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17)화 (517/1,004)

517화 정말 기절한 게 맞긴 한거야?

손불사는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는 일만큼은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고 패기가 넘쳤다. 그는 황제를 포함한, 그 누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불사는 황제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외면한 채 곧장 반박했다.

"그리고 보통의 방식으로 약을 써서는 육 대장군을 원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원 상태로 회복하지 않아도 된다. 장봉이의 목숨을 확실하게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해."

"네?"

손불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깜짝 놀라 황제를 바라보았다.

월령안도 고개를 들어 황제를 흘끔 쳐다보고는 곧 눈길을 거두었다.

황제는 정말 육장봉을 형제로 여겼다. 단지 부리기 좋은 신하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이건 육장봉의 행운이기도 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짐은 장봉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장봉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황제는 손불사를 노려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손불사는 지금 무슨 뜻이지? 내가 냉혈한처럼 보이나. 내가 장봉의 능력만 보고 그의 목숨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보수적으로 치료하면 대장군은 앞으로 한 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을 헐떡이고, 까딱하면 피를 토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손불사는 황제의 말에 크게 놀랐다.

황제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황제는 인정도 있고 감정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인 것이냐?"

황제는 크게 놀랐다.

손불사의 말을 입증하려는 듯이 육장봉의 입가에 또 피가 흘러내렸다.

손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암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군은 심장과 폐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극약 처방을 하지 않으면 결국 평생 나을 수 없는 지병으로 남을 겁니다."

황제는 육장봉이 앞으로 싸울 수 있을지 없을지, 무공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육장봉이 무사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황제로서 천하에서 가장 부유했다. 그는 한평생 육장봉을 공양하면서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도 알고 있었다. 항상 정상에 서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장악하던 강자로서 육장봉은 결코 폐인이 되어 목숨만 부지하고 편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황제는 설령 마음속으로부터 손불사의 치료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육장봉이 할 만한 선택임을 알고 있었다.

황제의 동의를 받자 손불사는 전혀 거리낌 없이 이반반을 부렸다. 걸상을 옮기게 하고 의자를 가져오게 하며 또 쑥을 태워 방안을 소독하게 하면서 그가 팽이처럼 바삐 돌게 했다.

육장봉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이반반은 다른 사람을 찾지도 못하고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했다.

송 원정이 마비산을 들고 돌아왔을 때, 이반반은 힘이 들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마의 붕대가 전부 땀에 절어 있었다.

손불사는 힐끗 보고서 마음속으로 매우 만족해했다.

노인은 그에게 이 죽일 놈의 내관이 육장봉을 도와 그들의 꼬마 령안을 괴롭혔다고 알려 주었다. 지금 이 죽일 놈의 내관을 괴롭히지 않으면 누구를 괴롭히겠는가.

"손 신의, 마비산입니다."

송 원정은 무겁고 큰 의료함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의료함을 탁자 위에 놓고 마비산 한 그릇을 꺼내 손불사에게 건넸다.

손불사는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왜 날 줘. 자네가 직접 당신네 대장군에게 먹이게."

송 원정은 어쩔 수 없이 잠자코 있었다.

'역시 도망칠 수 없군, 억울해!'

송 원정은 몰래 한숨을 쉬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육장봉에게 약을 먹였다. 하지만 첫 시작부터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대장군의 입을 열게 할 수가 없었다!

"대장군, 약을 먹어야 합니다. 입을 벌리세요."

송 원정은 약 그릇을 육장봉의 입가에 대고 부드럽게 권했다. 대장군이 조금이라도 반응하여 약을 먹어 주기를 바랐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육장봉의 입가에 흐르는 피뿐이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 원정, 대장군은 기절했어요. 의식이 없어 입을 벌리지 않을 거예요."

송 원정은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다급하게 말했다.

"월 낭자, 어떻게 대장군이 입을 열도록 할 수 없을까요?"

손불사는 의료함에서 순은으로 만든 얇은 칼들을 꺼내 흰 천 위에 놓았다. 송 원정의 말에 손불사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걸 배우지 못한 것인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억지로 벌리면 될 거 아닌가? 이렇게 간단한 일을 월령안에게 부탁하면 뭘 해? 그 녀석이 의원도 아니고 말이야."

"글쎄 소인은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송 원정은 마비산을 들고 있던 손을 흠칫 떨었다.

"못나기는."

손불사는 그에게 눈을 희번덕거려 보이고는 일어서서 걸어갔다.

"약을 이리 주게!"

송 원정은 바삐 약을 건네주고 멀리 물러났다.

'이 일을 끝내 떠넘겼군.'

"약 하나 먹이는 것도 내가 직접 해야 하면 당신을 두어서 어디에 쓰겠나? 당신 손자보다도 못하잖아!"

손불사는 송원정을 또다시 흘겨보고는 육장봉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거칠게 육장봉의 입을 벌리고는 약을 그릇째로 쏟아부었다.

다음 순간 손불사는 또 한 번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그가 육장봉의 입에 쏟아부은 마비산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입꼬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월령안은 급히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계심이 높아 마시지 않을 거예요."

손불사는 듣지 않고 계속하여 육장봉의 입에 약을 쏟아부었다.

"그럴 수가 없지!"

