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화 장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육장봉과 월령안은 둘 다 온몸이 피투성이여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월령안이 육장봉을 찔렀다고 여길 정도였다. 보건대 몹시 무서웠다.
황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짐도 대장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구나."
육장봉은 쓰러진 후 줄곧 피를 토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황제는 한때 그가 손불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게 되는 건 아닐지 의심했다.
"됐네. 아직 숨이 붙어 있군. 그냥 중상 입은 거 아니냐. 영영 보지 못할 거처럼 굴지 마. 못난 것."
손불사는 육장봉을 진맥하고 그를 구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자 얼굴빛이 얼마간 밝아졌다.
월령안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육장봉을 꼭 안고 있는 걸 보자 손불사는 월령안에게 언짢아하며 말했다.
"네 남편도 아니잖아. 그렇게 꼭 껴안고 뭐 하는 거냐. 얼른 손을 풀고 사람을 연탑에 눕히거라. 네가 그렇게 안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니?"
"손을 풀 수가 없어요. 이 사람이 손을 놓지 않아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피를 쿨럭쿨럭 토하자 혹시라도 잘못될까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가 되었다.
이 순간 손불사가 드러내 놓고 싫어해도 월령안은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 걱정되어 요동치던 심장도 안정을 되찾고 호흡마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손불사의 메마른 얼굴을 보아도 그렇게 싫지 않았다.
육장봉에게 큰일이 없으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대장군이 손을 놓지 않다니, 네가 손을 놓기 싫은 게 아니고? 그 정도로 다쳤으면 거의 시신이나 마찬가지거든. 땅바닥에 내려놓고 네가 맘대로 밟아도 무력하게 맞을 상황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너를 안고 손을 놓지 않을 수가 있어?"
손불사는 아예 믿지 않고 화가 나서 말했다.
"됐다. 꼬마 령안. 좀 그만 못나게 놀아. 빨리 육장봉을 내려놓으라고. 내가 육장봉이 절대로 죽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할게."
"저 정말 아니에요……."
월령안은 변명하려고 했으나 말이 입가에서 맴돌기만 했다.
손불사의 욕은 틀린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못나고 부끄러웠으며 심지어 천박한 것 같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무서웠다. 육장봉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만 해도 그녀는 가슴을 옥죄듯이 아팠다.
손불사는 월령안에게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사람을 시켰다.
"송씨, 그리고 저 누구도 이리 와서 도와주게. 사람을 연탑에 올리자고."
"좋습니다. 손 신의."
송 원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과연 일이 있을 때만 송씨군!'
"둘이서 먼저 육장봉의 손을 월령안의 몸에서 떼어 놓게. 한 사람이 머리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이 발을 들고…… 아니다. 둘 다 이렇게 말라서 육장봉을 들 수나 있겠어? 됐어. 당신……."
손불사는 고개를 돌려 황제를 가리키며 도와 달라고 하려다가 문득 그의 신분을 떠올렸다. 손불사는 급히 손을 거둬들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내가 돕지!"
그의 생각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매우 참혹했다.
이반반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육장봉의 손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또 감히 마구 힘을 쓸 수도 없어 손불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 됩니다. 손 신의. 대장군의 손은 쇠집게처럼 단단해서 절대 떼어 낼 수가 없습니다."
"대장군이 너무 꽉 부둥켜안아서 잡아당길 수가 없습니다."
송 원정은 땀범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다쳤는데 도대체 무슨 기운이 아직도 있는 거야?"
월령안의 말을 손불사는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송 원정과 이반반이 모두 육장봉의 손을 떼어 낼 수가 없다고 말하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불사는 앞으로 다가가 육장봉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결국 땀투성이가 되고 기진맥진해도 떼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화가 나서 말했다.
"육장봉은 진짜로 기절한 거야 아니면 가짜로 기절한 거야? 사람이 기절했는데도 손을 놓지 않다니 지금 누구에게 보여 주겠다는 거야?"
'육장봉의 이 꿍꿍이속은 너무 깊단 말이야! 이거 월령안이 감동되어 껌뻑 넘어가지 않겠어?'
"대장군의 부상은 거짓이 아닙니다."
송 원정도 육장봉이 기절한 척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내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의원인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묵묵히 얼굴의 눈물을 훔쳤다. 눈을 내리뜨고 그녀의 다리에 기대어 있는 창백한 얼굴에 힘이라고는 전혀 없는 육장봉을 바라보면서 마음속 느낌을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육장봉에게 기절하면서도 왜 자신을 안고 놓지 않는건지 묻고 싶었다.
육장봉이 그녀를 안고 있으면 그만큼 치료 시간이 지체되어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손불사는 월령안이 손수건으로 육장봉의 입가에 묻은 피를 가볍게 닦아 주는 것을 보았다. 그 동작과 표정은 어찌 보아도 육장봉을 가슴 아파하고 전혀 내려놓지 못한 것 같았다.
손불사는 목구멍까지 피가 찬 것처럼 하마터면 피를 왈칵 토할 뻔했다.
만약 황제가 자리에 없었더라면 그는 반드시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흔들어 깨웠을 것이다!
육장봉은 분명 고육지책을 쓰고 있었다. 월령안이 평소에 얼마나 영리한 사람인데 어찌 육장봉만 마주하면 뇌가 고장 났는지 꼼짝달싹 못 하고 그에게 당하기만 했다.
