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월령안,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육장봉은 그날 밤에 소리 없이 군영을 떠나 성안에 나타났다.
그는 곧장 황궁으로 달려갔다.
궁문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린 육장봉은 금군을 피해 몰래 궁으로 잠입했다. 그리고 노인이 묵는 궁전을 찾았다.
노인이 묵는 궁전은 아주 외딴 곳에 있었고 또 아주 조용했다. 지키고 있는 금군도 없었고 시중을 드는 궁인과 내관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재빠르게 기척을 내어노인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들어오너라.”
노인은 아직 잠에 들지 않았다. 그는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육장봉이 오자 입을 열었다.
“염 황숙.”
육장봉은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와서 공손하게 노인을 향해 예를 올렸다.
노인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감정이 없이 말했다.
“앉거라.”
육장봉은 노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안색은 여전히 차갑고 방자했지만 움직임은 퍽 다정했다. 탁자 위의 차를 보자 바로 노인에게 한잔 부어 권했다.
이를 본 노인은 마시지 않고 비꼬았다.
“너 이 자식 내 앞에서 비위를 맞춰도 소용없어. 난 널 위해 변명해 주지 않을 테니.”
“황숙께서는 제 손윗사람이시니 황숙께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육장봉은 노인의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할 여유가 있는 것을 보니 세 번째 비무에서 아주 멋지게 이겼나 보군.”
노인은 가볍게 웃고 육장봉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육장봉의 손윗사람이 어디 노인 하나뿐이던가?
하지만 노인은 여태껏 육장봉이 손윗사람에게 효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황숙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았습니다.”
말을 마친 육장봉은 너무 적게 말하면 충분히 ‘효성’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
“삼백 명 중에서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대승리입니다.”
육장봉은 대승리를 말할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보통 일이라는 듯.
하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노인은 육장봉의 덤덤한 표정을 바라보며 손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육장봉의 대승리가 가져온 이득을 떠올리자 노인은 또 웃었다.
“그 사람들이 월령안에게 덮어씌운 죄명이 뭔지 아느냐?”
“압니다.”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또 온화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오기 전에 암위가 말했습니다.”
“그들 손에 든 증거는 아주 설득력이 있어. 너는 어떻게 할지 생각했느냐?”
노인은 무심하게 물었다.
육장봉은 형부와 대리시가 월령안에게 손을 쓴 일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그는 경솔하게 대답하지 않고 먼저 노인에게 상세한 내막을 물어보았다.
노인은 누구보다도 월령안을 신경 쓰고 있었다. 오후 동안 노인은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냈다.
월령안 수하의 집사 중 하나가 확실히 북요와 내통하여 많은 정보를 북요에 팔아넘겼다.
월령안과 그 집사는 서류로 왕래를 했다. 그 편지는 월령안이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월령안의 명의로 보낸 것이었다. 정상적인 사업을 논하는 편지여서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형부의 사람은 북요와 내통한 집사의 집에서 책 한 권을 찾아냈다. 집사의 말에 따르면 그 책은 편지의 암호를 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편지의 진실한 내용을 해독하는 것으로 그와 월령안이 각각 한 권씩 있다고 했다.
월씨 저택에 큰불이 났으니 월령안 손의 그 책은 불에 탔을 것이고 지금 집사의 손에만 그 책이 있다고 했다.
집사가 말한 방법대로, 형부와 대리시의 사람은 밤을 새며 편지의 ‘암호를 풀어’ 보았다. 그리고 월령안이 조정의 정보를 팔아넘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월령안이 편지에 밝힌 정보와 집사가 북요에 팔아넘긴 정보는 일치했다.
월령안을 상대하기 위해 그 사람들은 책 한 권을 만들어 내고 또 아주 깊은 곳에 잠입해 있었던 간첩을 희생했다. 증거가 아주 완벽하였다. 심지어 월씨 저택의 그 큰불도 그들은 아주 잘 활용했다. 월령안이 증거를 소멸하기 위해 일부러 소씨 가문에 덮어씌운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 말고도 추수와 상천이 북요에서 한 일들도 전부 알아냈다. 조금도 빠뜨린 것이 없었다.
증인, 물증이 모두 구비되었고 모든 증거가 사실이었다. 노인도 이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증인, 물증에는 문제가 없다. 시간이 없어 내 수하는 소씨 가문과 소영화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지. 더 깊은 데까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비록 말은 이렇게 해도 속으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 일은 반드시 청주의 노친네들이 개입했을 것이다. 그들이 없이 소 승상 혼자의 힘으로 북요인들이 손익을 따지지 않고 월령안을 대적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록 북요인도 월령안을 아주 죽이고 싶어했겠지만.
“황숙께서도 사건을 뒤집지 못하셨습니까?”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육장봉은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사건을 뒤집을 수 있고 허술한 점이 있었다면 최일이 왜 사람을 궁으로 보내 조계안에게 도움을 청했을까.
조금이라도 허술한 점이 있었다면 최일 혼자서 위 시랑과 제 소경이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최일은 아무나 괴롭힐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건을 뒤집지 않고 모두 인정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누가 감히 월령안을 건드리는지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육장봉의 시선에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보아 하니, 그가 소씨 가문과 소영화를 덜 혼낸 듯했다.
