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이번 판은 내가 이겼소
수횡천은 너무나 허술했다. 속마음을 전혀 감출 줄 몰랐다. 그가 숨기려고 하는 것은 뭐든지 드러냈다.
이대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을 들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횡천처럼 멍청한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총명한 사람도 많았다.
황제는 원래도 월령안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두었다간 황제가 월령안을 의심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 일이 절대 그녀와 관련 있어 보이면 안 되었다.
그 사사들을 죽일 수 없다면 잠한성이 길들인 사사를 데려간 사람은 반드시 수횡천이어야 했다.
순간, 육장봉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내 손아귀에서 조정의 중요한 범인들을 빼돌리다니. 방자하군.”
“육 대장군, 이번 판은 내가 이겼소.”
수횡천은 부정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줄곧 육장봉에게 놀아났고 한번도 육장봉의 손에서 이득을 취하지 못했던 그였다. 어쩌다 판을 뒤집었으니 수횡천은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당신은, 확실히 이겼소.”
육장봉은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수횡천에게 손을 썼다.
“이제 그 사사들의 목숨은 필요 없소. 대신 당신의 목숨을 거둬 주지.”
“무슨……!”
수횡천은 육장봉이 갑자기 공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육장봉에게 맞아 초가집을 부수며 날아갔다. 원래도 별로 견고하지 못했던 초가집은 완전히 무너졌다.
수횡천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육장봉은 검을 들어 그에게 내리쳤다.
육장봉의 수는 빠르고도 모질었다. 한 수 한 수가 살기로 가득했다. 수횡천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수횡천은 당황하며 피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나를 왜 죽이려고 드는 거지?’
“수 맹주, 봐주지 않겠소.”
검이 수횡천의 팔을 그었다. 그 일격으로 수횡천은 육장봉이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제야 수횡천은 눈빛이 변했다. 피하기만 하던 그가 검을 빼 들고 육장봉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육 대장군을 봐주지 않겠소. 난 항상 육 대장군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육 대장군과 겨룰 기회가 생겼군.”
“쓸데없이 말이 길군.”
육장봉의 검 끝이 수횡천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수횡천의 가슴팍에 한 줄기 상처가 생겼다.
다행히 가벼운 상처였다. 수횡천의 목숨이 위험하지도 않았고 그가 손을 쓰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육장봉에게 비웃음을 당한 뒤, 수횡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육장봉과 맞섰다.
수횡천과 육장봉의 무공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검술의 정밀함이나 내공의 깊이는 줄곧 무공의 길을 걸은 수횡천이 육장봉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육장봉의 검로는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수횡천과는 달리, 육장봉은 전장에서 생사를 겨루며 검술을 익혔다.
그래서 수횡천의 무공이 더 조예가 깊어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겨우 육장봉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보기 드문 고수였다. 그들이 싸우니 땅과 산이 흔들리고 천지의 색이 변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초가집은 진작에 폐허가 되었다. 두 사람이 지나간 곳은 나무와 잡초가 날아다녔으며 불모지가 되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죄다 사라졌다.
두 사람은 점점 더 격렬하게 싸웠고 그 속도는 점차 더 빨라졌다. 일반인이라면 제대로 볼 수도 없을 속도로 그들은 합을 주고받았다. 검광이 번뜩이며 둘의 모습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둘은 이렇게 무려 한 시진이나 싸웠다.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자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웁!”
수횡천은 쓰러질 듯했지만 검을 땅에 박고 넘어지지 않게 겨우 버텼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느낌을 참지 못하고 왈칵, 피를 토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흥분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육장봉 같은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이번 겨룸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죽더라도 아주 기쁠 것 같았다.
육장봉은 검으로 몸을 지탱하지도, 피를 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입가에 가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손을 들어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는 음산한 시선으로 수횡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변경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 것이오.”
죄가 두려워 도망을 치다. 이 죄명은 수횡천과 꼭 맞았다.
“당신은 날 죽일 수 없소!”
수횡천은 일어서서 천천히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와 육장봉은 이미 기력을 다 소모하여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들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난 것이다.
“수횡천, 이 세상에는 명령을 따르는 수하라는 게 있다는 걸 아나?”
육장봉은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모습을 드러내라.”
“장군.”
암위가 숲 안쪽에서 나타났다.
수횡천은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누군가 숨어들어 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자의 실력으로는 내 눈을 속일 수 없을 텐데?’
“당신과 내가 겨룰 때.”
육장봉이 말하는 새에 또 피가 흘렀다. 그는 다시 손을 들어 입가의 피를 닦고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말했다.
“월령안을 봐서 당신의 목숨은 살려 주겠소. 하지만 다음은 없다는 걸 잊지 마시오.”
입가의 피를 닦은 육장봉은 암위와 말했다.
“수 맹주를 무림맹으로 데려가라. 나는 당분간 수 맹주가 강호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알겠나?”
