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태후 마마의 사람이 아니라고?
"설 상궁이 태후 마마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럴 리 없어. 그녀는 줄곧 태후 마마의 말만 듣고 태후 마마를 위해 일을 해 왔어. 황후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지."
"태비 마마, 태후 마마께서 몇 년 전 좋아했던 직금금을 기억하시나요?"
월령안이 웃으며 물었다.
"기억하고 말고. 태후 마마께서 직금금을 좋아해서 진상품까지 되었잖아. 태후 마마께서 직접 칭찬해서 직금금이 민간에서 유행할 줄 알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전혀 팔리지 않았지."
숙 태비가 그 일을 기억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등요 공주가 월령안에게 속아 많은 돈을 주고 묵혀 있던 직금금을 샀었다. 그 직금금은 아직도 등요 공주의 궁전에 놓인 채 먼지만 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직금금은 태후 마마의 친정인 유씨 가문에서 바친 겁니다. 유씨 가문은 태후 마마가 마음에 들어 하자 누구도 그걸 못 알아챘을 때 대량의 직금금을 쌓아 두었습니다. 직금금을 빌려 큰돈을 벌려고 했죠.
하지만 옥당상사(玉堂商社)가 내놓은 유광금(流光錦)에 이목을 뺏겼습니다. 이 일은 상업계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유씨 가문은 이 때문에 상업계의 웃음거리가 되었죠. 반면 옥당상사는 이 기회를 빌려 신속하게 변경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옥당상사의 이번 싸움이 너무 멋있다고 칭찬한 적이 있었다.
숙 태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이게 설 상궁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 상의국에서 몇 년 동안 쓴 옷감을 자세히 보다가 재미있는 일 하나를 발견했어요."
숙 태빈은 어렴풋이 추측하고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
월령안은 빙빙 에두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상의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옷감은 모두 옥당상사에서 산 것이었습니다. 다른 상사들이 공급하는 옷감은 대부분 재어 두고 오직 옥당상사의 옷감만 해마다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그래도 옥당상사는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오직 중저가 옷감만 황궁에 공급해 크게 이목을 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인들은 중저가 옷감이 황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그 이윤이 비싼 옷감보다 적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옥당상사가……!"
숙 태비는 놀란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씨 가문도 한몫 있습니다."
그 배후 진짜 사장은 그녀 아버지 곁에 있던 가게 주인이었다.
하지만 이 가게 주인은 그녀도, 범씨 가문도 따르지 않았다. 독립하여 옥당상사를 세웠다.
지금 와서 보면 그녀는 일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 * *
"장봉인 정말로 막무가내야! 야율융진이 무슨 심보인지 모르는 게 아니잖아.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 대체 거길 왜 가는 거야. 자기가 정말 신통력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까짓 북요 삼황자. 죽으면 죽으라지. 짐이 북요를 두려워할까 봐?! 짐은 야율융진이 감히 출병시키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왜 하나같이 걱정만 시킨단 말이다!"
황제는 돌아오자마자 사람을 추밀원에 보내 육장봉에게 전갈했다.
육장봉더러 경거망동하여 야율융진의 계략에 휘말리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사람을 보내 야율융진의 일을 처리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전갈하는 사람이 추밀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금군이 먼저 와서 보고했다. 금군은 대장군이 친위대를 거느리고 성문 입구로 갔다고 말했다.
황제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사람을 내보내고 생각할수록 걱정되었다. 난각에서 왔다 갔다 하며 화를 삭였다.
그는 육장봉이 버텨 내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이반반은 고개를 숙이고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해서 난각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조용 황제 곁에 다가서서 황제가 욕하느라 힘들어하자 즉시 물을 한 컵 건네주었다.
황제는 욕을 몇 마디 하고 나니 화가 어지간히 사그라들었다.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폐하, 월령안이 뵙기를 청합니다."
이반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 빨리 들라고 해!"
황제는 찻잔을 탁자 위에 탁, 소리 나게 던졌다. 잔 속의 찻잎이 쏟아져 나왔다.
이반반은 고개를 숙이고 속으로 탄식했다.
'월령안은 운이 정말 나쁘군. 하필이면 폐하께서 화를 내실 때 오다니.
폐하께서는 본래 월령안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데다가. 폐하께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계시는 지금 월령안을 보면 대장군의 그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릴 거다. 그러면 당연히 월령안에게 화풀이하실 텐데.'
"월 낭자, 폐하께서 들라고 하십니다."
이반반은 입구에 가서 월령안을 맞이했다. 잠깐 생각을 거쳐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귀띔했다.
"폐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십니다. 월 낭자, 조심하십시오."
"귀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예의를 차리고 깎듯이 답례했다. 언행에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문득 생각난 듯 월령안은 소매 속에서 있는 영패를 꺼내 이반반에게 건넸다.
"참…… 이것은 주셨던 영패입니다. 연복궁의 일에는 반반께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이반반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어제 이반반이 자기를 농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원인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바로 조사할 생각이었다.
"월 낭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반반은 얼굴을 살짝 굳혔다. 육 대장군이 월령안에게 주라던 호각을 떠올리자 이마에 난 상처가 더 아픈 것만 같았다.
