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분명 아주 좋아할 거야
육장봉은 육이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 서재는 육장봉이 떠나기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얇은 먼지가 한층 쌓여 있었다. 육장봉이 저택에 없는 시간 동안, 서재에 들어온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육장봉은 책상 앞에 앉아 몸을 뒤로 기대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장군!”
육장봉이 앉자마자 육일이 들어왔다.
육일의 몸에는 아직도 상처가 있었다. 그의 행동은 조금 둔해졌으나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어 그가 옆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육이와 말했다.
“천목신교의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돈을 전부 빼내라. 많을수록 좋다.”
“대장군께 아룁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아직 한 시진 남짓하게 남았습니다. 그렇게 큰 액수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육이는 육장봉과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 감히 묻지 못했다. 그는 몰래 마음속의 놀라움을 누르고 직책을 다해 보고했다.
“괜찮다.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면 된다.”
부족하면 그는 차용증을 써서 황제에게 줄 생각이었다. 황제는 받기 싫어도 받아야 할 것이다.
“네, 장군.”
육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육이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육장봉이 다른 분부를 더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밖으로 걸어갔다.
육일은 옆에서 육장봉의 말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육이가 떠난 뒤, 육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기색으로 다가와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장군, 제가 구리파의 일을 조사했습니다. 입수한 소식에 의하면 영녕후부, 유씨 가문은 청주와 왕래가 없었습니다. 청주인들이 구리파의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몰래 그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육장봉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포를 고용해 조계안과 월령안을 살해하려고 한 것은 누가 결정한 것이냐?”
“장군께 아룁니다. 아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청주의 사람들이 영녕후 같은 사람과 거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청주의 사람들이 조왕과 월…… 마님의 목숨을 선물로 하여 영녕후 같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조사한 시간이 너무 짧았고 또 청주 사람들은 일을 처리할 때 늘 조심스러워서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소식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육일은 대장군이 지금 얼마나 월 낭자를 신경 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과장하지 않고 말해도 대장군은 지금 월 낭자를 자기의 목숨처럼 여기고 있다. 대장군의 마음속에서 월 낭자의 중요성은 주나라의 종묘사직 바로 뒤에 있었다.
벌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육일은 육장봉이 입을 열기 전에 다급히 보장했다.
“저에게 삼 일의 시간만 더 주신다면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육장봉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의 눈매에는 온통 차가운 살기뿐이었다.
“밝혀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놔주지 말아라.”
“네, 대장군.”
육일은 잠시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청주와 영녕후를 비롯한 고관대작들과 척지는 것은 그들한테 아주 불리하다고 육일은 대장군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입가까지 걸렸다가 다시 삼켜졌다.
대장군이 결정한 일에는 그 누구도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북요인은 잠시 동안 큰 기척이 없을 것이다. 육이 수하의 병사 삼백 명을 경성에 두는 것은 낭비다. 그들을 데리고 청주에 한번 다녀오거라. 피를 실컷 보고 돌아오도록 해.”
항상 청주의 사람들이 수를 쓰고 그들은 방어만 했다. 반격을 멋지게 해도 육장봉이 보기에는 한없이 무능했다.
삼차전 비무에서도 이겼으니 북요인들도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제 청주의 사람들을 혼낼 여유가 생겼다.
월령안은 아무리 늦어도 다음 달이면 청주로 떠난다. 그 삼백 명더러 먼저 청주에 가서 월령안이 갈 길을 미리 정리하고 청주의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알려 주게 하려고 했다.
육일은 묵묵히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거친 파도를 잠재우고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대장군, 그 삼백 명이 청주로 갈 때도 육이가 대오를 거느리는 겁니까?”
‘군대를 움직여 월 낭자를 위해 화풀이를 한다면 우리 장군은 여자를 위해 대단한 미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장군께서 월 낭자를 목숨처럼 여긴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야.’
“육이…….”
육장봉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육이는 남고 십이가 지휘하라고 하거라.”
육비우는 완전히 망가졌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앞길은 이미 기대할 수 없었다.
육비우는 결정적인 비무에서 주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이겼다. 하지만 육비우는 팔자가 좋지 못했다. 그에게는 발목을 잡는 어머니가 있었다.
예전에는 육비우의 어머니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육씨 가문의 집안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요까지 연루되었고 또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육비우의 이번 생은…….
육장봉이라는 사촌 형이 있는 이상, 끝장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끝이 보이기는 했다. 기대할 만한 미래는 없었다.
육씨 가문이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육십이밖에 없었다. 육십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반드시 성장해야 했다.
* * *
이각 뒤, 육삼은 독왕 아포를 데리고 서재로 왔다.
육삼이 가까이 오기 전에, 육일은 먼저 알아채고 육장봉에게 예를 올린 후 물러났다.
육 대장군의 열두 친위대 중에서 육일은 가장 신비로웠다. 가까운 사람 말고 육일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육장봉, 아침 일찍, 날 무슨 일로 찾은 거냐?”
독왕 아포는 육삼에 의해 이불 안에서 끄집어내졌다. 길을 걸었더니 정신이 조금 맑아지기는 했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잠기운이 묻어 나왔다. 나른한 것이 아주 무방비해 보였다.
