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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02)화 (502/1,004)

502화 부상당한 거야, 아닌 거야?

육장봉의 친위대는 실력이 강하고 호흡이 잘 맞아 흑의인들이 아무리 수적으로 많다 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흑의인들은 지척에 있는데도 정작 옷자락도 만질 수 없는 육 대장군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그들의 임무는 육장봉을 죽이는 것도 육장봉의 친위대와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필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낮에 행동한 것은 수횡천과의 싸움에서 육장봉이 부상을 당했는지, 만약 그렇다면 몸이 어느 정도 상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지금 부상의 정도를 알아보기는커녕 근처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갖은 방법을 다 써도 친위대의 방어를 뚫지 못하자 흑의인 우두머리는 흉악한 눈초리로 육이를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강공!”

강공이란 사람 목숨으로 포위를 뚫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흑의인들이 죽을 각오로 친위대의 발을 묶어 놓는 틈을 타 그들의 방어를 뚫을 작정이었다.

흑의인들이 목숨을 걸고 벌 떼처럼 달려들어 친위대를 덮쳤다. 육이 등은 몸을 뺄 수가 없어 눈을 뻔히 뜨고 나머지 흑의인들이 방어선을 뚫고 육장봉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흑의인들은 당장 육장봉 코앞까지 달려들어 그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일 수 있게 되었다. 흑의인 우두머리는 눈을 반짝이며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육장봉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느긋하게 명령을 내렸다.

“궁수!”

군복을 입은 궁수들이 담장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일렬로 서서 가장 빠른 시간에 포위를 뚫고 나온 흑의인들을 조준했다.

뜻밖의 변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흑의인 우두머리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화살 비가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렸다.

“비겁한 자식!”

흑의인 우두머리는 칼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냈다. 하지만 쏘아져 내리는 화살은 수없이 많았다. 흑의인의 손이 아무리 빨라도 모든 화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푸욱!

긴 화살이 우두머리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가 잠깐 멈칫하는 사이 화살 세 개가 또 적중했다.

우두머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그는 주변의 흑의인들이 모두 화살에 맞아 쓰러졌음을 발견했다.

흑의인 우두머리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칼을 들고 육장봉에게 돌진했다.

그는 죽더라도 육장봉이 상처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꼭 알아보고 싶었다.

슉! 슉!

흑의인 우두머리는 세 걸음 정도 달렸을 뿐이었지만 그의 몸에 수십 개의 화살이 꽂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는 간신히 육장봉에게 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죽음을 자초하는군”

육장봉은 긴 다리를 쭉 뻗어 우두머리를 차 던졌다. 공격이 민첩하고 깔끔했으며 몸놀림이 시원스럽고 우아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육장봉은 갑자기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연속 몇 걸음 물러나고 나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방금 몸을 가누자 또 한바탕 기침을 했다. 더없이 허약해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 지켜보던 또다른 자가 이 광경을 보고 곧 두 눈을 크게 떴다.

‘육장봉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 이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잠깐, 육장봉의 마지막 반격은 이상해! 마지막에 습격한 자는 힘이 다 빠진 상태였기에 그의 일격은 누가 봐도 육장봉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육장봉이 그걸 못 알아챌 리가 없어.”

바로 육장봉의 상태를 보고할 생각이었던 흑의인은 그 말을 듣고 어둡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 상황에서 육장봉은 한 발자국만 물러서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육장봉이 정말 부상을 당했다면 부상을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나설 이유가 전혀 없잖아. 육장봉은 왜 공격했지? 우리들의 목적을 알고 있는 걸까? 일전에 거짓으로 다쳐 신호를 속인 적도 있지. 육장봉은…… 도대체 부상당한 거야, 아닌 거야?”

몰래 지켜보는 사람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이 정보로는 전혀 판단을 할 수 없어 우선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육장봉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암습자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친위대는 육장봉을 겹겹이 에워쌌다.

"대장군!"

"장군!"

육이 등에 둘러싸여 육장봉은 장군부로 돌아갔다.

이각 뒤, 장군부의 문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육장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장군부로부터 마차가 무려 수십 대가 잇달아 나왔다.

거의 백 명의 시위들이 호위하며 마차를 겹겹이 둘러쌌다. 마차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볼 수 없었고 육장봉이 마차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보지도 못하는 사람을 탐색할 수는 없었다.

몰래 지켜보던 흑의인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가 전갈을 보내야 할지 말지, 주인에게 말해 다음을 기약할지를 주저하고 있는 순간, 긴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슉 날아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눈을 빤히 뜨고 화살이 가슴팍을 관통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장군부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잠한성이다!’

활을 쏜 사람은 잠한성이었다. 육장봉이 잠한성을 풀어 준 것이다.

육장봉은 심하게 부상당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손쉽게 그를 죽여 버렸을 것이다. 잠한성을 풀어 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소식을 전할 수 없게 되었다.

잠한성은 그 흑의인을 죽인 후 곧 다시 장군부로 끌려갔다.

힘이 넘치는 그 화살 한 방을 쏜 사람이 잠한성이라는 것은 죽은 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육장봉이 부상당한 틈을 타 손을 쓰려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숨어들어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육장봉이 수십 장 밖에서 정확하고 힘 있는 화살 한 방을 날릴 수 있다는 건 상처를 입어도 아주 작은 상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십중팔구 이전에 신호를 속였던 것처럼 일부러 부상을 입은 척하며 그들을 희롱하는 것이다.

