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내가 잘못했소
육장봉이 앞으로 다가가 손불사를 밀치고 침대에 앉았다.
“그럼 가서 탕약을 끓이시지요.”
육장봉은 가볍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온몸으로 내뿜던 한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월령안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손불사는 육장봉에게 폭력적으로 밀쳐지자 무척 화가 났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육장봉이 월령안의 손을 꽉 잡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손불사는 순간 머리끝까지 울화가 치솟았다.
그는 육장봉이고 뭐고 앞으로 달려들어 펄쩍 뛰며 그 손을 세게 내리쳤다.
“손 풀어! 손 풀어! 령안의 손을 문지르라고 했지 내가 언제 이렇게 꽉 잡고 놓지 말라고 했어? 이렇게 손을 꽉 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기혈이 통하지 않아 령안이의 손발을 망치는 것이라고. 령안이를 장애인으로 만들어 평생 침대에 누워 있게 할 셈이냐?”
육장봉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가 이렇게 힘이 없는 사람에게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너, 너, 너! 날 노려봐서 어쩔 건데? 날 아무리 노려봐도 소용없어. 넌 사람을 보살필 줄 몰라. 얼른 손을 풀어. 이러면 령안이를 해치는 거라고.”
손불사는 흉악하게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이따위 애송이! 내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육장봉은 손을 풀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가르쳐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손불사는 육장봉을 절대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몰래 육장봉의 약을 바꾸어 육장봉이 적잖게 고생한 것을 떠올리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시범을 보이려 월령안의 손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육장봉에게 저지당했다.
“제 손에 대고 시범을 보여 주시죠.”
‘화가 난다. 하지만 미소를 유지해야 한다!’
손불사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육장봉의 팔은 무쇠처럼 단단했기 때문에 도저히 일반 환자에게 하듯이 누를 수가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송 원정의 손으로 육장봉을 가르쳤다.
“이렇게 하는 거야. 한번 해 봐.”
손불사는 힘들어서 이마가 땀투성이로 되어 버렸다. 그는 한걸음 물러서서 육장봉더러 송 원정의 손으로 해 보라고 눈치를 줬다.
“전…….”
송 원정은 흠칫, 놀라 본능적으로 손을 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육장봉은 단번에 송 원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렇게…….”
육장봉의 손을 잡고 주무르자마자 ‘딱’하는 소리와 함께, 송 원정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대장군, 손을 놓으세요, 손을 놓으세요.”
달칵…….
또 소리가 들리더니 육장봉은 손을 풀었다. 그는 송 원정을 바라보며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최대한 힘을 뺐는데……. 송 원정의 팔은 너무 연약하군. 하지만 월령안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육장봉의 찌푸려진 눈살이 풀어졌다.
“내 팔, 내 팔…….”
송 원정은 아파서 식은땀을 흠뻑 흘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나서야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손불사는 마음이 허해져서 다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걱정하지 마. 송씨, 탈골된 것뿐이야. 괜찮아, 괜찮아. 지금 다시 맞춰 줄게.”
달칵, 달칵…….
손불사가 단순하고 거칠게 송 원정의 탈골된 손목을 이어 주었다.
송 원정은 다시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육장봉은 다시 다친 사람이 월령안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육장봉은 몰래 한숨을 내쉬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월령안의 맑은 시선과 마주쳤다.
월령안이 깨어난 것이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육장봉은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는 시선을 부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월령안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 또 월령안 앞의 가장 좋은 자리를 빼앗겼다.
손불사는 아주 재빠르게 가장 먼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령안아, 깼구나!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전 괜찮아요.”
월령안은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얼굴을 훔쳤다. 얼굴이 불편할 정도로 건조했다. 쓰러지기 직전에 흘렸던 눈물이 말라 얼굴이 당기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약간 창피해졌다.
‘내가 울다가 쓰러지다니! 울던 모습을 설마 육장봉이 다 봤나?
“괜찮기는. 쓰러졌는데! 어떤 일이 있었길래 화가 나서 쓰러진 게냐?”
손불사는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또 옹졸한지라 곁눈질로 육장봉을 흘겨보며 싫은 내색을 팍팍 냈다.
“화가 나서 쓰러졌던 게 아니에요. 요 이틀 동안 너무 지쳐서 기혈이 부족한지 머리가 조금 무거웠던 거예요.”
월령안은 울었더니 마음속의 서러움이 절반 넘게 풀어졌다. 머쓱하던 순간, 그녀는 손불사의 말을 듣고 얼굴을 가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너무 창피해!’
“너 최근에 약을 끊었지?”
월령안이 깨어나자 손불사의 기도 살아났다. 육장봉이 ‘죽음의 시선’을 보내도 손불사는 모르는 척했다. 굳게 월령안 앞의 자리를 차지하고 조금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재주가 있다면 령안이의 앞에서 나한테 난폭하게 굴어 보시지? 내가 령안이에게 고자질을 하지 않는다면 손씨가 아니다!’
“약은 명월 산장에 있어요. 그때 제가 너무 급히 가다 보니, 챙기는 걸 잊어버렸어요.”
