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짐을 위해 규칙을 깨 주시게
“그녀는 왜 크지 않았지?”
“그에 대해 대답하려면 거래를 새로 해야겠군.”
육장봉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
아포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지!”
육장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변경에 가서 사람 하나를 죽여. 그럼 원인을 알려 주지.”
“누구를 죽이는데?”
이미 육장봉에게서 많은 손해를 본 아포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먼저 일을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육장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변경에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 반 시진 뒤, 나가라.”
“내 신부는…….”
“여기에 남겨 둬.”
“안 된다. 그녀를 다시 잃으면 어떡하지? 난 반드시 그녀를 데려가겠다.”
아포는 아주 확고했다.
육장봉은 그를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도중에 깨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약속할 수 있다면야. 반 시진 뒤, 마차를 준비해 두겠다.”
“보장하지!”
목적을 이루자 아포는 아주 기뻐했다.
아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육장봉은 그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데려가도록 했을 거라는 것을.
그는 지금 부상 때문에 말을 탈 수 없었다. 그가 말을 탈 수 없는 이유를 숨겨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포의 신부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마차를 타고 갈 만한 아주 좋은 핑곗거리였다.
반 시진 뒤, 두 마차가 별장 밖에 서 있었다. 두 마차중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아포는 월삼낭을 업고 나와 생각도 하지 않고 더 큰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시위에게 가로막혔다.
“이건 우리 대장군의 마차입니다!”
“육장봉이 마차를 탄다고?”
아포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등에 업은 월삼낭을 내던질 뻔했다.
‘육장봉이 언제부터 향락을 누렸지? 말을 타지 않고 마차를 탄다고?’
그는 그가 알던 육장봉이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마차 옆을 지키던 시위가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우리 대장군의 호송을 받으실 자격이 없으십니다.”
아포는 침묵을 지켰다.
‘이 말도 일리가 있군.’
그는 마차에 앉아 있고, 육장봉은 말을 타고 밖에서 뛴다면 어떻게 봐도 이상할 것 같았다.
아포는 바로 육장봉이 마차를 타는 이유를 받아들였다. 그는 군말 없이 월 삼낭을 업은 채, 작은 마차를 탔다.
작은 마차는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아포는 하는 수 없이 월 삼낭을 품에 안았다.
월 삼낭은 약을 먹고 줄곧 혼절해 있었다. 그는 아포의 품에 기대 있었는데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아포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창백하고 가녀린 월 삼낭의 손가락과 얼굴을 만졌다.
‘드디어 내 신부와 함께하게 됐구나. 정말 좋다.’
* * *
마차는 말보다 조금 늦은 정도가 아니었다. 육장봉과 아포가 말을 달려서 올 때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던 여정이 돌아갈 때는 무려 이틀이나 걸렸다.
돌아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그 어떤 악인도, 암살자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의 명성은 나무의 그림자만큼이나 중요했다.
육장봉의 위명은 그가 홀로 싸워서 하나씩 쌓아 온 것이었다. 그의 실력은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 막강한 육장봉을 살해하라고 사사를 보내는 생각 없는 사람은 없었다.
이틀 뒤, 그들 일행은 변경에 도착했다. 육장봉은 시위더러 아포와 월삼낭을 장군부로 보내라고 했다.
장군부는 경계가 삼엄했다. 들어갈 수는 있어도 함부로 나올 수는 없었다. 아포와 월삼낭을 ‘가두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포는 모르고 있었다. 육장봉이 그더러 장군부에 묵으라고 하니 흥분해서 육장봉에게 포권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너를 형제로 여기겠다.”
아포의 고향에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제, 가족으로 여겨야만 상대를 자기 집에 묵도록 초대하는 것이었다.
육장봉이 아포에게 장군부에 묵으라고 하니, 그는 육장봉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를 형제로 여긴다고 생각하고 감격한 것이다.
육장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위가 아포를 데려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흘러나온 혈흔을 닦았다.
“입궁한다.”
손수건을 손바닥에 움켜쥐고, 육장봉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차에 앉아 있었다.
비록 길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육장봉은 삼 일 안에 돌아왔다.
그는 전혀 막힘이 없이 순조롭게 난각에 왔다. 육장봉은 황제가 일찍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전처럼 황제에게 예를 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포권하기 전에 황제가 다가가 육장봉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장봉! 짐이 널 오해했더구나. 정말 미안하다.”
“폐하, 과언이십니다.”
육장봉은 휘청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더니 어딘가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
그리고 그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졌다.
“장봉!”
황제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또 바닥에 쓰러진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황제의 마음속에서 육장봉은 항상 강대했고 무적이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이토록 허약하고 무기력하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황제는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 내가 육장봉을 툭 쳤기 때문에 쓰러진 건가?
아니, 나는 그저 가볍게 두드린 것 뿐인데. 어째서 이런 일이……. 설마 내가 육장봉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해진 건가?’
황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또 바닥에 쓰러진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자신의 따귀를 쳤다.
“아프네! 정말이군! 짐이…… 정말 육장봉을 쓰러뜨렸다!”
얼굴이 아프자 황제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는 이반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반반, 어서…… 어서 가서 손 신의를 불러오거라. 장봉이 쓰러졌다.”
“네, 네, 폐하, 소인 지금 갑니다.”
이반반도 황제 못지 않게 놀랐다. 아니, 황제보다 훨씬 더 놀랐다.
못 하는 것이 없고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던 대장군이 황제가 가볍게 치자 쓰러졌다.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폐하께서 사실은 엄청나게 강한 힘을 숨기고 계셨던 걸까?’