노인은 육장봉을 힐끗 보고 말했다.
“음, 나도 그 뜻에 동의한다. 그들이 어떻게 월령안의 죄를 다스리는지 보아야겠다.”
원래 그는 이 방법이 모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주나라는 오늘 북요 군대를 상대로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큰 죄명도 월령안더러 인정하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월령안의 죄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육장봉은 그와 노인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장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마디 했다.
“황숙, 영명하십니다.”
노인은 쉽게 달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아첨하는 말을 적지 않게 들었었다. 하지만 왠지 육장봉의 이 ‘영명하십니다’ 한마디에 그의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고 노인은 웃으면서 한마디 호통을 쳤다.
“됐다. 여기서 아부하지 마. 궁에 들어왔으니 날 도와 일을 한가지 하려무나.”
“황숙께서 분부해 주십시오.”
육장봉은 흔쾌히 응했다.
“궁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월 삼낭을 내보내.”
노인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황숙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육장봉은 노인의 뜻을 알아챘다.
월 삼낭은 아주 많은 말을 했지만 그중에서 구 할은 월령안한테 불리한 것이었다. 황제는 월 삼낭을 믿지 않았고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황제가 월 삼낭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밝혀내 월삼낭이 황제의 신임을 얻는다면?
월 삼낭은 월령안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월삼낭을 황제의 곁에 둔다면 월령안에게 아주 불리했다. 심지어 월삼낭이 궁에서 죽게 할 수도 없었다.
월 삼낭이 만약 궁에서 죽는다면 황제는 월삼낭이 진짜로 청주를 배신했다고 여길 것이다. 또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이고 청주에서 사람을 시켜 입을 막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월 삼낭이 스스로 떠난 것처럼 보이게 해야만 황제가 월 삼낭을 믿지 못할 것이다.
시기도 마침 딱 좋았다.
지금 궁에 경비가 삼엄하여 월삼낭 홀로는 황궁을 벗어날 능력이 없었다. 월삼낭이 떠난다면 황제는 청주에서 그녀를 구한 것으로 의심할 것이 뻔했다.
이렇게 된다면 월삼낭은 영원히 황제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전에 말했던 그 말들도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월령안에게 덮어씌운 누명들도 황제는 월삼낭이 이간질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지금 황제는 월령안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다.
노인은 웃듯 말듯한 표정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천목신교가 해내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지. 일을 자네에게 맡기니 난 아주 마음 놓이네.”
육장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궁의 경비는 당연히 삼엄했다. 일반인은 절대 소리 없이 황궁에 잠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면 아무리 엄밀한 방비도 허술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지금 궁의 경비는 육장봉이 배치한 것이었다.
금군이 순시하는 빈도, 근무를 교대하는 시간, 밝은 곳, 어두운 곳의 방위에 대해 육장봉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금군이 근무를 교대하기에 느슨해지는 시간인 자시(子時 - 23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에 육장봉은 월 삼낭을 가둔 밀실로 잠입했다. 암호로 월 삼낭을 지키는 시위를 따돌린 후, 월 삼낭을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왔다.
육장봉은 월 삼낭을 궁 밖까지 데리고 나온 뒤, 암위에게 던져주었다.
“청주로 보내거라.”
청주의 그 노친네들이 월 삼낭을 잘 가르쳐 배신자의 최후를 알려 줄 것이다.
암위는 월 삼낭을 데리고 떠났다. 육장봉은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순간, 그는 염 황숙에게 속은 것 같다는 아니, 속은 게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궁에 들어가 월령안을 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황제가 월령안에 취하는 태도도 알아보지 못하고 성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육장봉은 곧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주나라와 북요의 비무가 모두 끝났다. 어제는 그가 문관들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들을 만나지 않는다 해도 군에 나타나야 했다. 누군가 사실을 왜곡하여 장사들의 공로를 없애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번 판은 그가 진 것이 확실했다.
육장봉은 햇빛이 대지에 빛을 뿌리기 전에 군에 돌아왔다. 군에 도착하자마자 시위가 와서 보고했다. 북요쪽이 난리를 쳐서 주나라의 관리를 다치게 했다는 것이었다.
육장봉은 야행복을 던져버리고 눈꺼풀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병사들을 데리고 가 그들을 가두거라.”
북요인은 원래부터 방자했다. 어제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했으니 난리를 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분부를 내린 뒤, 육장봉은 바로 가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막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젯밤까지, 그는 무려 사흘이나 눈을 붙이지 못했다.
북요와 주나라의 그 인간들은 그의 휴식 시간까지 희생시킬 가치가 없었다.
* * *
육장봉이 잠에 빠져든 그 시간, 월령안은 깨나자마자 이반반을 따라 난각으로 갔다.
황제가 부른 것이었다.
“폐하께…….”
월령안이 예를 올리려는데 황제는 탁자 위의 문진을 잡고 던졌다.
“월령안,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월령안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진이 날아오는 순간 고개를 돌려 피했다.
쿵!
문진은 월령안을 스쳐 지나가 떨어지면서 큰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