손불사가 거칠게 나머지 마비산을 모두 육장봉의 입에 쏟아부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입을 닫고 토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쉽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불사가 손을 떼자마자 마비산은 모두 흘러나왔다. 전부 월령안의 몸에 떨어져 그녀의 옷을 흠뻑 적셨다.

월령안은 묵묵히 손불사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질책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야! 이런 환자가 대체 세상천지 어디에 있어!"

손불사는 울화통이 터졌다. 이반반이 영리하게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쥐고 있던 약 그릇을 빼앗지 않았다면 그대로 땅바닥에 팽개쳤을 것이다.

'열 받네. 계속 이런 식이면 신의의 명성도 유지하기 어렵겠군!'

황제는 본래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손불사가 낯뜨거워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 결국 입을 닫고 말았다.

이것은 손 신의의 잘못이 아니었다.

'손 신의는 안그래도 힘들어 보이니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손불사는 약이 바싹 올라 고개를 돌리고 멀리 서 있는 송 원정을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피하긴 왜 피해. 약 하나 먹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원정이나 되었는지 몰라? 어서 가서 마비산 한 그릇을 더 가져와."

"네. 손 신의."

송 원정은 손불사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며 의료함에서 마비산 한 그릇을 더 꺼냈다.

그는 대장군에게 약을 먹이는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한 그릇을 더 준비했다.

과연 그의 예상이 맞았다.

송 원정은 손불사가 체면을 구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육 대장군에게 마비산을 먹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손불사에게 약 그릇을 건네주었다.

손불사는 힐끗 보더니 받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에게 입을 삐죽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자, 너 육장봉을 잘 알고 있잖아. 약을 먹이는 일은 너한테 맡기마."

말을 마치고 손불사는 자리를 떴다.

상대하지 못하면 피하면 된다.

육장봉의 고육지책을 무너뜨려 월령안이 육장봉에게 감동받지 못하게 하려던 계획은 난이도가 너무 높아 포기하기로 했다.

송 원정은 약을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어쨌든 자기만 시키지 않으면 누구든지 줄 수 있었다.

"해 볼게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힐끗 보고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 약은 어쨌든 육장봉에게 먹여야 했다.

송 원정은 월령안이 이 골칫거리를 받아 주자 마음속으로 자책감이 들었다. 월령안이 무안해할까 봐 특별히 귀띔해 주었다.

"월 낭자, 입으로 좀 먹여 보세요. 생각건대 그러면 대장군은 꼭 마실 것 같습니다."

"아니……."

황제는 엉겁결에 질책하려 했다. 하지만 육장봉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어렵사리 말을 꿀꺽 삼키고 불쾌해서 말했다.

"됐다. 네가 육장봉에게 약을 먹일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된다."

말을 마치고 황제는 몸을 돌렸다. 더는 육장봉과 월령안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손불사는 송 원정의 말에 입꼬리를 살짝 실룩거리다가 역시 돌아서고 말았다.

사실 그도 진작에 월령안이 이 방법으로 육장봉을 구슬려 약을 마시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 원정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래도 화가 났다.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났다.

그는 너무나 무능해 육장봉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육장봉은 꼬마 령안이 먼저 입맞춤해 주는 것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 그가 의술이 높지 못한 탓이었다. 육장봉의 고육지책을 폭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손불사는 거의 자폐증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난각 안의 분위기도 더욱 이상해졌다.

월령안은 송 원정을 흘끔 쳐다보았다. 다시 돌아선 황제, 손불사 그리고 이반반을 보고는 말을 잃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약을 먹이는 데 반드시 내가 입으로 먹여야 육장봉이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되나?'

월령안은 원래 아녀자로서의 명성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이들 앞에서 입맞춤하는 방법으로 육장봉에게 약을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대범하지는 않았다.

비록 육장봉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건 너무 난감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약을 들어 육장봉의 입가에 가져갔다.

"육장봉, 입을 벌리고 약을 마시세요."

"월 낭자, 그렇게만 하면 대장군께서 분명……."

송 원정의 뒷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월령안이 한마디 덧붙였다.

"저예요. 월령안이에요. 당신 지금 입을 벌리지 않으면 진짜 앞으로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이야기를 하면서 또 약 그릇을 육장봉의 입가로 가져갔다. 육장봉은 느낌이 있는지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

월령안은 그릇을 비스듬히 기울여 약을 육장봉의 입에 부어 넣었다.

다음 순간 손불사가 아무리 억지로 먹이려 해도 약을 삼키지 않던 육 대장군은 목젖이 움직이더니 월령안이 먹이는 약을 전부 삼켰다.

'아니 이게 무슨, 정말 기절한 게 맞긴 한거야?'

송 원정은 저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혹시 자기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대장군은 진짜로 기절하신 건가 아니면 기절한 척을 하시는 건가?"

"약을 먹였어? 육 장군이 깬 건가?"

손불사는 와락 달려들어 육장봉의 맥박을 짚었다.

"깨어난 맥이 아닌데!"

"웬일이냐?"

황제는 인기척을 듣고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되돌아섰다. 월령안이 입으로 육장봉에게 약을 먹이지 않은 것을 보고 은근히 불쾌했다.

'월령안은 무슨 뜻이지? 장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가? 감히 월령안이 짐의 대장군을 싫어한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