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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09)화 (509/1,004)

509화 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부들부들 떨어서 거의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들은 계속 입을 벌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무리 봐도 뒤가 구린 모습이었다.

황제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시선을 옮겨 대전 한가운데 무릎을 꿇은 예부 시랑을 위시한 관리들을 바라보았다.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들이 월씨가 살수를 사 당신네 아들을 해쳤다고 고발한 것이오?”

예부 시랑이 맨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육장봉의 눈길이 닿는 순간 그는 숨어서 없는 척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육장봉이 그들을 지명한 것이기에 대표로 나섰던 예부 상서는 감히 숨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 년 전 구리파의 사건에 대해서는 나도 주목하고 있소. 옳고 그름이 세 치 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 이 사건은 우리 추밀원의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니 추밀원에서는 순천부를 전력으로 도와 조사할 것이오.

만약 월씨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나는 절대 감싸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만약 당신들이 모함한 것을 조사해 내는 경우 내가 예외 없이 손봐 줄 것이오.”

육장봉이 '예외 없이' 네 글자를 갑자기 강조해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이 사건이 왜 추밀원에까지 미치는지 묻는 것도 깜빡 잊고 말았다.

‘월령안이 언제부터 추밀원의 사람이 됐지?’

그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물으려고 할 때는 이미 기회가 없었다.

육장봉이 소리를 높여 한마디 외쳤다.

“순천부 최 대인은 어디 있는 것이오?”

“소인 여기 있습니다.”

붉은색 조복을 입은 최일은 대신들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 있다. 역시 경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육장봉에게 지목된 최일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앞으로 나섰다.

“예부 시랑이 살수를 사 사람을 해쳤다는 죄목으로 월령안을 고발했소. 들었는가?”

육장봉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세가 좀 전보다 더 강해졌다. 말투는 다소 경박하여 귀가 있는 사람이면 알아챌 수 있었다.

‘대장군이 최일에게 불만이 있는가?’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몰래 육장봉과 최일을 번갈아 바라보며 짐작했다.

최일도 물론 알아챘다. 하지만 그는 표정이 변하지 않고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띠고서 차분하게 말했다.

“대장군, 소인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에게 맡기겠소. 기억하게! 나는 진정한 배후 진범을 조사해 내기를 원하오. 이 사건이 나중에 월씨 저택 화재 사건처럼 소씨 가문 하인 한 명만을 조사해 내는 것을 원치 않는단 말이오.”

육장봉은 말투가 날카로웠다. 최일에 대한 불만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은 대신들은 순식간에 알아챘다. 대장군은 월령안을 위해 최 대인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대장군이 이건 월령안을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하는 것인가? 입장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일까?’

줄곧 시선을 내리깔고 잠자코 서 있던 장 부승상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의 옆얼굴은 냉담하기만 했다.

장 부승상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급히 눈길을 거둬들였다.

최일은 모든 이 앞에서 육장봉에게 질책을 당했지만 여전히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여유 있게 대답했다.

“대장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밀원이 도와준다면 소인은 기필코 배후,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육장봉과 마찬가지로 최일도 '배후, 진범'을 강조했다. 대신들은 최일이 단단히 약속하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육장봉은 최일이 그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부 시랑의 아들에게 손을 써 불구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최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일이 알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조정의 대신들뿐만 아니라 황제도 조계안이 손을 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가 나서서 인정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육장봉은 최일의 암시적 비웃음을 무시하고 최일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말만 했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돌아서 대신들을 등지고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폐하, 월씨가 북요와 내통했다는 사실은 아직 결론이 없지만 이미 세간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신은 이것이 북요의 꼼수로 의심됩니다. 여론을 빌려 월씨를 핍박해 죽이고 폐하께서 공신을 살해하게 핍박하려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어명을 내리시어 이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청합니다.”

조정의 대신들은 육장봉의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욕설을 날릴 뻔했다.

그들은 사실을 날조해낸 자신들이 이미 무척이나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육장봉은 그들보다 한층 더 뻔뻔스러웠다.

월령안이 적과 내통했다는 사실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육장봉은 무슨 낯으로 황제더러 어명을 내려 사실을 밝히라고 하는 것인가. 육장봉은 성지를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폐하, 이건 안 됩니다!”

예부 상서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폐하, 성지는 장난이 아닙니다. 월씨는 일개 여 상인에 불과합니다. 월씨 사건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설령 결론이 났다고 해도 그 여인은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사실을 밝혀 줄 만큼 자격이 없습니다.”

“월씨가 자격이 없다? 그럼 나는? 내 부인은?”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예부 상서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사람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

“당신들은 월씨가 육씨 가문의 힘과 내 부인이란 신분을 빌려 북요와 왕래하고 주나라의 정보를 북요에 전달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월씨의 결백을 밝혀서는 안 된다니. 세간에서 월씨를 비방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은 무슨 심보들인가?”

