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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71)화 (471/1,004)

471화 월령안이 나를 구해 주었구나

‘월령안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옥패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모르나?’

그것은 최씨 가문에서 오직 가주에게만 물려주는 옥패였다.

최씨 가문 안팎의 모든 세력을 움직일 수도 있는 옥패였다.

물론, 이 옥패는 최일의 수중에 있어야 유용했다. 월령안의 수중에서는 확실히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것 외에 다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일은 옥패를 월령안에게 주었다.

‘무슨 뜻이지? 나한테 월령안은 최씨 가문에서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 주려는 것인가? 지금 나한테 월령안을 괴롭히지 말하고 귀띔하는 건가? 최일이 언제 월령안과 이렇게 가까워졌지? 난 왜 몰랐지?’

월령안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매를 다소곳이 하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황제는 월령안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월령안은 또 무슨 뜻이야?’

“고개를 들거라! 짐이 사람을 잡아먹느냐?”

황제는 심기가 불편하여 퉁명스럽게 말했다.

분명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인데 공손한 모습을 보이다니.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황제가 신분으로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형, 월령안은…….”

“조용히 하거라! 황성사 일은 다 끝난 것이냐? 끝나지 않았으면 빨리 가지 않느냐!”

황숙에게는 화내지 못하지만 자기 동생에게는 얼마든지 화낼 수 있었다.

“좋습니다. 황형.”

조계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형은 왜 월령안에게 또 저러지? 오해가 풀린 거 아니었어?’

하지만 그가 바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궁중에서 시간을 더 허비할 수가 없었다.

조계안은 월령안이 걱정되어 떠나기 전에 이반반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반반, 월령안을 보살피거라. 평소에 입궁할 기회가 많지 않아 황궁의 많은 규칙을 모를 거야. 노련한 상궁을 불러 돌보게 하거라. 남들이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잊지 말고.”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 월 낭자를 잘 보살피겠습니다.”

이반반은 빙그레 웃으면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조왕의 체면을 보지 않더라도 대장군의 체면을 보아야 했다. 만일 월 낭자가 황궁에서 서러움을 당하면 대장군은 북요인들을 이기고 와서 그를 혼내 줄 것이다.

“음.”

조계안은 떠나기 전, 병풍을 한번 바라보았다.

황숙이 계시는 한, 아무도 월령안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은 무언가를 느낀 듯 조용히 눈을 들어 황제 뒤편의 병풍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병풍 뒤에서 얼핏 사람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영감님일까?’

월령안은 당장이라도 병풍을 밀어내고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똑똑히 보고 싶었다.

“월령안, 궁중에 마음 놓고 있거라. 일이 있으면 이반반을 찾거라. 일이 끝나는 대로 내가 다시 황궁에서 내보내 줄 테니까.”

조계안은 월령안과 한마디 한 후 성큼성큼 떠나갔다.

황성사는 지금 도처에서 사람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 없으면 황성사의 사람들은 자신감이 떨어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없었다.

“조왕께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눈길을 거두고 일어나 조계안에게 예를 올리고 공손하게 배웅했다.

황제는 콧방귀를 뀌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풍 뒤, 노인은 잠자코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대로 바퀴 의자를 움직여 떠나갔다.

‘역시 령안이는 예리해서 금방 알아차리는구나.’

안타깝게도 그는 여기서 월령안을 만날 수 없었다.

노인은 월령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바퀴 의자를 움직여 병풍 뒤편 작은 문으로 난각을 빠져나갔다.

월령안이 다시 고개를 돌리니 병풍 뒤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노인과 조계안이 모두 자리에 없자 황제는 월령안에게 예의도 차리기 귀찮아져서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반반, 숙태비의 궁전에 보내 주고 숙태비더러 돌보라고 하거라.”

최일이 옥패를 보낸 이상, 어쨌든 최씨 가문의 체면을 봐주어야 했다.

“네, 폐하.“

이반반은 황제의 말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월령안은 미련을 가지고 병풍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황제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반반은 옆으로 비켜서서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월령안에게 말했다.

“월 낭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월령안은 뒤따라서 한 걸음 걸었다. 어린 내관 두 명이 밖에서 높은 소리로 외쳤다.

“폐하, 큰일입니다! 대황자께서 잘못되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황제는 얼굴빛이 변하더니, 이반반을 바라보았다.

이반반은 하는 수 없이 월령안을 버려두고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그 두 어린 내관은 금위군의 방위를 뚫고 먼저 난각으로 들어가 황급히 황제 앞으로 달려갔다.

“폐하, 대황자께서…….”

“대황자가 어찌 되었단 말이냐?”

황제는 긴장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어보았다.

바로 그때 들이닥친 어린 내관은 소매에 감추어 둔 비수를 뽑아 들고 뛰어오르며 황제를 찔렀다.

천만 번은 연습한 듯 움직임에 주저함이 없었다.

“폐하, 피하십시오!”

이반반은 반응이 아주 빨랐다. 내관이 비수를 뽑아 드는 순간 바로 황제를 구하려 했다. 그때 한발 늦게 뛰어든 내관이 갑자기 괴력을 내어 이반반을 덮쳤다. 목숨을 걸고 이반반을 붙잡았다.

그때 생긴 틈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비수를 든 내관은 망설이지 않고 기회를 잡았다.

이때 황제 옆에는 월령안밖에 없었다.

