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신, 상주를 올리겠습니다
황후를 폐위시키고 나서 황제는 또 내시 총관더러 앞으로 나아가 염 황숙을 염 친왕으로 책봉하고 황성사를 통솔하게 한다는 조서도 읽게 했다.
‘염 황숙? 우리가 생각하는 그분? 선제의 동생?
고종 황제의 아들로 나이 열다섯에 고종 황제한테 중용되어 황성사 우두머리가 된 그분?
염 황숙은 실종된 지 수십 년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돌아왔지?
친왕으로 책봉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황성사?
염 황숙이 황성사를 통솔한다고?’
대신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 황제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나같이 말뚝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가 황제의 황성사 재가동을 지지하다니? 이거 미친 거 아닌가?’
문관뿐만 아니라 무장들도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황제가 혼미해 있는 사이 황성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그들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황성사를 재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든 대신들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서면 황제가 타협하기 싫어도 반드시 타협해야만 했다.
황성사가 지금 사람을 잡아들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강력하게 반대하여 황제가 광명정대하게 황성사를 재가동하지 못하면 황성사는 심문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면 잡아들인 사람도 모두 풀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는 모든 이 앞에서 염 황숙더러 황성사를 통솔하게 한다고 조서를 읽었다. 이는 바로 황성사를 중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장 부승상 세력들이 왜 소리를 내어 반대하지 않지?’
대신들은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길로 그들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이런 눈빛과 시선이 전에는 오직 육장봉에게만 쏠렸다.
다름이 아니라 육장봉이 남의 질투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문관이든 무장이든 육장봉이 황제 앞에서 가진 각종 특권을 보면 질투하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대신들의 시선이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는 기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일곱 사람은 그곳에 서서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무겁기만 했다.
그들은 반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반대할 수도 없고 감히 반대하지도 못했다.
염 황숙은 그들에게 황성사를 재가동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알려 주었다. 신이 막으면 신을 죽이고 부처가 막으면 부처를 죽일 것이라 했다.
그들이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황성사의 재가동은 막을 수 없다.
그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염 황숙은 황성사에 규칙을 정할 것이다. 앞으로 황성사의 주요 직책은 감찰이고 형부, 대리시의 직책과 중첩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반대하면 고종 때 황성사의 위풍을 재현하기를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황성사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우선 먼저 일곱 명에게 손쓸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만약 황제가 했다면 그들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이가 염 황숙이면 다시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 황숙은 당시 열다섯 살의 나이로 황성사를 통솔했다. 처음에는 모든 이가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이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고종 기간 염 황숙은 황성사 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많은 조정 대신의 피를 손에 묻혔는지 모른다. 그의 위엄과 명성은 조정 대신들의 피로 쌓은 것이었다.
염 황숙의 이름은 지금 들어도 많은 대신들이 저도 모르게 벌벌 떨었다.
위협에 그치지 않고 염 황숙은 그들을 이익으로 유혹했다. 그들 가문 자손의 장단점을 낱낱이 밝혔다. 그 자손들의 성격과 이 몇 해 동안 했던 일에 대해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염 황숙은 정말 두렵다!’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황제가 황성사를 재가동하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가 입을 열지 않자 나머지 사람들은 설령 생각이 있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마음속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감추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연이어 성지 두 개를 내렸지만 반대하는 대신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황제는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시 총관에게 눈짓을 했다. 내시 총관은 암시를 받자 앞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일이 있으면 상주를 올리고, 일이 없으면 조회를 마친다!”
말이 끝나자 대전은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이때 형부 시랑이 나섰다.
“신, 상주를 올리겠습니다.”
“상주를 올리라!”
황제가 등을 곧게 펴고 똑바로 앉았다.
‘오늘의 본론이 이제 시작되었군!’
형부 시랑이 나서서 상주를 올린 것은 바로 월령안이 적과 내통한 사건이었다.
형부 시랑 위 대인은 말솜씨가 아주 좋았다. 월령안이 어떻게 부하인 가게 주인을 통해 밀서의 방식으로 주나라의 소식을 북요에 보냈는지를 마치 자기가 직접 본 것처럼 생동감 있게 말했다.
말솜씨 외에도 위 시랑은 논리성도 충분했다. 월령안이 적과 내통하고 정보를 판매한 논리와 순서를 조리 있게 나열했다.
“월씨 일가족은 청주에 근거지를 두고서 북요와 자주 왕래했습니다. 월씨는 어머니를 따라 변경에 와서도 북요와의 왕래를 끊은 적이 없습니다. 소씨 저택에 있을 때도 북요인들과 극비에 접촉했습니다. 다만 소 승상이 가문을 엄격히 다스리는 바람에 월씨는 조정의 정보를 빼낼 기회가 없었습니다.
소 승상은 월씨의 수상한 행적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월씨가 영리한 데다가 나이가 어려 속임을 당했습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 승상은 끝까지 신중했습니다. 월씨의 수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증거가 없었지만 결국 밖에 나가 살게 했습니다. 소 승상의 이 행동 덕분에 월씨는 더 많은 기밀 정보를 북요에 팔아 넘기지 못하게 되었죠.