그는 서재에 들어선 뒤, 육장봉을 보지도 않고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발을 들고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차기 시작했다.
“독약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 큰 고통을 주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면 좋겠군.”
육장봉은 아포를 안지 여러 해 되어 아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말했다.
“사람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는 약은 있어. 하지만 약을 한 번만 쓰고 달마다 한 번씩 아프게 하는 것은 못 해. 독약은 모두 일회용이야. 약을 한 번만 쓰고 평생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없어. 정말 그렇게 대단한 독약이 있었더라면 서역의 사람들은 진작 나와 내 스승의 손에 죽었겠지.”
아포는 방금 전에 일어난 탓에 머리가 충분히 맑지 못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말수가 많아졌다.
“약을 한번 쓰고 달마다 아프게 하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은 고충(蠱蟲 - 사람의 몸에 들어가 고통을 일으키는 벌레)밖에 해내지 못해. 서역에 고사(蠱師 - 고충을 다루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옛날에 심하게 학살을 당했어.
그래서 지금 사람들 앞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모두 능력이 없는 자들이야. 진정으로 능력 있는 고사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은둔해서 아무도 만나지 않을거야.”
아포는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제안했다.
“사람을 달마다 한 번씩 아프게 하고 싶다면 매달 그 대상에게 약을 쓰면 되겠네. 아무튼 네 실력이면 몰래 독약을 쓸 필요도 없이 그냥 억지로 먹이면 되잖아.”
“그래.”
육장봉은 의미심장하게 아포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포가 눈치채기 전에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놔.”
“뭘?”
아포는 약삭빠르게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극심한 고통에 몰아넣는 독약 말이다.”
육장봉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워 뼈를 찌르는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포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고 겁먹은 듯이 한마디 물었다.
“누구한테 쓰는 건지 물어도 돼?”
‘나한테 쓰려는 것은 아니겠지? 핍박에 못 이겨 자기가 만든 독약을 먹는다라. 그것도 내가 먼저 내놓은 약을 말이야. 이건 너무 처참하잖아?’
“걱정하지 마라. 너는 아니다.”
아포는 항상 검은 옷을 입었고, 진짜 얼굴을 보여 주지도 누구와 만나지도 않았다. 원수의 복수를 불러올까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가 얼굴을 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주 귀여운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천덕꾸러기 같은 모습은 아주 만만해 보였다.
물론, 아포는 만만한 사람도, 천덕꾸러기도 아니었다. 그는 혹독한 어린 시절을 겪고 자연스럽게 이익과 손해를 빠르고 철저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이기지 못할 사람과는 절대로 정면으로 승부를 보지 않았다. 도망칠 수가 없다면 바로 약한 티를 냈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독을 써서 복수를 하고 없다면 지금처럼 순순히 말을 들었다.
육장봉의 긍정적인 답을 듣자 아포는 한마디도 더 묻지 않고 독약 한 병을 꺼내 육장봉에게 던져 주었다.
“안에 열두 알이 있어. 일 년을 쓸 수 있지.”
육장봉은 약병을 받고 열지 않았다, 그는 종이를 꺼내어 맞은편에 두었다.
“조제법을 써.”
그는 주도권이 다른 사람 손에 있는 것을 싫어했다.
월 삼낭이 월령안의 몸을 해쳤는데 어떻게 월 삼낭이 일 년만 아프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월 삼낭을 평생 아프게 하고 싶었다.
달마다 한 번씩 있는 극심한 고통이 그림자처럼 월 삼낭을 따라다니게 하여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을 겪게 할 것이다.
아포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육장봉을 절대로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육장봉의 요구를 듣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목숨을 잃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극심한 고통에 휩싸이게 하는 독약일 뿐이다. 더군다나 그 자신에게 쓰일 것도 아니었다. 무서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아포는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어서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육장봉이 건넨 붓을 들고 시원하게 조제법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아주 배려심이 넘치게 대체할 수 있는 약재도 표기했다.
“위의 몇 가지 약재는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없는 시기가 있어. 만약 찾을 수 없다면 뒤에 쓰인 약재로 바꾸면 돼. 비록 약효는 좀 떨어져도 크게 영향은 없어.”
“고맙다.”
육장봉은 조제법을 받고 힐끔 훑어본 뒤, 잘 챙겼다.
“지금부터 넌 나한테 빚진 게 없다. 언제든지 가도 된다.”
이용을 다 하면 버리는 육 대장군은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그는 아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약 조제법 하나로 내가 너한테 빚진 게 없어졌어? 언제부터 육장봉의 인정은 이렇게 쉽게 갚을 수 있게 되었지?”
아포는 제자리에 선 채로, 의아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돌아서 보자, 육장봉이 이미 멀리 간 것이 보였다. 아포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 하늘은 이미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아포는 피곤한 듯 하품을 하고 제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오늘이 깨어나는 날이네. 내 신부……. 불쌍하게도 그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지. 내가 그녀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야겠어. 분명 아주 좋아할 거야.”
아포는 말할수록 신이 나 순간 졸린 기운이 확 달아났다. 그는 하인을 찾아 주방의 위치를 묻고는 기쁜 마음으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