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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91)화 (491/1,004)

491화 이게 당신의 것이오?

육장봉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띠었다.

“그때, 당신은 내 뜻에 따르지 않고 전선에 물건을 보냈잖소. 그것은 강매가 아니오? 왜? 관리는 방화도 할 수 있지만, 백성은 등불을 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거요?”

월령안은 어이가 없어 깔끔하게 사과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장군께서 너그러운 아량으로 소인의 잘못을 따지지 말아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은 갑자기 육장봉의 말발이 세졌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래 전 육장봉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강매당하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녀는 그때 역시 너무 어렸다. 좋아하는 사람의 환심을 살 줄도 몰랐다.

‘그때 나의 연심은 육장봉한테 부담이었을까?’

육장봉은 침대에 기대 홀가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잘못했으니 뭔가를 해서 자신의 과오를 만회해야 하지 않겠소?”

‘이렇게 말을 많이 해야만 나의 령안을 함정에 몰아넣을 수 있군. 참 쉽지 않아.’

월령안은 줄곧 육장봉이 검은깨 소가 든 탕원(湯圓 - 보통 소가 들어 있는 새 알 모양의 찹쌀떡)처럼 겉은 희나 속이 시커멓고 속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알고 있었어도 육장봉이 당당하고 당연하게 그녀더러 그때의 잘못을 만회하라고 하는 꼴을 보자 월령안은 화가 나 누구든 붙잡고 때리고 싶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 염치가 없잖아!’

월령안은 속으로 세 번 묵념했다.

‘육장봉은 초품 대장군이다. 그의 몸에는 상처도 있다. 월령안, 침착해. 넌 저자를 건드리지 못해. 건드려서도 안 된다고.’

그제서야 그녀는 사람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를 수 있었다.

아주 화가 났다. 하지만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월령안은 웃는 얼굴을 애써 유지했지만 그 미소는 억지스러웠다.

“소인이 아둔하여 어떻게 해야 그때 저지른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대장군께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친 일은 극비 사항이오. 하지만 당신이 이미 알고 있으니 내가 요양할 동안 당신이 날 돌봐 주면 되겠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월령안이 기꺼이 원하게 만들 것이다!

월령안 얼굴의 미소가 드디어 눈가까지 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웃었다.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이 방법은 제 생각에는 그다지 좋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는 이 얼굴이 두껍고 속이 시커먼 육장봉이 무슨 천인공노할 요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육장봉도 단지 이 정도 밖에 되지 못했다. 그는 옛날의 그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때의 그녀와 똑같이 유치했다.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번복하려는 것이오?”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월령안은 육장봉의 눈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육장봉이 눈은 참 예뻐.’

월령안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고 목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바꾸려고 했다.

“대장군, 전 한 번도 대장군께 뭔가를 약속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번복하고 말고가 있겠어요?”

“그래서? 당신은 뭘 말하고 싶은 것이오?”

육장봉 얼굴의 웃음기가 굳어졌다. 그는 전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판 함정이 월령안을 붙잡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육장봉 그를 곤란하게 할 것 같았다.

“제가 전에 대장군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전선에 물건을 보낸 것 말이에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만회하려고요. 이미 써 버린 물건들은 어쩔 수 없으니 됐고, 나머지 물건들은 제가 사람을 불러 거두어 올게요. 대장군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요.”

월령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고 아주 통쾌하게 잘못을 시인했다.

앞서 여러 번 육장봉에게 말이 잘린 경험 때문인지 월령안은 아주 빠른 속도로 속사포처럼 말했다.

“물론, 대장군께서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제 잘못을 만회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저는 대장군께 명세서를 작성할 수도 있어요. 그 몇 년간, 제가 전선에 보낸 물건들을 적어 책을 만들게요.

대장군께서는 명세서대로 저에게 돌려주시면 됩니다. 만약 대장군께서 시간을 들여 물건을 사시기 싫으시다면 돈으로 바꿔서 주셔도 됩니다. 전 가리지 않아요.”

육장봉은 화가 나 실소를 하였다.

“난 한 번도 당신처럼 쩨쩨한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자기 남편에게 보낸 물건도 되돌려 받으려고 하는군.”

월령안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비꼬았다.

“저도 자기 부인이 보낸 물건을 받고도 부담스럽다고 탓하고, 이미 쫓겨난 전 부인더러 잘못을 만회하라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네요.”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었다. 그의 시선은 꿀이 떨어질 듯이 달콤하고 따뜻했다.

“입만 살아서는,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군.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을 아니 이토록 두려움이 없는 것 아니오?”

사랑을 받아 겁을 상실했다. 그가 금방 경성에 도착했던 그 기간에 월령안은 그의 앞에서 감히 이토록 큰 소리로 말하지도 못했다.

월령안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비꼬며 말했다.

“피차일반이에요.”