“네, 장군.”
암위는 명을 받고 돌아서서 수횡천에게 걸어갔다. 그는 수횡천에게 묵직한 한 방을 먹였다.
평소였다면 암위는 수횡천의 가까이에도 가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횡천은 육장봉과의 싸움에 이미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후였다. 그는 손을 드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였다. 그는 암위의 공격을 피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수횡천은 암위에게 맞아 날아간 뒤, 거세게 땅에 넘어져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그는 육장봉의 손에 쓰러지지 않고 이름도 없는 졸병 손에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쿨럭…….”
수횡천은 땅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상태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군.”
마치 수횡천처럼. 그는 평소 강호에 적수가 없었고, 그 대장군 육장봉 조차도 그를 이기지 못하고 비등하게 싸웠다.
그런들 무엇 하리?
결국 그는 일개 암위의 손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육장봉은 수횡천이 쓰러진 것을 보고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여기가 변경이 아닌 청하현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오. 변경이었다면 난 당신에게 부리는 사람이 많으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철저하게 보여 줬을 것이오.”
수횡천은 그 말에 다시 한번 쓰게 미소를 짓더니 가물거리는 정신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수횡천이 눈을 감는 순간, 육장봉도 휘청거리더니 쓰러졌다.
아무리 육장봉이라 할지라도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이번 겨룸에서 그는 남김없이 손을 써 수횡천에게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그 자신도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이번 겨룸으로 그와 수횡천 양쪽이 모두 크게 다쳤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었다.
그가 다쳐야만, 그것도 중상을 입어야만 황제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수횡천이 만난 이상, 두 사람이 진심으로 맞붙었다는 것을 황제가 믿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월령안이 완전히 의심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 황제는 북요의 일이 끝난 후 무림맹과 강호의 각 대문파들을 탄압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병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월령안을 지킬 수 있었다.
* * *
육장봉이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시(午時 - 11시부터 13시까지)였다. 그는 발걸음이 여유롭고 안색이 평소와 같았다. 별장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으니 겉으로는 상처 입은 상태라는 걸 전혀 알 수 없었다.
별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계단 가운데에 앉아서 그의 길을 막고 있는 독왕 아포를 보았다.
육장봉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입술에 댔다. 그리고 가벼운 기침을 억누르고 옆의 하인에게 물었다.
“저자는 왜 아직도 안 갔느냐?”
“대장…….”
하인이 대답하려는데 아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억울하고 서럽다는 듯이 말했다.
“육장봉, 내 신부가 심상치 않다.”
“네가 찾는 사람이 그녀가 아닌가?”
육장봉은 손을 들어 손에 묻은 혈흔을 보고 덤덤하게 뒷짐을 졌다.
그는 원수가 많았다. 그가 다친 일이 소문 난다면 그는 살아서 성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맞아, 하지만 또 아니다.”
아포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혹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서재로 가서 말하지.”
육장봉은 다시 기침을 하며 목구멍의 비릿한 피를 삼켰다.
그는 아포와 월 삼낭의 사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들이 필요했다.
하인은 아포를 서재로 데리고 왔다. 일각 뒤에야 육장봉이 서재에 나타났다.
그는 또 옷차림을 바꿔 검은색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말해. 어떻게 된 일이냐?”
육장봉은 서재 뒤쪽에 앉았다. 그는 어둠 속에 묻힌 채로, 무심하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내가 찾던 신부가 맞다. 하지만 그녀는 십 년 전과 똑같아. 아주 이상하지.”
아포는 마치 어린애처럼 육장봉 앞에 곧게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구속된 사람처럼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
“똑같으면 좋은 것이 아닌가?”
육장봉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홀가분하게 있었다. 아포와 날카롭게 맞서던 그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포도 덩달아 느슨해졌다. 그는 진지하게 강조했다.
“똑같다고! 십 년 전과 똑같다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오.”
육장봉이 응했다.
“육장봉, 내 말을 열심히 듣기나 한 거야?”
아포는 화가 났다. 그의 손목에 있는 뱀도 따라서 육장봉을 보며 습습, 소리를 냈다.
“응.”
육장봉은 여전히 가볍게 응했다. 진지하게 들었다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아포는 화가 났다. 그는 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 내 신부는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육장봉은 눈꺼풀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네가 찾는 사람을 내가 주었다. 거래는 이미 끝났지.”
“하지만…….”
아포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육장봉의 말이 맞았다. 그들의 거래는 이미 끝났다.
그렇지만 왠지 화가 치밀어오르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다.
아포는 육장봉을 험악하게 노려봤다. 그의 손목에 있는 뱀도 따라서 몸을 세우고 육장봉을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그는 위협적인 태도만 보일 뿐, 감히 육장봉에게 손을 쓰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는 육장봉을 이길 수 없었으니.
육장봉은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또 다른 일이 있나?”
“나…….”
아포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