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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78)화 (478/1,004)

478화 월령안을 보호하거라

황제는 온몸이 피로 물들어 소름 끼치는 행색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대전 밖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이반반은 무척 걱정되어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히 황제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다만 조급하게 물을 뿐이었다.

“폐하, 어디로 가시려는 것입니까?”

“짐은 월령안을 만나야겠다. 짐은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구나. 월령안도 짐의 명령을 겉으로만 따르는 척하고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것이 아닌지 알아야겠다. 짐은 모든 여인이 다 황후나 단비 같은지, 짐 앞에서는 부드럽고 예의가 바르며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척하지만 뒤돌아서면 바로 돌변하는 건지 궁금하구나.”

삼 년 전, 그는 비록 황후가 알아낸 진실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황후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또 황후가 단비의 아이에게 손을 썼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줄곧 황후를 존중했다. 사람들 앞에서나 뒤에서나 황후를 충분히 총애했다. 황후의 자리를 흔들림이 없이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줬다.

심지어 황후가 대황자를 낳기 전에 그는 후궁의 다른 여인이 아이를 가지지 않도록 하였었다.

그는 황후에게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지위를 주었고 대황자에게 둘도 없는 총애를 줘 황후가 지위를 단단히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황후는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 건가?

그리고 단비…….

단비가 아이를 잃었을 때, 그는 줄곧 단비의 곁을 지켰다. 끊임없이 상을 내리고 단비를 위로하기 위해 앞으로 공주를 단비에게 보내 키우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단비는 분명 아주 기뻐하며 흔쾌히 동의했는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거지?’

황제는 알 수 없었다.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모든 여인들이 다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인지 알고 싶을 따름이었다.

이반반이 설득하는 것을 무시하고 황제는 피로 물든 옷을 입은 채, 밤길을 걸어 영복궁에 도착했다.

“폐…….”

영복궁의 궁녀와 내관이 온몸이 피로 물든 황제를 보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반반이 먼저 한 걸음 다가가 엄한 목소리로 저지했다.

“소리를 내지 말거라.”

“네, 네.”

궁녀와 내관은 황제가 왜 갑자기 영복궁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감히 묻지도 못하고 몸을 떨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황제는 너무나 무서웠다.

황제의 지금 상태는 아주 좋지 못했다. 이반반은 감히 황제를 가로막지 못했다. 사람을 시켜 월령안에게 미리 알리라고 할 수는 더욱 없었다. 황제가 갑자기 날뛰지 않게 조심스럽게 황제의 곁에서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영복궁에 도착한 후 방향을 잃자 이반반이 앞으로 나가 길을 안내했다.

“월 낭자는 편전에 있습니다.”

“가자.”

황제는 굳은 얼굴로 걸어갔다.

그는 월령안이 황제인 그의 명령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가 군주를 기만한 죄로 월령안을 다스릴 것이다.

편전 안에서, 월령안은 이기에게 그녀의 요구대로 장부를 다시 정리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도표를 보았느냐? 도표에서 쓴 것대로 각 사국의 달마다, 유형마다 지출한 총 수를 이 도표에 등기하거라.”

이기는 나이가 어렸지만 영리하여 그녀가 한번 가르치자 기본은 할 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모르는 것이 있어야 월령안에게 물어보러 왔다.

“낭자, 오 월의 장부에 정확하지 않은 지출이 있습니다. 이런 지출은 어떻게 등기합니까?”

“마지막 줄이 비지 않았느냐? 거기에 쓰려무나. 기억해. 이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지출은 장부에 꼭 표기를 해 두거라. 내가 알아보겠다.”

월령안이 후궁의 최근 오 년간의 장부를 조사하는 것은 단순히 금액이 일치하는지를 살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최근 오 년간 후궁에서 일어난 큰일을 정확히 알아낼 생각이었다. 이 방법이 제일 빨랐다.

장부에는 생각 보다 많은 일들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 장부에는 궁 안의 사람들이 숨기던 많은 일들이 드러나 있었다.

예를 들면 삼 년 전 상사국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자기(瓷器)의 지출이 있었다.

상식국도 예전보다 보양품의 지출이 한 건 늘어났다.

이 두 사건과 각 궁의 장부를 결합해 보면 월령안은 삼 년 전에 황후의 궁에 새 도자기가 생겼고 단비의 궁에 많은 상이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일이 없었다면 그해 단비와 황후 사이에 아마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각 사국과 궁전의 장부에서 월령안은 어느 마마가 총애를 받았고 어느 마마가 황후의 사람이며 어느 마마가 황후와 적대 관계인 것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장부는 이렇게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던 일들이 전부 장부에서 나타났다.

이는 월령안이 장부를 보기 좋아하는 이유기도 했다.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가짜 장부는 예외였다. 하지만 월령안은 이 세상에 그녀를 속여넘길 수 있는 장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이기에게 장부를 적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각 궁전의 장부를 살펴보았다.

각 사국의 출납부는 후궁 각 궁전의 출납부와 맞아떨어져야 했다.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조사해야 했다.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장부로 조사할 수 없다면 사람을 조사해야 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준 권리를 써야 한다.

월령안은 열심히 장부를 펼쳐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빠르면서도 자세하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정신을 손에 든 장부에 집중하고 있어 황제와 이반반이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편전에 있던 어린 내관이 황공해 하며 예를 올리자 월령안이 그 소리에 시선을 장부에서 뗐다. 그제서야 황제를 발견한 월령안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폐, 폐하…….”

