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487)화 (487/1,004)

487화 이 일은 폐하께 알려야 해

송 원정은 육장봉이 있는 방에서 나가자마자 조계안과 마주쳤다.

“전하…….”

송 원정은 옆으로 물러서며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조계안은 송 원정을 힐끗 흘겨보며 말했다.

“숙 태비가 나한테 보내온 약은? 어디 있느냐?”

‘이 송씨는 정말 쓸데없이 참견하기 좋아하네.영복궁의 사람은 육장봉에게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잖아.’

“전하, 약재는 여기에 있습니다.”

송 원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손에 든 약재를 조계안에게 바쳤다.

‘그래도 월 낭자의 성의인데 아끼지 않으시고 이렇게 다른 이에게 뺏기다니. 육 대장군은 언젠가 후회할 거야.’

“앞으로 내 물건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된다. 알겠느냐?”

조계안은 약재를 받아 들고 음산하게 송 원정을 바라보았다.

“또 혼자 똑똑한 척하지 말고. 알겠느냐?”

송 원정은 몸을 흠칫, 떨더니 감히 더 토를 달지 못했다.

“네, 네, 소관 알겠습니다.”

“꺼져!”

조계안은 송 원정을 싸늘하게 쳐다보더니 코웃음 치며 옆으로 지나갔다. 그는 다친 육장봉을 보러 작은 뜰로 들어갔다.

물론, 그는 월령안이 그에게 준 보약을 들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육장봉은 줄곧 과분하게 많은 것들을 받아왔다. 육장봉이 필요하든 말든, 월령안은 항상 뭐든지 가장 좋은 것들을 육장봉에게 바쳤었다. 한낱 약재 한 통이 어떻게 육장봉의 눈에 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조계안 그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월령안이 준 것이 무엇이든 더없이 소중했다.

조계안이 들어갔을 때, 육장봉은 이미 부서져서 조각이 되어 버린 호각을 거둔 뒤였다.

그는 여전히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온몸으로 음산한 한기를 풍기고 있었다. 얼굴은 마치 ‘건드리지 마’라고 써 붙여 놓은 듯했다.

“보아하니, 회복이 꽤 잘된 모양이구나.”

조계안은 육장봉의 맞은편에 앉아 손에 든 비단 함을 과시하듯 탁자 위에 놓았다.

“월령안이 나한테 기력을 보충하는 약재를 보냈더라고. 난 네가 몸이 허하니 보약이 필요한 줄 알았지. 지금 보니,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네.”

육장봉은 탁자 위의 비단 함을 힐끗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섬뜩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건 너에게 주는 게 아니야.”

“나에게 주는 게 맞아.”

조계안은 도발하듯 손을 비단 함 위에 올려 두었다.

“궁의 사람들 모두 내가 다친 걸 알아. 네가 다친 걸 아는 사람은 없지. 월령안이 태의서에 약재를 보냈다면 당연히 나에게 주는 것이지.”

‘옳든 아니든, 지금은 다 옳은 게 되어 버렸지. 그리고 송 원정 그 오지랖이 넓은 인간 말고 모든 태의서 사람들은 이 약재가 나한테 몸보신하라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

“스스로를 속이면 재미있나?”

육장봉은 비웃듯이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네가 독에 당한 날 밤에 그 사실을 알았어. 그런데 그때 그녀가 너한테 뭘 보내기는 했나? 그리고 그녀는 내가 다치자마자 사람을 시켜 약재를 보내왔다. 그녀가 이 약을 누구에게 보냈던 것인지 정말 모르겠나?”

비단 함 위에 올려놓은 조계안이 손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은 소중히 여길 줄 모르지. 하지만 난 네가 종국에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라 믿어.”

“난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 난 그저 누구도 내 것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만 알면 된다.”

말을 마친 육장봉은 갑자기 훌쩍, 뛰어오르더니 검을 빼서 조계안에게 휘둘렀다.

“미쳤어? 네 몸은 아직 회복중이라고!”

조계안은 깜짝 놀랐다. 그는 반격도 하지 못하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아니!”

육장봉은 조계안이 뒤로 물러나도록 다가가더니 손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탁자 위의 비단 함을 향해 공중에서 내리그었다. 비단 함은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나가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진 비단 함이 창밖으로 날아갔다. 안에 든 약재는 바닥에 흩뿌려졌다.

대부분은 절반으로 베어졌다.

“너…… 정신 나갔어!”

조계안은 입구까지 밀려났다. 그는 육장봉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인간이지? 자기가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는 건가?’

다른 사람들이 조계안더러 미치광이라고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육장봉이 더 미친 사람 같았다.

“너도 약을 못 갖게 됐잖아!”

육장봉은 검을 거두고 침대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거칠게 기침을 하다가 왈칵, 피를 토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너…….”

조계안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육장봉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화가 나 고함을 질렀다.

“손불사, 육장봉이 또 피를 토했어!”

육장봉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조계안의 그 고함은 손불사를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황제도 놀라게 했다.

황제는 태의서까지 행차하기는 불편하여 이반반더러 다녀오라고 했다.

이반반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물은 뒤,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다가 조계안에게 예만 올렸다.

하나는 황제의 사촌 동생이었고 하나는 황제의 친동생이었다. 그는 누구의 미움도 사고 싶지 않았다.

육 대장군이 피를 토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이반반은 황제에게 돌아가 보고했다.

육장봉과 조계안의 일에 대해 이반반은 황제에게 감히 한 글자도 숨기지 못했다. 미화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이반반은 솔직하고 조금도 숨김없이 말했다.

