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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18)화 (518/1,004)

518화 절대 이 손을 놓지 않을게요

"폐하께 알려드립니다. 대장군께서 자발적으로 약을 드셨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송 원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대답했다. 육 대장군이 약을 마시는 게 월령안 때문이라는 사실관계를 흐리려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귀머거리가 아니기에 당연히 월령안의 말을 다 들었다.

황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긴 뭐가 좋은 것이냐! 자네들은 장봉이에게 약을 먹일 재간도 없느냐?"

송 원정은 말문이 막혔다.

손불사는 육장봉이 마비산을 다 마시는 것을 지켜보고 월령안의 손에서 빈 그릇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이반반에게 넘겨주며 질투 어린 말투로 말했다.

"됐다. 육장봉이 네 말을 듣잖니. 그럼 너 육장봉더러 손을 놓으라고 해. 연탑에 옮겨야 한다."

"해 볼게요."

월령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결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좀 전에 육장봉에게 약을 먹인 것은 그냥 시도해 본 것이었다. 육장봉이 정말로 약을 마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 그래. 됐어. 이제 너한테 달렸어. 아니지. 육장봉이 얼마나 너를 신경 쓰는지 보자꾸나. 웃음을 머금고 네가 주는 비상(砒霜 - 독약의 일종)을 마신……, 아니다. 네가 주는 마비산을 마신 다음에도 너의 허리와 무릎을 아껴 너를 놓아주고 치료에 협조할지 보자꾸나."

이런 순간에도 손불사는 육장봉에게 함정을 파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시샘이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손불사에게 육장봉은 그야말로 요물이었다.

깨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신력, 수단을 따지면 하늘 아래에 육장봉의 적수가 몇 안 되었다.

혼미할 때마저 이렇게 음흉하다니. 정말 다른 이에게 전혀 여지를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손불사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고 육장봉의 손을 잡아당겨 보았다.

"육장봉, 저를 좀 놓아주세요. 당신이 이렇게 안고 있어서 저 지금 힘들어요."

하지만 육장봉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을 놓아주기는커녕 손을 풀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또 말했다.

"육장봉, 손을 좀 놓으세요. 너무 꽉 안았어요."

월령안의 허리를 휘감은 육장봉의 손은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었다.

"칫. 난 또 육장봉이 너를 얼마나 신경 쓰나 했지. 보니까 결국 먼저 자기 생각을 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거였군."

손불사는 육장봉에게 빈정댈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월령안은 화가 나서 손불사를 흘겨보았다. 저도 모르게 육장봉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서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황궁에서 다쳤다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절할 것이다. 혼미하기 전 옆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녀는 분명 상대방을 꽉 끌어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육장봉처럼 죽어도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더는 혼미 상태의 육장봉을 설득하여 손을 풀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비틀어 최선을 다해 육장봉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육장봉의 손가락 사이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육장봉, 이제는 역할을 바꿔서 제가 당신을 잡고 있을게요. 당신이 깨기 전까지 절대 손을 놓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녀는 몸을 비틀고 손을 뒤로 하여 육장봉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육장봉의 약지를 간신히 잡게 되자 허리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육장봉의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려고 애썼다.

"육장봉, 손 좀 푸세요. 제가 당신의 손을 잡을게요. 당신이 깨어날 때까지 함께할게요. 당신이 깨어나기 전에는 절대 이 손을 놓지 않을 거라 맹세할게요."

그녀는 육장봉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만분의 일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포기하면 안 되었다.

한 번, 두 번…….

월령안의 노력이 효과를 보았는지 아니면 마비산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손불사가 손을 써서 치료하기 전에 월령안은 끝내 육장봉과 손깍지를 낄 수 있게 되었다.

"됐다. 꼬마 령안, 그만 움직여. 그냥 그대로 육장봉을 안고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 내가 육장봉의 가슴에 구멍을 내야 해.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지?"

손불사는 손에 버드나무잎 모양의 가늘고 기다란 작은 칼을 잡고 엄숙한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잠깐 기다리세요."

월령안은 육장봉과 손깍지를 꼈지만 손을 등 뒤로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야 정상적으로 육장봉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제가 몸을 일으키게 대장군을 들어 주세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다른 한 손을 밀어젖혔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순순히 손을 풀었다.

"휴!"

그 순간 월령안은 공기마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육장봉이 손을 풀고 나서야 그녀는 전에 못 느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장봉은 실로 무서운 힘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참…… 정말 손을 푼 거야?"

손불사는 아연실색하여 육장봉의 한쪽에 드리운 손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손에 든 가느다란 칼을 놓칠 뻔했다.

그가 또 육장봉 때문에 체면을 구겼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약왕곡 곡주, 천하제일의 신의라는 명성을 지킬 수나 있겠어?'

"풀었어요."