목숨을 살리는 약의 일로 월령안은 줄곧 손불사한테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사실 손불사의 말에 전혀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손불사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관심과 걱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월령안은 또 손불사에게 차갑게 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월령안은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전 영복궁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손불사를 살짝 밀어냈다. 손불사는 자연스럽게 그 손에 밀려 그녀가 침대에서 내리기 편할 정도로 한걸음 물러서게 됐다.
그녀는 지금 손불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또 육장봉도 보고 싶지 않았다.
“넌 몸이 약하지 않니.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 여기서 푹 쉬려무나. 그럼 송씨가 한동안 보혈할 수 있게 도울 거야.”
손불사는 비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령안을 도로 눌렀다.
월령안의 안색이 약간 차가워졌다.
“전 영복궁으로 돌아가야겠어요. 태의서에서는 마음이 불편해요.”
그녀는 어렴풋이 손불사가 달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달거리가 올 때가 된 것이 확실했다.
그때 노인의 약을 양보하게 한 일 때문에 손불사는 월령안의 눈치를 계속해서 보았다. 그녀가 기분 나쁜 기색이라 그는 예전처럼 세게 말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야, 다시 생각해 보지 그래. 네 몸이 많이 상했어.”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여기 더 남아 있어 봤자 또 망신이나 당하겠지.’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요.”
월령안은 손불사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손불사를 밀치고 고집스레 침대에서 내려갔다.
손불사는 월령안을 가로막을 수 없어 육장봉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손불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육장봉을 흘겨보았다.
“대장군, 말 좀 해 봐.”
‘사람을 화병으로 쓰러지게 하고서는 얼른 잘 사과해서 달래지 않고. 저놈 저거 평생 땅을 치고 후회나 하라지.’
손불사에게 밀려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던 육 대장군은 한창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손불사를 노려보고 다시 월령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월령안…….”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마자 월령안에게 말이 잘렸다.
“대장군,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좋지 않아 당신을 보살필 수 없을 것 같네요.”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장군께서 하루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육장봉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그는 아주 어색하게 말했다.
“월령안, 방금 전에는 내가 잘못했소. 내가 당신에게…… 사과하오!”
더없이 힘들게 ‘사과’ 두 글자를 입 밖으로 내보낸 육장봉은 마음속을 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위가 사라진 것 같았다. 다시 월령안과 시선을 마주쳤을 때, 육장봉은 마음이 불편하지도, 숨이 가쁘지도 않았다.
사과를 하자 육장봉은 마음이 가벼워져서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월령안의 창백한 안색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가볍게 달랬다.
“월령안, 화내지 마시오. 내 잘못이오. 내가 당신을 기분 상하게 했소. 내가 당신을 보살피게 벌을 주면 안 되오?”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지도, 육장봉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장군, 아직 몸의 상처가 낫지 않았으니 잘 요양하세요. 당신의 건강은 주나라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으니 조금도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지요.”
“난 괜찮…… 쿨럭쿨럭…….”
육장봉은 또 다시 기침을 했다. 이번에 월령안은 그가 숨을 고르게 다독이지도, 그에게 물을 부어 주지도 않고 듣지 못한 것처럼 물끄러미 보기만 하며 서 있었다.
“쿨럭쿨럭…….”
육장봉은 점점 더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는 월령안의 내리깐 시선을 바라보며 눈가에 후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좋은 상황을 그가 망쳤다.
다행히 이건 전장이 아니었다. 만약 전장이었더라면 그가 패배했을 것이다.
“대장군, 물을 드세요.”
송 원정은 옆에 서서 육장봉이 기침을 한참이나 했는데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자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방금 전에 탈골되었던 손으로 육장봉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육장봉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잠시 멈췄다. 그는 잔을 송 원정에게 주지 않고 돌아서서 탁자 위에 놓았다.
송 원정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침 탁자 옆에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잔의 내용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잔 가득 찬 피는 눈을 찌르는 빨간색이었다.
‘대장군께서…….”
송 원정은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온통 걱정뿐이었다. 그가 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손불사에게 가로막혔다.
손불사도 그 잔에 든 피를 보았다. 그는 송 원정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송 원정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송 원정을 끌고 밖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피가 든 잔도 가지고 나갔다.
‘육장봉 이 속셈이 많은 사내놈 같으니라고. 분명 이 기회로 불쌍한 척해서 월령안의 동정을 사고 싶은 모양인데. 난 절대로 육장봉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거다!’
“손 신의, 대장군께서…….”
송 원정은 환자가 걱정되는 마음에 남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불사는 가차없었다.
“괜찮아, 작은 상처일 뿐이야. 당신네 대장군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손불사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해 월령안이 듣도록 했다.
“하지만…….”
송 원정의 팔이 탈골 후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힘껏 반항하지 못했다. 그는 순순히 손불사를 따라 밖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당신네 대장군이 지금 우리 꼬마 령안이한테 사과하잖아.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모두가 월령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육장봉은 또 월령안의 화를 돋우어 종국에는 기절하게 만들었다. 만약 육장봉이 월령안을 잘 달래 기쁘게 한다면 어쩌면 손불사도 용서받을지도 모른다.
‘육장봉더러 애를 써서 달래게 하고 난 뒤에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내 생각이지만 이거 좀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