이반반은 나가기 전에 잊지 않고 황제의 손을 힐끗 바라보았다.
황제는 자신의 뺨을 세차게 쳐서 자기가 육장봉을 쓰러뜨린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심지어 육장봉을 쳤던 그 손을 허공에 든 채로 거두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있고 싶었다.
육장봉이 그의 앞에서 쓰러지니 전선에서 북요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보다 더욱 깜짝 놀랐다.
육장봉도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장봉이가 지금 허약한 상태인 건가?’
황제는 바닥에 누워 핏기 없는 육장봉을 바라보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장봉이 괜찮겠지?’
황제는 무척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자기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육장봉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 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손불사가 도착했다.
황제가 아직 완전히 냉정해지기 전에 손불사와 송 원정이 함께 왔다. 조계안도 따라서 들어왔다.
조계안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를 기절시켜 쓰러지게 만든 것은 병기에 묻은 독이었다.
해독되니 그는 금방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이틀 전에 궁을 나가 황성사에 가서 사무를 처리하고 돌아왔다.
조계안은 태의서에서 새로운 약을 받으려 하다가 이반반이 황제가 육장봉을 쓰러뜨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조계안은 약도 잊어버리고 바로 손 신의, 송 원정을 따라 함께 왔다.
육장봉이 그의 황형에게 맞아 쓰러지다니. 이건 수십 년 만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가 만약 이 일을 놓친다면 분명 평생 후회할 것이다.
조계안은 육장봉을 보고 놀릴 생각 만만이었다.
하지만 땅에 쓰러져,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육장봉을 보자 조계안마저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같은 무공을 익히는 사람으로서, 조계안은 육장봉이 아주 크게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순간, 조계안은 육장봉을 비웃을 기분이 사라졌다. 그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손 신의, 육장봉의 상세는 어떤가요?”
“안 죽어.”
손 신의는 어두운 안색으로 다가가 육장봉을 진찰했다. 진찰을 마치자 바로 일어서서 옆으로 물러서며 자리를 송 원정에게 비켜 주었다.
“난 관리를 치료하지는 않을 것이네.”
황제는 손불사의 말을 듣지 못한 척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손 신의, 장봉이는 단 한 번도 갑자기 쓰러진 적이 없네. 어찌 된 일인가?”
“누군가와 싸워 크게 부상을 당했는데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일 년쯤 요양하면 됩니다.”
황제가 직접 물어보니 아무리 손불사라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마친 손불사는 육장봉이 그와 월령안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 떠올라 한마디 덧붙였다.
“몸 여러 곳의 뼈가 부러졌으니 들어 옮길 때 조심하시오. 뼈가 움직이게 하지 말고. 뼈가 움직이면서 심장이나 비장, 폐를 찌른다면 아무리 나라도 살려내지 못한다오.”
“이렇게 심한가?”
황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는 감히 육장봉을 만지지도 못했다.
“말씀드린 것보다 더 심합니다. 송씨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 겁니다.”
손불사는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송 원정을 힐끗 흘겨보며 그더러 말을 하라고 눈치를 줬다.
손불사보다 몇 살밖에 어리지 않은 송 어의는 손불사에게 ‘송씨’라고 불리고도 반박하지 못했다.
의술로 따지면 그는 손 신의보다 후배인 것은 확실했다. 손 신의가 그를 송이라고 부를 지라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대장군께서는 여러 늑골이 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장도 다치셨습니다. 폐에 어혈이 있고 기혈이 역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장군께서는 다치신 지 여러 날 되셨을 겁니다. 대장군께서 이토록 심하게 다치시고도 제때에 치료하지 않으셨으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대장군께서 지금까지 버티신 것은 기적입니다.”
송 원정은 침착하고 조리 있게 말을 했다.
황제는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생명의 위험은 있느냐?”
송 원정은 손 신의를 힐끗 바라보고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대장군께서 너무 심하게 다치셨습니다. 또 보건데 치료가 이틀은 늦었습니다. 신은 대장군이 앞으로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네가 안 된다면 손 신의가 할 수 있겠지. 장봉에게 후유증이 남지 않게 할 수 있다고. 그렇지 않은가?”
황제는 말을 하면서 시선을 손불사에게 던졌다.
손불사는 험하게 송 원정을 노려보았다. 송 원정은 고개를 숙이고 황제에게 포권했다.
“세상에서 지금 대장군의 상처를 치료하면서도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 사람은 손 신의밖에 없습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고 예의 바르게 손불사에게 예를 올렸다.
“손 신의, 장봉은 우리 주나라의 대장군이네. 그는 주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네. 육장봉이 없었다면 변방의 안녕도 없다고 할 수 있다네. 육장봉의 이 부상은 주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입은 것일세. 손 신의가 우리 주나라의 백성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뻗어서 대장군을 치료해 주시게.”
손불사는 감히 황제의 예를 받지 못했다. 그는 옆으로 한걸음 물러서며 으쓱해서 말했다.
“폐하, 약왕골의 규칙이 있습니다. 소인은 이미 한 번, 육 대장군의 부탁으로 조왕을 치료하며 약왕골의 규칙을 깨트렸습니다. 소인은 이미 육 대장군을 위해 이례적으로 규칙을 깼으니 그를 위해 두 번 깰 수는 없습니다.”
“손 신의에게 부탁하네. 육장봉을 위해서 그럴 수 없다면 짐을 위해 한 번만 더 깨 주시게.”
황제는 고개를 돌려 손불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강경함이 엿보였다.
“장봉이의 상처가 낫기 위해서라면 짐은 몇 명이 죽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네.”
손불사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