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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96)화 (496/1,004)

496화 령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송 원정은 귀퉁이에서 노인이 가볍게 던진 말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고 수많은 가족의 운명을 결정한 것을 알아채고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송 원정은 진작에 나가지 않은 것을 몰래 후회하고 있었다.

이런 기밀은 그 같은 일개 원정이 들을 것이 못 되었다.

‘죽어서 입막음을 당하지나 않겠는지 모르겠군?’

그는 걱정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손불사는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송 원정은 잠시 멍해졌다가 웃음을 지었다.

‘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거였군. 난 월 낭자의 사람이잖아. 노황숙도, 조왕과 육 대장군도 나를 쫓아내지 않은 건 이미 나를 믿고 있는 것이야. 내가 월 낭자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난 죽지도 않을 뿐더러 이들의 보호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보니 손불사도 같은 편이었다.

‘손 신의는 지혜가 넘치는 분이야. 내가 손 신의를 오해했어.’

송 원정은 팔의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몰래 손 신의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께서 추켜세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손불사는 고결하고 오만하게 송 원정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좋아, 좋아. 앞으로도 기회는 많을 거야.”

‘이 송씨가 드디어 머리가 텄네. 참 쉽지 않아.’

노인은 퍽 차분하게 조계안을 가르치고 난 뒤,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조계안을 대할 때의 인자한 얼굴과는 달리, 육장봉을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은 전혀 감정이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

“너는? 육 대장군, 결국 네 집안일인데 생각이 어떠한가?”

육장봉은 노인이 자신에게 불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전혀 만회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노인의 태도를 신경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오직 월령안만 신경 썼다.

노인의 냉담함을 무시하며 육장봉은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황숙께서는 령안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육씨 가문의 남자들은 싸움만 하지 집안일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육씨 가문의 일은 령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육장봉이 이렇게 말하자 방 안은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조계안이 펄쩍 뛰며 육장봉을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붓기 전까지는.

“육장봉, 넌 정말 염치가 없어!”

조계안은 자기가 이미 충분히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장봉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계안은 육장봉이 은근슬쩍 월령안을 육씨 가문 사람으로 정한 것이 이미 충분히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더욱더 염치가 없었다.

그는 조계안의 질책을 무시하고 평온한 얼굴로 노인과 말했다.

“염 황숙, 제가 중상을 입어서 언제든지 혼절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또다시 기절한다면 누구도 저를 깨울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염 황숙께서는 월령안에게 물으시면 됩니다. 제 일과 육씨 가문의 일은 월령안의 뜻에 따릅니다.”

조계안에게 다시 욕을 퍼부을 기회를 주지 않고 육장봉은 온몸의 기세를 거두고 기운 없이 말했다.

“염 황숙, 제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이제 더 버티기가 힘들군요.”

말을 마친 육장봉은 또 누웠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이불을 끌어당기고 눈을 감았다.

그는 정말이지 너무 지쳤다!

송 원정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래도 되나? 쓰러진다면 쓰러지고, 깨어나지 못한다면 못 깨어나고. 나와 손 신의를 없는 사람으로 치는 거야?’

손불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는 아주 육 대장군다운 행동이었다.

조계안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육장봉의 모습을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내가 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이렇게까지 염치없이 구는 재주를 가졌다니. 내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의 말에 대답한 것은 육장봉의 고른 숨소리였다.

“정말로 쓰러진 거야? 아니면 가짜로 쓰러진 척하는 거야?”

조계안은 화가 나서 앞으로 다가가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노인에게 저지당했다.

“됐다. 우선은 푹 쉬라고 하거라. 나중에 쟤가 나서서 그 북요인들의 기를 죽여야 된다. 북요인이 우리 주나라를 억누르고 괴롭힌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니 비무에서 졌다 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실력이 못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체면을 되찾기 위해서 그들은 반드시 소란을 피울 거다. 육장봉이 있어야 그들의 기를 꺾을 수 있어.”

육장봉은 주나라에서 하나밖에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북요가 철저하게 무너지기 전까지는 육장봉에게 일이 생기면 안 되었다.

노인은 육장봉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다 낫는 날이 오기 마련이지. 난 다른 건 많지 않아도 인내심 하나는 충분하다. 육장봉이 다 낫는 그 날을 기다릴 거다!’

“황숙 말씀이 맞습니다.”

조계안은 울분을 풀 데가 없어 숨만 거칠게 내쉬었다. 벙어리가 냉가슴 앓듯 갑갑했다.

“됐다. 육씨 가문 넷째 집안 일은 령안이를 찾아가거라. 령안이에게 마땅한 대책이 있을 거다.”

분명 육씨 가문 넷째 가문의 일에 월령안이 불씨를 놓기는 했을 것이다. 다만 월령안도 육씨 가문 사부인이 이 정도로 멍청하여 저택을 북요인에게 팔아버릴 정도로 멍청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상대가 너무 멍청한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네, 황숙.”

조계안은 노인 앞에서 줄곧 고분고분했다. 그는 대답한 뒤, 노인의 뒤로 걸어가 노인의 바퀴 의자를 밖으로 밀었다. 그리고 한담하듯 말을 꺼냈다.

“황숙, 월씨 저택이 불에 탔으니 령안이 성으로 돌아와도 지낼 데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저택을 다시 지을까요 아니면 새 저택을 구매할까요? 저에게 괜찮은 저택이 몇 채 있는데 황숙께서 한번 보시겠습니까?”

조계안은 아주 꿍꿍이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두 개의 선택지만 내놓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않고 조계안의 속임수에 당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계안은 노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노인 앞에서 속임수를 쓰기에 조계안은 아직 너무 어렸다.

노인은 조계안의 뜻에 따라 대답하지 않고 달리 말했다.