그 옛날 육장봉은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육씨 가문의 일을 맡기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다 같았다. 그 누구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함부로 남을 비웃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피차일반.”

육장봉은 낮은 목소리로 웃고 그윽한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받고 그를 경계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가벼운 표정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 주나라와 북요의 삼차전 비무에서 우리가 이겼소. 삼백 명 장사들이 모두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왔소. 당신은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뭘 의미하는데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또 육장봉에게 휘둘려 다른 화제로 끌려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정말 육장봉이 너무 미웠다!

육장봉은 언제나 손쉽게 그녀와의 대화를 주물렀다.

상황이 얼마나 난처해지든, 육장봉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육장봉의 마음이 그녀에게 향하며 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와 육장봉 사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언제나 육장봉이었다. 그녀는 줄곧 육장봉에게 끌려다니며 방어나 할 뿐이었다.

육장봉은 말을 돌리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형부와 대리시가 한 고발이 이제는 성립되지 않을 거란 의미요. 그들은 당신을 조금도 해칠 수 없소.”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전 원래도 걱정한 적이 없어요. 저는 아직 쓸 데 있는 사람이니 폐하께서는 제가 햇빛 아래서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쓸모만 있다면, 그리고 황제가 그녀를 쓰려고만 한다면, 황제는 그녀가 나라를 배반했다는 죄명으로 처형당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고개를 젓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나 영리하고 뭐든지 잘 파악하면서 왜…….”

육장봉은 갑자기 미소를 거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리 오시오!”

월령안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녀가 미처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다가온 육장봉은 월령안의 허리를 잡았다. 얼핏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허리를 스친 것 같았다.

그녀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기 전에, 육장봉은 원래의 그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월령안이 그를 인지하고 돌아보자 육장봉의 손에 들린 옥패가 눈에 띄었다.

월령안이 고개를 숙여 확인해 보니 허리춤에 걸려 있던 옥패가 사라졌다.

“돌려주세요!”

월령안은 바로 손을 뻗었지만 육장봉은 너무 쉽게 피해 버렸다.

그녀는 그에게서 옥패를 뺏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육장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장군, 옥패를 돌려주세요.”

“이게 당신의 것이오?”

육장봉은 옥패를 만지작거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물었다.

월령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최씨 가문의 옥패예요. 최일이 제가 입궁하는 것을 알고 호신용 부적으로 빌려 준 거예요.”

‘이 남자는 정말 강도잖아!’

“궁에 내가 있는데 당신에게 무슨 호신용 부적이 필요하겠소?”

육장봉은 옥패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써도 손에 든 옥패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월령안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다급히 말했다.

“대장군, 그 옥패를 함부로 다루지 마세요. 이건 최씨 가문의 옥패예요. 잠시 동안만 저한테 빌려준 거예요. 최일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거라고요.”

입궁하기 전에 그녀는 이 옥패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알고 난 뒤, 그녀는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잃어버릴까 두려워 조금도 경시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이 옥패를 망가뜨린다면 그녀는 최일을 볼 낯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대체 최일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겠는가?

육장봉도 옥 하나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아주 멍청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되어 새하얘진 월령안의 얼굴을 보자 육장봉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크게 다쳤을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월령안, 이까짓 옥 덩어리가 나보다 소중한가?’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냉소를 지었다.

“옥 하나일 뿐이오. 긴장할 것이 뭐가 있소? 내가 이까짓 살아 있지도 않은 물건에 화풀이라도 할까 봐?”

월령안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대장군이 어떤 분이신데, 당연히 이런 물건에 화풀이를 하지는 않으시겠죠. 대장군, 옥패를 먼저 돌려주세요. 그 후에 우리가 할 말이 있으면 잘 얘기해 보자고요. 어때요?”

이건 그녀의 옥이 아니라 최일의 옥이었다. 육장봉이 망가뜨린다면 그녀는 자신을 팔아도 배상할 수가 없었다.

“옥은 최일의 것이잖소. 내가 왜 당신에게 이걸 돌려줘야 하오?”

그는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도 월령안의 따뜻한 안부 하나 못 들었는데 월령안은 고작 옥 하나 때문에 자세를 낮추고 그를 달랬다.

아주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이 옥은 최일이 저한테 빌려준 거예요. 제가 빌렸으니 제대로 돌려줘야 다음번에 또 빌릴 때 힘들지 않죠.”

최일의 이 옥패는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최일의 옥패가 없었더라면 숙 태비는 그녀를 그렇게 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후도 최씨 가문이 신경 쓰여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도 빈틈을 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 옥패를 최일에게 돌려줘야 했다. 전혀 흠집 없이 완벽하게 돌려줘야 했다.

“또 빌리겠다는 것이오?”

육장봉은 화가 나 실소를 하였다.

“당신은 최씨 가문 자제가 몸에 지니는 옥패를 미혼 여인에게 선물한 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 또 최씨 가문 자제에게 옥패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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