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폐하, 진심이신가요?
“조왕이 금군에게 몸수색을 못 하게 했다면 너 스스로 내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냐? 황궁이 어떤 곳인데,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위험한 걸 지니고 입궁했느냐?”
월령안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변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변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입궁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처음으로 암기를 지니고 입궁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황제 앞에서 황제에게 덜미를 잡혔다.
황제는 월령안의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면 짜증이 밀려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것이냐? 당장 물건을 내려놓거라.”
‘월령안, 또 고분고분한 척하지. 제 본성을 정말 내가 모르리라고 생각하나?’
“네, 폐하.”
월령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낀 반지와 팔찌를 하나하나 끌러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허리띠를 풀어 탁자 위에 놓았다.
물건을 놓은 후, 바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직 더 있느냐?”
황제는 불만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없습니다.”
‘물론 더 있죠!’
하지만 그녀는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달린 비장의 무기를 쉽게 내놓을 수는 없었다.
황제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황제는 이반반더러 월령안의 몸을 수색하라고 명했다.
“폐, 폐하?”
이반반은 놀라서 몸을 흠칫, 떨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폐하께서 진심이신가?’
그는 비록 내관이었지만 그래도 남자였다.
‘내가 만약 월 낭자의 몸을 수색한다면 대장군은 내 손을 자를지도 모른다. 염 황숙께서는 또 어떻겠는가. 필시 내 남아 있는 두 다리마저 자르려 드시겠지. 그리고 조왕 전하는…….’
이반반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아파졌다. 그는 불쌍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그가 명을 거두기를 바랐다.
하지만 황제는 이반반의 마음을 몰라 주었다. 이반반이 한참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자 황제는 퉁명스럽게 재촉했다.
“뭐하고 있는 것이냐? 짐이 직접 나서랴?”
“아닙니다.”
이반반은 다급히 사죄했다. 그는 울상을 짓고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월 낭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월령안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녀는 옆으로 물러나 시원하게 두 팔을 벌려 이반반의 수색을 도왔다.
이반반은 감히 그녀를 직접 만지지 못했다. 황제를 등지고 있었던 터라 황제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이반반은 앞으로 다가가 대충 수색하는 척했다. 월령안의 옷도 건드리지 않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월령안은 이반반을 힐끔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제자리에 서서 이반반이 그녀더러 돌아서라면 돌아서고 앉으라고 하면 쪼그리고 앉았다.
몸수색을 마치고 이반반은 또 월령안더러 머리의 장신구와 귀걸이 등을 빼서 그가 검사하기 편하게 하나하나 탁자 위에 놓으라고 했다.
월령안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녀는 몸의 모든 장신구를 떼어서 옆의 작은 탁자에 놓았다.
이반반이 더 검사하려고 할 때, 황제의 귀찮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됐다, 이반반……. 월령안을 숙 태비의 궁전으로 데려가거라.”
“네, 폐하.”
이반반은 탁자 위의 장신구를 보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끝내 월령안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길을 안내하는 손동작을 해 월령안이 따라오게 했다.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왠지 황제가 애초에 그녀의 장신구를 노린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내 착각인가?’
월령안이 돌아서려는 순간, 몰래 황제를 힐끗 쳐다보았다. 황제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그녀는 방금 전의 그 생각을 지웠다.
‘내가 뭘 생각한 거야?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모든 재물을 가지고 계신데 어찌 내 장신구를 노리시겠어? 내가 순천부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멍청해진 것이 분명해.’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반반의 뒤를 따랐다. 난각을 나선 뒤, 이반반은 기회를 틈타 월령안과 몇 마디 주의를 주었다. 월령안은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이반반을 살갑게 대하지도, 멀리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반반도 월령안과 깊은 왕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도 단지 대장군과 염 황숙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월령안에게 간단하게 궁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알려 준 뒤, 이반반은 월령안을 숙 태비의 궁전에 데려갔다. 그리고 숙 태비에게 월령안의 신분을 소개하며 최일이 그녀를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을 슬며시 알린 뒤 이반반은 돌아갔다.
숙 태비와 최일의 어머니는 소꿉친구였다. 숙 태비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줄곧 최일을 아들로 여기며 아주 아꼈다.
최일의 옥패가 있으니 숙 태비가 만약 월령안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잘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해 월령안은 어여쁘고 말도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반반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숙 태비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반반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받아들였다.
염 황숙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염 황숙마저 월령안을 어여삐 여기는데, 세상에 그녀가 달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폐하께서는…….’
이반반은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가 알기로는 황제는 사실 겉으로 내색하는 만큼 월령안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었다.
이반반은 어서 황제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궁에는 간덩이가 부은 사람이 있었다. 조왕이 궁을 나가자마자 바로 황제에게 손을 썼다. 그는 반드시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게 황제의 곁에서 잘 보필해야 했다.
* * *
노인은 난각에서 나온 뒤, 줄곧 황제가 월령안을 보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몰래 가서 월령안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황제가 난각에서 암살당할 뻔했다가 월령안에게 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월려안이 무사한지 채 묻기도 전에 어린 내관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폐하께서 월 낭자를 숙 태비 마마의 궁전에 모셨습니다.”