보고를 들은 황제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반반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어젯밤에 육장봉을 보러 가지 않았느냐? 오늘도 안 가고? 사람을 시켜 약재만 보냈다는 거냐? 그것도 짐의 상약국에서 나온 것이고?”

이반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묵묵히 대답했다.

‘폐하께서 주목하시는 중점이 좀 이상하지 않나? 폐하의 예전 습관대로라면 이런 때에는 월령안을 질책하시면서 그녀에게 덤터기를 씌우셨을 텐데? 왜 그 약재를 주목하시지? 그 약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 여자는 너무 쩨쩨한 것 아니냐? 여 상인들은 모두 그녀처럼 계산적인 것이냐?”

황제는 퉁명스럽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또 즐겁게 말했다.

“이반반, 이 장부를 적어 두거라. 월령안이 궁을 나가거든 잊지 말고 그녀한테서 돈을 요구하거라. 배로 요구해. 그녀가 감히 짐에게서 이득을 보게 해서는 안 된다.”

“폐하…….”

이반반은 쓴웃음을 지었다.

“월 낭자는 영복궁의 명의로 태의서에 보낸 겁니다. 영복궁의 돈으로 지불한 겁니다.”

이 돈은 정말 월령안에게서 받아낼 수 없었다.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 상인은 모두 이렇게 교활한 것이냐?”

황제는 화가 나 이반반을 노려보며 말했다.

“허점이 전혀 없느냐?”

이반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더욱 화가 났다.

“그렇다면, 짐은 분명 이번 지출은 그녀가 쓴 돈이고, 그녀가 베푼 인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 대신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냐?”

이반반은 어이가 없었다. 황제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이반반은 떠보듯 물었다.

“폐하, 우리는 월 낭자가 궁에서 먹고 입는데 쓴 돈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황제는 퉁명스럽게 이반반을 노려보며 말했다.

“넌 짐이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당했으면 좋겠느냐? 월령안이 궁에서 지내는 것은 짐을 위해 일을 하느라고 그러는 것인데 짐이 먹는 것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짐은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느냐?”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이반반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시인했다.

“됐다. 너도 여기서 꾸물거리지 말고 계안이에게 얼른 밖의 일을 처리하라고 하거라. 일이 없으면 장봉이 요양하는 데 방해되게 궁으로 오지 말라고.”

황제는 월령안한테 화를 내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 일은 결국 조계안의 잘못이었다.

‘계안이 가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장봉도 갑자기 무술을 하지 않았을 거고. 그러면 화가 난 나머지 피를 토한 일도 없었겠지. 고작 약 한 함 때문이잖아? 계안이도 참 장봉이 것을 빼앗으려 들다니. 어린애 같군!’

“네, 폐하.”

이반반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소리를 냈다.

‘폐하께서는 역시 변하셨어. 월령안에 대한 편견이 전처럼 심하시지 않군. 그날 밤, 폐하께서 월령안을 만나러 가셨던 것이 좀 효과가 있나 보.’

하지만 이는 그 혼자만 알면 되는 일이었다. 황제에게 일깨워 줄 필요는 없었다.

이반반은 다시 태의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계안에게 황제의 뜻을 전해 주기 위함이었다.

“황형은 정말…… 됐다. 난 간다.”

육장봉이 중상을 입었으니 지금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잘못된 것이었다.

‘궁을 나가라면 나가지. 아무튼 육장봉은 태의서에서도 월령안을 보지 못할 건데.’

이렇게 생각하니, 조계안의 기분이 퍽 좋아졌다. 그는 황성사로 돌아가 감옥 가득 갇혀 있는 범인들을 보면서도 전보다 짜증이 줄어들고 인내심이 많아졌다.

조계안이 궁을 나가는 것을 배웅한 뒤, 이반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영복궁으로 갔다.

* * *

영복궁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옥죽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월 낭자, 월 낭자…… 살려 주세요!”

“무슨 일이에요?”

월령안은 행수 내관과 황후궁의 급여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옥죽의 말을 듣자 이것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내관을 옆으로 물러서게 했다.

옥죽은 들어오자마자 월령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면서 말했다.

“태후, 태후 마마께서 우리 마마가 선황의 유물을 망가뜨렸다고 저희 태비 마마에게 곤장을 치시겠답니다. 또 경고의 의미로 마마께서 옷을 벗고 형을 받으시랍니다.”

“드디어 찾아왔군요.”

월령안은 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갑시다. 우리 태후 마마를 만나러 가요.”

궁의 금지령이 느슨해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태후가 움직였다. 정말 조금도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월 낭자, 지금 이렇게 가시면 태후 마마께서 낭자의 곤장도 치지 않으시겠어요? 우리 폐하께 사정하러 가면 안되나요?”

옥죽은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월령안이 사람을 구할 재주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월령안이 황제에게 사정하러 가기를 바랐다.

황후가 감금되고 대황자가 죽게 된 뒤, 황제는 공무를 월령안에게 맡겼다. 월령안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월 낭자가 폐하께 사정하러 간다면 폐하께서는 분명 손을 내미실 거야.’

“왜 폐하께 사정을 해야 하죠? 후궁 공무를 맡은 사람은 저예요! 후궁의 모든 것은 제 소관이에요.”

월령안을 옥죽을 힐끗 흘겨보며 말했다.

“저도 안 무서워하는데 낭자가 무서워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길을 안내하세요.”

옥죽은 속으로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반은 문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문지기 내관에게 손짓을 하여 통보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월령안과 옥죽이 나올 때,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월령안이 발견하지 못하게 구석에 숨었다.

월령안과 옥죽이 멀리 간 뒤에야 이반반은 구석에서 나왔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난각으로 걸어갔다.

‘월령안이 자신이 있다 할지라도 이 일은 폐하께 알려야 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