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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08)화 (508/1,004)

508화 똑똑히 설명해야 할 것이오

“경들이 월씨가 살수를 사서 사람을 죽였다고 짐에게 고발했다. 그 증거는 있는 것이냐?”

“소인에게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월씨를 제외하고 제 아들에게 악랄하게 마수를 뻗을 사람은 없습니다.”

예부 시랑은 목숨을 내건 듯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월씨가 살수를 사서 사람을 죽인 것은 칠 년 전 구리파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칠 년 전 월씨는 변경 세도가의 아들들을 끌어들이려고 거액을 들여 투수장을 지었습니다. 안에서 어린애들과 투수를 길러 사람들의 노리개로 삼았습니다.

월씨의 이 같은 행보는 변경 세도가의 아들들을 유인하여 그들의 약점을 잡아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신과 몇몇 대인들의 아들은 월씨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월씨의 비밀을 알면 그녀가 사람을 죽여 입을 막을까 걱정되어 짐짓 잘 지내는 척했습니다. 기회를 타 월씨의 입에서 진정한 목적을 알아내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월씨에게 발각되었고 월씨는 미친 듯이 그들을 죽여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제 아들과 몇몇 대인들의 아들들은 운이 좋아 혼란한 틈을 타 도망쳤습니다. 도망쳐 나온 다음 제 아들은 가장 빠른 시간에 관아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관아가 구리파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고 몇몇 강호 사교 사람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있었던 일은 신의 아들에게 증거가 없습니다. 게다가 월씨의 수중에는 돈이 있고 변경의 고관들과 왕래를 많이 했습니다. 신은 지위가 비천하여 월씨가 횡행하는 것을 눈을 뻔히 뜨고 보고만 있었을 뿐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신과 신의 아들은 암암리에 증거를 모았습니다. 이제 좀 단서가 잡히려 했는데 월씨가 미쳐 날뛰더니 살수를 사서 제 아들을 해쳤습니다. 페하, 폐하께서…… 신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예부 시랑은 마치 아들이 죽기나 한 듯이 눈물 콧물을 쥐어짰다. 다른 대신들 몇 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누가 더 비참한지 경쟁하듯이 눈물을 짜며 계속 절규했다.

“폐하, 신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황제는 줄줄이 무릎을 꿇고 있는 대신들을 보며 어쩐지 웃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영리하군. 분명 계안이 했다고 짐작하면서도 계안을 깔끔하게 빼버렸잖아. 월령안 하나만 물어뜯는군. 나더러 월령안을 희생시켜 계안을 지키라는 거잖아.’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설령 그가 월령안을 희생시키고 싶다 해도 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황숙이 궁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황제는 즉위해서부터 조정의 대신들과 서로 재면서 지내왔다. 아래의 대신들보다 그들이 어떤 수단을 쓸지 더 잘 알고 있었다.

문관들은 하나같이 말재주가 대단했다. 죽은 것을 산 것으로, 반대로 산 것을 죽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절대 그들과 맞붙으면 안 되었다. 그들이 달라붙는 순간 주도권을 잃고 그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황제가 수많은 피와 눈물로 바꾸어 온 소중한 경험이었다.

황제는 아래쪽에서 울면서 아우성을 치는 대신들을 무시하고 한 번 휙 둘러본 다음 육장봉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봉, 어떻게 생각하느냐?”

황제가 육장봉에게 묻는 것에 대해 조정의 대신들은 전혀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월령안에게 손을 쓰는 목적은 바로 육장봉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일개 여 상인을 한사코 물고 늘어지겠는가.

그저 일개 여 상인의 죄를 다스리려는 것이라면 칠품 관리가 나서도 된통 혼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심혈을 기울여 월령안에게 북요와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것도 월령안이 육씨 가문에 시집간 후에도 끊임없이 북요에 소식을 제공했다고 한 것은 바로 육장봉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

육장봉이 죄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월령안의 죄명이 확정된다면 육장봉은 월령안의 전 남편으로서 그녀를 위해 적지 않은 편리를 제공한 것으로 된다. 그러면 적어도 연대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북요와의 비무에서 승리한 공로를 가지려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가 꺾여 집에 가서 잘못이나 뉘우쳐야 할 것이다.

황제가 말문을 열자마자 장 부승상 등을 제외한 모든 이는 일제히 육장봉을 바라봤다. 육장봉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고 그가 정말로 부상을 입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육장봉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며 젊고 준수했다. 조정 대신과 함께 서 있어도 여전히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다.

모든 이의 눈빛을 무시하고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신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월씨는 무죄입니다.”

“대장군, 소인도 대장군이 월씨와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입니다. 미색에 빠져 종사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죠.”

형부 시랑이 첫 번째로 나서서 분개하더니 자기 주장을 피력했다.

그 뒤를 이어 대리사와 어사대의 관리들도 일일이 나서서 침통해하며 육장봉을 비난했다. 미색에 빠져 이성을 잃고 여인을 위해 옳고 그름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질책했다.