월씨는 비천한 출신으로 소 승상의 집에서 쫓겨난 뒤 조정의 기밀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신분의 제한으로 월씨는 지체가 높은 집에 시집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지체가 높은 집에 시집간다고 해도 며느리로서 조정의 기밀은 접하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월씨는 대장군을 노렸습니다. 가족 인원수가 극히 적은 육씨 가문을 노렸던 것입니다.
다 알다시피 대장군은 본디 소 승상의 장녀와 혼약이 있었습니다. 월씨가 육씨 가문으로 시집가려면 먼저 소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혼약을 깨야 했습니다. 그 몇 해 사이 대장군은 이미 대부분 시간을 밖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대장군은 책임감이 강한 분이기에 대장군에게는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월씨는 마음씨가 독하고 꿍꿍이속이 깊어 소 승상의 장녀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북요 귀족을 끌어들여 소 승상 장녀를 유혹하게 하고 기회를 틈타 납치해 감으로써 소 승상의 장녀가 다른 사람과 몰래 달아나고 혼약을 파기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월씨는 소 승상의 이붓딸로서 그녀 어머니의 성원으로 육씨 가문에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월씨가 북요와 왕래가 가장 밀접했을 때는 육씨 가문으로 시집가 육씨 가문의 가주 부인이 된 다음이었습니다. 월씨는 육씨 가문에 시집간 뒤 육 부인의 신분으로 권력자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큰돈을 들여 조정의 원로 대신들과 왕래했습니다.
그녀는 육씨 가문에 시집간 뒤 짧은 삼 년 동안에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어떻게 벌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두 불분명합니다.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어떻게 썼는지는 아마 월씨 자신만이 알 것입니다.
그 외에도 월씨는 참 꿍꿍이가 많았습니다. 달마다 편지 한 통씩 보내 대장군의 소식을 염탐했고 달마다 상단을 변방에 보냈습니다. 이렇게 왕래가 빈번한 것으로 보아 목적은 자명한 것입니다.
월씨는 북요와 왕래가 잦을 뿐만 아니라 북요에서도 제법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그녀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부하들이 북요에 있으며 심지어 남원대왕의 자리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흔적은 모두 월씨와 북요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행히 하늘이 주나라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대장군의 마음속에는 오직 북요와의 전쟁만 있을 뿐 남녀간의 정 같은 건 없어 월씨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위 대인은 감정이 격해지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가슴을 마구 치며 침통해하는 모습이었다.
월령안의 죄명을 전부 말한 위 대인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대전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서 황제에게 큰절을 올렸다.
“폐하! 월씨는 꿍꿍이가 많고 속내를 깊게 숨겼습니다. 폐하께서 어명을 내려 월씨가 북요와 내통한 사건을 엄격하게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황제는 옥좌에 앉아서 위 시랑의 타당하고 신랄한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감개무량해했다.
문관은 정말로 말을 잘했다. 월령안과 소씨 가문 사이가 틀어진 내막이나 월령안이 육장봉과 결혼한 내막을 알지 못했더라면 그 역시 모두 믿었을 것이다.
위 시랑의 이 말은 조리가 분명하고 논리가 정연할 뿐만 아니라 이치도 근거도 있었다. 게다가 진실을 섞어서 일부 세부적인 부분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추측까지 더하니 듣는 이들은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당에 나가 맞붙으면 월령안은 입이 천 개라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인들이 한 수 위였다. 살인을 해도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을 한 번 열면 사실 관계가 전도될 수 있었다. 똑 같은 일도 그들의 입을 거치면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는 그들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황제는 속으로 탄식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부는 어떻게 사건을 처리한 것이냐? 이런 사건도 해결하지 못해 대전에 가져와서 말하는 것이냐. 짐이 경들을 도와 판결해야 하는 것이냐?”
“폐하께 보고드립니다. 이 사건에는 대장군과 조왕 전하가 연루되어 있습니다. 형부는 감히 독단적으로 안건을 판결할 수 없었습니다.”
형부 상서가 나서더니 겁나는 얼굴로 잘못을 인정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황성사 문제에서 그들은 한발 양보했다. 황제는 어쨌든 조정 대신들의 체면을 살려 주어야 했다. 월령안 사건에서 황제는 한발 양보해야만 했다.
황제는 얼굴을 굳히고 형부 상서를 질책하려 했다. 이때 예부 시랑이 갑자기 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신은 월씨가…… 살수를 사서 사람을 죽이고, 무고한 사람을 해친 것에 대해 고발합니다.”
“폐하, 신도 월씨를 고발합니다. 살수를 사 사람을 죽이고 무고한 사람을 해쳤습니다.”
예부 시랑은 마치 하나의 도화선 같다. 그가 무릎을 꿇자, 조정에서 열 명에 가까운 대신들이 대열에서 나와 대전에 무릎을 꿇었다.
이 열댓 명은 모두 대전 뒷부분에 섰으며 심지어 대전 밖에 서 있던 관리도 있었다. 관직은 비록 대전 앞의 관리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조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조정의 관리 수십 명이 나서니 황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