물론, 육장봉이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육장봉에게 보복당할까 두려워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육장봉은 지위가 높고 권세가 막강하며 무예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보복심도 강했다. 확실하게 승산이 없는 한 감히 육장봉을 건드리지 못했다.

장군부의 마차는 곧장 황궁까지 달려갔다. 장군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암암리에 주시하던 정탐꾼들도 따라갔다.

대장군의 마차가 일렬로 궁문 밖에 늘어서는 것을 정탐꾼들은 모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지켜봤다.

마차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려면 궁 문 앞 검문이 그들에게는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하고 말았다. 장군부의 마차는 궁 밖에서 검문을 받지 않았다. 선두에 있던 육이가 요패(腰牌 - 군졸·하인들이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허리에 차던 나무패)를 꺼내 보이자 궁 문을 지키는 금군은 즉시 문을 열고 모든 마차를 통과시켰다.

줄곧 따라다니며 내막을 알아내려던 정탐꾼들은 이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궁중 금지령을 내렸다고 했던 거 같은데. 출입도 엄격히 조사한다고 했잖아? 장군부의 마차를 그냥 이렇게 통과시킨단 말인가. 금군의 검문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이래도 되는 거야? 마차가 열몇 대라고!’

만일 사람을 숨긴다면 몇백 명은 숨길 수 있다. 육장봉이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잔인함을 보아 수백 명이면 황궁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가 육장봉을 얼마나 믿기에 장군부의 마차가 검문도 거치지 않고 직접 입궁할 수 있단 말인가.

정탐꾼들이 실망에 빠진 순간에 마지막 뒤처져 있던 마차가 갑자기 끌채가 끊어지면서 한쪽으로 넘어갔다.

마차가 넘어지자 안에 담겨 있던 은괴가 촤르르 소리와 함께 몽땅 굴러떨어지며 땅바닥에 널렸다.

“이건…….”

땅바닥에 널린 은괴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정탐꾼들은 하마터면 눈이 뒤집힐 뻔했다.

“마차 안에 든 것이 은괴라고?”

정탐꾼은 그 자리에서 어리둥절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잠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장군부에서 괜히 황궁에 웬 은괴를 보내지?’

하지만 정신을 잠깐 판 사이 정탐꾼은 정체를 들키게 되었다.

“누구냐!”

성문을 지키던 금군이 칼을 들고 달려왔다.

정탐꾼은 깜짝 놀라 더는 머물지 못하고 뒤돌아서 도망쳐 버렸다. 금군은 쫓아가면서 희미한 그림자 몇 개만 보았을 뿐 사람을 붙잡지는 못했다.

그들이 되돌아갔을 때, 대장군의 시위는 땅에 흩어져 있던 은괴를 다시 마차에 싣고 황궁으로 들어갔다.

궁 문 입구는 다시 평소의 조용함을 회복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이 은괴 십여 마차를 싣고 입궁했다는 소식은 하루아침에 전 변경에 퍼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은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했다.

‘육 대장군이 그 많은 은괴를 가지고 입궁해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하지만 어떻게 추측해도 황제가 가난하다는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분명 황제의 뜻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 대장군이 미친 것도 아니고 왜 황궁에 돈을 보내겠는가.

물론 당장 황제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비밀'이 누설된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육장봉이 탁자 위에 가져다 놓은 은표와 차용증을 보고 한참 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말했다.

“장봉, 진지한 것이냐? 그것은 짐이 월령안에게 주는 상이다!”

“네.”

육장봉은 대답하고 나서 담담하고 여유 있게 말했다.

“신은 어제 월령안에게 경고했습니다. 다른 남자가 준 물건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최일이 준 옥패도 당장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신을 실언한 것으로 만들면 안 되시잖습니까. 물론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을 돌려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이 사겠습니다.”

‘진지하지 않으면 이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거다.’

“어젯밤에 나간 게 이 때문이냐?”

황제는 고개를 들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다만 그중의 하나에 불과하죠.’

“아니라면 됐다. 짐은 손 신의더러 너의 머리를 열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고 싶구나.”

황제는 노여움이 약간 가라앉은 뒤 무심결에 물었다.

“어젯밤에 나가서 무엇을 했느냐?”

“미끼를 던졌습니다.”

육장봉은 내친김에 겸사겸사 한 일을 황제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황제의 눈치는 보지 않았지만 황제가 무엇을 듣기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대낮에 습격했다고?”

황제가 물었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침묵은 묵인이었다. 황제는 곧 깨닫고 감동하여 말했다.

“장봉, 수고했다!”

“끝낼 때도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월령안은 줄곧 황궁에 있어야 했다.

“그래 확실히 끝날 때가 되었구나.”

황제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은 확고했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육장봉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부탁했다.

“폐하, 신이 잠깐 이반반을 빌렸으면 합니다.”

“이반반을 빌린다고?”

‘장봉이 이반반을 쓸 일이 무어가 있지?’

“쓸 데가 있습니다.”

육장봉은 한발 앞서 황제의 질문을 막았다.

“폐하께서는 이반반더러 신을 따라 한번 다녀오라고 명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알았다. 이반반, 장봉과 함께 갔다 오너라.”

황제는 마음속에 공무가 있어서 더 물을 기분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반반은 선을 지켜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추후 황제는 육장봉이 이반반을 빌려 무엇을 시켰는지를 알고 화가 나 죽을 지경까지 가게 된다.

이반반은 선을 지킬 수 있지만 육장봉은 아니었다.

이반반이 아무리 적정선을 지키려 해도 육장봉을 말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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