입궁한 다음에도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이런 좋은 물건을 노인을 위해 준비해 두고 싶었다. 그리고 수 오라버니도 필요할 것이다.

육장봉은 수횡천과 접전을 펼쳤다. 육장봉의 상처가 이렇게 중하니 수횡천의 부상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권력이 있고 손 신의가 옆에 있으니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해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횡천은 달랐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녀는 수횡천이 청하현에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가 집을 나설 때 돈을 얼마 챙겨 주지 못했었다. 다쳤다 해도 의원을 찾을 돈이나 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최일. 최일은 그처럼 중요한 옥패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최일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단시일 내에 갚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표시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옥패를 돌려줄 때 당연히 후한 예물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인 예물은 그녀의 성의를 보여 주기 어려웠다. 오직 손불사 수중의 범상치 않은 연고만이 최일에게 줄 수 있는 예물로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

월령안 눈 속의 갈망은 마치 실체라도 있는 듯해서 손불사는 그녀의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급히 손에 쥔 연고를 감추었다.

"보지 마. 이건 한 병밖에 없어. 너한테 주지 않을 거다."

"손 신의, 먼저 육장봉의 상처를 꿰매세요."

월령안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제를 힐끗 보고 마음속의 갈망을 억눌렀다.

지금은 손불사와 거래를 논할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손불사가 한 병밖에 없다고 한 얘기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먼저 돈을 지불하고 손불사더러 만들게 하면 되었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손불사 수중의 약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손불사는 갑자기 늑대의 목표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손불사는 마음속의 불안을 가까스로 짓눌렀다. 이윽고 육장봉의 상처에 더 귀한 설옥고를 두껍게 바른 다음 상처를 싸맸다.

손불사는 상처를 싸매고 월령안에게 신신당부했다.

"지금은 괜찮아. 하지만 오늘 밤이 고비이니 네가 여기서 지켜 줘. 기억해 둬. 사흘 동안 물도 먹을 것도 줘서는 안 돼. 갈증이 심하다고 하면 손가락에 물을 묻혀 입술을 적셔 주기만 해. 그 외에는, 사흘 동안 움직일 수 없으니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어. 그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네가 방법을 생각해야 해."

월령안은 눈을 부릅뜨고 손불사를 지켜보았다.

'손불사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건가?'

하지만 황제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손 신의, 그럼 이제 장봉이는 무사하다는 얘기인가? 생명에도 지장이 없는 것이냐?"

"폐하의 기운이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치료가 잘 됐습니다. 하지만 오늘 육 대장군을 치료한 것이 저였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육 대장군은 정말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를 제외하고 누구도 감히 손도 대지 못할 겁니다."

손불사는 스스로 두어 마디 칭찬하고 적정선에서 끝냈다. 그러고는 엄숙하게 속세를 떠난 고수의 모습을 유지했다.

황제에게는 그의 이런 수단이 먹혔다.

그는 손불사에게 읍을 했다.

"손 신의 대단하군. 장봉이 깨어나면 짐은 반드시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폐하 천만의 말씀입니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저희 의원의 본분입니다."

손불사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몰래 기뻐했다.

태의서의 그 돌팔이 의원들은 의술은 보잘것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데는 정말 으뜸가는 고수였다. 그들은 황제의 반응을 정확히 맞췄다.

오늘 그는 육장봉에게서 구겼던 체면을 가까스로 되찾았다고 할 수 있었다.

손불사의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는 눈길을 돌리다가 월령안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마치 '당신의 잔머리는 날 못 속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동자와 마주치고 흠칫 떨고 말았다.

'어떻게 이 요물을 잊었지!'

손불사는 속세 밖 고수처럼 거드름을 피우던 것을 그만두고 급히 읍했다.

"폐하, 환자를 돌보는 일에는 송씨가 저보다 낫습니다. 나머지는 송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서 좀 전 대장군을 치료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더니 더 이상 버터기가 힘들군요. 이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손불사는 의료함을 메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가 보면 귀신이 뒤쫓는 줄 알 것이다.

월령안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둬들였다.

손불사 수중의 약은 급하지 않았다. 조만간에 그녀의 것이 될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월령안은 육장봉 그리고 손깍지를 낀 채 단단히 연결된 손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사흘 동안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해야 한다.

'당장 오늘 밤에는 어떡해야 하나.'

육장봉의 부상 소식은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야 했다. 일단 확실한 소식이 없으면 설령 모든 사람들이 육장봉의 부상을 의심한다 해도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을뿐더러 최선을 다해 그의 부상을 덮어 감춰야 했다.

육장봉이 가끔씩 멀쩡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기만 해도 아무도 의심하거나 도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야 했다.