‘폐하의 온몸이 피로 물들었잖아. 암살을 당했나?

하필이면 내가 공무를 맡은 첫날에? 나는 이대로 끝장나는 건가?’

“폐하, 죄를 용서하십시오.”

월령안은 곧바로 무릎을 꿇은 채, 용서를 구했다. 그녀는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지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낮에 황제는 그녀의 죄를 묻지 않고 그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었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월삼낭이 도망갔을 때, 그녀는 황제더러 대놓고 공무를 그녀에게 맡기겠다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가 낮에 이미 대놓고 그녀와 말했고 그녀도 인수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녀가 공무를 장악하고 있는 시기에 자객을 만났다. 그녀는 책임을 떠밀 수 없었다.

“용서를 하라고?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

황제는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 전체가 그늘져 어둡게 보였다.

그의 안목은 정말 육장봉이나 조계안보다 못했다.

월령안은 황제 앞에서 말한 대로 성실하게 공무를 맡고 있었다. 꼼수를 부리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감히 고개를 들어 황제를 쳐다보지 못했다. 황제의 목소리에 기운이 넘치는 것을 듣고 너무 일찍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닌가 몰래 후회했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답했다.

“폐하께서 오셨는데 소인이 멀리 나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 용서를 구합니다.”

황제는 냉소를 지었다.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짐의 앞에서 꼼수를 부리다니. 짐을 바보로 아는 것이냐?”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폐하의 상태가 이상한데? 역시 자객의 습격으로 놀라신 건가?’

“말하거라. 왜 짐에게 용서를 구하느냐?”

황제는 엄한 목소리로 캐물었다. 두 눈은 음침하게 월령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월령안이 고개를 들었다면 황제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살기가 드리운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감히 들지도 못했다.

그녀는 황제의 발치에 꿇어앉아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응책을 찾으려고 했지만 급한 나머지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 소인은…….”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어린 내관이 날 듯한 속도로 뛰어 들어왔다.

“폐하, 조왕 전하께서 다치셨습니다!”

“뭐?”

황제는 잠깐 홱, 고개를 돌렸다.

“누가 다쳤다고?”

“조왕 전하가 황성사에서 습격을 당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태의서에 계시온데 독에 당하여 치료가 어려운 듯하옵니다.”

어린 내관이 빠른 속도로 말했다.

“송 원정께서 해독에 능하지 않으시답니다. 손 신의께서 입궁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월령안, 어서…….”

황제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휘청거렸다.

“소인이 지금 바로 손 신의를 모시겠습니다.”

월령안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눈에 그녀는 한 장의 벽돌이었다. 황제가 필요할 때는 들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던져 버리고 기분이 나쁠 때는 두어 번 차는 것이 보통 일이었다.

황실의 노비로서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어서!”

황제는 한마디 이르고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두어 걸음 가다가 밖이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고 또 이반반에게 일러두었다.

“이반반, 사람을 시켜 월령안을 보호하거라.”

“네, 폐하.”

이반반은 한마디 응하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도 황제가 왜 월령안에게 이토록 각박하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황제는 항상 어진 사람을 예의로 대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우대했다. 월령안은 재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했다. 그런데 황제는 왜 이토록 월령안을 싫어하는 것일까?

이반반은 알지 못했지만 그도 감히 묻지 못했다. 다만 묵묵히 황제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새 임무를 받았으니 장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기 전에 월령안은 이기더러 최근 오 년 동안의 장부를 정리하고 있으라고 일렀다.

그녀는 황제가 이렇게 쉽게 자기를 놔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후궁의 공무는 그녀가 돌아오면 계속해서 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빠른 걸음으로 궁 밖을 향해 걸어갔다. 영복궁을 나서자마자 이반반이 배정한 금군이 왔다.

공교롭게도 이반반이 월령안을 보호하라고 지목한 사람은 바로 두위였다.

“월 낭자, 이반반께서 저더러 낭자를 보호하여 성 밖에 다녀오라십니다.”

“두 장군, 실례하겠습니다.”

월령안은 두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두위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궁 밖을 나갔다.

두 사람이 궁문을 나서자 금군이 말을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말을 타려는 순간, 계속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암위가 나타나 월령안의 앞길을 막았다.

“월 낭자, 지금 성안과 성 밖 모두 낭자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낭자께서는 성을 나가실 수 없습니다. 제가 이미 대장군께 말을 전했습니다. 대장군께서 곧 손 신의를 모시고 오실 겁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월령안이 물었다.

“누군가 높은 가격을 걸어 월 낭자의 머리를 산답니다.”

이 일은 숨길 것이 못 되었다. 월령안이 궁문을 나서면 바로 알게 될 일이었다.

“그날 밤, 죽은 사람과 연관이 있나요?”

이렇게 여러 날 지났으니 그 사람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네.”

암위가 대답했다.

“조왕이 암살당할 뻔한 것도 그들과 연관이 있나요?”

월령안이 또 물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왕께서는 황성사에서 자객을 만나셨으니 아마도 그때와 같은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조왕을 미워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그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더욱 많았다. 조왕이 이번에 당한 것은 그 자신이 방심했던 탓도 있었다.

“황금당은 저를 암살하는 거래를 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절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서역 독왕 아포(阿布)입니다.”

암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색 빛 한 줄기가 월령안의 등 뒤에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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