내관이 손을 쓰는 순간 월령안은 멍해 있었다.

황궁에 들어와 위험을 피하려다가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황제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사람을 보내 황제를 죽이려 하다니. 게다가 황제와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황제가 죽으면, 나 월령안도 죽는다!’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어린 내관의 칼이 황제를 찌르기 바로 직전에, 월령안은 손목을 들어 손끝에서 빙침 하나를 쏘았다.

슉!

그런 소리와 함께 빙침이 어린 내관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린 내관은 맹호처럼 뛰어오르는 자세 그대로 허공에서 잠시 멈추었다.

월령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어린 내관의 상체에 빙침 하나를 더 쏘았다.

쿵!

어린 내관의 씩씩하고 힘찬 몸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탁자 위에 떨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비수는 탁자 위에 세차게 꽂혔다.

어린 내관은 단념하지 않고 일어나려고 발버둥쳤으나 이제는 소용 없었다.

다른 한 내관을 처리한 이반반이 날듯이 다가가서 그 어린 내관을 발로 차서 날려 버린 것이다.

황제는 사색이 되었다.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 멍하니 책상 위에 꽂힌 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의 거리만 남기고 비수가 멈췄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그 칼이 그의 가슴팍에 꽂힐 뻔한 것이다.

‘월령안! 월령안이 나를 구해 주었구나!’

황제는 고개를 들고 망연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폐하, 폐하. 괜찮으세요?”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야 이반반은 비틀거리며 황제 곁으로 걸어갔다. 다리에 힘이 빠져 거의 서 있기도 힘들었다.

‘하마터면, 폐하께서 칼에 찔려 승하하실 뻔하셨다.’

“짐은 괜찮다.”

황제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미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평온을 되찾았다. 이반반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문밖의 금위군이 가장 빠른 시간에 들이닥쳤다. 난각 안의 광경을 본 금위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즉시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소인이 소흘했습니다. 폐하께서 꾸짖어 주십시오.”

“너희들……!”

이반반은 금위군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으려 했지만 황제에게 저지당했다.

“이자들을 끌고 가 심문하거라.”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조사해 보고 결정해야 했다.

지금 궁중,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금위군들은 모두 그의 심복이었다. 그는 까닭 없이 자신의 심복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금위군은 명에 따라 움직여 쓰러진 어린 내관들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 금위군은 그들을 확인하고는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폐하, 이 살수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음독을 한 듯 보입니다.”

금위는 황제와 이반반이 볼 수 있도록 두 어린 내관의 시체를 번져 놓았다.

황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습해 가거라. 이반반, 이 일은 너한테 맡긴다. 내막을 확실하게 조사하거라.”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 반드시 제대로 조사해내겠습니다.”

이반반의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음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고 은은하게 상처 입은 것도 느껴졌다.

이반반이 조사할 필요도 없이 마음속으로 다소 짐작할 수 있었다.

여하튼 바로 그 사람들, 그의 측근들이었다.

황제는 눈을 감아 눈 속의 슬픔을 숨겼다. 이때 이반반이 웃는 낯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월 낭자, 방금 전 일은 감사해요. 월 낭자가 제때 손쓰지 않았더라면, 폐하께서는…….”

“월령안!”

황제는 갑자기 눈을 뜨고 탁자를 치며 일어나더니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담도 크구나!”

“폐하?”

월령안에게 예를 올리려던 이반반은 황제의 노호성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몸을 돌려 어리둥절해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미간을 좁혔다. 곧 감이 잡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폐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죄를 용서해 달라? 그럼 넌 알면서도 일부러 죄를 범한 것이냐?”

황제는 이를 갈며 말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월령안은 또 무슨 생각으로…….’

하늘은 알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월령안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황제의 사람인 데다가 평소에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만나도 그녀는 줄곧 조심했다. 그래서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그는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그녀를 벌할 기회를 찾았는데 월령안이 뜻밖에도 바로 잘못을 인정했다.

그녀의 평소 일 처리 방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소인, 죄를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월령안은 일절 해명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할 뿐이었다.

이 일은 그녀의 잘못이므로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반반은 뒤로 물러서서 황제와 월령안을 번갈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월령안이 황제를 구한 것만 생각하고 그녀가 어떻게 구한 것인지를 깜빡 잊고 말았다.

이곳은 황궁이었다.

그런데 월령안은 암기를 지니고 입궁하여 황제를 만났다.

‘만약 월령안이 황제를 죽일 의도가 있었다면 황제는 아마…….’

그 결과를 생각하자 이반반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월령안을 동정할 수 없었다.

이반반은 차가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입궁할 때, 누가 몸을 수색했나요?”

‘이번 기의 금위는 안 되겠군!’

금위군은 어린 내관의 시체 옆에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린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누구도 소인의 몸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계안이 데리고 들어왔다. 금위는 조사하려 했지만 조계안의 차가운 눈초리에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너희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입궁하는데 몸수색을 하지 않았단 말이냐?”

이반반은 얼굴빛이 더 보기 흉해졌다. 금위를 삿대질하며 엄하게 꾸짖었다.

금위군은 고개를 더 깊이 파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말 너무 힘들단 말이야.’

“폐하, 조왕 전하께서 몸수색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월령안은 사사로이 무기를 지니고 입궁한 것은 큰 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왕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황제가 벌을 내리려면 먼저 조왕에게 벌을 주어야 했다.

황제는 화가 난 나머지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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