‘숙 태비!’
노인에게 그녀는 황형의 비이자 여인이었고, 후궁에 살고 있었다.
그는 숙 태비의 궁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노인은 얼굴을 굳히고 난각에 가서 황제를 한바탕 팰까 생각해 보았다.
“에취! 에취!”
난각 안에서 황제는 탁자에 엎드려 월령안의 허리띠를 분해하고 있었다. 힘이 너무 세서 허리띠에 감춘 유지(油紙)를 찢어 버렸다. 그 안에 있던 약 분말이 날리면서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찔러 황제는 연신 재채기를 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이반반은 난각 밖에서 기척을 듣고 날 듯이 뛰어왔다.
“에취! 짐은…… 에취, 괜찮다.”
황제는 두 눈이 벌게져서 눈물도 찔끔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본 이반반은 다급히 젖은 손수건으로 황제의 얼굴을 닦았다.
“폐하, 조심하십시오. 이 암기는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다. 조심하고 있었어.”
얼굴을 닦으니 황제는 더 이상 약 분말의 자극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곧 그는 재채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 허리띠 안에는 약 분말뿐이구나. 재미가 없군. 다른 두 가지보다는 쓸모 있지 않네.”
황제는 월령안의 허리띠를 한쪽으로 밀어 두고 옆에 놓인 반지와 팔찌를 집어 이반반에게 던져 주었다.
“짐이 방금 전에 시험해 보았다. 월령안의 이 팔찌와 반지는 아주 흥미롭더구나. 반지 안에는 빙침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관했는지 전혀 녹지 않았더군. 하지만 아쉽게도, 짐이 열자마자 안의 빙침이 녹아서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 팔찌도 아주 괜찮아. 곧게 펴면 한쪽으로는 신호를 내보낼 수 있고 다른 한 쪽으로는 은구슬을 발사할 수 있다. 살상력이 꽤 괜찮지. 다만 수량이 모두 너무 적어. 짐이 한번 시험해 봤을 뿐인데 다 없어지더군.”
“폐하께서 좋아하신다면 공부의 사람더러 이 두 암기를 연구해서 똑같이 두어 개 만들라고 하겠습니다.”
작은 일일 뿐이었다. 이반반은 황제의 뜻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공부의 사람더러 잘 만들라고 하거라. 일개 상인 집안 여인인 월령안도 가지고 있는 걸 제왕인 짐이 처음 보다니. 정말 체면이 서지 않는구나.”
공부의 그 사람들을 떠올리자 황제는 싫은 내색을 비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더러 새 병기와 호신용 암기를 잘 구상하라고 하거라. 그 많은 국고의 돈을 들여 공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호의 한 작은 문파보다도 못하다니. 짐은 생각만 해도 망신스럽구나.”
공부의 사람들은 너무 무능했다.
이번 양국 비무에서 천궁각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장봉은 크게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공부의 장인들은 모두 평소 전쟁에서 쓰는 병기를 만듭니다. 이런 암기 같은 작은 것에 능하지 않지요. 폐하, 걱정하지 마세요. 이 두 견본이 있으니 공부의 사람들은 반드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반반은 공부의 사람들 편에 서서 한마디 했다.
황제 얼굴의 불만은 조금 옅어졌다.
“아쉽게도 이 두 가지만 암기구나. 나머지는 모두 일반적인 장신구다. 참고할 만한 견본이 없어도 공부의 사람들이 다른 호신용 암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지 모르겠구나.”
제왕인 그는 일개 상인에게 질 수 없었다.
이반반은 분해되어 어지럽게 널린 장신구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황제는 바로 장신구를 분해할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방금 전의 자객에 놀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일부러 도도하게 말했다.
“짐도 그녀의 물건을 공짜로 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다. 짐의 개인 금고에서 두면(頭面 - 갓과 같은 머리를 꾸미거나 장식하는 물건) 두 개를 가져다 월령안에게 전해 주거라.”
“폐하…….”
순간 이반반은 멍해져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폐하, 진심이신가요? 궁에 머무르는 여인에게 두면을 하사하시다니. 폐하, 정녕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고 계신 것이 맞습니까?’
* * *
황제는 떠들썩하게 월령안에게 두면을 하사하지 않았다. 단지 이반반더러 사적으로 전해 주라고 했다. 하지만 궁은 비밀이 없는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궁문이 봉쇄되고 내관, 궁녀가 용건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한 지금이라 해도 황제가 이반반을 시켜 월령안에게 두면을 보낸 일은 빠르게 퍼졌다.
곽 황후는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사람이었다. 앞서 그녀는 황제가 암살당할 뻔했는데 월령안에게 구해졌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곽 황후는 아주 평온했다. 심복 상궁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몇 마디 한 뒤, 내관더러 대황자를 안아 오라고 했다.
곽 황후는 대황자를 보자 그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슬프고 가련하게 말했다.
“아들, 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셨단다. 앞으로 어머니는 다시 너를 볼 수 없겠구나. 아들…….”
‘내가 안 된다면 다른 여인도 날 밟고 올라갈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다. 황제의 총애만으로는 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