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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06)화 (506/1,004)

506화 군계일학

“밖에서는 뭐라고 하더냐?”

황제는 스스로 꿀리는 데가 있는 터라 변명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육장봉이 중상을 입었고 황형이 걱정되어서 직접 태의서를 찾아가 병문안했다고 하던데요.”

조계안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황제는 오히려 웃고 말았다.

“이렇게 확실하게 장봉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문이 나오는 걸 보니 누군가는 변경이 아직 덜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누군가 육장봉이 부상을 입은 사실을 일부러 소문을 퍼트렸다. 그렇다면 설령 그가 오늘 태의서에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육장봉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문은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소식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사실이라고 믿으면 곧 행동을 불러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수두룩했다.

“누가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조사는 했느냐?”

황제가 물었다.

“곽씨 가문과 연관 있다는 것을 조사해 냈습니다.”

조계안은 눈동자가 새빨갛고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섰다. 목소리도 무척이나 쉬어 요 며칠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곽씨 가문? 역시 청주와 연관이 있었군. 곽씨 가문이 한시바삐 나서려는 이상 짐이 그 소원을 들어줘야겠구나.”

황제의 늘 평온하기만 하던 눈동자에 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통지해라. 짐의 병이 다 나아서 내일 아침 조회를 재개할 것이다.”

“황후를 폐위시키려고요?”

조계안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진왕, 영녕후의 세력은 어떡하려고요? 구리파에서 잡아 온 첩자들은 모두 죄가 두려워 자살했습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진왕, 영녕후의 부탁을 받고 저를 암살하려 했다고 자백했고요. 제가 그들도 같이 처리해도 될까요?”

황제가 동의하지 않을까 두려워 조계안은 한마디 덧붙였다.

“황형,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저도 적당히 할 거니까. 장씨, 유씨 가문은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 두 가문에서 죄를 저지른 것은 방계예요. 장씨, 유씨 가주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고 알았다고 해도 방계를 위해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청주에서도 그들을 포섭할 수 없을 거고요.”

“네가 자신 있으면 하거라. 손쓰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장봉이 부상을 당해서 짐이 자기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황제도 이 많은 사람을 처리하면 인심이 흉흉해질까 한 번 더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진왕 세자, 영녕후부의 후계자들이 모두 조계안에 의해 불구가 되었다. 조계안이 그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이 조만간 조계안에게 손쓰게 될 것이다. 전에 조계안이 중독된 건 청주 사람들이 한 짓이지만 그건 발단이 될 수 있었다.

“황형이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네요.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황성사에 가서 사위를 이끌고 가서 사람을 잡아들일게요.”

조계안은 일어서서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조계안은 궁궐을 나서자마자 곧장 황성사로 달려갔다. 백여 명의 사위를 불러놓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위가 와서 보고했다.

“대인 큰일났습니다! 어제 구리파 범인을 심문하던 감육(甘陸)이 자살했습니다. 구리파의 범인 몇 명이 써 놓은 자백서가 없어졌고 그 몇 명의 손발과 얼굴도 마구 난도질당했습니다.”

“자백서가 없어졌다니 무슨 뜻이냐? 누군가 가져간 것이냐?”

조계안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목소리도 차가워서 사람을 놀라게 했다.

사위는 흠칫 놀라 서둘러 말했다.

“대인, 오늘 황성사를 드나든 사람은 없습니다. 소인은 불에 탄 흔적이나 냄새 같은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소인은 감육이 자백서를 삼켰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감육의 배를 가르거라!”

조계안은 눈동자가 시뻘겋고 눈빛이 음침했다. 이를 악물고 노하여 말했다.

황성사의 사위는 모두 칼잡이였다. 얼마 안 되어 감육의 배를 갈랐고 이변 없이 그의 위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종이가 발견되었다.

“좋아, 좋아, 좋아! 감육! 감육과 접촉이 있었던 모든 이를 조사한다.”

조계안은 노발대발했다.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황성사의 사위가 행동하기 전에 증거를 삼켰다. 이는 중대한 실수였다. 이처럼 큰일이 생겼으니 조계안은 책임을 미룰 수 없었다.

조계안은 또다시 의외의 일이 생길까 두려워 황성사에서 자리를 지켰다. 직접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고 심복만 입궁시켜 황제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황제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소식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소식을 육장봉에게 전하게 했다.

사위가 증거를 삼켰다. 이는 소식이 누설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청주 사람들은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진왕과 영녕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이를 기회로 그들을 포섭하려 할 것이다.

진왕과 영녕후는 믿지 않더라도 손을 써서 진위여부를 떠볼 것이다.

의외의 일이 없다면, 내일 조회는 떠들썩할 것이다.

황제는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육장봉은 황제가 보내 온 소식을 듣고 즉시 황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내일 조회에 평소와 같이 참가할 것이다.”

변경이 혼란해질수록 그에게 일이 생겨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 일이 없어야 암암리에 일을 꾀하려는 자들이 감히 기회를 타서 소동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삼켜진 자백서에 대해 육장봉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조계안은 진왕과 영녕후에게만 손쓸 뿐 장씨, 유씨 두 가문을 끌어들이지 않았기에 영향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진왕 세자, 영녕후의 가장 뛰어난 아들이 불구가 되었다. 그가 손썼을 때 이 두 가문은 이미 그와 대립 관계에 있었다. 만약 그들 두 가문이 청주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에게는 더욱 유리했다.