육장봉의 말이 떨어지자 무장 한 명이 뛰쳐나와 노하여 소리쳤다.

“나쁜 놈들…… 당신들은 대장군을 해치려 하는 거였어! 왜 월씨를 물고 늘어지는가 했지. 바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구먼…… 역겨운 것들! 비열한 소인배들. 대장군은 장병들을 이끌고 전선에서 싸우면서 전쟁터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런데 하마터면 지금 당신네 문인들 손에 죽을 뻔했잖아!”

무장들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문관들과 말싸움은 전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어 마디 더 고함친 뒤 문관들에게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폐하, 즉시 어명을 내려 월씨가 적과 내통했다는 것은 헛소문이라는 것을 밝혀 백성들이 더는 논의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폐하, 이들 배후가 악랄하니 폐하께서는 즉시 어명을 내려 주십시오.”

"폐하, 대장군은 북요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북요와의 비무에서 북요의 기염을 꺾어 놓고 주나라의 위세를 높였습니다.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적과 내통할 수 있지만 유독 대장군만은 불가능합니다. 폐하께서 어명을 내리시어 대장군의 명성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월령안의 명성에 대해, 자리에 있는 무장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황제가 성지를 내려 월령안의 명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서도 무장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육장봉의 명성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무장의 우두머리로 그들의 희망이었다. 무장들은 지위가 줄곧 낮다가 육장봉이 급부상한 뒤에야 점차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육장봉이 문관들에 의해 무너지고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면 앞으로 그들 모두가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관들에게 눌려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결코 육장봉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른쪽에 선 무장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하나같이 성심성의로 간절히 청했다. 황제가 성지를 내리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태세였다.

‘이건 위협이고 핍박이다!’

황제는 육장봉을 호되게 노려보았다. 화가 나서 하마터면 소매를 젖히고 자리를 뜰 뻔했다.

‘장봉은 분명 일부러 이러는 것이다! 너무 뻔뻔하잖아!’

황제가 병이 나은 후 처음 있은 조회는 결국 황제가 어두운 얼굴로 조회를 마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무장들이 어떻게 청해도 황제는 성지를 내려 월령안의 결백을 밝히는 것을 승낙하지 않았다. 다만 최일을 지목해 처리하게 했다.

이 결과에 무장들은 불만족했다. 하지만 황제가 이미 한발 물러선 것을 알기에 더 욕심을 내면 황제의 불만을 살까 두려워 가까스로 받아들이고는 '폐하 영명하십니다'를 한 번 크게 외쳤다.

하지만 육 대장군에게 한 방 먹은 황제는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육장봉을 힐끗 노려본 후 곁에 내관에게 조회가 끝났음을 선포하라고 눈짓했다.

육장봉은 황제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군신들과 함께 황제를 배웅했다.

황제가 떠난 후, 대신들은 안색이 어두웠지만 서로 의논하지 않고 묵묵히 되돌아서 대전을 나섰다. 땅바닥에 꿇어앉았던 위 대인, 예부 시랑 등도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이들과 함께 대전을 떠날 채비를 했다.

바로 이때 육장봉이 갑자기 되돌아서서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위 대인, 제 소경, 잠깐 기다리시오!”

쏴악, 대전을 나서려던 대신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는 육장봉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일곱 사람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장군께서 소인을 부르다니 무슨, 무슨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형부 시랑 위 대인과 대리사 제 소경은 백관 사이에 섞여 틈을 타 떠나려고 했다. 갑자기 육장봉에게 지명당하자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왔다, 왔구나! 육 대장군, 그가 왔다! 우리는 이젠 정말 끝장났군!’

“내가 한 말을 두 사람 다 잊었나 보군?”

육장봉에 천천히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양쪽의 관리들은 일제히 물러나 비좁은 대전에서 기어코 그에게 길을 터 주었다.

육장봉은 두 사람 앞에 다가가 거절하지 못하게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나를 따라 추밀원으로 가시오.”

“대, 대인……!”

형부 시랑 위 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시선은 여러 사람들을 뛰어넘어 형부 상서에게 닿아 소리 없는 부탁을 했다.

‘저는 추밀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부 상서는 못 본 척하면서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대, 대인……!”

위 대인은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며 이미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알았다. 망했어. 버려졌군.’

대리시 제 소경은 그보다 한발 앞서 이 사실을 알아챘다.

육장봉이 불러 세우는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장 부승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반응 없었다. 그 순간 장 부승상이 자신을 위해 대장군과 맞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제 소경은 처량하게 웃었다. 그래도 위 대인보다는 대범하여 다리를 떨지는 않았다.

물론 눈빛이 흩어진 채 초점이 없어진 두 눈동자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추밀원에 먼저 가서 두 사람을 기다리겠소.”

육장봉은 긴 다리를 쭉 뻗으면서 두 사람의 옆을 지나 궁전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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