육장봉은 너무 심하게 다쳤다. 월령안은 감히 힘을 써서 밀어낼 수가 없었다. 설령 육장봉이 손을 풀어도 그녀는 여전히 원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반반, 송 원정, 손불사 그리고 황제까지 네 사람이 협력하여 육장봉을 든 다음에야 그녀는 움직일 수 있었다.

일어서는 순간 월령안은 발이 저려 하마터면 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육장봉은 쓰러질 때 온몸으로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의 몸 반쪽은 거의 마비되어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끝내 치료에 '협조'하자 월령안은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마침내 왜 노인이 떠나려고 하는지, 그녀를 다시 만나려 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은 그녀 자신보다 그녀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로는 죽음으로 이별해도 무섭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더 두려워했다.

오늘 육장봉이 사고를 당하자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육장봉이 그냥 이렇게 그녀 눈앞에서 죽을까 겁이 더럭 났다.

만약 어느 날 노인이 그녀 앞에서 쓰러져 더 이상 살려낼 수 없게 되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육장봉과 월령안을 성공적으로 갈라놓은 뒤 이어지는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황제를 포함한 네 사람은 힘을 합쳐 육장봉을 연탑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바로 눕혔다.

월령안은 줄곧 육장봉의 손을 잡고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연탑의 바깥쪽에 밝은 곳을 피해 앉아 손불사가 수술하기에 편하도록 했다.

손불사는 수술하기 전에 황제에게 치료 과정이 위험하기에 육장봉의 목숨을 다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할 때는 자신감이 있고 여유가 넘쳤으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대었다. 표정에서도 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천하제일의 신의요, 약왕곡 곡주였다!

그가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 환자는 치료 과정이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구해 낼 자신이 있었다.

황제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태의서에서 배운 것이었다.

어의들은 병이 일 할 정도면 칠 할 정도로 부풀려 말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십 할 정도 치료할 수 있으면 육칠 할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만일 육칠 할의 가능성만 있으면 일이 할의 희망밖에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일이 할의 가망밖에 없다면 그것은 구해 낼 방법이 없으며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말해야 한다고 했다.

요컨대 병세를 엄중하게 말하고 치료 난이도를 높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황제는 기대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환자가 완치되면 그것은 그들의 재간이 되었다. 설령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도 그들이 무능한 게 아니라 병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손불사는 전에 무림 민초거나 시정의 백성들만 치료했으므로 이렇게 많은 잔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어의들이 전수하는 경험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육장봉의 부상은 확실히 엄중하므로 그도 더 오래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치료 과정의 어려움과 위험을 높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손불사는 육장봉 내장의 어혈이 조금씩 빠져나오자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도 반쯤 내려갔다.

치료 과정의 위험을 높게 말했기에 그가 육장봉을 완치시키면 황제는 기필코 그에게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또한 그의 의술이 뛰어났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상을 주든 안 주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황제가 하사한 상이 아무리 후하다 해도 월령안의 씀씀이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자기의 의술이 뛰어난 것을 인정받을 것이 만족스러웠다.

어혈이 조금씩 빠져나오자 손불사는 확신에 차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고 절도가 있었으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그 옆에서 일손을 돕던 송 원정은 긴장된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연신 흘렸다.

육장봉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끈적한 암홍색에서 정상적인 혈색으로 변하고 나서야 송 원정은 굳어졌던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손, 손 신의, 이제 성공한 겁니까?"

송 원정은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새로운 치료 방법을 직접 보았다. 과연 손 신의였다. 손 신의의 일손을 거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그의 일생의 가장 큰 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자가 부러웠다. 그가 젊었을 때는 왜 월령안처럼 좋은 주인을 만나는 운이 없었을까!

"이제 시작이야. 어혈을 없애는 첫걸음일 뿐일세. 대장군의 심장과 폐는 손상이 크기에 약으로 잘 다뤄야 한다네. 출혈이 너무 많았고 또 가슴에 이렇게 큰 구멍까지 내었다 보니 나중에 열이 날 게 분명하네. 오늘 밤을 넘길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

손불사는 말하면서 육장봉 가슴 부위에서 꽂았던 특제 유리그릇을 날렵하게 빼내어 송 원정에게 건네주었다.

손불사는 의료함의 밑층에서 연고 한 통을 꺼내어 콩알만 한 크기를 떼 내었다. 그 약을 한 번 안타깝게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갈며 한 덩어리를 떼 내어 육장봉 가슴의 상처에 발랐다.

그 연고는 미백색을 띠었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것이 설옥고와 비슷하지만 질감이 더 좋아 보였다.

월령안은 좋은 물건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손불사가 꺼내는 연고는 저도 모르게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손불사의 자기 살을 떼어 내는 것처럼 아까워하는 표정을 보니 이 연고는 틀림없이 좋은 물건이었다.

특히 연고를 바른 육장봉의 상처가 마치 바로 아무는 것처럼 봉합되어 피가 흐르기는커녕 부기마저 가라앉는 것을 보고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갖고 싶다!'

월령안은 눈이 빠지게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눈은 갈망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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