예부 시랑을 위시하여 아들을 살해했다고 월령안을 고발했던 관리들도 덩달아 육장봉을 질책했다. 그들은 경전의 말을 인용해 육장봉을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힐난했다. 무공만 있고 머리가 없어 여 상인에게 이용당하고서도 알지 못하니 군대를 이끌고 싸울 자격이 전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전선에서 사상자를 낸 것도 모두 육장봉의 책임으로 돌렸다. 육장봉이 미색을 위해 주나라의 장병을 희생시켰으므로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에게 미안하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대장군, 정신 좀 차리십시오. 월씨는 요망한 계집입니다. 만약 당신이 월씨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고 월씨가 주나라 군사 정보를 팔아먹지 않았다면 당신과 우리 주나라 장병들의 용맹함으로 북요를 진작에 이겼을 겁니다. 북요와 삼 년 동안이나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월씨는 나라와 백성을 해친 죄인입니다!”

“대장군, 월씨가 적과 내통하여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북요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장병을 잃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월씨 때문에 죽었습니다. 대장군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장병들의 목숨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문관들의 말은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 보완해 얼핏 들으면 아주 일리가 있었다. 평소 머리가 별로 돌아가지 않는 무장 몇은 문관들의 말 대포에 저도 모르게 얼굴색이 침울해졌다. 육장봉을 보는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황제는 옥좌에 앉아 있어 사람들의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점점 더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보고 저도 모르게 다급해졌다. 몰래 육장봉에게 손짓을 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전혀 보지 않았다.

그는 마치 대신들의 욕설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황제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일찍 만약 그에게 육장봉의 저러한 확고한 정신력이 있었더라면 조정 대신들 때문에 화가 나서 옷소매만 젖히고 떠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핍박에 못 이겨 말문이 막히고 화만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탄복은 탄복에 그칠 뿐, 황제는 대신들이 계속 욕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글은 호소력이 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이런 일은 많이 말하다 보면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거짓말도 진실이 되었다. 문관들이 사실을 왜곡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만 됐다!”

황제는 분노하여 한마디 꾸짖어 아직 마음껏 욕설을 퍼붓지 못한 대신들을 저지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육장봉에게 말했다.

“장봉, 너는 할 말이 있느냐?”

“폐하께 알려드립니다. 월씨는 죄가 없습니다. 그녀는 적과 내통하고 나라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살수를 사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육장봉은 대신들의 질책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의 물음에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형부 시랑 등은 육장봉이 입을 열자 하나같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전의가 드높기 그지없었다.

“대장군, 월……!”

“그 입 닥쳐라!”

육장봉은 뒤돌아서 한쪽 발을 힘차게 굴렀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육장봉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장 부승상과 그의 뒤에 있던 노장군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마치 대전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착각인가?’

몇 사람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의 발밑의 벽돌이 아래로 오목하게 들어갔고 옆의 벽돌은 부서져 있었다.

‘이건…….’

육장봉의 뒤에 서 있던 노장군은 묵묵히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육장봉과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그가 물러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육장봉 발밑의 부서진 벽돌 조각들을 보게 되었다. 다들 지난밤 들은 소식이 떠올라 표정에는 의심이 서려 있었다.

‘육장봉, 이 사람 정말 다친 게 맞나?’

이 한 발의 위력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옥좌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실룩거렸다.

육장봉이 강하긴 강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다짜고짜 대전의 벽돌을 밟아 깨다니.

‘장봉아, 공부 장인들 생각도 좀 해 주지 그러냐.’

육장봉의 이 한 발의 위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방금까지 목소리를 높이던 관리들의 타오르기 시작한 전의가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육장봉을 바라보기만 하고 더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도, 앞다퉈 말하지도 않았다.

대전은 소리 없이 조용했다. 육장봉은 만족한 듯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했다.

“월씨는 내 사람이오. 북요와의 왕래는 어명을 받고 직분을 행한 것이였소. 그녀가 한 모든 것은 내가 시켜서 한 것이고 모든 행동은 내가 담보할 것이오.

당신네 손에 있는 북요와 내통한 증거…… 조회가 끝난 다음 추밀원에 보내시오. 한 글자 한 글자 내게 똑똑히 설명해야 할 것이오. 그 증거들을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북요와 관련된 일을 알게 되었는지.”

‘증거를 찾아 월령안의 무죄를 증명하라고? 필요 없어!’

할 일 없이 남을 해코지하기만 하는 문관들과 입씨름할 겨를이 어디 있는가.

육장봉의 말투는 빠르지 않고 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압박감과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신들은 괜히 제 발이 저렸다. 특히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전혀 이치대로 나오지 않았다. 증거를 찾아 월령안의 결백을 증명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더러 증거의 내력을 설명하라고 했다.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날조한 증거들 중 상당 부분은 북요가 제공한 것이었다. 대장군에게 증거의 내력을 말할 수 없었다.

‘이건……, 끝장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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