황제는 육장봉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는 자리를 지키지 않기로 했다. 이반반더러 탁자 위에 있는 상주서를 거두게 했다. 난각을 비워 육장봉을 요양하게 하고 옆의 궁전에서 공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월령안, 장봉이를 잘 보살피거라. 장봉이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동안 너는 난각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황제는 경고 어린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분고분 대답하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월령안을 싫어하지만 그녀가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맡긴 일을 언제나 멋지게 처리하고는 했다. 월령안이 육장봉을 지키고 있으면 그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월령안에 대한 육장봉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남녀 사이 감정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막기보다 놔두는 것이 나았다. 그가 말릴수록 육장봉은 더욱 반발심이 들어 기어코 월령안을 택할 것이다. 마치 조계안처럼 말이다.

마냥 마음을 졸이게 하는 동생을 떠올리자 황제는 머리가 아팠다.

그가 조계안과 월령안의 만남을 막을수록 조계안은 더욱 설쳤다. 자신이 다쳐서 월령안을 보지 못하게 되자 그는 또 최일을 떠밀어 보내더니 괜히 그녀에게 조력자를 보태 주게 되었다.

한동안 그는 조계안이 월령안을 만나러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랬더니 조계안은 오히려 조급해하지 않고 황성사의 일에 전념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조계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조계안을 막지 않으면 조계안은 수시로 월령안을 만날 수 있었다. 갖은 방법을 다해 기회를 찾을 필요도 없고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튼 월령안은 거기에 있고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조계안이 월령안을 만나는 것을 막지 않기에 수중의 사무를 다 끝낸 다음 산뜻한 마음으로 월령안을 찾아가 정을 키우면 되었다.

조계안의 요즘 반응을 떠올리자 황제는 육장봉과 월령안의 정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그들 간의 접촉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얻지 못하면 마음이 더욱 설렌다.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 비록 얻은 즉시 팽개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황제는 월령안이 그리 밉지 않았다.

월령안이 전에 요구하던 것을 떠올리고 황제는 내친김에 대답했다.

"짐은 이반반더러 상의국의 설 상궁을 심문하라고 할 것이다. 상의국의 책임자는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느냐?"

옥당상사도 물론 조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월령안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폐하, 숙 태비 옆에 있는 상궁 한 분이 자수도 능하고 상의국 출신이기도 합니다."

황제의 그녀에 대한 혐오감은 실질적이었다. 월령안은 황제 앞에서 연기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말했다. 결코 사심이 없고 대의를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마음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도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과 가깝고 익숙한 사람을 쓰며 자기를 위해 일해 줄 사람만 썼다.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해서는, 모르면 배우면 되었다.

구제 불능만 아니고 진취심만 있다면 그녀는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너는 사람을 추천하는 데도 친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구나."

황제는 싫어하는 티를 내며 월령안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심지어 '인재를 추천한다'는 말도 쓰지 않았다.

월령안은 못 들은 척하며 먼저 물었다.

"폐하, 제 수중의 일을 내놓을까요?"

그녀는 후궁의 사무를 거의 다 처리했다. 황궁에서 내보낼 인원 명부도 다 만들어 놓았다. 인수하는 사람이 그녀가 미리 정한 계획대로 한다면 큰 소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인수받은 사람이 그녀의 계획에 따르기 싫어서 원래 계획을 전면적으로 뒤집는다면 일은 시끄럽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후궁의 업무가 잘못되면 황제는 그녀에게 잘못을 따질지도 모른다.

황제는 그런 처사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궁중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녀 수중의 후궁 업무를 인수받을 사람이 있어야 했다.

황제는 요즘 마땅한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월령안보다 더 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전에 후궁의 여인들이 못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이 입궁한 다음 그녀와 비교하자 후궁의 여인들은 대범함이나 능력에서 한참 뒤처졌다.

황제는 월령안에게 자신이 그녀에게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 일은 급하지 않다. 먼저 이반반에게 넘기거라. 이반반이 잠시 관리할 것이다. 후궁의 일상 사무는 숙 태비가 계속하여 맡으면 된다."

월령안의 상황이 특별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귀비의 신분을 주고 월령안을 궁중에 남겨 후궁 업무를 관리하게 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월령안은 황궁에 영원히 머물기는커녕 오래 머물기도 어려웠다.

육장봉은 공개적으로 월령안의 편에 서서 그녀를 위해 진술했다. 그녀가 북요와 왕래한 것은 모두 그의 안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형부와 대리시가 어떤 증거를 내놓더라도 육장봉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황제가 월령안을 죽이려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상세한 증거를 들이대도 월령안이 북요와 결탁했다는 죄명은 성립될 수 없었다.

적과 내통했다는 죄명이 없어지면 월령안은 곧 황궁에서 나갈 것이다. 당연히 더는 그를 위해 후궁 업무를 처리할 수 없었다.

황제는 며칠 사이 후궁이 조용해지고 모든 일이 그의 마음에 들며 근심할 필요가 전혀 없던 것을 떠올렸다.

월령안이 나가면 다시 후궁전이 또다시 곽 황후가 있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옮겨 가기는 쉬워도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

'앞으로 어떡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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