'너무 어렵다고요.'
하지만 이반반이 호각을 꺼내기도 전에 월령안은 그의 곁을 지나 난각으로 들어가서 황제를 만났다.
"영취궁의 사람들은 잘 처리하였느냐?"
황제는 냉담한 표정으로 월령안에게 일어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폐하께 알려드립니다. 모두 잘 처리했습니다."
월령안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황제에게 정수리만 보여 주었다.
"죽였느냐?"
황제가 조롱하듯 물었다.
"죽였습니다."
월령안은 땅에 꿇고 앉아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처럼 평온하고 아무 기복도 없었다.
황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너는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하구나."
"폐하를 위해 시름을 덜어드리려는 생각뿐입니다."
월령안은 두 손을 겹쳐서 몸을 앞으로 엎드리면서 이마가 땅에 닿도록 큰절을 올렸다.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연기는 참 잘해!'
황제는 화가 나서 비웃었다.
"말솜씨는 좋군! 됐다. 일어나거라!"
"폐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일어섰다.
여름에는 치마가 얇아서 벽돌 위에 무릎을 꿇고 있으면 배겨서 무릎이 아팠다.
"짐을 왜 만나려 했느냐.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냐?"
황제는 특히 '중요'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었다. 위협의 뜻이 분명했다.
월령안은 난각에 들어서기 전에 이반반의 귀띔을 떠올리고 몰래 호흡을 가다듬었다. 손에 든 증거를 높이 쳐들었다.
"폐하께 알려드립니다. 소인이 상의국에서 일부 단서를 찾았으나 감히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 살펴보시고 분부해 주십시오."
모두가 상의국, 이기가 끌고 간 침모 몇몇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이 월령안은 자신이 찾은 단서들을 황제 앞에 바쳤다.
"가져오너라."
황제는 이반반이 가서 가져오기 전에 직접 명을 내렸다.
월령안이 앞으로 나아가 손에 쥔 증거를 황제의 탁자 앞에 놓고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옥당상사 주인이 네 아버지 곁에 있었던 자였느냐?"
황제는 월령안이 바친 증거를 손에 잡히는 대로 뒤적였다. 보고 무슨 일인지 대략 짐작한 후에는 한쪽에 내버려 두었다.
"폐하께 알려드립니다. 옥당상사의 주인은 성이 공(龔)씨이고 옥당은 그의 장남의 이름입니다. 공 사장은 애당초 범씨 가문의 포섭을 거절하고 저를 따라 변경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금릉(金陵) 고향으로 돌아가 옥당상사를 차렸습니다."
옥당상사는 직금금의 위세를 빌려 유씨 가문을 밟고서 변경의 상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옥당상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중에 황제는 없었다.
황제는 이런 작은 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 상사가 청주와 연관이 있는 것이냐?"
황제는 또다시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를 훑었지만 옥당상사가 청주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폐하, 옥당상사는 처음에 곽씨 가문에 줄을 대어 변경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옥당상사가 청주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단지 관계가 깊은지 옅은지의 차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것만으로는 황제가 그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옥당상사가 경영하는 약재와 옥석은 대부분 청주 아래에 있는 운귀현(雲貴縣)에서 온 것입니다. 공 사장은 청주에서 장사를 시작했기에 청주 상인들에게서 물건을 공급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옥당상사가 청주에서 공급받으면서 곽씨 가문의 줄을 타면 이건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곽씨 가문과 청주의 관계는 아주 긴밀했다. 그런 상황에 옥당상사는 곽씨 가문과 청주 둘 모두와 왕래를 했다. 이를 우연의 일치라 하면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짐에게 청희 장공주의 손을 빌려 너를 죽이려 한 자가 청주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냐?"
황제가 손안에 든 증거를 흔들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인의 힘으로는 확실하게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이 월령안은 감히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소인은 상의국의 설 상궁이 반드시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사람을 잡아들이셔서 설 상궁을 엄하게 심문해 주십시오."
'맞는지 틀리는지는 조사하면 알게 될 테니까.'
그녀의 목표는 옥당상사가 아니라 상의국의 행수 자리였다.
옥당상사는 내친김에 조사해 보려는 것이었다. 만약 공 사장이 청주로 기울었다면 그녀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상업계에서 합작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탁!"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증거를 월령안에게 내던졌다.
"설 상궁을 엄하게 심문하라고? 짐의 손을 빌려 적을 제거하고 자기 사람을 올려놓겠다! 월령안, 그 주판알을 너무 소리 나게 튕기는 거 아니냐. 감히 짐까지 이용해? 간이 어지간히 크구나!"
월령안이 황제에게 제출한 증거는 상의국 옷감 구입에 관한 장부 외에 옥당상사 조사 상황을 적은 종이 몇 장뿐이어서 무게감이 없었다. 그중 종이 몇 장은 월령안의 발치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폐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월령안은 최대한 빠르게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눈매를 다소곳이 하고 공손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황제의 손을 빌려 적수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잔머리와 이해타산은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였으므로 그녀는 황제가 알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설 상궁을 심문하지도, 옥당상사를 조사하지도 말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