“네 말이 맞구나. 령안이는 묵을 곳이 필요하지. 명월 산장이 아직 육장봉의 명의로 되어 있으니 돌아가서 명월 산장을 내 명의로 고치거라. 내가 죽은 뒤, 령안에게 넘겨주고.”

조계안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단지 월령안의 새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황숙은 왜 육장봉과 명월 산장을 두고 다투는 걸까? 육장봉이 여의치 않다고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왜? 싫으냐?”

노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조계안은 몸을 흠칫, 떨더니 바로 대답했다.

“지금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가거라!”

노인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이용하자마자 버렸다.

“네, 황숙.”

조계안은 갑갑하고 서운했지만 묵묵히 노인을 대기하고 있던 내관에게 맡기고 다시 돌아갔다. 그는 육장봉과 명월 산장의 귀속권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절반 정도 걷다 보니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육장봉을 찾아가지? 나는 그냥 황형에게 바로 찾아갈 수 있잖아.

명월 산장은 원래부터 황숙 것이고 황숙에게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명월 산장이 장군왕에게 하사되지도 않았겠지. 육장봉의 손에 들어갈 일은 더 없었을 테고 말이야.

지금 황숙이 원한다는데 황형이 설마 안 주겠어?’

육장봉과 얘기할 필요 없이 명월 산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조계안의 우울하던 기분은 순식간에 좋아졌다.

조계안은 그 길로 바로 황제에게로 향했다.

그는 곧 난각에 도착했다.

조계안은 바로 황제에게 일련의 이야기들을 했다.

조계안의 생각처럼, 노인이 명월 산장을 요구하니 황제는 바로 명쾌하게 승락했다. 그리고 대범하게 말했다.

“명월 산장은 원래부터 황숙 것이다. 짐이 육장봉에게 나중에 별장 하나를 보충해 주겠다고 말하겠다.”

“황형, 명월 산장은 월령안이 얻은 것이니 육장봉과는 상관이 없어요. 보충해 주려면 월령안에게 줘야죠.”

조계안은 틈을 타서 월령안을 위해 상을 얻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짐이 황실 별장을 월령안에게 상으로 내린다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황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계안은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혀 세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황형이 좋으시면 되죠. 저는 월령안한테 볼 일이 있으니 황형, 사람을 시켜 월령안을 불러……. 아니지, 월령안의 몸이 좋지 않으니 이반반더러 가마를 들고 가서 월령안을 데려오라고 하세요.”

“멀쩡하더니 왜 갑자기 몸이 안 좋은 게냐?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팔팔했다. 하마터면 태후의 화를 돋우어 기절시킬 뻔했지.”

황제는 조금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조계안이 이반반을 지시하여 가마를 가지고 월령안을 데리러 가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작은 일로 조계안과 따지지 않았다.

“육장봉 때문에 화가 나서 기절했었어요.”

조계안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며칠 동안, 이 일을 웃음거리를 삼으면 될 것 같았다.

“육장봉 때문에 화가 나서 기절했다고? 월령안이 그렇게도 옹졸하더냐?”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조계안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월령안이 옹졸한 것이 아니라 육장봉 그 인간이 정말…….”

조계안은 육장봉의 뻔뻔스러움을 떠올리자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나처럼 성격이 좋은 사람도 하마터면 걔 때문에 피를 토할 뻔했는데요.”

“허…….”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계안이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자기가 성격이 좋다는 거지? 계안이의 이 성깔머리도 좋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으면 세상에서 성격이 나쁜 사람이 없겠다.’

조계안은 황제의 황당해하는 얼굴을 못 본 척하며 제멋대로 원망했다.

“황형, 육장봉 그 인간이 얼마나 염치가 없는지 몰라요. 황숙 앞에서 쓰러진 척이나 하고 말이에요.”

조계안은 귀찮지도 않은지 육장봉이 노인과 한 말 중에서 중요한 말을 골라 황제에게 전했다.

노인이 육장봉을 비꼬았던 말들을 전부 생략하고 육장봉의 몰염치함만 강조했다.

말을 들은 황제는 한참이나 침묵하고 말했다.

“장봉이 정말 그렇게 말했느냐?”

“물론이죠.”

조계안은 황제를 흘겨보더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챘다.

황제는 줄곧 월령안에 대한 육장봉의 감정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가진 월령안에 대한 마음은 단지 일시적인 신선함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반드시 황형에게 육장봉이 월령안에게 가진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황형,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 * *

월령안은 영복궁으로 돌아온 뒤, 몸이 좋지 않아 침대에 누우려고 했다. 바로 이때, 궁인이 들어와 황제가 소견(召見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내어 만나 봄)을 원한다고 보고했다.

월령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세수를 했다.

달거리가 올 것을 예상하여 월령안도 황제 앞에서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미리 준비를 했었다.

영복궁을 나선 그녀는 이반반 옆의 가마를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이반반과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가마에 올라탔다.

그녀는 황제가 보낸 가마를 타면 궁에서 반드시 좋지 않은 소문이 돌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궁 밖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만약 다른 때였으면 그녀는 절대로 그런 성가신 일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그녀가 억지로 걸어 본들 난각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또 그녀는 이미 태후에게 미움을 샀다. 후궁의 다른 상전들의 미움을 사는 것 정도는 두렵지 않았다.

월령안은 가마에 앉아 태연한 얼굴을 했다. 일말의 초조함이나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반반은 옆에서 힐끗 보고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염 황숙이 키운 이 아이는 정말 평범하지 않아.’

신분뿐만 아니라 이 온몸을 감싸는 분위기는 황후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반반은 궁중의 기록을 떠올렸다. 월씨 가문이 용왕의 후대라는 말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월령안을 두어 번 더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반반은 용왕을 본 적이 없어 월령안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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