손불사는 화가 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어두운 얼굴로 송 원정에게 말했다.
"침을 가져오게!"
오늘 육장봉에게 본때를 보여 주지 못하면 성을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지 않으면 월령안이 다년간 그를 극진히 대한 것에도 미안해질 것이다.
"손 신의, 침입니다."
송 원정은 손불사의 밑에서 며칠 일을 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이전보다 호흡이 더 잘 맞았다.
"육장봉이 월령안을 안고 손을 놓지 않는 건 그의 의식과는 무관해. 기절하기 전에 취한 행동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야. 근육이 굳어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이야. 이 침을 놓으면 그가 사람인 이상, 손을 놓기 싫어도 놓을 수밖에 없을 거다."
손불사는 은침을 받아 육장봉의 팔뚝에 찔렀다. 연이어 몇 번을 찌르고는 은침을 송 원정에게 건네며 자신 있게 말했다.
"됐네. 사람을 부축하게……."
손불사가 힘껏 잡아당겼지만 육장봉은 전혀 끄떡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월령안의 몸에 착 엉겨 붙어서 손을 놓을 기미가 전혀 없었다.
손불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놈 대체 뭐야?!!'
송 원정은 묵묵히 뒤로 물러나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반반도 감히 소리 내지 못했다.
그가 잘못 짐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아마 손 신의의 가장 낯뜨거운 순간일 것이다.
이 체면은 너무 빨리, 너무 아프게 무너졌다!
이반반은 손불사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육 대장군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이상하게도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육 대장군에게 지배당하는 공포심을 그 혼자만 느껴서는 안 되었다.
손 신의와 비교하면 그는 훨씬 행복했다.
사람은 항상 만족하면서 살아야 한다.
손불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했지만 월령안의 몸에서 육장봉을 떼어 내지 못했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송 원정더러 육장봉에게 연근산(軟筋散) 한 알을 먹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기어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월령안이 말을 잘랐다.
"손불사, 무리하지 말고 이대로 치료하세요."
육장봉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이 그녀를 안고 손을 놓지 않은 것은 손불사가 말한 근육이 굳은 문제도 아니었다.
이건 육장봉의 의지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그녀를 꼭 안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장봉이 너한테 엉겨 붙어 있으면 내가 어떻게 치료하느냐?"
손불사는 속이 답답하기만 했다. 육장봉은 정말로 괴이한 놈이었다. 정상적인 환자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육장봉 같은 환자를 만나다니 손불사가 재수가 없는 것이었다.
손불사는 숨을 내뱉고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그의 상처에 안 좋아. 그가 상한 것은 내장이야. 내장이 더 압박받으면 안 돼."
그가 육장봉을 월령안의 몸에서 떼어 내려 하는 것도 그녀를 위해서였다.
월령안은 아직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이렇게 계속 꿇으면 그녀의 무릎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먼저 치료하세요."
월령안이 과단성 있게 말했다.
"됐다. 먼저 치료하거라."
황제는 한쪽에 서서 손불사가 한참 동안 애를 써도 육장봉과 월령안을 떼어 놓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눈가에는 어두운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월령안에 대한 육장봉의 감정을 과소평가했다.
월령안에 대한 육장봉의 감정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좋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죠!"
두 거물이 다 이렇게 말했다. 손불사가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육장봉이 손을 놓게 할 자신이 없었다.
육장봉은 그야말로 고집불통이었다.
손불사는 차가운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서…… 옷을 자르게."
"제가 하겠습니다!"
이반반은 송 원정이 육 대장군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자발적으로 나섰다.
"가서 마비산(麻沸散) 한 첩을 끓여 오게."
손불사는 송 원정에게도 일을 맡겼다.
송 원정은 잠깐 멍해 있다가 물었다.
"잠시만요, 손 신의께서는 설마?"
"음."
손불사가 도도하게 대답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송 원정은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어쩐지 불안감이 들었다.
손불사는 눈을 부라렸다.
"자네가 보기에…… 육 대장군이 일 년 반 정도 침대에 누워 요양하면서 천천히 어혈을 배출할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그를 또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약속할 수 없다네."
지금 그는 육장봉이 잘 요양할 수 없을뿐더러 그럴 시간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송 원정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손 신의, 치료 방식이 장봉에게 위험한 것인가?"
"대장군의 가슴에 구멍을 내어 어혈을 뽑아내야 합니다. 위험은 있습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은 일반인이 아닙니다. 견뎌 낼 수 있을 겁니다."
손불사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가 묻자 그래도 참을성 있게 한마디 대답했다.
"손 신의, 장봉은 주나라의 대장군이다.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황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큰 병에 걸리면 극약 처방을 써야 합니다. 소인도 육 대장군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손불사는 억지로 성질을 참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꼭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냐? 보수적으로 치료하는 건 어떠한가?"
황제는 손불사의 말투나 모험적인 치료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다.
황궁에서 어의는 줄곧 보수적 치료를 위주로 했다. 절대 어떤 모험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극약 처방도 쓰지 않았다.
"폐하, 대장군이 너무 심하게 다쳤습니다.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상황에 또 크게 싸웠다 보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구한다고 해도 폐하께서는 대장군이 상처가 낫기 전에 절대 전투를 하지 않을 거라는고 장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