조계안이 손쓰면 진왕과 영녕후는 기껏해야 약간의 고통을 겪고 세력도 얼마간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청주로 기울어지면 달랐다. 일단 그들이 청주로 기울어지면 황제는 절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진왕과 영녕후를 처리할 좋은 기회였다.

소식을 전해왔던 전령은 육장봉의 대답을 듣고 즉시 돌아가서 복명했다.

황제는 줄곧 육장봉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장봉의 긍정적인 대답을 받고서야 편히 잠들 수가 있었다.

날이 밝자마자 황제는 내관이 깨워 일어났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서 엄숙한 표정으로 정전으로 향했다.

* * *

오늘의 조회는 황제가 대외적으로 병이 났다고 선포한 뒤 처음으로 소집된 대조회였다. 문무 백관들이 모두 오늘의 대조회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묵묵히 기다렸다.

황제가 대전에 나타났을 때 조정에는 문무 대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육장봉을 위시한 무장들은 황제의 오른편에 서 있었다. 황제는 대전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육장봉을 보았다.

육장봉은 대전 앞에 서 있었다. 기세가 드높고 위풍당당했다. 엄숙한 표정에 눈에는 정기가 돌아 전혀 병든 기색이 없었다. 황제는 마음속으로 몰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육장봉을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다. 밤사이에 마치 아무 일 없는 사람 같다니 도대체 무슨 보약을 먹었는지 궁금했다.

황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육장봉을 스쳐 왼쪽에 있는 장 부승상의 세력에게로 옮겨졌다.

장 부승상은 얼굴이 침착하고 눈까풀이 축 늘어진 것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황제는 이게 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 부승상의 몸은 그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장 부승상의 뒤쪽에는 각 부의 상서가 서 있었다. 상서 몇 명의 뒤쪽에는 빈자리가 몇 개 있었다. 이에 대응되게 무장 쪽에도 빈자리가 몇 개 있었다.

본래 그 몇몇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지금 모두 황성사에 갇혀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들은 살아생전에 다시 조정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시선으로 한 번 휙 훑고서 아래쪽 대신들이 눈치채기 전에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았다.

황제가 자리에 앉은 다음 그의 뒤에 서 있던 내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예를 표하시오!”

대신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유독 육장봉만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육장봉은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군계일학 같았다.

이는 육장봉의 특권으로서 변방의 대승으로 얻어낸 특권이었다. 황제는 제전(祭典)을 제외하고는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했다.

평소 조회에서 황제는 대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라 하지 않았다. 읍례만 올리면 되었다. 대조회에서만 이처럼 성대할 뿐이었다.

대조회 때 육장봉은 특권이 있어도 신하들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허락한 특권 때문에 군신들 앞에서 자신의 남다름을 과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육장봉만 무릎을 꿇지 않자 순간적으로 그의 남다름이 드러났다.

파랗게 젊어서 특권을 혼자 누리는 육 대장군을 보고 군신들이 시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샘 난들 어떡하랴.

황제는 육장봉을 믿었다. 그들이 어떻게 먹칠을 하고 덤터기를 뒤집어씌우며 구정물을 끼얹어도 황제는 여전히 시종일관 육장봉을 믿었다. 육장봉과의 사이에 조금의 틈새도 없이 일심동체였다. 자신의 형제, 아들도 그처럼 신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황제와 육장봉 간에 무슨 특수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황제가 왜 육장봉을 그렇게 신임할 수 있겠는가.

시샘은 시샘이고 추측은 추측일 뿐. 대신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하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만세를 외쳐야 하면 만세를 외쳤다. 내관이 일어나라고 외칠 때 대신들은 또다시 엄숙해졌다. 육 대장군을 얼마나 질투하고 부러워하는지 전혀 보아낼 수 없었다.

신하들이 몸을 일으켰다. 황제는 내관에게 '일이 있으면 상주를 올리고, 일이 없으면 조회를 마친다'는 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어명을 읽어라!”

“네, 폐하.”

황제의 뒤에 서 있던 내시 총관이 엄숙하게 앞으로 나아가 노란색 성지를 펼치고 황후를 폐위시킬 데 관한 조서를 읽었다.

대황자가 죽고 황후가 갇혔다는 소식은 비밀이 아니었다. 황제가 황후를 폐위시키는 것은 대신들의 예상대로였다. 성지를 들은 대신들은 탄식만 할 뿐 곽 황후를 위해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황제가 혼미해 있는 기간에 가장 날뛴 것은 곽씨 가문이었다.

곽씨 가문이 한 일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많든 적든 곽씨 가문의 포섭을 받았었다. 황후가 폐위된 후 그들이 나서서 곽씨 가문을 위해 말하면 황제는 그들이 곽씨 가문과 한패라고 의심할 게 뻔했다.

내시 총관이 성지를 읽은 뒤 황후를 폐위시킨 데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영명하십니다'를 높이 외칠 뿐이었다. 물론 새로운 황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어젯밤에 갑자기 오늘에 조회를 연다는 소식을 받았다. 사전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기에 아예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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